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74)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74화(74/171)
74화 독대
황제.
과연 이 세상에서 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가 존재하기나 할까?
제국은 단순히 강력한 육군만을 지닌 게 아니었다.
언제든 국경을 넘어 침투할 수 있는 강력한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막강한 해군력까지 갖추어 대륙 전역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수많은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구석구석 그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시피 했다.
제국과 국경이 멀고 바다와도 접하지 않은 궁벽한 드블랑 왕국마저도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제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최근 그 영향력에 한계가 왔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황제가 창안한 오러 소드를 익힌 막강한 기사단이 그 의심을 단숨에 불식시킨 바 있었다.
당연히 포럼에 모여 있던 마법사들 역시 황제의 등장에 격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경외를, 누군가는 긴장을, 누군가는 분노를.
저마다 드러내는 감정은 달랐지만, 그 누구도 감히 황제의 존재 앞에서 평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단 한 사람.
무한의 광장 중앙에 서 있는 페르세타를 제외하면.
“오셨습니까. 폐하.”
마치 황제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여상한 목소리.
괜히 다른 사람들이 긴장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켜야 했을 정도였다.
“자네는 놀라지 않는군?”
“놀라야 했던 것입니까?”
“아니지. 아니야. 그래. 예상할 수도 있었겠군. 내가 와야 할 이유가 두 개나 있었으니. 이토록 대단한 강연이니 응당 내가 와서 들어야 했고, 또 그대가 나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했으니, 또 와야 했지.”
“혹시 그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것이 정복 전쟁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정복 전쟁이라니. 별로 듣기 좋은 어감은 아니군. 위대한 자가 군림하여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며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 그것은 세상의 순리이네. 그리고 순리를 지키는 것이 곧 정의. 헌데 정복 전쟁이라고 한면 왠지 정의롭지 못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폐하께서 세상의 이치에 관심이 많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저 역시 평생 세상의 이치를 공부하며 살았지만, 정복 전쟁이 ‘정의’라는 건 생전 처음 듣는 가설이로군요. 메아샤 님께 여쭤보고 싶어졌습니다.”
“메아샤? 정의의 천사 말인가? 하하. 한번쯤 겨뤄보고 싶은 상대이기는 하지. 혹시 만나게 된다면 나도 소개해 주게.”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황제와 페르세타의 대화.
마법사들은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였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자신들의 대표이자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페르세타가 황제에게 전혀 꿇리지 않고 신경전을 이어 가는 모습에 자부심을 느꼈고, 동시에…… ‘근데 정말 이래도 돼?’ 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튼 페르세타. 우리. 나눌 대화가 많을 것 같지 않은가? 잠시 따로 얘기 나누고 싶은데. 시간 괜찮은가?”
“예. 폐하. 마침 포럼도 끝났으니 시간은 널널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러지. 너희는 여기 남아 있거라.”
쿵!
황제가 발을 한 번 구르자, 그의 몸은 마치 날듯이 하늘을 가로질러 페르세타의 옆에 뚝 떨어졌다.
과연, 기사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 받는 존재다운 신위.
그 압도적인 무력을 믿는 탓인지, 황제를 수행하여 따라온 로열 나이트들도 호위를 자처하지 않고 멀어지는 황제와 페르세타를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무한의 광장을 빠져나갔을 때, 마법사들은 참고 있던 숨을 토해 냈다.
“화, 황제 폐하와 페르세타 선생님의 독대라니……!”
“최고의 마법사와 최고의 검사인가……! 두 분이 한 판 붙으시는 거 아냐?”
“유치하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그게 궁금해지네. 두 분이 한 판 붙을까? 붙으면 누가 이길까?”
웅성거리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현자 시에넬이 혀를 차며 말했다.
“멍청한 놈들. 고작 그런 게 궁금하더냐?”
그러자 그녀의 제자 알 아드네가 회색 머리카락을 빼꼼 내밀며 물었다.
“스승님은 안 궁금하십니까?”
“그야. 궁금하기는 한데……. 큼, 크흠!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황제 폐하와 페르세타 선생님의 만남은 학문의 권위와 세속의 권위가 만나는 대사건이란 말이다!”
현자의 호통에 주변 마법사들이 일제히 귀를 기울였다.
단순히 귀를 기울인 게 아니라 속삭임 마법을 이용해 그 말을 주변 마법사들에게 전달하기까지 했다.
물 속에 빠져든 잉크처럼, 순식간에 마법이 퍼져 나갔다.
수십만 명이 운집해 있는 이 방대한 무한의 광장에서 현재 현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은 황제가 데려온 로열 나이트들과 마법사가 아닌 일꾼들 뿐이었다.
“애초에 이번 포럼 자체가 세속의 권위와 학문의 권위가 충돌하며 성립한 것이었다. 우리 마법사들은 그 어떤 세속적인 이해관계로도 서로 묶여 있지 않았지만, 오로지 학문을 향한 열정, 성장을 향한 집념만으로 뭇 왕들과 황제 폐하의 뜻을 거스르고 이곳 베리테 영지를 찾았다.”
조용한 동조가 퍼져 나갔다.
확실히 이번 포럼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대 사건이었으니까.
한 사람이 강연을 한다는 이유로 전세계를 불태울 듯이 커져 가던 전쟁이 멈췄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란 말인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페르세타가 가진 압도적인 학문적 권위였다.
“자. 그런데 이제 황제께서 선생님을 찾았다. 이게 무슨 뜻이겠니?”
그녀의 제자, 알 아드네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서열 정리…….”
“그래. 그 첫 등장은 전례도 없고 너무 낯설어서 황제 폐하께서도 그저 두고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어떤 식으로는 두 권위가 합의를 볼 수밖에 없다. 한쪽이 굽히든, 아니면 대등하게 타협을 하든. 그러니까 말이다.”
현자가 거대한 무한의 광장과, 그곳에서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있는 무수한 마법사들을 둘러보며 속삭였다.
“오늘 두 분의 만남의 결과가 어찌 되느냐에 따라 세상의 형태가 바뀌게 될 것이다. 마법사들의 학문활동이 더 폭넓게 인정받고 존중받게 되느냐. 아니면 황제 폐하의 밑으로 다시 굽히고 들어가게 되느냐……. 어쩌면 우리의 운명이 걸린 만남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모든 마법사들이 일제히 황제와 페르세타가 떠나간 통로 쪽을 바라보았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요란했다.
“뭐야? 갑자기 다 한쪽을……. 무슨 일 있나?”
속삭임 마법에서 제외되어 그 말을 듣지 못한 로열 나이트들만이 의아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황제와 페르세타는 환요계의 식물들로 꾸며진, 안개 가득한 정원에서 서로 마주 앉았다.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고 간간이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제는 아까 강연에 대해 질문을 했다가 페르세타의 폐관 생활에 대해 물어봤고, 또 제국의 전대 현자이자 페르세타의 스승이었던 바르덴테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렇게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페르세타가 문득 웃음기를 지우며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군요. 저는 폐하께서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화를 냈어야 하나?”
“아뇨. 화를 내시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웃으시는 게 훨씬 좋기는 합니다.”
황제는 작게 웃으며 찻잔을 비웠다.
“화를 내려고 했지. 원래는 화를 내려고 했어. 하지만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도 꽤 많네.”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뭐. 내가 귀애하는 존재가 자네를 따르고 감싸려 하는 것도 이유의 하나였고, 막상 와서 보니 자네의 강연이 굉장히 감동적이기도 했네.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이라……. 참으로 위대했네. 나는 위대한 것들을 좋아하지. 뛰어난 사람도 좋아하고. 자네는 내 앞에서 건방을 떨어도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네.”
“좋게 봐주셨다니 영광이로군요.”
“하하하하! 역시 건방져. 전혀 영광이라 여기지 않고 있으면서 입만 번드르르하군. 그래!”
“음……. 티가 났습니까?”
“엄청나게 났다네.”
“……사회적인 표정 짓는 게 참 어렵습니다. 연습을 더 해야겠군요.”
그 말에 또다시 박장대소를 터뜨리던 황제가 은근하게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페르세타. 제국으로 오게.”
“제국으로요?”
“그래. 그대에게 대현자의 자리를 주겠네. 아, 내가 작명 센스가 좀 좋지 않아서……. 이름은 자네 맘대로 정해도 좋네. 아무튼 현자보다도 위에 있고, 황제인 나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지. 부디 함께해 주게. 그대와 함께라면 영원히 지지 않을 위대한 제국을 일굴 수 있을 걸세.”
황제의 어조는 간절했고, 그런 황제를 바라보는 페르세타의 시선은 멀뚱멀뚱했다.
“싫습니다.”
“왜지? 내 장담하건대, 그대가 나와 함께한다면, 그대 혼자 이룰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일세.”
“저는 제국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요.”
그 말에,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국이…… 위대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다 꿈이었다는 것처럼 날카로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결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정원에 가득한 안개가 황제의 주변에서 예리하게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안개는 서로 붙지도 않은 채 갈가리 찢긴 채로 부유한다.
위대함에 집착하는 황제에게, 그의 제국이 위대하지 않다고 하는 말은 역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페르세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세상을 꿈꾸거든요.”
“제국이 바로 그런 곳이네.”
“글쎄요? 물론 다른 왕국들에 비하면 좀 나은 면이 있긴 합니다. 평민이나 심지어 천민이라 해도 능력만 보이면 지원을 받고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하지만. 과연 그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걸까요? 선대의 공적으로 인해 귀족이 된 자들은 재능이 떨어져도 훨씬 더 많은 기회를 훨씬 더 크게 제공받지요. 그 자식도, 또 그 자식도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건 당연한 게 아닌가?”
“저는 그게 당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도 귀족일 텐데?”
“예. 물론 저도 제 조카나 후손이 대우를 받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공정해야죠. 귀족이라는 이유로 더 쉽게 기회를 얻고 평민이나 천민이라는 이유로 적은 기회만 받아야 한다면……. 마법은 대체 누가 발전시키겠습니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로군.”
“아무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황제가 페르세타의 눈을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페르세타도 그 눈을 피하지 않고 황제를 마주 봤다.
“과연 자네에게 그런 세상을 꿈꿀 만한 힘이 있는지 궁금해지는군.”
“적어도, 제국에 소속되지 않을 정도의 힘은 있지요.”
“말 한마디를 안 지는군.”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좋아. 말로는 합의점에 도달할 수가 없으니. 우리 내기를 할까?”
“내기요?”
“그래. 그대는 마법으로, 나는 검으로 한번 붙어 보지. 자네가 얼마나 강한지 안 그래도 궁금했네. 이기는 쪽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지. 자네가 제국의 반을 달라고 해도 주겠네. 다만 내가 이기면 그대는 제국의 대현자가 되어야 하네.”
페르세타가 고개를 저었다.
“내기는 좋은데…… 결국 싸우자는 말씀 아닙니까? 그건 좀 야만적이지 않습니까?”
황제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낫지 않겠나? 마법사인 자네나. 검사인 나나.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아주 합리적인 방식이라 생각했는데……. 그럼 원하는 내기 방식이 따로 있나?”
페르세타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쓰게 웃었다.
“역시. 그냥 한 판 붙죠.”
“……방금 전에 너무 야만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만큼 오래전부터 입증되어 온 승부 방식이라는 뜻이기도 하죠.”
“……부디 자네 실력도 그 혓바닥만큼 대단하길 바라네. 애매하게 강했다간 내가 힘 조절을 못 할지도 몰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페르세타가 일어서며 눈을 한 번 감았다 뜬다.
“메아샤.”
후우우웅-!
그의 부름에 천상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하얀빛의 깃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