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66)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66화(66/171)
66화 역사의 시곗바늘
“자네. 내가 한순간에 나락에 갈 수 있는 질문을 하지.”
“헛. 뭔가?”
“묻겠네. 자네 생각엔 제국의 황제와 페르세타 공자 중 누가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가!”
“아아……. 두렵구나! 솔직히 말하고 싶지만, 세계 최강의 권위를 자랑하는 그 이름을 거슬러야 한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네. 나는 나의 양심에 따라 답할 수밖에! 당연히 페르세타 공자가 가장 위대하네!”
“오호! 진실을 위해 목숨도 내어놓겠다는 말인가!?”
“그것이 아란드리아 사서의 숙명이 아닌가? 자! 이번엔 내가 묻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가 누구인가?!”
“페르세타 공자요!”
“그럼 그 다음은?”
“세레스 에멜다 수석 사서님!”
“크으으……! 그렇지!”
“크으……!”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은 만날 때마다 서로 주접을 떨며 페르세타를 칭송하기 급급했다.
그들은 매일매일 활기차고 시끌벅적하게 베리테 백작령에 있는 아란드리아 지부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사서들이 한자리에 어깨를 맞대고 빽빽하게 모여 있다.
“오오오오!”
“나도 봅시다, 나도!”
“이번엔 이거 먹여 봅시다. 이거!”
다들 두 눈이 충혈된 상태로 밤새 필사해 온 책을 치켜들며 아우성쳤다.
심지어 허공에는 아란드리아와 연결된 양방향 영상통신 마법이 펼쳐져 있다. 저 먼 곳, 아란드리아의 본산에 있는 마법사들조차 죄다 할 일을 팽개치고 이곳에 달라붙어 구경을 하는 중이었다.
그들 중앙에는 거의 사람의 상체만 한 크기의 커다란 책이 한 권 있다.
이것이 바로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린 원흉.
<요사록>
환요계의 지혜가 깃들었다는 책.
아란드리아의 마법사들은 페르세타가 주최한 환요계 모험에서 요사록을 얻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였다.
온갖 위험한 것들을 내기로 걸고 퀴즈를 풀었다.
때론 맞추고 때론 틀리고.
틀려서 무언가를 잃게 되면, 더 지혜로운 사서가 나서서 묻고 더블! 을 외쳤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진 퀴즈 대결의 최종 승자가 바로 아란드리아의 수석 사서이자 천재라 불리는 세레스 에멜다.
그녀가 상기된 얼굴로 커다란 <요사록妖辭錄>을 치켜들었을 때, 모든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확인한 요사록의 기능은 정말로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환요계의 가장 존귀한 지혜가 깃든 책이라더니. 그것은 단순한 지식이 담긴 글자 뭉치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첼레스티움>과 대사서 르위메르님의 최신 논문을 먹여 보는 것은 어떻소?”
“오오오! 좋소! 좋소!”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이 밤새 필사한 <첼레스티움>과 르위메르의 논문을 가져와 <요사록>의 앞에 들이밀었다.
그러자 요사록은 단숨에 책장을 벌려서 가까이 다가온 두 개의 책을 삼켰다.
부르르르-
맛을 음미하듯이 몸을 떤 <요사록>은 이내 책장을 팔랑거려서 첫 번째 장을 펼쳐 낸다.
그곳은 텅 빈 백지였는데, 종이 안에서 잉크가 스르르 비치며 글자가 한 자 한 자 빠르게 떠올랐다.
– <첼레스티움>, 그대는 마나 태양 주위를 도는 인간계와 각 신비 세계의 궤도가 완전한 원형이라 가정하고 있소.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오.
그대의 주장에서 확장하여 생각해 보면, 마나의 여름과 겨울이 존재하는 이유가 우리 인간계의 회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추론해 낼 수 있지.
심지어 낮과 밤의 길이 변화를 통해 회전축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도 계산이 가능하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소. 마나의 낮과 밤이 똑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을 기준으로 할 때, 마나의 봄과 여름이 마나의 가을과 겨울보다 더 길다는 것이요. 만약 우리 인간계가 마나의 태양을 중심에 두고 완벽한 원의 궤도를 그리고 있다면 이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
– 실로 날카로운 지적이로군. 사실 공전궤도가 완전한 원형이라는 나의 가정은 별다른 증명 과정 없이 일반적인 상식에 의해 세워진 가정이 맞소. 허나 그럼 내가 묻겠소. 만약 신비 세계의 공전궤도가 타원이라면 왜 그것은 완전한 원이 아니라 타원인 것이오? 설마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작용하는 우주론적인 힘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뜻이오? 이 불균형은 어디서 발원하는 것이지?
– 그에 관련해서는 지금 연구 중이나, 이런 가설들이 존재하오. 먼저 세계와 세계가 서로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가설이 있소. 마치 세계가 마나 한 덩이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 흥미로운 가설이군. 허나 그 가설을 받아들이려면 많은 관측과 계산을 통한 증명이 필요하오. 가령…….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은 두 눈이 시뻘겋게 변해서 <요사록>위에 떠오르는 글자들을 때로는 받아 적고 때로는 논평해 가며 감상했다.
그랬다. <요사록>이란, 책을 먹어 치우고 그렇게 삼킨 책들을 서로 대화시킬 수 있는 보물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그게 무슨 보물이야 싶을 수도 있지만,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처럼 공부에 목숨을 건 마법사들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었다.
하나의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이 온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해도 어딘가에는 빈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그걸 발견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하지만 책과 책을 대화시킨다면? 그 안에 담긴 모든 지식과 그 안에서 연역해 낼 수 있는 사실까지 총동원하며 지혜를 겨루는 두 책의 대담을 보게 된다면?
지식의 빈구석을 쏙쏙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앞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길이 명확해지게 된다.
그렇기에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은 <요사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아란드리아 대도서관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책으로 정리해 둔 곳.
그런 만큼 <요사록>에게 먹일 책은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많았다. 앞으로 남은 평생을 이 대화들을 분석해 가며 연구만 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이건 대단한 혁신이었다.
사서들은 흥분했고, 흥분했고, 또 흥분했다.
그리고 마침 아란드리아 지부에 방문했던 비앙카 애시는 그 모습을 보며 오소소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정말 대단하구나. 하나의 세계와 깊이 있게 교류한다는 게 이렇게까지나 대단할 줄이야.’
사실 그녀도 이번 환요계 모험을 통해 큰 것을 얻어 낸 사람이었다.
그녀는 가문의 반지를 훔쳐 달아난 서생원을 끝까지 추격해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서생원은 무슨 서약인지 무엇인지 때문에 잡히는 순간 자신이 훔친 물건의 30배 가치가 있는 것을 변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가문의 반지는 감히 그 가치를 측량할 수 없는 물건.
덕분에 서생원은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바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자기 자신’.
‘서생원.’
– 예. 부르셨습니까.
그러니까 비앙카는, 영혼 속에 깃드는 사역마를 가지게 된 것이다.
서생원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는 마치 [기프트]를 가진 것과도 비슷했다.
본래 마법사들은 [기프트]를 품지 못하지만, 이 경우는 서생원의 힘을 빌려 오는 게 아닌, 서생원 자체를 소유하게 된 것이라 가능해졌다.
개념상 [기프트]와는 좀 달랐으니까.
그리고 비앙카는 이 힘에 또 전율을 느꼈다.
‘저 <요사록>. 네 힘이라면 훔칠 수 있을까? 아란드리아 사서들의 보안 마법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 당연합지요. 훔칠까요?
“…….”
아란드리아의 사서들 한복판에서 <요사록>을 훔쳐 낼 수 있다니.
그 정도면 무엇이든 훔칠 수 있는 능력이라 봐도 무방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이 오면 비장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는 그런 힘.
– 아, 물론 훔치는 것까지는 가능한데, 추적을 당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주인님께 붙잡힌 것처럼 말이죠.
물론 단점이 없는 능력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 활용법은 무궁무진했다.
가령 기사와 싸울 때, 기사의 손에서 검을 훔치고, 기사의 몸에서 갑옷을 훔친다면 어떻게 될까?
순식간에 변수를 창출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과 같았다.
단 하루.
단 하룻밤 환요계를 여행했을 뿐인데 이런 것들을 얻어 내다니.
이에 비앙카는 오랫동안 품어 왔던 고민에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마침 베리테 영지에 아직 각지에서 온 손님들이 머물고 있는 시점.
비앙카는 아란드리아 대도서관의 지부를 떠나, 으슥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기에 있나?”
그녀가 중얼거리자, 어둠 속 그림자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하시지요.”
“본국으로 돌아가거든 아버님께 전하라.”
“예. 뭐라고 전할까요.”
“나의 간곡한 충언이라 말씀드리고 이렇게 전하라.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외부로 힘을 투사하기 보다는 내부로 힘을 축적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 사료되옵니다. 무엇보다 마법의 전성기가 도래하고 있사옵니다. 마법사의 육성에 힘을 기울이시고 페르세타 베리테와의 교류에 신경을 기울여 주시옵소서.’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훅-
그림자 속에서 미약한 바람이 불어왔다. 숨어 있던 사내가 자리를 떠난 것이다.
자리를 떠난다고 바람 같은 걸 일으킬 사내가 아니었지만, 자신이 떠났음을 알리기 위한 배려로 미약한 바람을 남긴 것이었을 터다.
비앙캐 애시는 골목에 기대서서 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부디…… 아버님께서 내 충언을 귀 기울여 주시면 좋겠는데…….”
이제는 이 인간계가 한없이 거대한 차원의 우주에 비하면 하나의 점처럼 작고 덧없는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덧없이 사라지진 않기를 바랐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 가며 또 새로운 모습으로 중흥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소망으로 그녀는 폭, 한숨을 내쉬었다.
* * *
두 명의 로열 나이트가 각각 히센 왕국과 쥬피데르 왕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환요계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파괴의 화신이라 불리는 로열 나이트답게 무수한 쌈도깨비들을 쓰러뜨리고 승리를 쟁취했으나 마지막에 등장한 쌈도깨비의 수장만큼은 그들의 능력 밖에 있었던 것이다.
“쿨럭! 쿨럭 쿨러!”
히센 왕국의 로열 나이트는 간의 절반과 위의 절반을 잃었다. 오러도 3분의 2를 뜯겨 3분의 1밖에 남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기프트]마저 잃어버렸다.
그냥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섰으면 됐을 것을……. 이길 듯 말 듯 한 싸움에 눈이 멀어 계속 담보를 더해 가며 묻고 더블! 을 끝없이 외친 대가였다.
이제 생각하면 뭔가에 홀려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간교한 베리테 백작가 놈들!
그는 넝마가 된 몸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히센 왕국으로 돌아갔다.
쥬피데르 왕국의 로열 나이트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하아……. 하아……. 알려야 한다. 베리테 영지의 기묘한 힘을……. 왕께 알려야 한다…….”
그 역시 상당한 양의 오러와 [기프트]를 잃었다. 거기에 추가로 허파가 2분의 1로 줄어들었고, 근육이 3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였다.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서둘러 쥬피데르 왕국을 향했다.
당연히 두 왕국의 국왕들은 분노했다.
“사신을 보냈는데, 이따위 함정을 파 놓았다는 말인가!”
히센 왕국의 국왕은 탁자를 후려쳐서 두 동강 냈고,
“왕의 권위인 로열 나이트를 이 꼴로 만들다니! 이는 선전포고다!”
쥬피데르의 국왕은 분을 참지 못하고 쓰고 있던 왕관을 집어 던졌다.
바짝 긴장한 대신들 앞에서 두 국왕은 각기 천명했다.
“전쟁이다! 빌레인과 베리테 백작령을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다!”
“너무나 위험한 힘이다! 베리테 백작가가 칼라산맥을 넘어오도록 해서는 안 된다!”
평소에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히센 왕국과 쥬피데르 왕국이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두 왕의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쥬피데르 왕국으로 사신을 보내라! 동맹을 맺어야겠다!”
“히센 왕국으로 사신을 보내라! 그리고 빌레인과 베리테 영지에는 최후통첩을 보내라!”
“아……. 빌어먹을. 제국 놈들이 또 끼어들겠군. 카슈슈 왕국에 사신을 보내라! 제국이 끼어들지 못하게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겠어!”
“지금이다! 드리미온 왕국 반란군에 무기를 지원한다! 드리미온 왕국에 내전이 일어나면 제국도 그쪽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겠지!”
히센 왕국과 쥬피데르 왕국에서 파발마들이 미친 듯이 달려 나왔다.
베리테 영지에서의 파티.
그 직후, 세계사의 시곗바늘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