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87)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87화(87/171)
87화 진리를 찾아
세상은 너무나 넓고 연구할 것은 미어터진다.
시니어 마법사들은 한 사람당 한 분야를 맡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의 주제에 관해 팀을 이루어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파고들었다.
가령 생명.
생명에 대한 조사를 총괄하는 건 살리넬르였지만, 그건 살리넬르가 혼자 모두 연구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현상.
여러 시니어 마법사들이 함께 그 분야를 나눠 맡았고, 그중에는 성녀 샤라 엘리프도 있었다.
그녀는 생명의 마법적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를 떠나 오지로 들어갔다.
그녀의 과제는 아무 편견 없이 발견되는 모든 생물의 표본을 수집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적 현상을 조사, 기록하는 것.
살리넬르가 최대한 많은 수의 생명들을 찾아 체계화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녀는 우선 아무 선입관 없이 생명들을 찾아 살리넬르의 목록을 보완, 크로스 체크하는 게 두 번째 목표였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첫 번째 목표는 생명이 보여 주는 마법적인 현상에 대해 아무 선입견 없이 관찰하고 기술하여 목록화하는 것.
후에 이 자료는 생명 종의 분류에서부터, 생명 기원의 탐구 및 생명 마법의 응용 등 온갖 분야에서 사용될 수 있는 기초연구였다.
샤라 엘리프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무척이나 만족했다.
“생명이란 부족하고 가여운 존재지. 신계의 은혜와 천사님들의 보살핌이 없이는 결코 홀로 설 수 없는 존재들이야. 나는 이 연구를 통해 생명들이 얼마나 허약한지, 그래서 천사님들을 향한 믿음과 의지가 생명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마법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될 거야.”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품어 왔던 신앙. 그리고 페르세타를 만난 이후 갖추어 나가게 된 마법사로서의 태도.
이번 연구는 그 두 가지를 완벽하게 조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어쩌면 이 과정을 통해, 그녀가 평생 품어왔던 신념이 완성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천사님……. 부디 이 나약한 저를 인도해 주세요.”
오지로 온 뒤, 매일 정신없이 바쁘고 지치는 하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일 새벽 기도를 빼놓지 않았다.
[그대의 뜻이 선에 있으니, 그대는 결코 지치지 않으리라.]다만 그녀의 기도는 예전 천사 성교회의 본단에 있던 때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그때는 아무리 기도를 한들 돌아오는 건 약간의 신성력과 예감 같은 것뿐이었는데…….
이제 그녀는 기도를 통해 천사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게 페르세타 밑에서 배운 덕분이었다.
신계의 정확한 좌표를 알게 되고, 그곳에서 날아오는 마나의 주파수를 정확히 수신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마나의 다양한 동역학과 혁신적인 술식 계산법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젠 실제로 신계의 천사들과 직접 연결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런 성과를 얻은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도, 샤라 엘리프는 여전히 매일 매일이 감격스러웠다.
‘내가 천사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감사합니다. 페르세타 님. 감사합니다. 메아샤 님.’
성녀, 샤라 엘리프.
그녀의 어린 시절은 대단히 불행했다.
그녀의 고향은 현재 ‘가이데른 공화국’이라 불리는 땅.
한때는 강성한 왕국이었으나, 여러 외세의 간섭과 다양한 사상, 민족의 갈등으로, 엄청난 정치적 균열 속에 무너진 나라.
샤라 엘리프는 ‘가이데른 공화국’이 탄생하기 전, 피로 점철된 정치적 혼란의 시대 속에 자신의 유년기를 보내야만 했다.
가난은 기본이었고, 살인과 약탈도 기본이었다.
그보다도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다정했던 친구가 사상 때문에 갈라져서 서로를 죽고 죽이던 모습. 모두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던 착한 이가, 말 몇 마디의 선동으로 쳐 죽일 사람이 되어 끌려가던 풍경.
인간이 인간에 끝없이 실망하고 증오하게 만들던 그 아수라 지옥도.
그 벗어날 수 없었던 지옥에서 그녀를 건져 내 준 것은, 머나먼 다른 세계, 한없이 드높고 위대한 세계에서 넘어온 한 줄기의 목소리였다.
[사랑을 잃지 말거라.]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콧방귀를 뀌며 침을 뱉었을 수도 있는, 그런 순진해 빠진 말.
그런데 이상하게 갑자기 머릿속에 그 목소리가 울렸을 때, 샤라 엘리프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그 따스한 목소리는 마치 손처럼, 물처럼, 그녀의 지친 몸을 씻어 내리고 따스하게 두드려 주었다.
그 목소리일 뿐인데, 켜켜이 쌓여 왔던 증오와 회한과 냉소가 스르르 씻겨 나갔다.
어찌 목소리만으로 이런 힘을 발휘하고, 이토록 강한 위로와 거듭남을 경험케 한단 말인가?
그 순간이 샤라 엘리프가 처음으로 천사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것은 나약한 인간을 지탱해 주는 기적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샤라 엘리프는 천사 성교회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가 되었다.
그녀는 청사 성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했고, 천사님의 그 목소리를 매일 더듬으며 타인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끝없이 고행하고 기도하며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어느새 성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매일 새벽마다 천사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해서, 어찌 그 감동이 희석되겠는가.
그녀는 매일 새벽을 간절한 기도로 열었고, 단단한 사명감을 가진 채, 다시 오지 마을로 출근했다.
또 새로운 생물종을 찾아내고, 그것들이 보여 주는 마법적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콰아아앙-!
성녀는 저 머나먼 베리테 영지에서부터, 1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대수림, 이누야니 속에 자리 잡은 오지 마을에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마법 대학 글라우베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출퇴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페르세타의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피곤치 않았다.
아침에도 천사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천사님의 목소리는 생명체의 불완전한 모든 것들을 단숨에 씻어 내리고 그것이 본래 그래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되돌려주는 힘이 있다.
덕분에 그녀는 늘 활기찰 수 있었다. 처음엔 힘들었던 출퇴근 마법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지고 있었고.
“성녀님!”
샤라 엘리프가 마을 한복판에 나타나자.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던 소년이 벌떡 일어섰다.
매일 아침.
샤라 엘리프의 출근을 기다리는 소년이었다.
그 아이는 오늘도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 보따리를 흔들었다.
“성녀님! 오늘은 돼지 꿀바나나 구이예요!”
바나나잎에 돼지 뱃살을 넣고 구운 음식.
샤라가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다.
소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주 득의만면한 얼굴이었다.
“매번 고마워. 잘 먹을게.”
“헤헤. 고마우면 나 마법 가르쳐 줘요. 성녀님.”
“나중에 나이가 되면 제국으로 오라니까? 내가 추천서랑 장학금 준대도.”
“진짜죠? 약속한 거예요?!”
“당연하지. 그동안 내가 얻어먹은 밥이 얼마인데.”
“아싸! 히히.”
사실 밥값은 이미 진작에 했다. 이 오지 마을에 온 첫날, 샤라 엘리프는 아픈 사람들을 치유했고, 그때 치유받은 사람 중 한 명이 소년의 어머니였으니까.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그녀를 치유해준 뒤, 그 집 남편은 매일같이 사냥을 나가고 살아난 어머니는 그 사냥감을 정성껏 요리하여, 매일 아침 소년의 손에 들려 보냈던 것이다.
그래도 샤라는 늘 소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도시락과는 별개로 소년이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엄마 심심하겠다. 저 그만 돌아갈게요!”
마을 입구까지 성녀를 배웅하던 소년이 손을 흔들었다.
샤라는 짓궂게 물었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
“네!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아! 음……. 아빠랑 같이. 공동 1등이에요!”
소년은 까무잡잡하게 탄 얼굴로 새하얀 이를 씩 드러내 보이곤 자기 집 쪽을 향해 뛰어갔다.
샤라는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삶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었다.
연구 자체도 뜻깊었지만, 이런 작은 인연들도 너무나 소중했다.
작은 마을의 일원이 되어, 때론 상심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때론 치유하고,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삶.
천사 성교회에 투신한 이후로 늘 꿈꿔 왔던 삶이었다.
샤라 엘리프는,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확신했다.
글라우베 마법 대학으로 출퇴근하지 않고 다른 이들처럼 이곳에서만 머물 수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페르세타의 분부이니 따라야만 했다. 그래. 사람이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샤라 엘리프는 쏟아지는 상념을 정리하고 그만 숲속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성녀님 오셨습니까.”
깊은 곳에 차려진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자, 그녀에게 소속된 주니어 마법사들이 인사를 건네 왔다.
샤라는 활기차게 손을 흔들었다.
“응! 샘플들은 어때? 그 나이 든 바람쥐……. 아직 괜찮아?”
“네. 아직 괜찮습니다. 하지만 오늘을 넘기지는 못할 것 같아요.”
바람쥐는 이곳 이누야니 대수림에만 살아가는 생물이었다.
몸이 극히 가볍고 바람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 작은 산들바람에도 둥실둥실 떠다니며 숲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는 흔히 볼 수 있는 생물.
수명은 5년 내외, 가족 간의 유대가 굉장히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샤라는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죽음만큼 강력한 섭리는 없지. 그만큼 강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현상도 없고. 오늘 우리는 이 우주의 가장 깊은 비밀 중 하나를 관찰하는 거니까. 다들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임하자.”
“예! 알겠습니다!”
그간 밀리프가 이끄는 연구팀은 마나와 상호작용하는 생명의 다양한 현상들을 관찰해 왔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은, 생명이 강렬한 감정을 느낄 때면 특정한 패턴의 마나가 흘러나온다는 것.
그것은 세상에 가득한 다른 마나들과 공명을 일으키며 주변 마나들을 변화시켰다.
물론 이건 전에도 익히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다.
명계의 존재나, 마계의 악마들은 때때로 인간의 감정을 탐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생명체의 감정이 독특한 마나의 구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그걸 하나하나 기록하고 분류하고 추적해 보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적어도 샤라 엘리프는 이런 조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감정이 만들어 내는 마나의 구조는 결국 아무런 마법적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 채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고들 생각했으니까.
태풍을 연구하는 사람은 있어도 산들바람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생명의 감정이 일으키는 미세하고 허망한 마법 현상에 관심을 갖는 마법사 또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샤라 엘리프가 이끄는 연구팀의 태도는 지극히 진지했다.
처음 그들은 감정이 만들어 낸 독특한 마나의 구조들을 기록하고 분류하는 것에 힘썼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마나의 구조들은, 생각보다 오래 남으며 주변의 다른 마나들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그때부터 그들의 연구는 기록과 분류를 넘어, ‘추적’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들은 감정에서 잉태한 마나의 구조가 언제까지 퍼져 나가고 존속하는지, 그리고 주변에 끼친 영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밝혀 내지 못했다.
그래서 샤라 엘리프는 오늘이 기대되었다.
“가족 구성원이 죽는 거야. 바람쥐들이 느끼는 감정은 지금까지 중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할 거야. 이번에는 끝까지 한번 추적해 보자.”
“예!”
“그리고,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관찰도 소홀히 하지 마. 생명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오늘 우리는 그걸 마법적으로 기술해 보는 거야. 아주 세세하게.”
“네!”
자신의 팀원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준 샤라 엘리프는 단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섰다.
“가자.”
백과전서를 만들겠다는 페르세타의 선언.
처음엔 그게 막막하게만 느껴졌지만, 지금은 달랐다.
처음으로 천사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때처럼,
처음으로 책을 펼쳐 공부를 시작하던 그때처럼.
성녀, 샤라 엘리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