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96)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96화(96/171)
96화 설원의 별
1년이 지났다.
남들은 평범한 1주일을 보냈지만, 페르세타 만큼은 1년이 지났다.
“후우…….”
페르세타는 장발을 질끈 묶은 채 연구실을 나섰다.
“정말 힘들었다…….”
처음에는 성실하게 1억 개의 스위치를 엮어 총 10개의 위시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페르세타의 연구 욕심은 시간제한이 있는 상황에서도 결코 식지 않았다.
“그래도 해냈어.”
페르세타는 자신의 손에 들린 위시를 내려다보았다.
새카만 우주를 품은 듯한 수정.
한 손에 들어오는 이 참외만 한 수정 속에 집적되어 있는 마나 스위치는 무려 10억 개.
당초 목표였던 1억 개가 아닌, 10억 개였다.
페르세타는 어느 순간부터 목표를 수정했던 것이다.
그냥 1억 개씩 집적된 10개의 ‘위시’를 만드는 건 너무 심심했으니까.
같은 크기 속에 10억 개의 마나 스위치를 집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갑자기 떠오른 생각 때문에 무려 반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콴티지에옴>의 깨달음을 되새기고 그간 백과전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지식까지 총망라해야 했던 시간.
그래도 그 끝에서 페르세타는 기어코 10억 개의 마나 스위치를 참외만 한 수정구슬 안에 집적시키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성공의 기쁨에 잠길 겨를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지나가 버린 반년의 세월. 원래의 방식대로 마나 스위치를 만든다면, 결코 남은 반년 동안엔 위시를 완성시킬 수 없었다.
그럼 어쩌겠는가.
방법을 찾아야지.
그때부터 페르세타는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더 빨리 마나 스위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것이다.
단순히 만들고 끝이 아니라 그걸 작은 ‘위시’ 속에 집적시켜야 했기 때문에, 일일이 수작업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대량 생산까진 아니어도 수작업의 효율을 높여 주는 도구와 방식을 개발할 수는 있는 것이다.
페르세타로서도 두뇌를 쥐어짜야 했던 과제였다.
사실 그가 여태껏 해 왔던 연구와는 결이 달라서 이번 연구들이 더욱더 힘든 것도 있었다.
그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찾아왔던 마법사였지 그걸 응용해서 어떤 기술을 만들어 내는 데 특화된 마법사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결국 해냈다.
우주의 원리를 찾아내기 위해 그가 고안했던 다양한 도구들과 방법들. 그걸 찾고 만들기 위해 보냈던 과거의 경험들이 이번에 나름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무려 석 달이 흐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10억 개의 스위치를 가진 위시를 고안하느라 반년.
더 빨리 스위치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느라 보낸 3개월.
그러니 남은 3개월로 10억 개의 마나 스위치를 실제로 만들고 집적하여 ‘위시’를 완성시켜야만 했다.
“진짜 포기할 뻔했다…….”
가장 힘들었던 과정이었다.
더 이상은 쓸 수 있는 편법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성실하게 하루하루 ‘위시’를 제작해야만 했던 시간.
그 과정에서 미세한 마나를 다루는 감각이 굉장히 좋아졌고, 위시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지만…… 그래도 같은 작업을 세 달 동안 반복하는 건 아무리 페르세타라 해도 끔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년 365일을 꼬박 써서 만들어 낸 단 하나의 위시.
페르세타는 그 결과물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이거 하나만 있어도 앞으로의 연구에 두고두고 도움이 되겠지.”
과정은 힘들지만, 결실은 달콤하다.
페르세타는 그 진리를 되새기며 승리를 만끽했다.
“아. 근데 이게 있어도, 라냐 왕세녀님이 대장벽을 건설하기는 힘들 텐데…….”
페르세타는 떠오른 상념에 잠시 고민하다가 마음을 정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왕세녀님이 도중에 실패해도, 내가 살짝 개입하자.”
물론 자신의 개입으로 라냐가 조금 민망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좋아할 거라 여겼다.
글라우베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명예를 좋아한다고.
무덤 왕국 하이데룬의 구원자가 된다면, 라냐 왕세녀에게도 큰 동기 부여가 될 거다.
페르세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소문이 퍼져 나갔다.
페르세타의 측근, 선임 교수인 라냐 비셰나 왕세녀가 마법을 이용해 하이데룬의 대장벽을 건설할 것이라는 소문이.
세상 사람 중, 무덤 왕국 하이데룬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어릴 때 옛날이야기 정도는 듣고 자라니까.
그런 만큼 이번 소문은 어마어마한 주목과 관심을 끌어왔다.
수백 년간 이어진, 무덤 왕국 사람들의 피 묻은 꿈.
그 대장벽을 정말 마법으로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그게 가능하겠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능하지 않겠어? 그 땅은 신의 버림을 받은 곳이야. 페르세타 대마법사라도 불가능할 텐데. 그 제자뻘인 라냐 왕세녀? 안 되지.”
하지만 그래도, 시간 많은 호사가들은 기꺼이 보따리를 챙겨서 북쪽 하이데룬을 향해 길을 나섰다.
“그래도 가서 봐야지. 성공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뭔가 대단한 장관은 펼쳐지지 않겠어? 그래도 그 유명한 대지의 마법사 라냐 왕세녀님이 하는 일인데?”
어쩌면 인류사에 없었던 기가 막힌 장관을 볼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몰려드는 사람들.
덕분에 춥고 황량한 하이데룬의 도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북적거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라냐 비셰나의 차례가 왔다.
“후우우우…….”
차디찬 설원.
저기 북쪽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끝없는 설원뿐이다.
그녀의 등 뒤쪽으로는 10분의 1쯤 완공된 대장벽이 펼쳐져 있다. 10분의 1이라고 해도 20미터에 달하는 높이와 10km에 달하는 길이는 사람을 압도하는 장엄함을 뽐내는 것이었다.
강력한 거대 마수들에 대비해 단단한 화강암으로 쌓아 올리고 눈과 물을 부어 얼음으로 한 번 더 덮은 거대한 빙벽.
저것을 쌓기 위해 흘린 피의 무게를 생각하면 더더욱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위대한 투쟁의 증거 위에는, 대륙 각지에서 몰려온 구경꾼들이 바글바글했다.
“저게 대체 뭐야?”
“흑수정?”
“아냐. 흑수정도 저런 깊은 색깔은 아니야.”
구경꾼들은 라냐 왕세녀의 양옆으로 끝도 없이 늘어선 검은 수정을 보며 수군거렸다.
페르세타 역시 구경꾼 사이에 섞여서 그걸 보고 감탄을 흘렸다.
‘위시? 언제 저만큼 많은 위시를 만든 거지?’
그건 위시였다.
무려 10만 개에 이르는 위시.
‘느껴지는 파장으로 봐선……. 스위치의 개수는 1만 개 정도인가?’
하나의 위시에 10억 개의 마나 스위치를 집적한 페르세타의 위시에 비하면 그야말로 ‘윈시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그 숫자는 놀라웠다.
페르세타가 이미 스위치 10억 개짜리 위시를 준비해 줬는데, 거기에 라냐가 별도로 스위치 1만 개짜리 위시 10만 개를 준비했으니, 스위치의 개수만 생각하면 총 20억 개나 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연산과 출력을 가능하게 하는 위시의 군체.
저거라면 정말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위시들을 서로 연결해서 쓰면 오류도 많이 생기고 효율도 급격히 나빠지긴 하지만……. 그래서 내 위시를 보고 그렇게 기뻐했던 거구나?’
중앙에서 메인 역할을 하는 위시의 성능이 좋으면 좋을수록 서로 연결된 위시들의 오류도 줄어들고 효율도 높아진다.
페르세타가 10억 개의 스위치를 하나의 위시에 집적해서 주었으니 못해도 전체적으로 마법의 수준이 2배는 더 좋아질 터였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여전히 많은 오류와 효율 감소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
페르세타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역시……. 여차하면 내가 몰래 끼어들어야겠어.’
라냐 왕세녀는 틀림없이 실패하게 될 테니까.
* * *
“후우…….”
새하얀 설원을 바라보며, 라냐는 숨을 가다듬었다.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어.”
처음에 그녀에게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피로 역사를 써낸 하이데룬 사람들을 위해 꼭 이 마법을 성공시키겠다는 사명감.
물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지만…… 이젠 거기에 하나의 목표가 더 추가되었다.
“반드시. 선생님의 인정을 받을 거야.”
페르세타는 이번 마법을 위해 무려 10억 개의 스위치를 가진 위시를 만들어 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또 한 번 그녀를 놀래켰다.
하지만 이번 일은 페르세타에게도 쉽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그의 얼굴이 잠깐 사이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으니까.
라냐는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신과 같은 마법사인 페르세타가 저렇게 수척해질 정도라면, 대체 이 위시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공이 들어가 있는 것인지.
페르세타의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래서 더욱더, 이번에는 꼭 자신이 그를 놀래켜 주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하게 되었다.
라냐도 알고 있었다.
페르세타는 아마 자신의 실패를 점치고 있을 거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보란 듯이 성공해 보이고 싶었다.
이걸 위해 지난 한 달간 정말 죽어라고 노력을 했으니까.
그간 그녀가 가장 공들였던 일은 바로 ‘위시’를 만드는 ‘위시’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페르세타가 준 10만 개의 스위치를 가진 위시를 이용해서 1만 개의 스위치를 가진 위시를 자동으로 만들어 내는 코딩을 짰다.
그 후에 이어진 것은 하이데룬 왕국의 눈물겨운 헌신.
이 가난하고 척박한 왕국은 그야말로 모든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라냐를 지원해 주었다.
덕분에 위시 10만 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수급할 수 있었다.
급하게 만들었다는 한계와 비싼 자원은 쓰지 못한다는 한계 탓에, 일회용으로 단 한 번 사용할 위시를 만들기 위해, 하이데룬 왕국은 국력을 한계까지 쥐어 짜냈던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나 크나큰 희생에 라냐가 황망해할 때 하이데룬의 왕, 데시온은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2,000년은 더 걸려야 완성할 대장벽입니다. 그걸 우리 대에 완성할 가능성이 단 1%라도 있으면 걸어 보겠습니다. 저는 라냐 왕세녀. 당신을 믿습니다.”
여러모로.
라냐 왕세녀에겐 어깨가 무거운 임무였다.
하이데룬의 사람들의 정성을 생각해도, 페르세타의 신뢰를 생각해도.
그러나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더 용감하게 설원 앞에 섰다.
무겁고 힘든 일을 짊어지는 게 바로 왕족의 의무가 아니던가.
괴롭고 두렵기에, 그녀는 오히려 더 용감해졌다.
“시작한다.”
그녀의 눈이 흘러넘치는 마력으로 인해 새파랗게 물들었다.
동시에,
우우우웅-!
그녀의 손에 잡혀 있는 10억 개의 스위치를 가진 위시 속에서, 별이 떠올랐다.
끝없이 캄캄한 우주 속에서 별빛이 떠오르듯, 수많은 작은 빛들이 떠올라 서로 뭉치고 흩어지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게 신호라도 됐다는 것처럼, 그녀의 좌우로 펼쳐져 있던 10만 개의 위시들에도 파도가 치듯 별빛이 몰아닥쳤다.
하얀 설원 위로 펼쳐진 캄캄한 수정구들. 그 속에서 떠오르는 별빛.
그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 그녀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 아래 묻혀 있는 거대한 두 개의 ‘판’을 직시했다.
우우우우웅-!
그녀가 미리 코딩한 대로, 20억 개의 마나 스위치가 계산을 시작했다. ‘판’이라는 거대한 대지의 마법을 움직일 수 있는 압도적인 마법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주르르-
라냐의 코를 타고 뜨거운 코피가 떨어져 내렸다.
위시의 보조를 받고 있다곤 해도, 결국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조율하고 검토해야 하는 것은 그녀의 임무.
더구나 수많은 위시를 연결한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수식 오류들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도 그녀의 임무.
하지만 그녀는 그 고통을 피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다.
모두 끌어안으며 담담히 자신의 의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쿠그그그그-!
땅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