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71)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71화(71/171)
71화 페르세타의 한 수
애캘슨은 울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왜 하냐고요? 대장은 숨을 왜 쉬십니까?”
라고 말하던 당돌한 소녀 대원이 전사했을 때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하지만 언제나 과묵하게 가장 더럽고 힘들 일을 도맡아 하던 중년의 대원이 제국에 끌려갔을 때도.
무고한 오마르족의 마을이 어느 미친 제국 장교의 무차별 학살에 풀뿌리 하나 남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도.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가장 정을 주었던 이들 중 살아 있는 이가 몇 남지 않았을 때도.
애캘슨은 울지 않았다.
그저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밖으로 나가 건물 벽에 뒤통수를 기대고 밤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어쩐지 하늘이라는 것은 공간도 시간도 모두 초월해서…… 저 하늘 어딘가 아래엔 그리운 동료들이 여전히 살아서 웃고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애캘슨은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반드시. 독립의 날은 온다.”
비록 지금은, 황제와 그의 기사들이 너무나 두렵지만.
황제가 창안했다는 빛나는 검을 든 오러 나이트들이 곳곳에서 학살을 벌이고 있지만.
가열차게 투쟁하던 동지들이 한 맺힌 고혼이 되어 버렸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다음 세대라도, 다음 세대가 아니라면, 그 다음 세대라도.
불타버린 들판 위로도, 봄이 오면 더 많은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온다. 오마르족의 시대는……. 반드시 온다.”
애캘슨은 차가운 주먹을 꾹 쥐고, 그렇게 다시 한번 스스로를 다잡았다.
* * *
현자 시에넬은 늘 그렇듯 황제의 가장 큰 신임을 받는 마법사였다.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던 분쟁.
처음 반년~1년 정도는 제국이 전 세계의 비웃음 받던 시기였다.
이빨이 다 빠졌다느니, 제국은 커다란 땅덩어리 때문에 스스로 자멸할 것이라느니.
그간 은근히 제국을 두려워했던 여러 나라들은 칼슈슈 왕국과 드리미온 왕국의 반군, 오마르 독립 세력들을 몰래 지원하며 신이 나서 제국의 힘을 깎아 먹으려 했다.
하지만 제국의 황제는 바로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방심하길.
수많은 전쟁 물자를 타국의 전장에 쏟아붓길.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의 명분이 충분히 쌓이길.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황제가 일어나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을 때, 그 나라들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전쟁 중인 제국을 크게 두려워할 필요 없으니 국경의 경계는 느슨했고, 전쟁을 위한 비축 물자들은 타국의 전쟁을 지원하느라 많이 소진된 상태.
그 빈틈을 타고 제국군들이 기습적으로 밀고 들어왔을 때, 그리고 그 맨 앞에서 황제의 오러 소드를 전수받은 제국 기사들이 검을 빛냈을 때, 전선은 형편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제국의 이 전격적인 진격을 가능하게 한 일등공신이 바로 현자 시에넬이었다.
그녀는 이그나치오 교장이 개발한 진령(盡靈)의 사용법을 응용해, 거대한 물자를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강력한 마법 엔진을 만들어 냈다.
이는 제국의 정복 전쟁에 혁혁한 기여를 하는 중이었다.
그뿐 아니라 정보를 기록하고 분류하고 검색하는 마법 시스템을 만들어 제국의 행정을 획기적으로 진보시켰다.
덕분에 제국은 그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여 전선으로 병사들을 끝없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그녀의 역할은 단지 후방 지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때로 그녀는 직접 전선에 섰다.
황제에게 직접 배운 오러 나이트들의 숫자가 부족할 때, 병력이 열세에 빠졌을 때, 그녀가 나섰다.
적은 그녀의 압도적인 마법 앞에 금세 굴복하고 말았다.
이러니 황제가 신임할 수밖에.
하지만 정작 현자 시에넬은 지금의 생활이 우울하기만 했다.
“스승님. 한숨 좀 그만 쉬세요. 저까지 힘이 빠지잖아요.”
알 아드네가 미간을 찌푸리며 또 깐족거렸다.
시에넬은 그 이마를 콩! 하고 쥐어박았지만 그 손에는 힘이 없다.
“어? 스승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알 아드네가 그녀의 약한 꿀밤에 깜짝 놀라 걱정을 했을 정도였다.
“그냥……. 스승님이 보고 싶구나. 사람을 죽이고, 마음대로 지배하고. 재미없구나. 스승님 옆에서 연구나 하고 싶어. 대체 황제놈은 왜 이리 전쟁을 좋아하는지.”
그 말에 그녀의 또 다른 제자 진 리안느가 단발머리를 흔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 스승님! 그런 말씀 하시면 어떡해요.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요!”
“흥! 들으라지.”
시에넬은 시니컬하게 말했지만, 그녀도 황제의 눈치를 보기는 보는지라 더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을 뿐이다.
“대체……. 스승님께서 왜 나를 다시 제국으로 돌려보내셨는지 모르겠구나. 이깟 현자라는 직위가 무에 중요하다고…….”
* * *
아아아악!
으아아악!
히센과 쥬피데르 그리고 빌레인 왕국 간의 전쟁이 벌어진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빌레인 왕국은 두 국가를 상대로도 오히려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기본적인 체급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전쟁은 격렬해졌고,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신종 병과들과 새로운 전쟁 마법들이 끝없이 새로 등장했다.
타아앙!
탕-!
제국과 동맹인 빌레인 왕국은 제국에서 지원해준 마총병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운용하는 중이었다.
심상을 살짝 왜곡시켜 정령계의 마나를 생성할 수 있게 된 마총병들은 진령(盡靈)으로 정교한 폭발을 일으켜 길쭉한 강철 막대에서 금속 구슬을 쏘아 댔다.
화살보다 훨씬 멀리 나가고 쉽게 조준할 수 있는 무기.
그 파괴력도 대단해서 기사가 갑옷에 오러를 두르지 않았을 경우엔 그 철갑마저 뚫고 들어가 박힐 정도였다.
마총병들이 일제사격을 가하면 전선이 와르르 무너지고 적들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히센 왕국과 쥬피데르 왕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막대한 군수 물자와 은신처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오마르족의 정령사들을 지원받았다.
휘이이잉-!
쏴아아아-!
주문을 외우지도 않고 불과 바람과 물을 일으키는 정령사들.
마총사들의 총탄조차 바람에 막히고 물에 막히고 불에 타 재가 되고 만다.
그들은 한 자루 검을 비껴들고 전장 곳곳을 누볐다.
단 한 명만으로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기에, 변칙적으로 운용되는 정령사의 존재는 빌레인 왕국에 크나큰 부담이 되었다.
그렇게 빌레인 왕국 쪽이 약간의 승기를 잡긴 했으나, 전선은 자꾸만 고착되고 소모전이 이어지는 나날이었다.
백성들은 불안해졌다.
전선에서 날아온 사망 통지서가 부모님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힘들게 지은 농사와 노동의 결실들이 세금으로 다 뜯겨 나가고, 전선과 가까운 도시에는 습격과 테러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그런 나날이었다.
매일.
전쟁 같은 하루가 지나고 밤이 오면, 사람들은 기도를 올렸다.
천사님.
부디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어서 끝나게 해 주세요…….
* * *
글라우베 마법 대학에 소속된 교수와 학생. 그 수많은 마법사들을 통틀어도 가장 특별한 네 명의 마법사가 있었다.
바로 살리넬르. 샤라 엘리프, 라냐 비셰나, 비앙카 애시.
첫 번째 포럼에서 최상위 성적을 냈던 이 네 사람은 지금까지도 따로 페르세타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가장 드높은 마법적 성취를 이뤄 내고 있었다.
이날도 밤 늦은 시간에 페르세타와 함께 따로 학습을 진행한 네 사람.
하지만 평소와 달리 페르세타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훌쩍 떠나지 않았다.
“슬슬. 시작할까 합니다.”
“예? 뭐를요?”
“두 번째 포럼이요.”
페르세타의 말에 살리넬르가 눈을 반짝거렸다.
“아! 요즘 또 커다란 건물을 지으신다 싶더니! 그래서 그랬던 겁니까?”
“뭐. 비슷합니다.”
“드디어……. 드디어 하는군요. <프린키피아>를 배울 수 있겠군요. 아, 그런데 그 전에 하나는 확실히 하죠. 그 <프린키피아>라는 거. 처음 쓰신 이후로 고쳤습니까? 혹시 우리가 연구한 거 참고해서 개정하신 거 아닙니까? 그런 거면 좀 억울할 거 같은데…….”
살리넬르의 도전적인 말에 페르세타는 피식 웃고 말았다.
“고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분은 여러분들의 연구가 더 낫고, 또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제 것이 낫고. 그럴 겁니다. 그 차이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 요소가 되겠군요.”
“다른 ‘많은’ 부분…….”
살리넬르가 분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쨌든 새로운 지식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왕세녀 라냐 비셰나의 반응은 살리넬르와는 사뭇 달랐다.
살리넬르는 그저 마법에 미친 마법사지만, 라냐 비셰나는 마법 왕국 비셰나를 이어받을 왕세녀였으니까.
그녀로서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포럼을…… 하기에는 시기가 안 좋지 않습니까? 대륙 전체가 전쟁의 화마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제국이 야욕을 드러냈고, 수많은 국가가 연합해서 그에 맞서고 있는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포럼을 한다고 해도 저번처럼 많은 마법사들이 참석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참석할 겁니다.”
페르세타는 라냐의 걱정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덧불였다.
“지금 포럼을 하는 이유가 바로,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니까요.”
“예?”
라냐 비셰나가 깜짝 놀랐다.
성녀 샤라 엘리프는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역시. 전쟁을 멈추실 생각이셨군요! 선생님이라면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믿고 있었습니다!”
모두의 눈에 호기심과 기대가 드러났다.
하지만 비앙카 애시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전쟁을…… 멈추신다고요? 전 세계를 상대로 승리를 이어 가고 있는 제국을 멈춰 세운다……. 그런 방법이 있는지는 둘째치고, 설령 그게 가능하다더라도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겁니다. 그분은 자신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을 참아 넘기시는 분이 아니에요.”
페르세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사람의 몸으로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일반적인 성격일 리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황제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의 시선이 샤라 엘리프를 향했다.
“성녀님. 천사 성교회의 힘을 빌려주십시오.”
“예?”
“아란드리아의 협력을 구할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천사 성교회까지 힘을 빌려준다면. 확실하겠지요.”
“네. 기꺼이 도와야지요. 그게 무엇이든지.”
그날 밤.
아란드리아 베리테 지부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수도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전 세계의 고위 마법사들과 천사 성교회의 성전에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세상이 뒤흔들렸다.
– 베리테 영지에서 두 번째 포럼이 시작됩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신비 세계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새로운 마도서 <프린키피아>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있을 예정입니다. 단언컨대, 이것을 배운 마법사만이 ‘진정한’ 마법사가 될 것입니다.
천사 성교회의 모든 신학자들이 도시마다, 마을마다 써 붙인 방.
그것을 본 마법사들의 심장은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 참고로 이번 포럼은 지난번과 달리 자격 제한이 없습니다. 그 누구든 시일에 맞춰 베리테 영지에 찾아온다면 포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2년간. 마법사들은 모두 느꼈다.
페르세타가 만든 대마도서 <첼레스티움>의 위력을.
그런데 이번에는 <프린키피아>라고?
이걸 배운 자만이 진정한 마법사가 될 거라고?
근데. 다 받아 준다고?
이러면 빠질 수가 없다.
그렇게 혼란이 시작되었다.
“뭐? 군부 소속의 하급 마법사들이 줄줄이 일을 그만두고 있다고?”
“예, 예…….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사표를 수리했는데…… 사표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벌써 절반이 넘는 마법사들이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병무 대신의 말에 세이린 제국의 황제 칼리슈트 세이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럼 모든 사표를 반려해라. 마법사 없이 어찌 전쟁을 치르란 말이냐? 적들의 기세가 무너졌고 지금 한창 몰아쳐야 하는 와중에!”
“예, 예! 그리하겠습니다.”
하지만.
페르세타가 일으킨 이 파란은 그렇게 쉽게 가라앉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며칠 뒤.
“폐. 폐하!”
“또 무엇이냐.”
“그, 그것이. 하급 마법사들이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뭐? 파업?”
“예. 그것이. 민간의 마법사들은 모두 페르세타의 포럼에 참석하는데 자신들만 참석하지 못하면 마법사로서는 끝장이 나는 것이라며 아주 완고합니다.”
“……감히. 본보기를 보여야겠구나. 파업을 일으킨 불경한 자들이 몇이나 되느냐.”
“그, 그것이……. 군부 소속 마법사들의 약 97%가…….”
“뭐……?”
황제의 권위는 막강하다.
하지만 그것이 무한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만약 한 집단의 10%가 반발을 한다면 웃으며 짓뭉갤 수 있다.
30%가 반발을 한다면. 진땀을 흘리며 짓뭉갤 수 있다.
설령 60%가 반발을 하더라도, 내전을 일으키는 심정으로, 살과 뼈를 깎을 각오를 한다면 짓뭉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90% 이상이 반발을 한다?
그걸 짓뭉갠다는 건 정치적 자살과 다름이 없었다.
제국이 멈추고 찢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방법이 없진 않다. 그래 봤자 하급 마법사. 오합지졸들이 아닌가.
여러 집단을 가르고 그들 중 일부를 본보기로 처벌하고. 다른 일부를 회유한다면……?
황제가 굳은 얼굴로 생각에 빠졌을 때, 병무 대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그리고…….”
“또 무어냐.”
“그, 그게. 고위 마법사들도 장기 휴가를 요청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지금은 전시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망발을 내뱉는다는 말이냐!”
“예. 예. 맞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 현자님이 계십니다.”
“……뭐?”
“현자님이 말씀하시길. 하급 마법사들도 포럼에 참석하는데 자신들만 참석하지 못하면 자신들의 마법적 우위를 지킬 수 없게 된다고……. 이건 마법사의 생명이 달린 일이라면서…….”
황제는 손바닥으로 눈을 덮었다. 현자가 나섰다?
그럼 더 이상은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현자는 제국의 모든 마법사를 대표하는 자.
황제가 방금 떠올린 갈라치기 전술은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현자를 중심으로 모든 마법사들이 결집할 테니까.
“외통수로군……. 천하가 드디어 내 손끝에 닿았거늘…….”
황제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