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89)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89화(89/171)
89화 놀라운 세상
샤라의 연구는 계속되었다.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화두는 단 한 가지였다.
한 번 흘러나온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나의 미세구조가 되어 이 세상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그것이 남기는 영향은 무엇일까?
때로 갑자기 슬프게 하거나, 갑자기 기쁘게 하거나, 그게 전부일까?
셀 수도 없이 많은 생명이 울고 웃고 살고 죽으며 억겁의 세월 동안 뿜어냈을, 그 미세한 마나 구조들은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시간이 쏜살처럼 지나갔다.
집중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하는 것.
그간 샤라는 이누야니 대수림과 글라우베 마법 대학을 오가며 생명이 뿜어내는 무수하게 다양한 마나의 미세구조들을 기록하고 추적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그것뿐이다 보니, 그녀의 관찰은 점점 정밀해졌다.
극히 미세한 마나 구조. 심지어 시간이 지나며 훼손되고 뒤섞이는 마나 구조를 정밀하게 추적하고 분류하기 위해 그녀는 점점 더 많은 심상의 도구들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반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극히 미세한 마나의 구조를 추적하고 분류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은 페르세타마저 넘어섰다고.
그 덕분이었다.
그녀가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관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아아아아-!
그날, 숲의 마나는 기묘한 울림을 토해 내고 있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미묘한 수런거림.
하지만 지금, 극도로 발달한 마나 감지 능력을 가지게 된 그녀는 그 위화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뭐지? 뭔가 고요한 듯하면서도 금방이라도 폭풍이 불어올 것만 같은 이 잔잔한 요동…….’
그녀는 홀린 것처럼 숲의 중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평소에는 숲의 생태를 해치지 않기 위해 다니지 않던 길로도 거침없이 들어갔다.
때때로 앞을 막아서는 마물이 있으면 사정 봐주지 않고 죽이며 깊이,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갔다.
사르락- 사르락-
그러면 그럴수록 어떤 속삭임과도 같은 마나의 요동이 점점 더 복잡하게 엉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크고 거대한 게 아니었다.
여전히 매우 작고 희미했다.
하지만 마치 어떤 말소리처럼, 노랫가락처럼 그것은 점점 복잡하게 얽히며 어떤 의미를 형성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샤라는 그 복잡하디 복잡한 마나의 미세구조들을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건 슬픔. 저건 기쁨. 또 이것은……. 죽음. 저것은 탄생. 아쉬움, 한숨, 기대감, 절망…….’
그것은 마치 점묘화와도 같았다. 수없이 작은 마나의 미세구조들이 쪼개지고 흩어지며 서로 섞여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만 같다.
그리고 마침내, 샤라는 이 어수선한 술렁임의 중심에 닿을 수 있었다.
“아…….”
그곳에는 작은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마나의 미세구조들이 어떠한 우연한 작용에 의해 서로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거대한 무언가를 일으킨다.
문득 샤라는 고대의 마법사가 남겼던 기록 한 줄을 또 떠올렸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에, 아주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마법사는 이것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그래.
그렇구나.
한낱 나비의 날개짓도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 영향을 남겨 거대한 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면…… 마나는 오죽할까.
어느 바람쥐가 남긴 <슬픔>의 마나.
어느 잡초가 죽는 순간 빠져나오는, <영혼>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마나의 복잡한 미세구조.
그 모든 것은 세상 속에 섞여 들어가고, 희미해질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이 떠돌며, 때로는 서로 상쇄하고 때로는 서로 증폭하며 출렁거리다가, 균형이 깨지는 어떤 순간이 오면 큰 폭풍을 일으킨다.
샤라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그 폭풍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폭풍의 한 가운데에…….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관찰된 적 없는, 아니, 관찰이 된 적이 있었을지는 모르나, 그 누구에게도 기록된 적 없는 세상의 가장 깊은 비밀이 베일을 벗고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폭풍 속에서, 서로 다른 마나의 미세구조들이 복잡하게 직조되었다. 그것은 우연이었으나, 동시에 필연이었다.
서로 잘 짜여진 마나의 미세구조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복제해 낸다.
하지만 엉성하게 짜여진 마나의 미세구조는 쉽게 무너지고 스스로를 복제해 내지 못한다.
그런 과정이 아주 빠르게 반복되더니 그 끝에서는 아주 안정적이며, 지속 가능한 어떤 마나의 구조가 완성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마법이었다.
아주 작고 미약하지만,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구조는 그 어떤 마법사가 만들어 낸 것보다도 위대했다.
– 끼우우우
갓 태어난 마법이 울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
한없이 단순하고 원시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선명한 의지를 품고 꼬물거렸다.
주변을 인지하고 먹어 치우며 성장을 꿈꿨다.
“아…….”
샤라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것은 페르세타가 해주었던 조언이다.
‘끝까지 파고들어 보세요. 세상은 언제나 당신의 생각보다 놀라울 겁니다.’
정말로 그랬다.
성녀.
샤라 엘리프.
그녀는 세계 최초로 하나의 생명종이 탄생하는 순간을 관찰하고 기록한 마법사가 되었다.
한 생명이 뿜어낸 슬픔은 영영 사라지지 않고 세상을 메아리친다.
그럼 그것은 무엇이 되는가?
그 대답이 눈앞에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빚어낸다.
* * *
“성녀님, 성녀님. 저…… 또 꿈을 꿨어요.”
샤라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소년은 그녀의 옆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이제 10살 남짓한 아이.
반년이 넘게 지났으나 여전히 아빠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
처음엔 밝고 명랑하기만 했으나, 이제는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 아이.
“성녀님. 오늘도 기도해 주실 수 있어요?”
그간 샤라는 이 아이를 위해 참 여러 차례 기도를 올려왔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갑갑하고 슬픈 마음도, 천사의 가호가 내려오기만 하면 깨끗하게 치유되었으니까.
하지만 샤라는 오늘은 어쩐지 그런 기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걸을래?”
샤라는 대신 아이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함께 마을을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년의 죽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샤라는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그 선하고 책임감 강한 남자를 떠올렸다.
튼튼한 어깨로 이 작은 아이를 목마 태워서 마을을 몇 바퀴나 돌던 그 남자를 생각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에 관한 기억을 나누고, 아이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좋은 기억을 떠올려서 기분이 좋다는 것처럼 신이 나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마구 꺼냈지만, 어느 순간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런 아빠를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픈 것이리라.
바람이 수런거렸다.
세상 속에 녹아 있던 <슬픔>의 마나들이 아이를 만나며 선명한 울림을 토해 냈다.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럴수록 물감처럼 풀려 나가 세상과 섞이는 <슬픔>의 마나.
어제까지만 해도 샤라는 이것이 생명의 불완전함이라 생각했다.
한번 뱉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그 사라지지 않은 감정에 의해 계속해서 영향을 받는.
홀로 설 수 없이 세상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
그렇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천사님께 기대어 살아가야만 하는 가여운 존재들.
하지만 오늘, 샤라의 생각은 달랐다.
이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 마침내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쌓이고 쌓여 출렁거리다가, 켜켜이 굽이쳐며 메아리 치다가, 마침내 또다른 생명을 만들어 낸다.
틀림없이 아주 먼 옛날, 인간도 그렇게 태어났으리라.
누군가의 한숨과 눈물과 웃음 속에서.
우리도 태어났고, 또 새로운 무언가를 그렇게 탄생시키리라.
하나의 생명은 너무나 불완전해서 어딘가에 기대야만 했다.
하지만 꼭 그게 완전한 천사에게 기대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물은 땅에 기대고, 땅은 하늘에 기대고, 하늘은 물에 기대고.
새는 바람에 기대고, 바람은 나무에 기대고, 나무는 흙에 기대고, 흙은 그걸 밟고 마시고 죽어 다시 흙이 되는 다른 동물들에 기대고.
불완전한 것들이 서로 기대어 서서 세상이라는 거대한 마법을 만들어 낸다.
그걸 생각하면 샤라는 어쩐지 등과 어깨가 오싹해졌다.
페르세타가 말한 것처럼. 세상은 그녀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놀라웠다.
너무나 크고 아름답다.
하나하는 연약하지만, 그 전체가 만들어 내는 풍경은 바다처럼 깊고 하늘처럼 아득하다.
그건 결코 천사들이 주는 위로에 지지 않을 만큼 숭고하고 위대한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샤라는 아이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아이가 울고 또 울고 그 울음을 다 토해 낼까지.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샤라는 적어도 오늘은 인간의 방식으로 이 아이를 위로하고 싶었다.
불완전한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어 선 모양으로, 위로라는 마법을 그려 내고 싶었다.
* * *
“생명의 탄생이라…….”
페르세타는 성녀 샤라 엘리프로부터 올라온 연구 보고서를 읽다가 소름이 돋아 어깨를 떨고 말았다.
달콤한 무언가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폐관을 마치고 나온 후 보냈던 몇 년의 세월이, 페르세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참…….
실망도 많이 하고 짜증도 많이 났던 세월이었다.
기껏 탑을 벗어났는데, 이 세상에서 배울 게 없다는 사실이 내내 페르세타를 우울하게 했었다.
페르세타는 손에 들고 있던 연구 보고서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마침내.
참고 또 참으며 마법사를 길러 낸 끝에, 그의 손에 닿은 하나의 놀라운 지식.
“세상이 마법이라는 건 알았지만……. 생명이 이렇게 탄생하는 줄은 몰랐지. 정말 알면 알수록 이 세상은 놀랍고 또 감동적이야.”
페르세타는 어깨를 잘게 떨었다.
숨결이 달큰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상이 아름다웠다.
“이제 시작인가……?”
두 번째 포럼까지, 페르세타가 가장 신경 썼던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법사들의 역량 자체를 끌어올리고, 연구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하는 데 신경을 썼다.
단순히 지식 전달이 목표였다면 마법 대학을 세우고 인재들을 끌어모을 필요도 없이 그냥 아란드리아를 통해 책을 발표하기만 해도 충분했을 테니까.
다행히 마법사들은 생각보다 뛰어났다.
단 몇 년 만에 이렇게 스스로 연구를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지 않았나?
그리고 마침내 페르세타에게 그 자신조차 모르던, 그리고 상상도 못 했던 마법적 발견을 안겨 주었다.
앞으론 이런 일들이 점점 더 많이 일어나겠지.
“진정으로, 기적의 시대가 열릴 거야.”
성녀의 연구를 시작으로 마법사들은 깨달을 것이다.
마법 연구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세상에는 밝혀내야 할 게 너무나 많고, 자신의 이름을 마법의 역사에 영원히 새겨 넣을 기회도 그만큼 많다는 사실을.
비록 그가 연구를 위해 뽑은 마법사의 숫자는 고작 1,000명 뿐이었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연구는 수없이 많은 다른 마법사들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마법사가 ‘백과전서’의 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성과들을 찾아내겠지.
페르세타는 그게 너무나 설레고 기대되었다.
“더. 더 빨리 이 모든 게 진행되도록. 더 동기 부여를 시켜 주자.”
페르세타는 책상에 놓인 종이 위에 슥슥슥 필기를 시작했다.
수많은 마법사가 보내온 연구 보고서.
거기에 대한 평가와 첨삭, 그리고 복잡하고 어려운 제안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