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99)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99화(99/171)
99화 일단락
몇 년째 이어지는 내전으로 인해 엉망이 된 로반 왕국.
그곳에 작년부터 산적왕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존재가 출몰했다.
알려진 그의 이름은 ‘칼’.
검술을 얼마나 귀신같이 잘 쓰는지 국왕파 쪽이나 공작파 쪽이나 감히 손을 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의 검 아래 목숨을 잃은 로열 나이트의 숫자만 해도 둘.
일신의 무력도 강력한데 데리고 다니는 부하들의 무력과 장비도 정규 제국군 수준으로 대단해서, 내전으로 약화된 로반 왕국에서는 감히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는 여러 산의 산적들과 들판의 마적들까지 규합하며 빠르게 세력을 넓혔다.
단 1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로반 왕국은 국왕파, 공작파, 그리고 산적왕 ‘칼’로 삼분되어 더욱더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국왕파와 공작파는 뒤늦게라도 힘을 합쳐 산적왕 ‘칼’을 몰아내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대적할 수 없는 무용과 잔혹함을 앞세운 산적왕은 언제나 피 보라를 몰고 다녔고, 마을과 도시들은 그가 등장하는 것만을 보고도 벌벌 떨며 성문을 열고 투항했다.
그 누구도 산 채로 말뚝에 박혀 말라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로반 왕국은 점점 도적들의 나라로 변해 가고 있었다.
* * *
한때 황제의 로열 나이트였던 칼츠.
그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제국을 배신하고 도망쳤다.
제국에 남아 봐야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낀 탓이었다.
“빌어먹을 황제 새끼…….”
지난번 베리테 백작령의 요정시에서 열렸던 포럼.
그날 이후로 황제는 칼츠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대했다.
로열 나이트들과 함께하는 합동 대련도 항상 그를 빼놓고 진행됐으며, 언제나 제국의 외곽의 험한 임무만 계속 부여받았다.
매번 잠도 못 자고 피를 뒤집어쓰며 고생을 하고 돌아와도 황제는 치하의 말 한마디조차 해 주지 않았다.
특별 포상금이나 휴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진급도 매번 누락되었다.
그 의미는 명백했다.
그만두라는 것.
칼츠는 억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뭘 잘못했다는 말인가?
고작해야 마법사 하나 두들겨 패준 것?
그게 무슨 잘못이라고 내 인생을 꼬아 버린단 말인가?
칼츠는 로열 나이트를 쉽게 그만두지 못했다.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보냈던 평생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묵묵히 견뎌 왔다.
견디다 보면 황제 폐하도 용서해 주시겠지.
그러다가 그의 귀에 들려온 것이 로반 왕국의 소식이었다.
국왕파와 공작파가 갈려서 몇 년 째 내전을 벌이고 있는 혼란의 땅.
그때 칼츠는 운명을 느꼈다.
‘그래 시팔. 어차피 여기 있어 봤자 미래는 없어. 가자 로반 왕국으로 가서 내가 다 먹자. 그래. 남자로 태어났으면 왕은 한번 해 봐야지?’
그는 자신이 있었다.
황제가 자신을 홀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그는 제국의 로열 나이트 중에서도 준수한 실력을 자랑하던 기사.
거기다가 황제에게 직접 오러 소드를 전수받아 오러 플레임까지 펼칠 수 있는 오러 나이트.
저런 변방의 왕국에 가면 다 썰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날로 칼츠는 제국군 소속의 친분 있는 자들과 함께 작당하여 제국을 떠났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틈틈이 빼돌려 두었던 여러 군수품을 가지고.
그렇게 그는 로반 왕국의 악명높은 산적왕, ‘칼’이 되었다.
한 국가의 왕이 되겠다는 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웠다.
그렇기에, 그는 사실 이번 일에 별로 나서고 싶지 않았었다.
‘이제 곧 왕이 될 몸인데 산적질에 나서야 하나?’
이런 것쯤은 이제 밑에 애들이 쫌 알아서 하면 좋으련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찰을 맡은 부하가 고위 마법사들이 값비싼 물건들을 잔뜩 싣고 오고 있다고 전했으니까.
마법사는 돈이 된다. 군자금 때문에라도 꼭 털어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마법사들의 기세가 등등한 때에 부하들에게 고위 마법사를 상대하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불안한 것.
때문에 칼츠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현장에 나와 볼 수밖에 없었다.
‘망할 마법사 놈들.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 주마.’
심기가 꼬일 대로 꼬인 그는 다짐했다.
생각해 보면 그가 황제의 눈 밖에 났던 이유도 마법사 때문이 아니던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 마법사들을 볼 때마다 안 그래도 속이 뒤틀리는데, 이렇게 급 떨어지게 산적질까지 하게 만들고. 용서할 수 없었다.
‘팔다리를 다 자르고 산 채로 가느다란 말뚝에 박아서 최대한 오랫동안 말라 죽게 만들어 줄 테다. 내 숙소 근처에 꽂아서 밤낮으로 그 울음소리를 감상할 테다.’
안 그래도 잔혹했던 칼츠는 지난 시간을 보내며 더욱더 잔인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두 눈을 뱀처럼 빛내며 다가오는 자동차를 노려보았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이건 운명일까?
“살리넬르.”
칼츠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자신의 인생을 꼬아 버린 그 빌어먹을 마법사를 여기서 이렇게 마주치다니…….
애초에 생각해 보면 저 마법사 때문이었다. 저 마법사가 대련을 요청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이건 신께서 주신 선물인가 보구나. 내가 왕위에 오르는 걸 미리 축하하시는 거야.”
칼츠는 급격히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그도 알았다. 살리넬르가 만만치 않은 마법사라는 건.
하지만 그래 봐야 마법사가 아닌가?
그는 마법사의 천적인 오러 나이트.
저번처럼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곤란해질 일도 없을 것.
칼츠는 검을 뽑아 들고 성큼성큼 살리넬르를 향해 다가갔다.
“반갑다, 칼츠. 이렇게 만나다니. 운명인가?”
살리넬르가 두 손을 늘어뜨리며 인사했다.
칼츠는 픽,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운명이겠지. 죽음은 언제나 필연이니까.”
“오……. 산적이 되더니 말투가 많이 거칠어졌군. 그럼 오늘은 생사결인가?”
“그래. 차라리 그때 널 찢어 죽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 많이 했다.”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나도 부담 없이 너를 죽여도 될 것 같구나.”
“네가? 마법사. 머리가 많이 나쁜가?”
화르르-
칼츠의 검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예전 포럼 때 보았던 것보다 훨씬 밝고 거대한 불꽃이었다.
살리넬르는 기쁘다는 듯 중얼거렸다.
“더 늘었구나.”
“그래. 보아하니 설욕전을 기대했던 거 같은데. 안 됐어. 마법사야. 금방 끝날 거다.”
콰아아앙!
칼츠가 서 있던 땅이 폭발하듯 비산했다.
땅을 짓뭉개며 앞으로 뛰쳐나온 칼츠는 눈 깜빡할 사이에 거리를 격하고 하얗게 이글거리는 칼날을 휘둘렀다.
우선은 오른팔.
그는 살리넬르의 사지를 하나하나 잘라 내며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가가각!
세상 그 무엇도 찢고 부술 수 있는 오러 플레임이 가로막혔다.
살리넬르의 몸에서 뿜어진 안개와도 같은 실드가 칼츠의 칼날을 밀어내고 있었다.
화르르르!
오러 플레임과 실드가 맞닿은 자리에서 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쏟아져 나왔다.
오러플레임이 실드를 실시간으로 불태우며 막대한 연기와 함께 마나풍이 형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실드는 녹아내리면서도 결코 뚫리지 않았다.
칼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법으로 오러 소드를 막는다고? 이건 불가능한…….”
“아니지. 가능하지. 물론 오러 소드는 마법을 분해한다. 근데 그러면 분해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복구하면 되는 거잖아?”
“뭐……?”
“난 지난 세월동안 ‘생명’에 대해 연구했거든. 생명의 특징이라는 게 그래. 자기 조직화, 항상성 유지, 증식. 그래서 생각했지. 마나의 미세구조로 마법을 만들되, 그것에 생명처럼 스스로 증식하고 복원하는 기능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칼츠로서는 살리넬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불길함만큼은 확실히 느꼈다.
“…….”
그는 입을 다물었다.
위기감이 그의 본능에 경종을 울렸다.
쩌저저정!
일순간, 칼츠는 전력을 다한 검격을 셀수도 없이 쳐냈다.
원래라면 마법사의 실드따위는 백 번이라도 찢고 불태울 수 있는 참격.
그러나 실드는 뚫리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칼츠는 판단을 끝냈다.
‘젠장. 일단 후퇴한다.’
상대가 대체 무슨 마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러 플레임이 통하지 않는다면 위험하다.
지난번 포럼에서 이미 증명되지 않았던가? 살리넬르는 오러 나이트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였다.
타닥!
새하얀 오러의 불꽃을 흩날리며, 칼츠가 뒤로 땅을 박차고 뛰었다.
그런데.
“어……?”
칼츠의 몸이 흔들렸다.
“어라……?”
후드득.
그의 코에서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졌다.
강건한 기사의 몸에서 코피라니. 오러를 깨우친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이제야 효과가 드네. 오러 나이트의 몸은 튼튼하구나.”
“너……. 무슨 짓을…….”
칼츠가 휘청거리며 물었다.
시야가 부옇게 흐려지고 세상이 흔들려서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간단하다. 전염병도 일종의 마법이거든. 세상 모든 게 그렇듯이. 그 마법의 특징은 다른 마법에 기생하며 증식하고 변형시킨다는 것.”
살리넬르가 눈을 번뜩였다.
“그걸 응용한 마법이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그깟 전염병은 내 오러로 다 태워 버릴 수…….”
“없잖아?”
휘청-
세상이 기울어진다.
땅이 솟구친다.
쿵!
지금 쓰러진 건가?
둔중하게 머리를 때리는 통증 속에서 칼츠는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굴려 위를 쳐다보았다.
씁쓸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살리넬르의 얼굴이 보였다.
그게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세상이었다.
* * *
“표정이 왜 그래요? 당당하게 복수에도 성공했으면서.”
“……별로 개운치는 않다. 오러 플레임을 꺾은 건 기쁘지만…… 뭐랄까. 약한 사람을 괴롭힌 기분이네.”
“약한 사람은 개뿐. 악한 사람이겠지. 알아보니까 어마어마한 학살자로 악명이 자자하던데요? 덕분에 로번 왕국도 한결 편안해질 거예요.”
“그것도 기분이 그래. 난 정정당당한 재대결을 바랐던 건데 상대가 그렇게 타락해 버리니까. 뭔가 김빠지는 느낌도 들고…….”
“그래요? 난 좀 무서웠는데.”
비앙카의 말에 살리넬르는 의아해 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무서워? 뭐가?”
“그냥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 나까지 저렇게 뒤쳐질 수는 없다……. 위기감이랄까?”
“무슨 말이야? 너도 마법사잖아.”
“그런 게 있어요.”
비앙카는 말을 돌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와! 드디어 다 왔다! 봐요! 리세아룬이에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제국의 수도 리세아룬이 저 앞에 웅장하게 펼쳐졌다.
“……밟는다.”
살리넬르는 흥분을 숨기지 못한 채 자동차의 속력을 높였다.
세상에서 백과전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페르세타였지만, 두 번째로 잘 아는 사람은 살리넬르였다.
여전히 페르세타를 뛰어넘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탐욕스럽게 모든 지식을 흡수해 왔으니까.
그런 그였기에 지금 이 순간이 그 누구보다도 흥분되었다.
마침내 백과전서 사업을 일단락 짓는 순간.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프린키피아>의 정수를 띄워 올릴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순식간에 리세아룬의 성문을 넘어 페르세타가 머무는 마법의 궁전까지 달려간 그는 차의 창문을 내리며 온 도시가 쩌렁쩌렁하도록 확성 마법을 사용했다.
“페르세타 선생님! 나와 보십시오! 인공위성을 준비할 때가 왔습니다!!!”
그 커다란 목소리에, 또 인공위성이라는 단어에 수많은 마법사들이 놀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살리넬르 님?”
그리고 안개처럼 스르르 등장하는 페르세타.
살리넬르는 짙게 웃으며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곤 자신이 종합해 온 연구 보고서와 함께 차량에 가득 싣고 온 샘플을 보여 주었다.
“보세요. 선생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페르세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진지한 얼굴로 살리넬르가 가져온 보고서를 보고 샘플들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주변에는 마법사들이 가득했다.
“인공위성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백과전서 사업이 일단락 됐다는 건가?”
“진짜?”
웅성거리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마침내 모든 것을 검토한 페르세타가 피식 웃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 두 번 공포할 필요는 없겠네요. 살리넬르 님이 워낙 크게 외치셔서.”
“그, 그럼?”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키는 살리넬르를 향해, 페르세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죠. 인공위성 프로젝트.”
“우아아아아!”
체면도 잊고 주먹을 불끈 쥔 채 환호성을 지르는 살리넬르.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
나는 천생 학자구나.
복수니 싸움이니 하는 그런 것보단, 역시 이쪽이 훨씬 짜릿하다.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
어느새 벌써 마흔 후반이 다 된 살리넬르였지만, 그는 정말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