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90)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90화(90/171)
90화 아쉽겠죠?
성녀, 샤라 엘리프의 연구 성과는 당연히 살리넬르에게도 전해졌다.
생명과 관련한 항목을 총괄하는 게 바로 살리넬르였으니까.
“허어…….”
살리넬르는 감탄했고, 또 한편으로는 탄식했다.
“이거 생명에 대한 분류를 다시 해야겠군.”
현재 그가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총망라하여 분류하고 목록화하는 작업.
문제는 그가 만든 분류가 현재는 생김새나 행동 및 습성의 유사성에 근거하였다는 것.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단순한 생명 연구가 아닌 ‘마법 연구’가 아니던가.
마땅히 그 분류는 마법적인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맞았다.
그리고 샤라 엘리프가 이번에 규명한 생명종 탄생의 기원.
그렇다면 생명종의 분류 역시 이 새로운 지식을 따라 마법적인 기원을 따져 분류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아직 알려진 정보가 너무 적다는 것.
당장 만들 수 있는 것은 완성된 목록이 아닌, 연구를 위한 과제 목록들뿐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야. 연구를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고, 더 연구할 게 늘어나는군.”
살리넬르는 지끈지끈 아파 오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눈앞의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오마르족의 민족 지도자, 과거 반란군의 수괴였던 애캘슨이 그곳에 서 있었다.
살리넬르는 그에게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성녀님의 연구 덕택에 애캘슨 마법사님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과정. 그 과정을 마법적으로 기술하는 것 말이죠. 그게 있어야 생명에 대해 우리가 더 잘 이해하고 제대로 목록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살리넬르의 말에 애캘슨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러니 부탁 좀 하겠습니다. 조금 디테일이 부족해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 잉태와 출산과 관련한 연구에서 성과를 내주십시오. 일단은 커다란 맥락만 파악해도 좋아요. 일단 이게 되어야 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테니 하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을 들고 오겠습니다.”
애캘슨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살리넬르의 연구실을 나섰다.
그의 표정은 심각했다.
‘반드시 훌륭한 연구 성과를 빠르게 내야 돼. 그래서 살리넬르 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살리넬르는 자타가 공인하는 페르세타의 측근.
현자가 페르세타의 오른팔이면 살리넬르가 왼팔이라고 할 수 있었다.
즉, 살리넬르의 인정을 받는 것만이 페르세타의 눈에 띄어 이 거대한 마법의 진보 속에서 핵심축이 되는 길일 것이다.
‘내가 더 인정을 받아야, 우리 민족의 젊은 마법사들을 이끌 수 있다.’
다가올 새로운 미래에 오마르족이 크게 활약하기를 바랐다.
오직 그것 하나를 위해 제국과의 전쟁을 멈추고 타협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쉴 시간도 없었다.
어떻게든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성과를 내서 눈에 띄어야 했다.
애캘슨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연구 지역으로 돌아갔다.
제국 제3의 도시 잉바코.
제국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 중인 신도시로 출산율도 높았고 각종 축산업의 중심지였기에 수많은 가축도 관찰할 수 있는 곳이었다.
즉, 이곳에 있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여러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기에 그의 연구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쯧. 또 돌아왔나? 영영 꺼져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숨긴다고 숨겨 봤는데, 어떻게 소문이 퍼진 것인지, 그의 정체가 들통이 났다는 것이다.
제국.
그중에서도 충성도가 아주 높은, 발전하는 신도시.
그곳의 사람들은 제국의 반역자였던 애캘슨을 반기지 않았다.
민간인에서부터 도시를 지키는 기사들까지. 모두가 그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때문에 연구가 쉽지는 않았다. 모두가 그를 싫어하는데, 생명의 잉태와 탄생 과정을 쉽사리 보여 줄 리가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돼지 목장의 주인들도 그가 다가가기만 하면 땅에 침을 탁! 뱉고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애캘슨은 개인 사비까지 털어 가며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연구를 이어 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돈이 좀 들긴 했어도 연구 자체는 이어져 가니 애캘슨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욕과 적개심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애캘슨은 썩 운이 좋지 않았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 때문이라고!”
단언컨대 그건 애캘슨의 잘못이 아니었다.
애초에 잉바코시(市)에 존재하는 수많은 목장 중에서 애캘슨이 들어가 연구를 하고 있는 목장은 10개를 넘지 않았다.
근데 수백 개의 목장과 축사에서 발생한 거대한 전염병이 어떻게 애캘슨의 잘못이란 말인가?
애초에 애캘슨이 관찰하고 있던 축사와 목장 중에서 전염병에 걸린 곳은 단 2곳에 지나지 않았다. 전체 목장의 40%가 전염병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애캘슨이 보고 있는 곳이 더 적게 피해를 봤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증오라는 것은 애초에 합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너 같은 반역자의 요청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어! 어떡할 거야! 내 돼지들이 다 죽었다고!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당신이 물어내!”
밑도 끝도 없이 애캘슨에게 몰려와 겁박하는 사람들.
물론 애캘슨은 그런 것에 순순히 넘어갈 만한 호구는 아니었다.
“이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만약 제 잘못이라 생각하시면 제국 재판소에 소송을 넣으시지요. 제 신분은 황제 폐하에 의해 보장받는바. 적법한 절차 없이 저를 이렇게 핍박하는 건, 폐하의 권위를 무시하는 짓입니다.”
“큭……! 이 간교한 마법사 새끼!”
애캘슨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거와 별개로 연구에 차질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사람들은 얼마를 준다고 한들, 애캘슨에게 협조하려 들지 않았으니까.
가뜩이나 나빠지던 사정은 전염병이 가축들을 넘어 사람들에게까지 퍼지면서 더욱더 심각해졌다.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전염병은 순식간에 수천 명의 감염자를 만들어 냈다.
죽어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도시의 각 구역이 폐쇄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마법사야. 좋은 말로 할 때 이 도시를 떠나라. 이건 경고다.”
이때부터는 단순한 민간인들의 성토가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검을 차고 온 기사들이 노골적인 협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록 애캘슨의 신분은 황제에 의해 보장받는 것이었지만……. 결국 황제는 멀리 있고 기사들의 칼은 가까운 곳에 있다.
여차하면 애캘슨을 묻어 버리고 자기들끼리 사건을 조작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아……. 미치겠군.”
결국 애캘슨은 결단을 내렸다.
그 동안 긴 시간과 돈을 들여 추적 관찰을 해 온 대상들이 아까워서 눈에 밟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버티고 있다가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믿고 따라온 오마르 족의 젊은 마법사들까지 비명횡사할 위험이 있었으니까.
“하루 속히 결과를 내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또 한참 늦어지겠네…….”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연구 지역을 옮기겠다는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그날밤.
페르세타가 애캘슨을 찾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페르세타가 애캘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연구실에 앉아서.
“서, 선생님.”
피곤에 절어 연구실로 돌아왔던 애캘슨은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있는 페르세타를 보곤 허둥지둥 놀라면서도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애초에 그가 살리넬르에게 잘 보이려던 이유가 무엇인가?
페르세타의 눈에 띄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직접 나타나다니?
애캘슨은 침착함을 되찾기 위해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지로 억눌러야만 했다.
황제와 독대를 했을 때도 이 정도로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페르세타는 애캘슨의 책상에 흐트러져 있던 연구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한동안 말도 없이 바스락바스락 기록들만 살피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애캘슨은 바짝 긴장하여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주 좋네요. 연구 목표는 명확하고 방법론은 정확하고, 기록은 꼼꼼합니다. 분명 좋은 성과가 나올 것 같아요. 애캘슨 님의 연구는 안 그래도 제가 계속 주목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찾아서 원문들을 보니 더 감탄하게 되네요.”
“가,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연구 지역을 옮기지 마세요.”
“아……. 선생님. 저도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만…….”
“옮기지 마세요.”
페르세타가 투명한 눈으로 애캘슨을 꿰뚫어보았다.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건 오히려 좋은 기회거든요.”
“기회요?”
“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제가 아는 작은 지식에 의하면 전염병 역시 아주 작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생명, 또는 생명 비슷한 것들의 활동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작아서 그런지 아주 빠르게 번식을 하죠. ‘탄생’과 관련한 연구에 있어서 이보다 좋은 대상이 어딨겠습니까?”
페르세타의 말에 애캘슨은 어쩐지 오싹함을 느꼈다.
“저. 선생님. 말씀은 알겠지만 제가 연구지를 옮기려는 이유는 전염병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애캘슨은 페르세타가 지금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런 게 아니었다.
“진리를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연구가 막힐 때는 크고 복잡한 것보다는 작고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는 게 좋을 때가 많아요. 전염병을 연구해 보세요. 분명 여기에 어떤 중요한 진리가 숨겨져 있을 거 같아요.”
페르세타는 그저 애캘슨의 사정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는 애캘슨의 설명을 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쏟아냈다.
“그리고 혹시 압니까?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전염병을 이겨낼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선생님. 이 전염병은 천사 성교회의 성법으로도 쫓아낼 수 없는 지독한 전염병입니다. 이걸 극복하려면 천사를 소환할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느니 차라리 수천 명을 격리해서 죽이고 불태우는 걸 선택할 정도로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마법으로 그런 병을 극복한다면, 이는 또 커다란 진보가 되겠지요.”
애캘슨은 답답함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역시. 여기서 연구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기사들이 저와 제 연구팀을 습격할 수도 있고, 전염병을 연구한다고 하다가 저희도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가 다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 질문에,
페르세타는 고개를 갸웃했다.
“죽으면…… 아쉽겠죠? 연구를 마치지 못할 테니까.”
그때 애캘슨은 확실히 깨달았다.
페르세타.
이 기이한 인간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진정으로 이해를 못 하는 기색이었다.
연구할 게 눈앞에 있는데, 죽는 걸 왜 생각하지?
일단 연구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가 죽으면 연구가 멈출 테니까 그건 아쉽긴 하겠지만, 연구를 안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이런 식의 기묘한 사고방식.
애캘슨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
나는 이런 마법사에게 우리 민족의 미래를 건 거구나.
그렇다면…….
‘물러날 곳이 없다.’
이미 강을 건너온 지는 오래되었다.
황제와 독대하여 제국에 적대하는 것을 멈추고 민족의 모든 역량을 마법 연구에 투입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든 이 기괴한 마법사의 인정을 받아 활약하는 것뿐.
애캘슨은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이곳에 남아 연구하겠습니다. 반드시, 무언가를 밝혀 보겠습니다.”
그제야 페르세타는 홀가분하게 웃었다.
“역시. 애캘슨 마법사님이라면 말이 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훅-!
그리고 바람이 불자, 페르세타의 모습은 마치 물에 비친 그림자를 손으로 흩어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하아…….”
애캘슨은 깊게 한숨을 쉬고 자신의 양 뺨을 손바닥으로 철썩 소리 나게 때렸다.
“해 보자.”
그의 두 눈에 살기에 가까운 투지가 이글거렸다.
그것은 마치 궁지에 물린 쥐의 독기 어린 눈빛과도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