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7)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7화(7/171)
7화 도플러 효과
세상에 알려진 대마법사는 단 3명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4번째 대마법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제로지아.
그는 대마법사 바르덴테를 평생의 숙적이자 라이벌로 삼았다. 그를 뛰어넘기 위해 홀로 탑에 틀어박혀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가 부귀영화까지 내버린 채, 오로지 바르덴테 하나를 꺾기 위해 은거한 데에는 아주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의 나이 23살.
한창 꿈 많고 야망 넘치던 젊은 마법사이던 시절.
제국 아카데미 3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는 하나의 논문을 준비했다.
<정령계와의 연결을 강화할 수 있는 5레벨 응용수식에 관하여, 알마게스트의 일주운동표를 참조하여.>
그의 지도교수님 역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논문.
학생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학계에 공헌을 할 수 있는 그런 논문.
그런데 그 논문을 발표했을 때, 청중들은 쑥덕거렸다.
“이거, 얼마 전에 1학년 바르덴테가 발표했던 논문이랑 비슷하지 않나?”
“비슷하네. 정확히는 하위 호환.”
“하긴. 바르덴테는 같은 5레벨 응용수식인데 더 간단하고 심지어 정령계, 환요계, 요정계까지 다 포괄하잖아?”
1년을 넘게 준비했던 논문이 그런 취급을 받았다.
천불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제로지아는 더욱더 절치부심해서 다음 논문을 준비했다.
하지만 계속 계속 그런 식이었다.
“오오오! 아카데미 마스터 과정 학생이 이 정도의 논문을?”
“대단해.”
“어라? 근데 이거, 운이 좀 나쁘네.”
“왜?”
“이거, 4학년 재학중인 바르덴테가 얼마 전에 발표한 논문이랑 겹치는데.”
“그래?”
“응. 그게 더 효율적이고 적용범위도 넓네.”
바르덴테. 바르덴테. 바르덴테!
어딜 가나 그 이름이 따라다녔다.
기묘할 정도로 언제나 연구주제가 겹쳤고, 바르덴테는 항상 그를 한 발 앞서 있었다.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처음, 바르덴테와 같은 수업을 들었을 때,
“아. 선배. 성함이······. 아하 제로지아 선배님. 반가워요.”
그의 졸업 파티에서 만났을 때.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바르덴테입니다.”
둘 다 졸업하고 마법사 학회에서 만났을 때,
“아, 마법사님. 저랑 같은 아카데미를 나오셨다고요? 바르덴테라고 합니다.”
바르덴테는!
바르덴테 놈은!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에 제로지아는 스스로에게 맹세했던 것이다.
반드시 바르덴테를 뛰어넘고 말리라!
하지만 그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가 8레벨 대마법사가 되어 응용수식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120세. 바르덴테가 대마법사의 칭호를 받은 뒤 40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래서 제로지아는 생각했다.
‘내가 안 된다면, 내 제자라도.’
그렇게 그는 평생 최고의 천재를 찾아다녔고······ 마침내 한 명의 천재를 제자로 맞이하게 된다.
“스승님. 제자. 드디어 스승님의 한을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로지아의 유일한 제자, 살리넬르는 의자에 앉은 채, 백골로 풍화해 버린 자신의 스승 앞에 큰절을 올렸다.
처음 스승을 따라 전 세계를 유람하며 마법을 배운 게 10년. 그 후 여러 탑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배움을 깊이 했던 게 다시 10년.
마지막으로 바르덴테의 제자가 폐관을 깨고 나오길 기다리며 베리테 남작령 인근의 탑에서 연구에 매진한 게 10년.
총 30년의 배움이었다.
살리넬르는 그 오랜 연구의 결실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였다.
<에멘다툼>
가장 위대한 책 <알마게스트>의 오차를 바로잡을 수 있는, 지난 500년 내 최대의 마법적 성과가 될, 바로 그런 책이었다.
이 한 권의 책과 그 안에 담긴 몇 줄의 수식이면, <알마게스트>에 실린 정령계, 환요계, 요정계의 고유 주파수를 수정하여 신비세계와의 연결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그야말로, 사라져가는 마법의 불씨를 되살릴 위대한 발견!
이 한 권의 책이면, 스승 제로지아가 죽기 전 그와 맺었던 맹세를 지킬 수 있으리라.
“제자! 반드시 바르덴테의 제자를 꺾고 세계 제일의 마법사가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제로지아의 제자가 바르덴테의 제자를 짓밟고 최고가 되었음을 만방에 알리겠습니다!”
그 맹세 중 하나는 이제 이미 이루어진 상태였다.
바르덴테의 제자는 천하의 둔재로 판명이 나다시피 했으니까.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보고 떠나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런 천하의 둔재 때문에 이 위대한 발견의 발표를 미룰 수는 없는 바.
살리넬르는 책을 챙겨 탑을 나섰다.
탑 아래에는 마침 그에게 먹을 것과 옷가지를 제공하러 오는 상인이 막 도착해 있었다.
나귀에서 오늘치 짐을 내리던 그가 살리넬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헌데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마법사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
“영주님의 첫째 도련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영주의 첫째 도련님이면, 바르덴테의 수제자 페르세타 베리테를 의미했다.
살리넬르는 이건 운명이라 생각했다.
‘잘 됐구나.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한껏 비웃어준 다음 이곳을 떠나면 되겠어.’
살리넬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남작령의 중심가를 향해 걸어내려갔다.
**
남작령은 평소와 달리 북적거렸다.
인근의 상인이 다 모이기라도 한 듯 수많은 수레들이 굴러다녔다.
“무슨 일이지?”
한적한 시골 동네인 베리테 남작령.
이곳에서 10년을 머물렀으나, 이렇게 북적거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걷던 그의 눈에 웬 노인과 젊은이들이 들어왔다.
노인, 길리안은 아침부터 술에 취해 또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는 중이었다.
“너희들은 신기하겠지만, 나 어릴 때는 요정들이 종종 이렇게 보였단 말이지. 그땐 어땠냐면······.”
신이 나서 떠들던 길리안은 찔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눈치를 보았다.
보통 그가 이렇게 떠들어 댈 때면 마을의 젊은이들은,
“아, 이 할아버지 또 나 때 얘기하네.”
하면서 면박을 주곤 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아, 왜 말을 하다 말아요!”
“그래서 어땠는데요?”
“요정은 뭘 좋아해요?”
“그때는 뭘 하고 노셨죠?”
“아저씨. 제자 혹시 안 받으시나요? 요정도 돌아왔고 사람도 많이 필요할 거 같은데!”
“아저씨. 여기 일단 한 잔 더 하시고.”
이제 길리안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왕이었고 신이었다.
젊은이들은 요정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줄이라도 더 듣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노인, 길리안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살리넬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요정? 요정이라고?’
그러고보니 주변을 지나는 상인들도 비슷한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이런 풍작은 본 적이 없다는 둥, 특등품의 요정작물이 수레 가득가득 나올 정도라는 둥, 그래서 판매는 대체 언제 하냐는 둥······.
살리넬르는 허겁지겁 요정 농장을 향해 달렸다.
“허어어어······.”
진짜였다.
대풍이었다.
요정작물이 무슨 나무처럼 우람하게 자라서는 커다란 결실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가끔씩 나무 사이로 날아다니는 요정의 반짝이는 날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살리넬르는 얼른 자신이 만든 희대의 발명품, ‘마나파 감지장치’를 꺼냈다.
요정 농장의 공명 마법진에서 발생하는 주파수를 읽어들였다.
“미친······?”
놀랍게도, 공명 마법진의 주파수가 자신이 최근 계산한 요정계의 주파수와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우연? 아니면······.”
살리넬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바르덴테의 수제자 페르세타 베리테가 출관을 한 이후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면······.
“이건 확인을 해 봐야 한다.”
스승의 숙적이 바르덴테였다면, 그의 숙적은 페르세타 베리테.
살리넬르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남작성을 향해 나아갔다.
**
페르세타는 곤란함에 뺨을 긁적거렸다.
‘이 사람은 왜 이리 화가 났지?’
갑자기 성을 찾아와 자신과 대면을 요청한 마법사였다.
상당한 고위 마법사라고 하기에 페르세타는 흔쾌히 면담을 요청했다.
아마도 갑자기 풍작을 이룬 요정 농장 때문에 찾아왔겠거니······. 그리 짐작을 하면서.
헌데 눈 앞의 남자, 살리넬르 드메치는 벌써 5분 째 아무 말 없이 자신과 눈싸움만을 하는 중이었다.
결국 참다 못한 페르세타가 뭐라도 말을 하려던 찰나, 살리넬르가 번뜩! 타이밍을 잡아먹으며 물었다.
“우리 차원을 10이라고 하면, 하나는 마찬가지로 10이고 다른 하나는 9이며 나머지는 6이오.”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페르세타는 눈을 빛냈다.
우리가 10. 나머지는 각각 10, 9, 6.
정확하진 않았지만 대충 이와 비슷한 관계를 가지는 수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1과 0.997과 0.913, 그리고 0.589로 나눴던 건데······ 저 정도 오차면 상당히 정확하다.’
이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마법의 세계에서 저 정도의 계산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페르세타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숨기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각 차원의 고유주파수군요. 우리가 10이라면 정령계도 10 환요계는 9 요정계는 6. 그 정도로 대략 떨어지지요. <알마게스트>에서 밝힌 것과는 다르지만, 이게 더 정확한 수치입니다.”
살리넬르의 눈이 커졌다.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역시 알고 있었나······! 요정 농장의 마법진을 손 본 건 역시 너였구나. 페르세타!’
하지만, 하지만 아직이다.
과연 다음 질문도 답할 수 있을까?
자신조차도 ‘마나파 감지장치’를 만들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내가 최근에 ‘마나파 감지장치’라는 걸 만들었소.”
“와! 그래요?”
“그렇소. 그걸로 측정본 결과, 차원의 고유주파수는 각 신비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높아지고 멀어질 때는 낮아지오. 이는 <알마게스트>에 실린 각 신비세계의 순행운동과 역행운동 등과도 연결되지. 이를 응용하면, 일일이 측정하지 않고도 각 시기별로 더 정확한 주파수를 계산하는 게 가능하오. 이는 <알마게스트>에 근거하여 이뤄 낸 위대한 발견이란 뜻이지.”
“대단하시군요!”
“그럼 여기서 질문을 하겠소. 왜 신비세계가 다가올 땐 주파수가 높아지고 멀어질 땐 주파수가 낮아지겠소?”
이제 페르세타는 진짜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답했다.
“그야 소리내는 화살이 내게 다가올 때는 높고 크게 울지만, 내게서 멀어질 때는 낮고 작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페르세타가 7살 때, 스승 바르덴테에게 배웠던 사실이었다.
스승은 이것이 마치 도플갱어가 앞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고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것과 같다 하여, ‘도플러 효과’라고 명명하셨다.
“어엇······?”
그런데 살리넬르는 페르세타가 이것에 답할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당혹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페르세타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엉덩이를 들썩여 자세를 고치고 앉아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말씀하신 이론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그 이론으로는 내계의 주파수는 설명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내계?”
“아. 5계라는 이름이 익숙하시겠군요. 신계, 마계, 영수계, 설화계, 명계의 다섯가지 신비세계 말입니다. 살리넬르님의 이론이 이 5계에는 맞지 않을 겁니다.”
살리넬르는 이제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걸 어찌 아셨소······? 혹시 당신은 5계의 주파수도 설명할 수 있단 말이오······? 그건 <알마게스트>를 쓰신 프톨레마이오스님도 성공하지 못한······.”
하지만 페르세타는 설명도 하지 않고 바로 다음 주제로 이야기를 넘겼다.
“마나파 측정장치를 만드셨다니. 그럼 이것도 아시겠군요. 마나의 낮과 밤을 기준으로 하루의 반은 주파수가 높아지고 나머지 반은 주파수가 낮아진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그건 또 어떻게······!! 당신도 마나파 측정장치를 만드셨소?”
너무 놀란 살리넬르는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이 변수를 발견하고 이에 관련한 수식을 완성한 게 바로 어제 아니었던가?
그런데 페르세타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살리넬르로서는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지만, 지금,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마법사를 만난 페르세타에게 그런 사소한 건 중요하지 않았다.
“자!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 무엇을 말이오?”
“화살의 예를 들어 알 수 있듯이 주파수가 높아진다는 것은 다가오는 것이고 낮아진다는 것은 멀어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각 신비세계는 하루의 반은 다가오고 나머지 절반은 멀어지는 걸까요? 무엇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이, 살리넬르의 머리를 벼락처럼 관통했다.
거대한, 정말로 거대한 깨달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우주의 가장 심오한 비밀이 높고 요란한 굉음을 내며 다가온다!
살리넬르는 그것을 잡아채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서, 설마······. 우리 차원이 회전을 하고 있는 건가? 그, 그렇다면 이걸 설명할 수 있어······!”
“그렇습니다! 그것이 차원의 자전입니다!
페르세타는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는 눈을 별처럼 반짝이며 물었다.
“이제 다 오셨습니다! 자, 그럼 또 생각해봅시다. 왜 시간이 갈수록 <알마게스트>의 예측이 점점 틀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왜 마법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까요? 우리 차원이 자전을 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차원의 자전.
그게 끝이 아니었단 말인가?
살리넬르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이 거대한 깨달음을 붙들고자 노력했다.
“어······. 어어······.”
허나 아까보다 훨씬 어려웠다.
닿을 듯이 닿지 않는다.
그 간질간질한 모습을 지켜보던 페르세타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며 독촉했다.
“마나 황도가 변했다는 겁니다! 마나의 태양이 우리 차원의 하늘을 지나는 길이 바뀌었다고요! 그게 무엇을 뜻하겠습니다!”
부르르-!
그 한 줄의 힌트에, 살리넬르는 마침내 깨달았다. 아까보다 두 배는 큰 벼락이 그의 몸을 꿰뚫는 것만 같았다.
“아······! 각도! 각도가 변했구나! 차원이 회전······ 그러니까 자전을 하는 축이 이동하였기 때문이오! 그럼, 각 신비세계의 좌표가 바뀔 수밖에 없지! 기준이 바뀌었으니!”
페르세타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박수를 쳤다.
“그렇죠! 그렇죠! 자전축이 바뀐 겁니다! 그러니 옛 차원의 하늘을 기준으로 신비세계의 운동을 기술한 <알마게스트>가 틀어질 수밖에요!”
“아아······. 아······.”
다가온다. 엄청난 깨달음이. 살리넬르는 이제 페르세타와의 경쟁심마저 잊어버린 채, 그저 이 순간의 거대한 깨달음을 수습하기에 바쁠 뿐이었다.
하지만 페르세타는 아직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자! 이제 진짜 마지막입니다!”
살리넬르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끝이 아니라고?’
페르세타의 입술이 무참하게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질문 하나를 던졌다.
“왜 5계에는 <알마게스트>를 이용한 도플러 효과, 그러니까 주파수 변화의 예측이 맞지 않았던 걸까요?”
어······. 어······.
이번엔 훨씬 어려웠다.
살리넬르는 자신의 허벅지를 쥐어뜯으며 집중, 또 집중했다.
그의 대답이 늦어지자, 페르세타가 자신의 가슴을 쿵쿵 치며 또 힌트를 주었다.
“생각을 해 보세요! 우리 세계가 회전하고 있다! 그걸 생각하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해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마게스트>의 전제를 한 번 의심해 보라고요!”
아······.
뭔가, 뭔가······.
살리넬르는 노력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깨달음을 붙들기 위해.
하지만 그의 집중력은 곧 한계에 달했고, 그는 결국 김 빠진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건 그냥 5계는 위대한 상계(上界)이기 때문에 적용되는 법칙이 다른 거 아니겠소······?”
그 대답에 페르세타가 머리를 쥐어 뜯었다.
“아니! 아니······. 자전까지 왔잖아요! 자전축이 틀어진 것도 알았잖아요! 생각을 해 보십쇼! 이걸 왜 모릅니까!”
말투만 존댓말이었지, 내용은 공격적이기 그지 없었다.
살리넬르는 자부심에 금이 쫙쫙 가고 자존감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페르세타는 페르세타대로 지금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니, 다 왔으면서. 여기까지 알아냈으면서. 이걸 못 알아챈다고?
왜 말을 못 해!
<알마게스트>가 틀렸다고 왜 말을 못 하냐고!
우리가 중심이 아니라 그 반대라고!
마나의 태양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고! 우리 차원과 다른 모든 신비 세계가 그 주위를 ‘공전’한다고!
왜 말을 못 해!
이 간단한 발상을 못 해!?
우리 세계가 자전을 한다니까? 다른 세계가 우리 세계 주위를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냥 착시에 지나지 않는다니까?!
중심은 태양이고! 우리가 그 주위를 돌고 있다고!
지금 당장이라도 그리 외치고 싶었다. ‘다른 마법사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라고 정했던 자신의 원칙이 아니었다면 이미 백 번은 외쳤을 것이었다.
그 무서운 기세에, 살리넬르는 기가 죽었다.
“어······.어, 그게······.”
깨달음이······. 높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던 깨달음이······. 그 돈오의 소리가······. 점점이 낮아지고 멀어지고 있었다.
찾아오고 있던 깨달음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아득하게 컸고, 그는 끝내 그걸 붙잡지 못했다.
‘어, 어? 어어······. 어? 이게, 왜 이렇게 됐지?’
분명,
원래 목적은 페르세타의 콧대를 꺾어준다는 것이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제 살리넬르는 자존심을 꺾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 생각을 해보라고요! 생각! 생각!”
두 눈이 반쯤 돌아버린 페르세타를 바라보다가, 그는 입술을 열었다.
“저기, 선생님.”
“왜요? 이제 좀 아시겠습니까?”
기대감으로 가득한 페르세타의 앞에서, 그는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