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57)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57화(57/171)
57화 신기루의 탑
오랜만에 만난 마법사들은 서로 안부를 물었다.
“음. 그런데 세비스 마법사는 보이지가 않소?”
“아……. 그게. 제국군에 압송당했고. 처형당한 것으로 확인이…….”
“아…….”
“그런데 루드필 마법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난번 세무청 폭발로…….”
“아.”
포럼이 끝난 이후 가장 크게 정세가 변한 곳은 역시 제국과 오마르 지역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극한의 갈등 속에서 여러 마법사가 덧없이 목숨을 잃었다.
반가워하던 두 마법사가 뻘쭘하게 시선을 피했다.
한 명은 제국 소속. 한 명은 오마르 독립 세력 소속.
사실상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서로의 입장을 깨달은 것.
그러다가 오마르 독립 세력 소속의 마법사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루드필 마법사의 죽음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저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만……. 많이 슬프군요. 진심입니다.”
그 말에 제국의 마법사도 오마르족 마법사와 눈을 마주쳤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비스 마법사님의 슬픔이 많이 아깝고 슬픕니다.”
서로 정반대의 진영에 선 두 마법사가 그런 각자의 입장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드러냈다.
곳곳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고, 그 누구도 상대의 슬픔을 기만이라거나 위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흠음…….”
그러다가 움직인 것이 현자 시에넬이었다.
그녀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탑의 중앙으로 다가가 수인을 맺었다.
쿠구구구-!
이곳은 정령계와 반쯤 걸쳐진 중첩 지역.
땅 정령을 부르는 마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공명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거대한 비석을 빚어냈다.
현자 시에넬은 칼을 꺼내, 직접 만든 고색창연한 비석에 손수 한 글자 한 글자 이름을 새겼다.
그녀는 주름진 얼굴을 찡그리고 쪼글쪼글한 손에 힘을 빡 쥐어 정성을 다했다.
마법사 세비스.
마법사 루드필.
마법사…….
포럼이 끝난 이후 일어난 갈등과 항쟁으로 죽은 마법사들의 이름들.
서로 반대편에 서서 싸웠던 마법사들의 이름이 한 비석에 나란히 적힌다.
그렇게, 마침내 완성된 비석 앞에서 현자 시에넬은 모두를 돌아봤다.
“우리는 입장이 서로 다릅니다. 한쪽은 정복자인 제국이고 한쪽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자유민들이죠.”
꿀꺽.
누군가 침을 삼켰다.
제국의 현자인 그녀가 오마르 독립주의자들을 ‘자유민’으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도 그걸 입 밖으로 내어 지적하지는 않았다.
제국민도 오마르족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마음으로 비석을 둘러쌌고 그 밖의 다른 마법사들도 어쩐지 숭고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마법사로 자청하는 한, 그리고 페르세타 선생님 밑에서 함께 배운 이상, 우리는 언제까지나 동료이고 동급생입니다.”
시에넬이 등을 휙 돌리고 자신이 만든 비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묵념한다.
“그러니. 우리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현실의 제약과 입장을 잊어버리고 동료로서, 동급생으로서, 서로를 추모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자 시에넬이 말을 마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용히, 천천히, 고개를 숙여 묵념을 표하는 마법사들.
짧은 묵념이 끝난 후,
독립 세력의 지도자인 마법사 애켈슨이 나서서 현자 시에넬의 옆에 섰다.
“감사합니다. 제가 하고 싶었으나 감히 꺼낼 수 없던 말을 이리 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현자님. 아니. 선배님.”
둘의 시선이 얽힌다.
마법사들의 시선이 서로 얽힌다.
서로 말은 한마디도 안 했으나, 다들 느끼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걸. 입장은 다르지만, 그래도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걸.
뚜벅. 뚜벅.
잔잔하게 끓어오르는 감동에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 탑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한 남자가 내려왔다.
수수한 차림에 조금 피곤해 보이는 마법사.
“선생님!”
“페르세타 선생님!”
바로 페르세타 베리테였다.
그가 작게 박수를 친다.
“다들 고맙습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그는 계단 몇 칸 위에서 멈춰서서 난간을 잡고 마법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모두들 연구원이자 학생으로 계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자 시에넬이 페르세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이곳은 어디입니까?”
“이미 짐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여기는 인간계와 정령계를 중첩하여 만들어 낸 세계와 세계의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세상 어디에 계시든 한 달에 한 번, 정령계가 가장 빛나는 날에 이곳에 오실 수 있습니다.”
마법사들이 웅성거렸다.
페르세타의 말대로 이미 이곳의 원리를 짐작한 마법사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었다.
현자 시에넬이 모두의 의문을 대신하여 질문을 던졌다.
“세계와 세계 사이의 중첩된 지역이라니……. 이건 요정계나 정령계를 인간계에 잠시 덧씌우는 공명 마법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진짜로 우리 존재 자체가 정령계도 인간계도 아닌 이곳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겁니까?”
페르세타는 빙긋 웃었다.
“그건 나중. 한참 나중 진도입니다. 모든 세상이 결국엔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으신다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간략하게만 대답한 그는 목소리 톤을 높이며 손을 뻗었다.
“이곳은 여러분의 마법 수련을 위해 마련한 장소입니다. 이곳의 시간은 인간계의 시간보다 6배 정도 느리게 흐르니, 정령계가 가장 빛나는 반나절 동안, 3일 정도 머무실 수 있을 겁니다. 자, 모두 저를 따라 올라오시죠.”
페르세타는 마법사들을 이끌고 ‘신기루의 탑’을 자세히 안내하기 시작했다.
“2층에는 실험실과 강연장이 있습니다. 정령계와 가까운 만큼 정령계와 관련한 실험들을 진행하기에 좋을 겁니다. 강연장에서는 자유롭게 토론을 하시고 연구를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3층부터가 진짜입니다.”
신기루의 탑은 총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에서 2층까지는 각종 편의 시설과 연구 시설이 있었다면, 3층부터 10층까지는 본격적으로 심상의 도구를 만들기 위한 수련장으로 채워져 있다.
“이곳은 요정계와 환요계의 요술을 섞어 만든 장소입니다. 환상 속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며 스스로의 심상을 들여다보고 변화를 줄 수 있게 고안되었지요.”
예전 같았으면, 그러니까 페르세타가 처음으로 폐관을 마쳤을 때 같았으면, 지금 페르세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마법사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최초의 마법서인 <이데아>를 들먹이며 심상은 그저 맑고 투명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란 이야기만을 반복했겠지.
하지만 이미 성녀의 논문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진 상태였다.
많은 마법사가 자신들의 비전과 해당 논문을 교환해 읽어 보기도 했고, 설령 읽어 보지 않은 자들이라 해도 그 소문만큼은 이미 들어 본 터였다.
맑고 투명한 심상의 가장 안쪽에 무언가를 만들어서 특별한 마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
그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페르세타의 말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아니, 그냥 받아들여지는 것을 넘어 열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심상의 도구를 만들기 위한 수련장이라고?”
“안 그래도 그 분야를 한창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건 정말 참고할 게 많은……!”
“페르세타 선생님은 이미 천사 성교회의 비전도…… 알고 계셨다고?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나는 성녀님의 논문을 못 봤는데……. 이렇게 되면 그 지식을 유추할 방법이 생기는 건가……?”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 앞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마법사들.
페르세타는 그런 마법사들과 눈을 하나하나 마주쳤다.
“자. 그러면 3층부터 한 층씩 도전하면서 심상을 다루어 도구를 만드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참고로 과제가 있습니다. 처음 여러분들이 심상 속에 만들어야 하는 건, 관측 도구입니다.”
“관측 도구요?”
“네. 차원의 우주를 직접 살피고 정확히 측량할 수 있는 도구들이요. 그런 게 있었다면, 이미 <알마게스트> 같은 건 옛날에 여러분의 힘으로 뛰어넘으셨겠지요. 또한 그걸로 여러분이 충분한 자료를 모아야 제 다음 강의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허어……. 차원의 우주를 보는 관측 도구…….”
“어렵겠지만, 제가 마련한 수련장을 꾸준히 이용하다 보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페르세타가 마침내 옆으로 두 걸음 물러섰다.
3층으로 향하는 길이 마법사들의 앞에 뻥 뚫려 있다.
“가, 감사합니다! 정진해서! 최대한 빨리 다음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마법사들은 페르세타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고 우르르 신기루의 탑 3층으로 몰려들어 갔다.
* * *
본래 천사 성교회에서 심상에 변화를 주는 방법은 어찌 보면 무식하고 어찌 보면 야만스럽다고까지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몇 날 며칠을 이어지는 기도.
금식.
채찍으로 자기 등을 때리는 고행.
마약성 약물의 투여.
그런 온갖 방식을 통해 무의식 차원에서 신계 차원의 주파수를 찾고 심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반면에 페르세타가 심상의 도구를 만들던 방식은 완전 달랐다.
페르세타는 처음부터 심상이라는 자신의 의식 체계를 연구하여 명상과 심상 훈련을 통해 의식적으로 심상을 변화시키며 그 안에서 도구들을 만들어 냈다.
살리넬르와 일리안느 그리고 현자 시에넬에게 가르쳤던 방식도 바로 이런 방식.
반면에 이번에 페르세타가 설계한 신기루의 탑은 접근 방식이 조금 달랐다. 6층 이상으로 올라가면 페르세타가 원래 하던 방식대로의 이성적인 접근이 중요해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 시작을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두고 있는 것이다.
마치 천사 성교회처럼.
이 방식은 똑똑함이 좀 부족한 사람이라 해도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심상을 들여다보며, 심상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길게 보면, 천사 성교회의 방식으로 시작하는 게 더 빨리 더 높은 성취를 얻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는 게 페르세타의 판단.
그에 따라 수많은 마법사는 3층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환상에 시달리며 자신의 밑바닥을 보는 경험을 해야 했다.
“으읍! 으으읍!”
부글부글!
누구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깊은 물 속에 빠지는 환상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했다. 이것은 현실과 다를 바 없는 환상이었기에 그들이 느끼는 공포 역시 현실과 같았다.
“흐으으……. 으으으으…….”
또 누구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에서 알몸으로 서서 명상을 해야만 했다.
공통점은 3층 수련실에 입장한 모두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극한의 경험을 했다는 것.
그 경험 앞에서 그들의 무의식은 예리하게 깨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난 무의식에 벼락처럼 꽂히는 음성.
–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 자리가 심상의 가장 깊은 곳입니다. 그곳에 집중하고 원하는 도구를 간절히 염원하세요.
천사 성교회의 비전에 담긴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다.
무의식에 닿은 자는, 엄밀한 설계가 없이 간절한 염원만으로도 얼추 쓸 만한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수많은 마법사가 자신의 한계의 끝자락에서 가장 기초적인 도구를 만들어 내는 데에 감을 잡았다.
“허억. 허어어억…….”
오마르족의 젊은 마법사 하나가 몸을 떨며 3층 수련실을 빠져나왔다.
“고생했다.”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큰 손. 오마르족의 지도자 중 하나인 애캘슨이었다.
“아……. 대장.”
젊은 마법사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 옆에 주저앉았다.
“이거 신기하네요. 그동안 우리가 정령사를 만들겠다면서 연구했던 것이 무색합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이렇게 단숨에 체험해 버리니 어려웠던 모든 게 쉬워지는 기분이에요.”
애캘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다.”
“저, 그런데 대장.”
“그래.”
“……저는 분명 우리 민족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다 바치기로 맹세했는데……. 그러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정령사를 현실화시킬지 그걸 고민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가 않아요.”
“…….”
“이곳에서는 페르세타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로지 관측 도구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이곳에서만큼은 그냥……. 연구를 그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고 싶네요. ……제가 이기적인 걸까요?”
그 말에 애캘슨은 웃으며 젊은 마법사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아니. 실은 나도 그렇다.”
“대장……?”
“이곳에서만큼은 우리 마음 가는 대로. 그저 한 명의 마법사로 있자꾸나. 선생님께서도 그래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 말에 젊은 마법사도 베시시 웃었다.
본인은 몰랐겠지만, 애캘슨은 알고 있었다.
저 마법사가 저렇게 웃는 건 포럼이 끝난 이후로 처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