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59)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59화(59/171)
59화 작은 승리
페르세타는 인간계 밖, 차원의 우주 속으로 자신의 의식을 날려 보냈다.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세계.
끝없는 어둠 속에 외로이 떠 있는, 유리구슬 같은 인간계를 응시한다.
그러다가 잠시 마나의 태양으로 시선을 던지곤, 그 반대편으로 의식을 더 멀리멀리 날려 보냈다.
환요계를 지나, 요정계를 지나, 수많은 작은 세계가 존재하는 오르트 구름을 지나.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의식은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너무 멀어…….’
더는 나아갈 수 없을 만큼, 이렇게나 멀리 나왔는데도 여전히 모든 것들은 너무도 먼 곳에 있다.
페르세타는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까지 나오면, 이제 인간계는 하나의 창백한 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저 먼 곳에서 빛나는 세계들은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나는 또다른 태양. 페르세타가 ‘가깝다.’라는 뜻에서 ‘프록시마’라고 이름을 붙인 그 태양조차 아득했다.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분명 저 태양 주위에도 신비 세계들이 공전하고 있는데…….’
직접 의식을 날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심상의 도구를 꺼내 날아오는 마나의 파장을 수집하다 보면,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저곳에도 세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곳에 갈 수도, 그곳의 존재를 불러낼 수도 없다.
까마득히 먼 우주 공간을 날아오는 동안 그 세계의 주파수는 너무나 미약해졌으니까.
페르세타는 멍하니 머나먼 세계를 응시했다.
‘저 세계에는 어떤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와 비슷할까? 전혀 다를까?’
생각을 할수록 갈증은 커져만 갔다.
가장 가까운데도 갈 수가 없다니…….
페르세타는 시선을 돌렸다.
심상의 도구를 이용해, 이번에는 더 깊은 우주를 바라본다.
이렇게 시야를 넓게 하면 온 우주는 마나의 빛으로 가득했다.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많은 빛이 차가운 우주 공간을 넘어 눈에 닿는다.
그리고 그 빛들의 분포를 살펴보다 보면 알 수 있다. 이 수많은 빛이 하나의 중심을 두고 천천히 흘러가고 있음을.
인간계의 마법사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믿고 있는 마나의 태양조차도, 어떤 거대한 중심을 따라 천천히 공전하고 있음을.
페르세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수십억, 수천억의 빛들이 모여서 만드는 이 대천세계(大天世界)의 중심을 바라본다.
깊이, 더 깊이. 끝도없는 대천세계를 건너 마침내 그 중심에 시선이 닿으면,
‘아…….’
페르세타는 정신이 그만 아득해진다.
그곳에는 모든 인과를 잡아먹어 버리는 캄캄한 세계가 웅크리고 있다.
결코 그 속을 볼 수 없고, 수많은 세계의 잔해를 불타는 고리처럼 휘어 감고 있는, 일종의 종말.
그곳을 보면 페르세타는 언제나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스승님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질문, ‘이 삼라만상은 모두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하던 그 질문의 대답이, 어쩐지 저 안에 있을 것만 같다는 예감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페르세타는 또 한 번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내가 저곳을 연구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죽기 전에 저곳까지 닿을 수 있을까?’
솔직히 이것만큼은 페르세타도 자신이 없었다.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여 수많은 동료 마법사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도……. 아마 높은 확률로 그 연구의 끝에 도달하게 되는 경지는, 저 말도 안 되게 먼 곳에 있는 ‘인과의 소실점’은 아닐 것이다.
그저 가장 가까운 세계인 ‘프록시마’. 그곳에조차 간신히 간신히 닿을까 말까 한 수준이겠지.
프록시마와 연결을 만드는 마법조차, 목숨을 수도 없이 걸어야 겨우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것이었다.
이 세계는 너무나 커서, 페르세타조차 감히 손을 뻗어 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수많은 위험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페르세타는 바랐다.
설령 닿지 못하더라도, 그 편린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를.
아무리 아득하고, 아무리 위험해도, 그의 마음은 이미 이 거대한 세계에 사로잡혔으므로.
그러니. 마법의 발전을 위해, 페르세타는 모든 것을 바칠 수밖에 없다.
‘어서 빨리. <프린키피아>를 가르치고 싶다.’
그렇게,
그는 깊은 우주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앞으로 가야할 길을 되새겼다.
* * *
신기루의 탑.
오로지 한 달에 딱 한 번. 정령계가 가장 빛나는 반나절 동안만 이곳에 올 수 있다.
이곳의 시간이 바깥보다 6배를 느리게 가니 딱 3일을 머물 수 있는 것이다.
마법사들은 처음 2일 동안은 새로운 기술인 심상의 도구를 만들기 위해 신기루의 탑을 오르며 도전했지만, 마지막 날만큼은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연구실과 강의실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최신 성과를 공유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역시 살리넬르가 페르세타와의 대담으로 얻어 낸 깨달음과 과제들이었다.
“허어. 관성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개념입니다!”
“타원의 궤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각 신비 세계의 좌표가 더 완벽해지는군요.”
“마나 인력이라……. 관성이 있고, 마나 인력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정말로 모든 세계의 공전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였고, 그걸 마법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지혜를 모았다.
“새로운 계산법이 필요합니다. 큰 것을 한없이 작게 나누거나 그렇게 나눈 것을 다시 무한하게 합칠 수 있는 그런 계산법이 필요해 보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세계가 전통적인 세계관을 훌쩍 벗어난 것인 만큼, 계산법에서도 전통을 벗어난 새로운 발전이 필요합니다.”
마법사들의 열띤 토론과 함께, 칠판과 종이는 빼곡해져 간다.
‘상상 이상의 속도인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페르세타는 감탄을 흘렸다.
물론 여전히 새로운 개념을 헷갈려하거나, 이전의 선입관을 벗어나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마법사들은 비틀비틀거릴지언정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여럿이 함께 연구를 하니까 더 효과가 좋구나.’
현자 시에넬이, 교장 이그나치오가, 애캘슨이, 새로운 연구에 뛰어들자 더 깊은 통찰과 더 쓸 만한 수식들이 탄생했다.
연구가 점점 빨라진다.
이 정도라면, 이런 속도라면…….
‘내년쯤에는 <프린키피아>를 발표할 수 있을지도.’
이건 페르세타가 기존에 예상했던 것을 한참이나 상회하는 성과였다.
사실 페르세타는 <프린키피아>까지 가는 여정을 길게는 수십 년은 걸릴 거라 각오했었다.
그만큼 폐관을 처음 마치고 마주했던 현대의 마법 수준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자극을 주고 가르쳐 보자,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선입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구나.’
현대의 마법이 정체되어 있던 이유는 마법사들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긴 세월 동안 아주 단단하게 자리잡은 선입관이 마법사들의 사고방식을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
페르세타는 <알마게스트>로 상징되는 그 선입관을 때려 부수었다.
그건 그야말로 ‘대격변’, ‘대전환’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의 시작.
마법사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엄청난 능력들을 선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창조성을 마음껏 사용하여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틀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냈다.
페르세타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빨랐고, 정확했다.
깊은 몰입 속에서 차근차근 나아가는 연구.
모두가 행복해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는 다들 아쉬워했다.
“그냥……. 평생 여기서 연구만 하고 싶구만.”
“그러니까. 이번에 돌아가면 골치아픈 일들 빨리 다 끝내고 아예 베리테 영지로 이사를 가야겠어.”
“응? 자네는 궁정마법사가 아닌가?”
“흥. 그런 혀명따위 관심 없네. 난 연구가 좋아. 그걸 확실히 깨달았어.”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되었다.
이제 다시 세계 각지로 흩어져야 하는 마법사들은 서로 뜨거운 눈인사를 나눈다.
“다음달에 봅시다.”
“다들 그때까지 안녕하시오.”
“으음……. 다시 적으로 돌아갈 시간인가.”
“하하. 부디 살살해 주십시오.”
그중에서도 오마르족 마법사들과 제국 마법사들의 인사는 더 여운이 남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어깨를 맞대고 함께 진리를 탐구하던 그들이 다시 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마법사들은 서로 악수를 나눴고 때론 포옹을 했다. 그 상태로 그들은 몸이 서서히 흐려진다.
마침내 정령계의 밤이 지나간다.
* * *
“뭐? 죽이지 말자고?”
오마르 독립 세력의 토벌을 총지휘하는 제국의 대장군, 아모레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미쳤소? 그 마법사들이야말로 오마르 독립분자 놈들의 핵심 전력이자 지도자들이요. 당연히 죽여서 그 목을 효수해야지! 본보기로 삼아야지! 그런 우환을 살려 두었다가 무슨 꼴을 보려고!”
분노를 숨기지 않는 아모레드.
하지만 제국의 마법사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대장군. 먼저 이것이 고위급 종군 마법사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는 점을 먼저 알려 드리겠습니다.”
수염이 허연 마법사는 품에서 마법사들의 서명이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음…….”
길길이 날뛰던 대장군 아모레드의 기세가 살짝 누그러졌다. 마법사 몇몇의 주장이라면 찍어 누르면 그만이었지만, 고위급 종군 마법사들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면 함부로 처리하기가 애매했다.
종군 마법사들은 본질적으로는 군인이 아닌 연구자였으며 그 신분도 귀족에 준하는 특수한 존재들이었다.
직업군인 대하듯이 계급으로 찍어 누르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뜻.
어쨌든 군 조직에 편입된 이상 명령을 내리면 따르기야 하겠지만, 그들이 불만을 품고 교묘하게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군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모레드로서는 마법사들의 서명이 담긴 저 종이 한 장만으로도 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그게 끝도 아니었다.
“이건, 제국 아카데미 교장, 이그나치오 선생님의 친필 서신입니다.”
“음……!”
“그리고 이건, 현자 시에넬 님의 친필 서신이고요.”
“으음……!?”
설마 현자의 서신까지?
이는 명백히 아모레드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규모의 압박.
이 정도면 사실상 제국의 모든 마법사가 뜻을 모았다고 봐야 할 정도가 아닌가?
이런 건 설령 황제라 해도 거부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한번 재고해 주십시오. 적투 중에 사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적어도 사로잡은 오마르족의 마법사들만큼은 살려 주십시오.”
“으음…….”
“저희가 개발한 구속구를 사용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잡은 마법사의 마력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탈옥의 부담감도 줄어들지요.”
“흠…….”
“이는 오마르 지역에서 우리 제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마법사란, 가장 뛰어난 일꾼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사로잡은 오마르족의 마법사들로 오마르 지역에 편의 시설과 도로를 닦게 시키는 겁니다. 자원도 개발시키고요. 그렇게 해서 오마르족의 삶이 행복해질수록, 그들의 반역의지도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큼…….”
“재고하여 주십시오.”
마법사는 공손하게 부탁했으나 사실 그도 알고 아모레드도 피차 알고 있었다.
이그나치오 교장의 서신에 현자의 서신까지 전한 순간, 이미 결론은 한 가지로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후…….”
결국 아모레드는 한숨을 쉬고 말한다.
“알겠소. 즉시 명령을 내리지. 현 시간부로 사로잡은 오마르족 마법사에 대한 가혹행위와 처형을 모두 금지시키겠소.”
“정말 감사합니다!”
마법사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대장군의 막사를 나섰다.
그가 나오자마자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던 제국의 종군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찌 되었습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협상을 맡은 마법사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자 모두가 펄펄 뛰며 기뻐했다.
“됐다! 됐어!”
“후……. 그 친구들. 다음 달에 또 볼 수 있겠구만.”
“그렇지. 죽지만 않으면 그곳에 갈 수 있을 테니.”
“갑자기 사라지면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직접 오마르족 마법사들을 관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제국 마법사들의 선택이었다.
페르세타가 세운 신기루의 탑에 다녀온 뒤. 동료였던 오마르족 마법사들과 싸워야 하는 현실 앞에서 쥐어짜 낸 계책.
지금 당장 현실을 무시하거나 초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목숨만은 빼앗지 않도록 하자는 합의.
살아 있으면, 함께 연구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진리에 닿으면, 어쩌면 답답한 현실조차도 바꿔 낼 수 있을 테니까.
제국의 종군 마법사들은 웃으며 서로의 등을 두드리고 작은 승리를 축하했다.
“아……. 또 얼른 한 달이 지났으면 좋겠다.”
모두가 비슷비슷한 바람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