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6)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6화(6/171)
6화 <쿨투스 데오룸>
“크흠! 큼!”
플리안 남작은 길리안을 얼싸안고 뛰느라 엉망이 된 머리칼과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었다.
정말 오랜만에 본 요정 덕분에, 난생 처음 보는 대규모 요정 행렬에,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왔지만 계속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농부 길리안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마법사이자 영주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또 따로 있었으니.
“여봐라!”
그는 목소리를 엄숙하게 깔고 외쳤다.
“오늘 귀한 요정 손님들이 행차를 해주었으니! 손님 맞이할 채비를 갖추거라!”
농장 구석구석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그 목소리에 ,곳곳에서 춤을 추던 요정들이 고개를 쫑긋 들고 영주쪽을 쳐다 보았다.
페르세타도 마찬가지였다.
‘손님 맞이할 채비?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지?’
불쑥 호기심이 들었다.
스승님 외의 다른 마법사가 신비 세계의 존재와 교감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으니.
그나마 스승님이 교감하는 모습을 본 것도 까마득히 어릴 적 이야기였다.
곧 채비가 갖추어졌다.
플리안 남작은 하얀 바탕에 다섯가지 색이 들어간 옷을 입었다.
옷깃은 검은색. 가슴 띠는 노란색이었다. 오른쪽 소매는 청색, 왼쪽 소매에는 백색 끝동이 달렸다. 그리고 밑에는 붉은색 끝단을 달았다. 단정한 듯이 알록달록하며, 길고 치렁치렁한 그런 옷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 쟤 신기한 옷 입었어.
– 웃기다.
– 뭐 재밌는 거 있나?
– 아 또 저건가? 지겨운데.
요정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모여들었다. 하지만 몇몇 요정들은 심드렁했다.
어쨌든 요정들이 모여들긴 했으나, 이상한 엄숙함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고 몸을 뒤트는 요정들도 많았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지한 그 한복판으로, 빠르게 제사상이 차려졌다.
동쪽에는 푸른과일과 좁쌀만한 크기의 푸른 유리구슬이 차려졌다.
서쪽에는 흰 과일과 하얀 알곡들, 그리고 눈처럼 하얀 얼음가루가 차려졌다.
북쪽엔 노란 과일과 꿀과자가 놓였으며 남쪽엔 붉은 과일과 붉은 유리구슬이 소복히 쌓였다.
– 뭐야 뭐야?
– 먹는 거야? 먹으면 돼?
– 몰라. 왠지 먹으면 혼날 거 같은데?
– 저 구슬 너무 예쁘다!
– 맨날 봤던 거지만, 오랜만에 보니 좋은 것 같기도······?
요정들이 소근거리는 사이로, 플리안 남작은 엄숙하게 양피지를 펼쳐들고 제문을 읊었다.
“올해! 노란 천사가 춤을 추는 해! 청보라 달에 닭이 드러눕는 날! 하얀 돼지의 시(時)에! 대륙 서쪽의 드블랑 왕국, 베리테 남작령의 주인, 베리테가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고하오-”
그러더니 잘게 썬 푸른 과일을 동쪽의 요정들에게 뿌리고 또 잘게 썬 흰과일을 서쪽의 요정들에게 뿌리고, 그런 식으로 사방에 뿌린 후 다시 제문을 읊었다.
– 왜 저래?
– 나도 몰라. 근데 웃긴다.
– 싫진 않은데······. 이상해······.
– 인간들은 맨날 저래. 이상해.
– 그래도 과일은 맛있어!
요정들은 그런 플리안 남작을 보며 자기들끼리 속삭거렸다.
이 자리에서 그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건 페르세타뿐이었다.
요정들도 나름의 사회성이라는 게 존재했기에, 이렇게 엄숙한 분위기에서는 대놓고 웃지 못했다.
남들은 듣지 못하게 자기들끼리만 조잘대었지만, 페르세타는 마치 요정처럼 그들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다.
또다시 제문을 읊은 플리안 남작은 이번에는 마나를 자아내, 화려한 마법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 와아아! 저거 뭐야?
– 신기해!
– 맛있겠다······.
– 넌 먹을 생각밖에 안 하냐! 근데 맛있긴 하겠다······.
– 음······. 좀 참신한 거 없나? 맨날 이거네.
요정들은 마치 마술을 구경하는 것처럼, 신기한 먹거리를 발견한 것처럼, 플리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심드렁한 요정들도 많이 보였다.
플리안은 그렇게 만들어낸 마법체들을 요정들에게 나누어주곤 요정들이 마법체를 뜯어먹는 걸 잠시 구경했다.
그는 긴 숨을 내쉬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더니 다시 표정을 엄숙하게 굳혔다.
페르세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저기······. 아버지?”
“음? 페르세타. 잠시 기다리거라. 아직 의식이 끝나지 않았다.”
“그 의식 말인데요. 대체 무엇을 위한 의식인가요?”
플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거렸다.
“안 배웠느냐? 풍농의 의식이 아니더냐. 1,000년 전의 위대한 대마법사, 콘푸키우스님이 저술하신 <쿨투스 데오룸>에 실려 있지.”
물론 페르세타도 그걸 알고 있었다.
단지 그가 몰랐던 것은 1,000년 전의 의식을 아직도 마법사들이 쓰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쿨투스 데오룸>
‘신을 섬기는 예법(神禮)’이라는 뜻을 지닌 마법서였다.
요정계에서 신계까지 다양한 신비세계의 존재들에게 행하는 의식법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페르세타는 열 살때 이미, 스승님과 함께 이것에 대한 판단을 마친 바 있었다.
‘어떤 상황에는 쓸모 있지만 나머지 상황에서는 쓸모 없는 책.’
그리고 지금 상황은 쓸모 없는 상황이었다.
페르세타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다가 어쩡쩡하게 웃어보였다.
“아버지. 정말 죄송하지만······ 이 의식은 중단하시는 게 맞을 거 같아요.”
아버지가 화들짝 놀랐다.
“무슨 말이냐! 천 년을 이어오며 그 효과가 입증된 의식이다! 내 평생 이 풍농의 의식으로 남작가를 먹여살렸다!”
페르세타는 다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 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 요정들이 안 보일 때는 이 의식이 큰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요정들이 안 보일 때?”
“네.”
페르세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은 요정이 보이잖아요? 바로 눈 앞에 있잖아요. 세상의 그 어떤 예법도 눈 앞의 상대를 보지 않고 행하는, 그런 예법은 없을 거예요.”
플리안 남작은 그 말이 그럴 듯 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심리적 저항이 있었다.
무려, 1,000년을 별 탈 없이 이어온 의식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러나 페르세타의 말은 부드러운 듯 단호했다.
“아버지.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요정처럼 장난스럽고 제멋대로인 친구들이, 지난 1,000년간 변하지 않고 똑같이 행해진 의식을 과연 좋아할까요? 모든 예법은 그 대상에게 맞춰 변화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그 말이 또 그럴 듯 했다.
플리안 남작은 눈썹을 모으며 물었다.
“허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페르세타는 그제야 빙긋 웃고 답했다.
“직접 보고 교감하고 알아차려야지요. 지금 눈 앞에 있는 우리의 요정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싫어하는지. 하나하나 알아내야죠. 지식이라는 건, 항상 똑바로 관찰하고 실험해서 알아내야 하는 거예요. 그게 기본이에요.”
플리안 남작은 알듯 말듯한 그 말에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좋다. 바르덴테님께 배운 너의 말이니 마냥 무시할 수가 없구나. 그럼 한 번 네 뜻대로 이 의식을 완성시켜보거라.”
“네. 아버지. 놀라지 말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따라주시면 됩니다.”
“음······. 일단은 알겠다.”
페르세타가 앞으로 나섰다.
– 뭐야?
– 쟤는 누구야?
– 뭐지? 평소랑은 다른데?
페르세타는 미소를 지은 채로 소근대는 요정들을 주욱 바라보더니.
“자! 선물이야!”
활기차게 외치며, 그대로 손을 제사상 아래로 집어넣고, 엎어버렸다.
– 우왓!!!
– 끼아아악!
– 꺄르르르르!
– 뭐야! 너 재밌어!
– 떨어진다! 마구 떨어진다!
요정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별들이 피어나는 것처럼 일제히 날아오른 요정들은, 페르세타의 마법으로 인해 하늘하늘 천천히 떨어지는 제물들 사이로 춤을 췄다.
“허어어억!”
“오빠! 이게 무슨!”
“도련님!”
“이! 무슨 짓이냐! 아들아!”
당연히, 인간들 측은 난리가 났다.
제사상을!
풍농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상을 엎어버린다니?!
특히 풍농의 의식이 무엇인지 잘 아는 마법사, 그러니까 일리안느와 플리안이 경악을 했고, 경험 많은 노인들과 요정 농사꾼 길리안 역시를 절규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페르세타는 여유롭게 요정들 사이를 거닐었다.
그가 즐거운 얼굴로 손을 뻗었다.
“자! 다들 함께 놀아요. 제가 말한 대로 눈 크게 뜨고. 요정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혹시 싫어하는 건 없는지,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보는 거예요.”
직접 보고 판단하라고?
그 말에 경악했던 사람들이 다시 요정들을 보았다.
“어, 어라?”
“에······. 저거 즐거워 하는 것 맞지?”
“제사상을 엎었는데······. 괜······찮아?”
“허어. 이것이······. 이것이······.”
그들의 눈에도 요정들이 더할나위 없이 즐거워 보였던 것이다.
실제로도 반응이 너무나 열광적이었다.
– 너 최고야!
– 내가 천 년을 넘게 살았지만 너같은 애는 처음 봐!
– 나랑 친구 하자! 이름이 뭐야?!
수많은 요정들이 페르세타에게 달려들어 재잘거렸다.
페르세타가 온통 요정들의 날갯빛으로 가려 환하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페르세타는 그 사이에서 하얗게 웃음을 짓고는 두 손을 펼쳤다.
“자, 빨리요. 같이 놀아야 돼요.”
이쯤 되자, 사람들은 너도, 나도, 홀린 듯이 요정들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인간과 요정이 뒤섞인 놀자판이, 지금 막 시작되었다.
**
일단 놀기 시작하자,
요정도 인간도 구분이 없었고 노인도 젊은이도 구분이 없었다.
“으하하하? 뭐? 단추가 좋다고? 가져가! 가져가!”
길리안은 제 상의의 단추를 마구 뜯어 요정들에게 던졌다.
– 우아!
– 인간 착해!
– 재밌어!
– 이거 내꺼야!
길리안의 단추가 요정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자 그걸 지켜보던 영지병 한스도 얼른 갑옷을 벗어던지고 속에 받쳐 입은 셔츠의 단추를 뜯어냈다.
– 와아아! 이 인간도 단추 준다!
– 줄 서! 줄 서라고!
– 내가 먼저 왔거든?
요정들 사이에서 단추의 열풍이 불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요정의 환심을 사고자 옷에 달린 단추란 단추는 다 뜯어버렸다.
다들 앞섶을 풀어헤치고 허연 살결을 드러낸 채 요정들과 춤을 추며 놀았다.
미친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남작가의 둘째, 즈바르트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나도 단추 뜯고 싶다······.’
하지만 그는 귀족이 아니던가? 또한 제국 아카데미의 차석 졸업자였다. 그런 품위 없는 짓을 하여 가문과 학교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순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일리안느가 더없이 부러웠다.
“저게······. 마법인가.”
일리안느는 현재 이곳에서 두 번째로 요정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첫번째는 뭐, 말할 것도 없이 페르세타였고.
“효과 좋네.”
일리안느가 마나로 마법체를 빚어 던질 때마다 요정들이 자지러졌다, 마법체를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요정들의 날개가 빛으로 이루어진 냇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빛의 흐름 속에서, 일리안느는 더없이 행복해보였다.
평소에도 잘 웃어서, 늘 행복해 보이던 동생이었는데도, ‘아, 진짜로 행복할 땐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하고 새삼스러울 정도의,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즈바르트는 천천히 일리안느의 옆으로 다가갔다.
– 누구야? 누구야?
– 크다! 나문가?
주변으로 날아오르는 요정들.
“내 오빠야.”
일리안느가 즈바르트를 인정해주자, 즈바르트도 순식간에 인기인이 되었어.
– 쟤 오빠였어?
– 네 동생 너무 재밌어!
– 예뻐. 마법이 정말 예뻐!
– 신기해! 나도 오래 살았지만! 이런 건 나도 처음 봤어.
우르르 달려들어 즈바르트의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옷 속으로 숨어들고 칼자루 위에 앉아버리는 요정들.
저절로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그 빛의 향연 속에서, 즈바르트는 동생 일리안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알겠다. 일리안느.”
“뭘?”
“네가 왜 마법사가 되겠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헤. 이제 알겠어?”
“응······. 좋네. 마법사······.”
즈바르트는 자기 코 앞에 날아오른 요정과 눈싸움을 하며, 처음으로 마법사를 부러워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시간을 흘러,
마나의 낮이 끝났다.
사아아아-
산 아래에서부터 밤이 기어오듯이.
그렇게, 화려하게 빛나던 요정계가 환상처럼 사라져갔다.
“아······.”
“아아······?”
앞섶을 풀어헤치고 놀던 사람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직 하늘의 해는 남아 있는데, 마나의 해는 이미 져서 마나의 밤이 찾아왔다.
방금 전까지의 축제가 마치 백일몽이었던 것처럼, 아련하게 흩어진다.
다들 아쉬움과 민망함에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옷깃을 여몄을 때,
“영주님!!!”
길리안의 외침. 아니. 비명이 들려왔다.
“대풍(大豊)입니다! 대풍(大豊)이에요! 영주님!”
그제야 사람들은 눈치챘다.
“이, 이 무슨······.”
비실비실 작은 가지에 손톱만한 열매를 겨우 맺던 요정의 작물들이, 나무처럼 크게 자라나 울울창창 그늘을 만들었다.
가지가지마다 주먹만한 과일들이 주렁주렁 맺혔다.
“와······. 이······ 이게······. 이런······. 어떻게, 풍농의 의식 효과가······ 이 정도로······.”
플리안 영주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페르세타는 콧잔등을 긁적였다.
‘이런. 이건 좀 눈에 띄겠다.’
요정들이야 여러 차례 소환해 봤지만, 이렇게 넓은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니······ 그도 어쩔 수 없이 흥이 과했다.
“그래도······.”
페르세타는 잠시 곤란해 하다가, 너털웃음 한 번으로 털어버렸다.
“재밌었다.”
그는 기지개를 쭉 펴고 다시 상쾌하게 웃었다.
어느 남작가의, 평범한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