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78)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78화(78/171)
78화 살리넬르 VS 로열 나이트
페르세타와 황제가 떠난 뒤, 무한의 광장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수십만의 마법사 중 그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침묵 속에 멍하니 무언가를 기다릴 뿐.
다들 머릿속에 현자의 말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두 분의 만남의 결과가 어찌 되느냐에 따라 세상의 형태가 바뀌게 될 것이다.’
학문의 권위와 세속의 권위의 충돌.
두 사람은 과연 어떤 합의에 이를까?
상상은 다양하게 뻗어 나갔지만, 결국 그들의 머릿속으로 귀결되는 결론은 한 가지였다.
‘한판 붙겠지?’
‘붙지.’
‘절대로 싸워 볼 거다.’
페르세타는 몰라도. ‘그’ 황제라면 틀림없었다.
힘과 권위로 찍어 누르기 좋아하는 황제. 그가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러 소드’를 개발했다.
그런데 과연 힘을 써 볼 생각을 안 할까?
그럴 리가 없지.
그랬기에 다들 쥐 죽은 듯한 침묵 속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누가 이기고 돌아올까…….
아무리 페르세타라도 그 황제를 상대로는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단 한 명.
수십만 명의 마법사 중, 오로지 단 한 명만큼은 단지 궁금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거기서 한 발을 더 나아가고 있었다.
‘페르세타라면……. 황제를 꺾을지도 모른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페르세타의 무시무시함을 잘 알고 있는 마법사.
바로 살리넬르였다.
‘페르세타는 분명, 어떻게든 황제의 오러 블레이드를 상대할 방법을 찾아내고 말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의 피는 뜨거워졌다.
‘그걸…… 두고 보고만 있을 거야?’
그도 이제는 안다.
페르세타의 뒤를 따라가겠다는 게 얼마나 암담한 목표인지.
하지만…….
그래도…….
꿈은 꿈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
사실 지난번 페르세타가 그에게 ‘꿈’을 물어보았을 때, 그는 솔직히 말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절반의 진실만을 말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우리의 기원은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싶군요.’
인간을 이해하고 그래서 ‘나’를 이해하고 싶다고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왜’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인간을 이해하고 또 나를 이해하면……. 저 불합리한 재능을 타고난 페르세타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재능이 부족한 것이라면.
마법으로 그 재능을 메우면 되는 게 아닌가?
사람을 이해하고, 나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면……. 재능을 새로 쓰는 것 조차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게 바로 살리넬르의 생각이었다.
즉,
그의 진정한 꿈은 처음부터 하나뿐이었다.
언젠가는,
어떻게든,
페르세타를 이겨 보는 것.
그랬기에 그는 지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스윽-
살리넬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제와 페르세타가 떠나 텅 비어 있는 무한의 광장의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갔다.
웅성웅성-
부산한 정적만이 흐르던 무한의 광장에 마법사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파도쳤다.
살리넬르는 그 한복판에 서서 저기 관중석에 앉아 있는 로열 나이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명하신 로열 나이트 여러분을 뵙습니다. 저는 글라우베 마법 대학의 학교장이자 수석 교수. 살리넬르 드메치라고 합니다.”
요즘 마법사들 사이에서 살리넬르는 명성은 드높기 그지없었다. 마법사들의 정점이라 불렸던 현자 시에넬과 비견하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그건 마법사들 사이에서의 이야기.
자리에 앉은 로열 나이트들은 그게 누군데? 하는 표정으로 흥미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살리넬르는 그런 로열 나이트들을 향해 소리높여 물었다.
“황제 폐하와 페르세타 선생님이 돌아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로열 나이트 분 중에서 잠시 여흥에 어울려 주실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제서야 로열 나이트들이 반응을 보였다.
응? 우리?
우리 얘기였어?
그런 의아함을 표현하며 뒤에 붙이고 있던 등을 슬쩍 떼어 낸다.
살리넬르는 말을 계속 이었다.
“오러 소드의 위명이 이 부족한 마법사의 귀에도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려와서 말이지요. 이래 봬도 현자님과 함께, 여기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을 대표할 정도는 된다 생각하는데…… 혹시 한 수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신지요?”
말은 더없이 정중하나, 몸짓과 눈빛은 도전적이기 짝이 없었다.
피식-
로열 나이트 중 하나가 웃었다.
황제를 따라온 로열 나이트의 막내 칼츠였다.
그는 오러 플레임을 익힌 이후 마법사들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었기에 히죽히죽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리넬르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정말 현자님 정도의 급이 맞나?”
주변에 다 들리게 묻는 말에 마법사들이 낮게 화답했다.
“살리넬르님 정도라면…….”
“요즘은 현자님께도 뒤지지 않지.”
“하기야. 살리넬르님이 얼마나 마법계에 공헌을 많이 하셨는데…….”
마법사들의 반응에서 그 말이 사실임을 알아차리게 된 칼츠가 입가에 진한 웃음을 매달았다.
그가 히죽히죽 웃으며 자신의 선배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괜찮지 않겠습니까? 마법사들에게 현실을 확실히 보여 주는 것도. 이것도 다 폐하의 위엄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의 가벼운 태도에 선배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걸 말리진 않았다.
황제가 창안한 검술로 최고의 마법사를 꺾음으로써 황제의 위엄을 높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흐흐 그럼 몸 좀 풀어 볼까.”
선배들의 묵인을 확인한 칼츠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안 그래도 그는 사실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이깟 마법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마법은 그저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진정한 권위는 힘에서 나오고, 이제 마법사들은 영영 기사를 이길 수 없다.
칼츠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몸을 막 일으킨 칼츠가 저 멀리, 현자 시에넬이 앉은 쪽을 흘깃 살폈다.
일반적인 사람의 눈으로는 사람의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최상위 기사인 그의 눈에는 시에넬이 선명히 보였다.
‘잘 됐네.’
사실 그는 평소 현자의 존재도 거슬려하던 사람이었다.
마법사 주제에 황제 폐하께 존칭을 듣다니.
그런 영예는 마법사가 아니라 기사가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던 그였다.
그런데 현자 못지 않게 존경을 받는 이를 두드려 팰 수 있는 기회라?
이건 참을 수가 없지.
‘불구로 만드는 건 좀 그렇고……. 이빨 몇 개 정도는 털어 줘도 되겠지. 그렇게 떡을 만들어 놓으면 현자 늙은이도 로열 나이트 무서운 줄을 알게 되겠지.’
칼츠는 몸을 훌쩍 날려 살리넬르의 앞에 섰다.
살리넬르가 그런 칼츠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고명하신 로열 나이트와 한 수 겨룰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칼츠는 가타부타 그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뽑지도 않은 채 먼저 들어오라는 듯이 손을 까딱 한 번 해 보였을 뿐이다.
애초에 칼츠라는 사람이 예의를 차리는 마법사는 현자 한 명뿐이었다. 그는 철저히 마법사를 무시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현자는 황제가 정한 예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거고. 나머지의 경우는 설령 상대가 불쾌해하더라도 황제 직속 로열 나이트라는 직위로 잔소리만 듣는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살리넬르는 눈을 빛냈다.
그는 떠올렸다.
여태까지 쌓아 온 자신의 마법을.
페르세타의 가르침을.
우우우웅-!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그가 심상 속에 만들어 둔 도구.
사실 그는 연구자였기에 전투에 쓸 만한 도구는 만들지 않았다. 그가 만든 도구들 중 가장 성능이 좋은 것은 차원의 우주를 들여다보는 일종의 망원 마법.
하지만 마법이라는 건, 그 사용법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는다.
우우우웅-!
살리넬르의 손짓을 따라 수없이 많은 마법진이 그려졌다.
을 넘어 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정밀해지고 간단해진 신비 세계의 좌표와 고도화된 수식 계산법 덕분에 이제 어지간한 마법은 주문을 외우는 게 필요하지 않았다.
복잡한 마법진 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환요괴에서 빌려 온 요술.
현실과 환상의 구분을 흐트러뜨리는 [호접몽]의 비술.
쏴아아아-!
살리넬르를 중심으로 우주가 뒤틀린다.
살리넬르가 [호접몽]으로 이 현실에 끌어온 것은 바로 그가 관측하고 있는 차원의 우주.
3차원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위도 아래도 구분할 수 없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세계.
세상이 어둡게 물든다.
아니. 그걸 어둡다고 할 수 있을까?
빛도 어둠도 아닌, 그저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무언가가 칼츠와 살리넬르 사이에 내려앉는다.
“으읏……?!”
자신만만하던 칼츠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비틀.
가만히 서 있던 그가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린다.
당연한 것이었다. 적절한 심상의 도구 없이는 인간이 차원의 우주 속에서 멀쩡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 마법사 놈이……!”
칼츠가 이를 갈며 검을 꺼내들었다. 새하얀 불꽃이 그의 검을 타고 흔들린다.
파직! 파지직!
모든 마나를 흐트러뜨리는 오러 플레임에, 살리넬르가 펼친 의 술이 군데군데 부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리넬르 역시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쏟아져라! 에어 애로우!”
그가 선택한 두 번째 마법은 에어 애로우.
대단한 마법은 아니었다.
페르세타 이전 시대부터 널리 쓰이던 기초 마법.
살리넬르 역시 흔들리는 [호접몽]의 요술을 계속 유지해야 했기에 큰 마법을 쓸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단순한 마법을 끝도없이 만들어 내 칼츠에게 쏟아부었다.
이게 그가 생각해 낸 오러 소드를 상대하는 법.
제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도,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채로 휘두르면 소용이 없다는 점을 노린 것.
파파파팡!
날카로운 바람의 화살이 쉴 틈 없이 칼츠를 몰아붙였다.
칼츠는 비틀거리며 검과 온몸을 통해 오러 플레임을 쏟아내며 저항했지만,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허망할 뿐이었다.
미처 방어하지 못한 부위로 에어 애로우가 적중해, 칼츠의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고 피가 튀기 시작했다.
‘내 승리다……!’
살리넬르가 그리 확신하는 순간.
“뭐 하는 거냐! 칼츠!”
관전 중이던 로열 나이트 중 하나가 소리를 쳤다.
“한심한 놈! 꼴사납게 패배할 셈이냐!”
그 말에, 칼츠의 분위기가 변했다.
“너……!”
동시에 칼츠의 온몸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새하얀 불꽃.
콰지지지직!
그를 둘러싸고 있던 [호접몽]의 요술이 산산이 조각나며 불타올랐다.
“으윽……!”
요술이 강제로 박살난 반동으로 살리넬르가 비틀거렸다.
칼츠 역시 무리를 했는지 두 눈과 코,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으나, 어쨌든 그는 처음으로 자유를 손에 넣었다.
콰아앙!
칼츠의 발 밑이 부서지며 그가 앞으로 쇄도하고,
콰직!
살리넬르의 얼굴에 칼츠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퍼어엉!
살리넬르의 머리가 붉은 피 보라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헉!”
“수석 교수님!”
놀란 마법사들이 벌떡 일어섰다.
칼츠도 아차, 싶은 얼굴로 멈춰 서는데.
“콜록! 콜록!”
저 멀리서 피를 토하는 살리넬르의 모습이 나타났다.
“환영 마법?”
머리가 터진 살리넬르의 환영이 스르르 사라지는 걸 지켜보며 칼츠는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다치고 몸은 어떻게 빼낸 거지?”
살리넬르는 피를 토하면서도 그 의문에 답을 해 줬다.
“별 건 아닙니다. 쿨럭쿨럭! 단거리 공간이동 마법 블링크……지요. 쿨럭!”
“공간이동? 그건 불가능한 게 아니었나?”
“마나의 모든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가 있으면…… 크읍! 흠! 가능합니다.”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바로 세운 살리넬르.
무리해서 의 술을 깨뜨린 칼츠가 피범벅이 된 자기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아 내며 말했다.
“그렇군. 그럼 재롱 다 피웠으면 이제 좀 맞자.”
살리넬르는 이를 악물었다.
오러 플레임의 위력이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으니까.
아까의 블링크도 거의 억지로 성공시킨 것. 또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야 할까?
‘여기서 물러서면. 영영 페르세타는 따라잡을 수 없어.’
설령 젊은 기사에게 얻어 터지는 수모를 당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 한다.
살리넬르는 그런 각오를 다지며 다시 마력을 일으켰다.
* * *
무한의 광장은 조용해졌다.
마법사들의 시선은 피떡이 된 채 쓰러진 살리넬르를 향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패배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 중 현자를 제외하면 가히 제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법사가, 젊은 기사에게 비참하게 패배한 모습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칼츠 역시 살리넬르에게 꽤나 고전을 한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페르세타를 제외하면 최강이라 불러 마땅한 마법사가 그 위로 수십명은 꼽을 수 있을 젊은 기사 하나에게 패배한 것이었으니까.
그나마 칼츠가 입은 피해도 초반 [호접몽]의 술을 파괴할 때 입은 피해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마법사들에게 더 큰 자괴감을 주었다.
“흥.”
어느덧 아까 입었던 부상을 거의 회복한 칼츠는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멀끔하게 닦아 내고 마법사들을 오시했다.
“마법도 제법이긴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퉤.”
바닥에 피가 흥건한 침을 뱉은 뒤, 칼츠는 무한의 광장에 가득한 마법사들을 눈에 담으며 소리쳤다.
“이니 니 하며, 마법이 좀 발전했다고 기고만장들 하신 것 같은데. 현실을 직시해라. 마법으로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전투에서 마법사들이 기사를 이길 일은 영영 없을 거다.”
죽음같은 정적이 흘렀다.
물론 마법사들의 자부심은 전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태 마법사들 역시 기사들 못지 않게 전장에서 활약해 왔었기에, 오늘의 결과는 충격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오러 소드의 명성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살리넬르조차 저렇게 무참하게 당하다니…….
마법사들이 패배감으로 침묵하고 있던 그때, 담담한 목소리 하나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폐하?”
모두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 목소리를 향해 돌아갔다.
그곳에 페르세타가 서 있었다.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황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