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58)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58화(58/171)
58화 보다
페르세타는 신기루의 탑에 열심히 도전하는 마법사들을 보았다.
말이 좋아 자신의 무의식 깊은 곳에 쉽게 닿을 수 있게 해 주는 수련이지. 그 실상은 몇 번이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체험하게 하는 것.
그런데도 마법사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포와 고통보다도 그 끝에서 마주한 새로운 시각과 감각에 더 크게 경도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페르세타가 요청한 ‘관측 도구’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페르세타는 그 부분이 아주 고마웠다.
그도 알고 있었다. 제국과 오마르족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정세의 불안정이 다른 세력들 역시 두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현실의 논리로 보면 그랬다. 지금 마법사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건, ‘관측 도구’ 같은 순수 마법 분야가 아닌, ‘전쟁 마법’이나 ‘마법 무기’ 같은 분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그런 쪽을 연구하는 마법사가 없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모두가 페르세타의 요청대로 순수한 마법사의 자세로 돌아가, 차원의 우주를 살펴보기 위한 관측 도구를 만드는 데 집중해 주었다.
그러니 고마울 수밖에.
‘다들 잘해 주고 계십니다. 이곳에서의 수련으로 초보적인 관측이라도 성공해 낸다면……. 그땐 더 잘 알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겁니다.’
페르세타는 선명한 기대감을 품은 채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3층과 4층에 주로 머물렀다.
살리넬르나 시에넬, 일리안느처럼 이미 그에게 심상의 도구를 배웠던 마법사들은 진작에 4층을 지나 6층을 도전 중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뛰어난 그들보다 아래층에서 헤매고 있는 더 많은 마법사에게 시선이 갔다.
어서 그들이 심상 속에 최초의 도구를 만들어 내고, 인간계 밖을 내다볼 수 있기를 자꾸만 응원하게 되었다.
* * *
마법왕국 비셰나의 왕세녀, 라냐 비셰나. 그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차원의 우주를 직접 관측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한없이 거대하며 방향도 알 수 없는 차원의 우주 속으로 의식을 쏘아 낸다?
그건 마치 폭풍우가 치는 대해의 한복판에서 맨몸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행위였다.
돌아가는 길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요동치는 바다에 잡아먹혀 익사할 뿐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페르세타는 ‘심상의 도구’라는 기술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걸 쉽고 쓸모 있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그걸 위한 최적의 환경까지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되면 차원의 우주를 관측하는 일은 더 이상 목숨을 건 도전이 아니게 된다.
여전히 위험하고 두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계획이 되는 것이다.
‘우선……. 의식과 내 몸을 연결하는 끈을 만든다.’
페르세타가 이번에 가르쳐 준 관측 방법은 원시적이라고 할 정도로 단순무식한 것이었다.
의식을 직접 차원의 우주 속으로 날려 보내되, 다시 되돌아올 수 있게, 신체와 끈을 연결하는 방식.
당연히 마법사들은 일말의 의구심을 품었다.
‘이게 최선일까?’
‘이것보다 훨씬 세련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의문이야말로 페르세타가 바랐던 것이다.
불만과 불만족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원시적이지만 빠른 방법을 사용해서, 마법사들에게 일단 보여 주고 싶은 풍경이 있었다.
마법사들도 의문을 느끼긴 했지만, 일단 페르세타의 지시를 잘 따랐다.
그것은 학습된 신뢰였다. 페르세타의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면 항상 생각하지도 못한 세계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조금 위험하고, 조금 의아하지만, 그래도 온 힘을 다해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 최선두에 있는 게 왕세녀 라냐 비셰나였다.
‘끈을 점점 길게……! 길게!’
라냐 비셰나는 일단 모든 의문을 제쳐 놓은 채, 페르세타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랐다.
의식이 차원의 우주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심상 속에서 만들어 낸 끈으로 자신의 의식을 꽉 묶고 차츰차츰 인간계의 밖을 더듬어 나갔다.
‘공허해…….’
인간계의 외곽으로 의식을 날려 보낼수록, 그녀가 느낀 것은 압도적인 허무함과 막막함이었다.
그건 마치, 빛 한점 들지 않는 심해 속으로 다이빙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어느 순간 위가 어딘지, 아래가 어딘지도 분간이 안 가고 숨이 턱 막히며, 공포에 목이 졸린다.
그럴 때, 라냐는 자신의 의식과 연결된 끈을 힘껏 붙들었다. 그 팽팽한 장력을 느끼며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더 깊이. 올라간다.’
서서히 떠오르는 라냐 왕세녀. 그녀가 마침내 인간계를 벗어났다.
어두운. 차디찬. 방향을 알 수 없이 혼란스러운, 차원의 우주가 그녀를 마구 휘젓는다.
그녀는 인간계를 벗어났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전에 그만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녀가 의식과 연결된 끈을 꽉 쥐었을 때였다.
– 조금 더 가세요. 조금만 더.
귓가로 페르세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가라고……? 여기서?’
라냐 왕세녀는 그만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가야지. 그녀에게 거대한 가르침을 내려 준 페르세타의 지시인데. 따라야지.
인간계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내가 원래 존재하던 세계를 떠났다는 생각에, 마음마저 약해진 걸까? 라냐는 자꾸만 울컥 울컥 터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 조금 더. 조금만 더.
자꾸만 더 나아가라는 페르세타의 목소리가 얼마나 야속한지. 그만 멈춰서서 울부짖고 싶었지만, 라냐는 끝내 이겨 내고 나아갔다.
– 수고하셨어요. 자. 이제 돌아보세요.
라냐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의식의 끈을 붙들고 천천히 몸을 돌린다.
‘아…….’
그리고 그녀의 앞에 드넓게 펼쳐지는 풍경.
인간계.
‘아……. 저게 내가 사는…… 세상.’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구체인 듯했다. 구체 속에 구체가 들어가 있는 기묘한 형상.
그리고 그 안에 사선으로 떠 있는 대륙과 그 주위를 공전하는 태양과 달과 무수한 별빛들.
기묘했다.
이곳에서 나와 돌아보니 인간계는 결코 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안에 오밀조밀 무한한 세계가 접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이 차곡차곡 모인 인간계는 꼭 아름다운 빛과 문양으로 가득한 유리구슬처럼 보였다.
‘너무…… 아름다워…….’
울컥.
왤까? 또 눈물이 났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었다.
라냐는 그 눈물을 참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인간계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 아름답죠?
또다시 들려오는 페르세타의 목소리.
– 여러분께 이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 아름답고 슬픈 이 광경을요.
아릅답고, 슬픈.
그 한 마디가 라냐의 가슴에 콱! 꽂힌다.
저 크지 않은 것 안에, 제국과 오마르가 있고. 비셰나 왕국과 드블랑 왕국이 있고.
부자와 빈자가 있고.
어머니와 아들이 있고.
두 손을 펼치면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저 구슬 안에, 그녀가 아는 모든 세상이 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어디서 오는지 알 수도 없는 희미한 빛들이 깜빡이는 차원의 우주.
정령계?
저건 정령계인가?
외로운 세계 하나가 어둡고 적막한 우주 속에서 떨고 있다.
그건 인간계보다도 훨씬 작고 외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그래서 슬픈 모습.
이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이토록 외롭고 위태하게 떠 있는 것이었구나.
와르르-
무언가가 그녀의 가슴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그녀는 평생 왕세녀로서 왕국을 향한 자신의 의무를 새기며 살아왔었다.
자리를 비우고 베리테 영지까지 와서 오랫동안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것도 마법왕국의 왕세녀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저토록 아름답고 저토록 슬픈 인간계를 바라보자 어쩐지 그 모든 게 부질없이 느껴진다.
라냐는 주위를 둘러본다.
하나 둘, 다른 마법사들도 그녀가 있는 위치까지 도달해 인간계를 돌아보는 모습이 보인다.
남작가 영애 비앙카 애시라거나, 성녀 샤라 엘리프라거나. 이그나치오 교장과 애캘슨.
누구는 울고 누구는 입을 벌린 채 넋이 빠진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 모두는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고.
국적도 다르고 입장도 다른 우리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모두가 마법사이자 동료라는 걸.
또오옥-!
마침내 시간이 되고 다시 의식을 육신으로 되돌렸을 때, 라냐는 자신의 턱을 타고 굴러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을 느꼈다.
웅성-
웅성-
마법사들이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들이 느꼈다.
다들 눈이 빨갛고 혼이 빠진 듯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황급히 시선을 돌려 서로를 찾았다.
서로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이상하게 그 사실에 깊은 위안을 받는다.
“어떠셨습니까?”
페르세타가 물었다.
어땠냐고?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목이 메었다.
페르세타는 그들이 감정을 추스리고 말을 꺼낼 수 있을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었다.
마침내 긴 침묵 끝에 비앙카 애시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너무 작았어요.”
그녀의 말에, 라냐 비셰나는 물론 장내의 모든 마법사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리고…….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불쌍해 보였어요.”
또다시 침묵. 그것은 그 어떤 말보다도 깊은 동의의 표현.
“이토록 작은 우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건, 우리가 차원의 너머를 바라보는 눈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저는 이제야 알았어요. 그래서 마법사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우면서도 후회됐어요.”
무엇이 후회되었고 무엇이 자랑스러운가.
그런 걸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마음 한켠이 연결된 것처럼 서로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페르세타는 그런 마법사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이그나치오 교장과 현자 시에넬 그리고 오마르의 민족 지도자 애캘슨을 차례로 훑는다.
“여러분은 모두 저마다의 현실에 갇혀 있어요. 때로 그것은 너무나도 견고해서 결코 도망갈 수 없는 덫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페르세타가 천천히 고개를 천장으로 들어올렸다.
마법사들도 홀린듯 그를 따라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천장에 그려진 그림이 보였다.
처음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제는 안다.
천장에 보이는 그림은 방금 마법사들이 보고 온 그것이었다.
세계의 바깥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반짝이는 유리구슬과도 같았던 인간계의 풍경.
“하지만 더 멀리서 바라보면, 그것들은 사실 작고 얄팍하기 그지없죠. 우리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는 거예요. 우리는 훨씬 더 큰 것을 바라보고 훨씬 더 먼 곳을 예지하며 살아갈 수 있어요. 그게 바로 마법사니까요.”
페르세타는 다시 시선을 내려 마법사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현실은 때론 잔혹해요. 하지만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법입니다. 현실에 매몰되지 말고, 더 먼 곳을 바라봐 주세요. 마법의 발전은 언젠가는 모든 부조리와 싸움과 비극을 멈추게 할 거예요. 그렇게 믿어 주십시오. 저도 그리 믿고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길을 함께 걷는 동료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 주세요.”
그 말에 아란드리아의 사서, 세레스 에멜다가 고개를 숙였다.
“이 가르침.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우르르르-
모든 마법사가 고개를 숙이며 그 말을 따라 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진심이었다.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그들의 마음을 옭아매었지만, 그래도 가슴 속 다른 한 켠에, 저마다 더 큰 무언가를 하나씩 새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