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88)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88화(88/171)
88화 슬픔
짹짹짹짹-
바람쥐들은 참새처럼 아주 가볍게 울었다.
젊은 바람쥐가 셋.
나이 든 바람쥐가 하나.
푸른 깃털이 난 긴 꼬리로 얇은 나뭇가지를 칭칭 감아 몸을 고정시킨 채, 죽어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둘러싸고 짹짹짹 울었다.
성녀 샤라 엘리프는 치미는 흥분을 억누르며 그 광경을 꼼꼼히 관찰했다.
‘바람쥐들은 가족애가 강하다더니……. 역시. 그 어느때보다도 감정의 반응이 격렬해.’
생명체가 감정을 느낄 때면 독특한 마나의 구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작고 단순하고 미약한 것.
그렇기에 지금까지는 무시되었던 것.
하지만 지금 샤라와 그녀의 연구팀은 그 희미한 마나의 구조를 아주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단 연구를 시작하자, 알아내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저. 마나의 구조. 저걸 <슬픔>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사람도 슬퍼할 때 같은 구조의 마나를 뿜어낼까?’
느끼는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마나의 미세구조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 원인을 찾는 문제도 중요했고,
‘어쩌면 생명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감정을 느낄 때 마나의 미세구조를 뿜어내는 존재.’
현재 수많은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정리 중인 ‘생명’이라는 항목의 정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샤라가 가장 집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또 다른 것이었다.
“성녀님. 저기. 보이십니까?”
그녀의 팀원이 귓가에 속삭였다.
샤라는 잠시 먼지처럼 피어 올랐던 상념을 정리하고 다시 눈앞의 현상에 집중했다.
“예. 보이네요.”
바람쥐들은 누가 봐도 슬퍼하고 있었다.
늙은 어미 쥐가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짹짹……. 짹짹짹…….
그리고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미세한 마나들은 계속 계속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간 이런 모습을 여러 번 관찰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뚜렷하고 강한 것은 처음이었다.
퍼져나간 마나가 주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어디까지 퍼져 나가는지, 좀 더 확실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역시……. 사라지지 않아.’
샤라는 어떤 긴장감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슬퍼하는 바람쥐들에게서 흘러나온 미세한 마나 구조는 마치 메아리처럼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때론 흡수되고 때론 반사되었으나,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니. 그건 어쩌면 주변에 섞이고 공명하며, 점점 더 규모를 키우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마치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작은 불씨들처럼.
째재잭. 째잭…….
그리고 그 <슬픔>의 마나는 이미 슬퍼하고 있는 다른 바람쥐들에게도 섞여 들어가며 공명을 일으켰다.
그러자 바람쥐들은 더더욱 슬퍼했다.
마치 슬픔이 전염된다는 것처럼.
‘아…….’
그때 어떤 깨달음이 샤라를 스쳐 지나갔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슬픔도 그냥 사라지지는 않는구나.’
그것은 마나라는 흔적으로 남아 이 세상 전체에 메아리친다. 희미해질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슬픔은. 또다른 슬픔을 불러온다.
그걸 생각하자 샤라는 조금 침울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이토록 연약한 거야.’
고대의 어떤 마법사는 그런 기록을 남겼다.
누군가의 울음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에 새겨진다고.
소리란 공기를 흔드는 파동이고, 파동이라는 것은 그 특성상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아주 멀리 퍼지면서,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질 수는 있어도, 영영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설령 반대되는 파동에 상쇄되더라도, 어딘가에는 그 희미한 자취가 분명 남아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사람들이 떠들었던 모든 말들, 사람들이 울부짖었던 모든 울음소리들이 이 공기 중에 아주 작게 새겨져 있을 거라고.
지금 샤라의 머릿속에 그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다.
진짜로 모든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공기 중에 새겨져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감정은 그런 것 같다고 느꼈다.
지금 바람쥐들이 흘려 내는 <슬픔>의 마나가 바로 그렇게 온 세상의 퍼지고 섞여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더 큰 슬픔을 불러일으키겠지.
그러니 너무나 약한 것이다.
생명이라는 것은.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영 해소되지도 않는다.
‘역시. 우리에겐 천사님이 필요해.’
그 영원히 연결되는 사슬을 끊어 내고 ‘거듭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오로지 신계의 천사님들에게서 오는 것.
그런 샤라의 확신은 마침내 늙은 어미 쥐가 죽고, 그녀의 영혼이 구천에 스며들고, 그걸 느낀 젊은 바람쥐들이 짹짹짹 구슬피 울어대는 모습을 보며 더욱더 확고해졌다.
슬픔도 죽음도 사라지지 않는다.
구천에 메아리치며 반복되고 점점 커진다.
천사님이 그것을 씻어 주지 않는 한.
“가여운 생명이여…….”
샤라는 작게 중얼거리며 기도를 올렸다.
* * *
샤라의 연구팀은 계속 숲에서 머물며 바람쥐들이 남긴 마나를 추적했다.
그것은 세상 속으로 흩어지면서 순식간에 아주 작고 희미해졌지만, 역시나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때때로, 그 희미한 울림은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 속에서, 땅속에 묻힌 맛 좋은 뿌리 사이에서, 바람쥐들이 좋아하는 산들바람 속에서, 메아리치다가, 젊은 바람쥐들과 다시 부딪혔다.
바로 그 순간, 샤라의 연구팀은 놀라운 광경을 관찰할 수 있었다.
“희미해졌던 마나가 다시 공명하고 선명해졌어…….”
일상을 잘 살아가다가도, 불현듯 마주친 파란 하늘이나, 빵 한 덩이 속에서, 떠나 버린 그 사람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기듯이……. 바람쥐들도 그러했다. 문득 희미해진 <슬픔>의 마나가 그들을 스칠 때면, 그들은 다시 <슬픔>을 뿜어냈다.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졌던 마나가 다시 힘과 색깔을 되찾아 세상 속으로 되돌아갔다.
끊이지 않는 슬픔의 메아리.
샤라는 글라우베 마법 대학에 휴직계까지 내고 그 과정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까지 한참을 숲속에 머물렀다.
그것은, 생명이라는 마법 현상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몇 주가 넘는 시간이 흐르고, 식량과 식수 등 보급 물자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샤라는 다시 숲속 마을로 돌아왔다.
“아……. 성녀님이다…….”
마을 입구에는 늘 그렇듯 소년이 성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표정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그늘 한 점 없이 순수한 기쁨과 반가움으로만 빛나던 그 얼굴에 짙은 슬픔이 가득했다.
샤라는 어쩐지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을 느끼며 물었다.
“……무슨 일 있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볼 수 있었다.
우우웅-!
공기 중에 흘러 다니던 희미한 <슬픔>의 마나가 소년과 크게 공명하는 모습을.
그리고, 소년의 몸에서 다시 강해진 <슬픔>의 마나들이 쏟아져 나왔다.
“성녀님……. 흐아아아아앙!”
달려와서 안긴 채 펑펑 우는 소년.
어느새 다가온 마을 사람들이 그런 소년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숲속 오지 마을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
사냥을 나갔던 소년의 아버지가 마물을 만나 목숨을 잃은 것이다.
엄마랑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던 소년은 아빠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샤라는 가슴 깊이 통증을 느꼈다.
내가 계속 숲속에 있지 않고 마을에 머물렀다면, 소년의 아버지를 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내가 평생 이 숲속 마을을 지키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세상은 이토록 잔혹하고 속절없다.
샤라는 또 한 번 느꼈다.
역시 우리 가엾은 생명들에게는 천사님이 필요하다고.
“괜찮아. 괜찮아.”
샤라는 소년을 다독여 주며 기도를 올렸다.
우우우웅-!
그녀의 몸에서 뻗어 나온 성스러운 서광이 소년의 몸을 감싸 안았다.
만신창이 같은 얼굴로 펑펑 울던 소년의 떨림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샤라는 보았다.
천사의 힘이 소년의 몸에서 계속 울려 퍼지던 <슬픔>의 마나를 씻어 내는 모습을.
소년은 그제야 침착해지고 편안해졌다.
샤라는 소년의 귀에 속삭였다.
“힘들 때는 천사님을 부르렴. 우리처럼 약한 이들에게는 천사님의 가호가 꼭 필요한 거야.”
“아……. 천사님…….”
소년은 눈물을 닦고 샤라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천사의 가호가 주는 위안은 결코 영원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모든 슬픔을 씻어 낼 수 있었지만, 이미 이 세상 속에는 수많은 슬픔이 새겨져 있는 까닭이었다.
소년은 일시적으론 괜찮았지만, 마을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그냥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한 번씩 또 깊은 슬픔에 잠기고는 했다.
수많은 생명들이 토해 낸 <슬픔>의 마나들은 평소에는 찾으래야 찾을 수도 없이 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이따금 소년과는 크게 공명을 일으키며 다시 뚜렷해지곤 했다.
그때마다 소년은 샤라에게 달려왔고, 샤라는 천사의 힘을 빌려 소년을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샤라의 마음속에는 어떤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점점 커지기만 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불완전할까?’
천사의 힘으로 슬픔을 씻어 내도 그때뿐이었다.
이미 슬픔이 만들어 낸 공명은 이 세계 곳곳에 새겨져 있어서, 영영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잠시, 잠깐 천사의 힘으로 그 슬픔을 씻어 내더라도, 마치 숨어 있던 불씨가 다시 산불을 일으키는 것처럼, 기회만 닿으면 어딘가에 누군가가 흘렸던 <슬픔>이 다시 공명을 일으켜 소년을 울게 만들었다.
샤라에겐 이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평생 천사를 통해 인간이 온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그건 불가능하지 않는가?
천사의 위로도 잠깐일 뿐이다.
인간이란, 생명이란 너무나도 불완전해서 끝없이 세상의 영향을 받는다. 한 번 흘려 버린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메아리치며 결국에는 또 돌아오고 만다.
어째서 이토록 가여운 존재란 말인가.
이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어서, 샤라는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사람에 대해 생각했고, 천사에 대해 생각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글라우베 마법 대학에서 업무를 볼 때도 항상 그랬던 성녀.
결국 페르세타가 성녀의 고민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아……. 선생님. 그게…….”
성녀는 페르세타에게 자신이 품고 있는 고민을 전부 털어놓았다.
사실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페르세타를 존중하고 존경하고 있었기에 숨기지 않았던 것뿐이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페르세타가 인간의 관계와 감정에 상당히 둔감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페르세타는 말했다.
“굉장히 흥미로운 발견을 하셨군요. 감정이 만들어 내는 마나의 미세구조라……. 이건 저도 잘 모르는 분야에요. 아무튼 성녀님의 말씀은 그런 미세구조의 메아리로 인해 인간이 더 불완전해지고 영영 슬픔을 벗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네?”
“제가 볼때는 성녀님께서 미리 대답을 정해 놓고 관찰 결과를 거기에 끼워 맞추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요?”
“네. 선입관을 다 없애세요. 감정에 휘둘리지도 마시고요. 그저 성실하고 우둔하게, 모든 것을 관찰하고 기록하세요. 지금 하는 생각을 정답이라 여기지 마시고, 정말로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추적해 보세요.”
페르세타가 반짝이는 눈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생명들의 감정. 그 감정이 만들어 낸 마나의 구조. 삶과 죽음. 그것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마나의 구조. 그것들이 이 세상을 메아리쳐서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끝까지 파고들어 보세요. 단지 슬픔에서 멈추지 마시고요. 어쩌면 그 끝에선 내 상상보다 훨씬 거대한 무언가를 마주칠지도 모릅니다.”
사실 페르세타도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이 분야는 잘 알지 못했다.
탑에서만 연구했던 그에게는 여러 생명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감정을 관찰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다만, 그는 자신이 그간 찾아냈던 여러 진리들을 생각하며 성녀에게 조언을 주었다.
“혼란스럽고 슬프다면, 멈추기보다는 더 파고드세요. 장담하건대, 이 세상은 언제나 당신의 생각보다 놀라울 겁니다.”
성녀는 어쩐지 그 말이 무척이나 위로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생명이 만들어 내는 미세한 마나의 구조. 그 끝없는 메아리.
그 끝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성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연구에 몰두해야 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