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Youngest Son of the Righteous Sun Family RAW novel - Chapter (177)
의선명가 천재막내 177화(177/191)
제177화
다른 문파들은 모두 형문산을 떠나기로 했다.
물론, 형산파를 나 몰라라 하며 비겁하게 도망가기로 한 건 아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문인! 우리 창녕문이 무당파에 구원을 요청하고 오겠습니다!”
“우리 백비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고 있어 주십시오!”
‘무당파에 구원을 요청하려는 거면 모두가 다 떠날 필요 없이 일부만 떠나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창호자는 저들을 만류할 수 없었다.
모두 혈교 마인이 보인 무위에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함께 죽기 싫어서 도망치는 것이다.
밖에 구원을 요청해와야 한다는 명분도 있으니 말이다.
‘저들 중 과연 몇 명이나 무당으로 향해 줄지 모르겠구나.’
이곳 의창과 무당산은 같은 호북이지만 가깝지만은 않다.
양양 쪽으로 난 관도를 통해 가야 하는데, 일반인이 걸어가면 꼬박 열흘은 걸릴 거리다.
하필 날씨도 좋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내린 눈 때문에 도로의 사정이 좋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 눈발이 거세게 날리고 있었다.
‘혈교 마인 놈이 준 이틀의 기한을 맞추려면 절정의 고수가 전력으로 경공을 펼쳐 달려야 간신히 가능할 거다.’
창호자는 혈교 마인이 참으로 간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구원을 요청하는 이는 반드시 멸문시켜 주겠다.
저 협박을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이가 어디 있을까?
혈교는 중원 어디에나 있으며, 영원히 박멸되지 않는다.
원한을 샀다가는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하는 거다.
만약 기한이 넉넉했다면, 저들도 혈교의 눈을 피해 무당의 도움을 요청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틀이란 촉박한 기한은 어떤 다른 수작을 부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저들 문파의 최고수가 당장 무당산으로 달려도 촉박한 시간이니, 혈교의 눈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껏 우리 형산이 저들에게 베푼 은혜가 적지 않으니. 저들 중 한둘이라도 형산을 위해 무당산으로 가줄 거다.’
창호자는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달래고 제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창호자가 비무를 벌이기 전, 일반 제자들과 다른 혈교도들 사이에서 가벼운 충돌이 있었다.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한 이는 없지만, 치료가 필요한 이가 여럿 있었다.
“뭐 하느냐? 의원에게 상처를 보이지 않고.”
“그게… 의원들이 다 떠났습니다.”
“뭐?”
“혈교 놈들이 소현의가의 의원들보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고 하자, 모두 우루루 빠져나갔습니다.”
창호자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의원이란 놈들이! 우리가 지금껏 소현의가에 낸 기부금이 막대하거늘! 다음부터는 절대 소현의가 놈들과 상종하지 않겠다!’
창호자는 멈칫했다.
‘과연 형산파에 다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거다.
의원들은 천하에서 가장 탐욕적인 이들이다. 상인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이니까.
욕심이 가득해 돈이 된다면 죽음조차 감수하는 게 의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조리 빠져나갔다.
소현의가는 주판을 튕긴 결과 형산파가 이번 참화에서 무사히 생존할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한 거다.
‘하아.’
창호자의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꼬박 하루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창호자는 그래도 희망을 품고 기다렸다.
이틀째 날이 밝았다.
여전히 소식은 없었다.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
창호자가 퀭하게 죽은 눈으로 산문의 경계를 서는 제자에게 물었다.
“…네,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기다려보자. 아직 이틀이 다 지난 건 아니니까. 쌓인 눈 때문에 예상보다 조금 더 지체될 수 있을 거다.”
양양 쪽 관도를 이용하면 빙 둘러 가는 격이라 시간이 지체된다.
산길을 뚫어야 하는데, 이런 눈 쌓인 산길을 넘는 건 고수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늦어지는 거다.
라고 창호자는 억지로 생각했다.
‘정말 아무도 무당에 구원을 요청하러 가지 않은 건 아닐 거다. 그래도 정파인데.’
정파와 사마(邪魔)가 다른 게 무엇인가?
마음속으로 의협을 숭앙한다는 것 아닌가?
물론, 현실 속 정파가 이야기처럼 정의롭지 않다는 건 창호자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도 믿기로 했다.
저들이 마음속 품고 있을 의기(義氣)를.
그때였다.
“누군가 산문을 올라오고 있습니다!”
“누구?! 무당이냐?!”
“아, 아닙니다. 저건… 의선혜검?”
의선혜검?
생각지도 않은 인물의 등장에 창호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의선혜검이 왜? 설마?’
곧 의선혜검의 맑고 선한 모습이 나타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형산파에 손을 보태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
창호자는 가슴이 흔들렸다.
창호자는 저 소년을 박대해 쫓아냈었다. 저 소년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추레한 욕심 때문에 경계하려고.
그런데, 모두가 형산파를 외면하고 있는 와중에 찾아온 거다.
창호자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
“본문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모르는 거냐?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으면 떠나라!”
하지만, 소년은 가만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위험하니 찾아온 거예요.”
“뭐?”
“형산파가 위험하지 않으면, 따로 도움을 드릴 필요가 없잖아요. 위험하니, 도움을 드리려고 온 거예요.”
창호자는 울컥했다.
강호에 이런 격언이 있다.
위기가 닥쳐야 진정한 친구를 가릴 수 있다고. 위기 때 옆에 남아주는 이가 진정한 친구라고.
창호자는 인근 문파들에 지금껏 어마어마한 정성을 들였다.
그런데, 정작 위기가 닥치니 남은 건 아무도 없었고, 그가 박대했던 저 소년만이 형산을 위한다고 나타났다.
창호자는 눈시울이 핑 붉어지려고 해 허겁지겁 시선을 돌렸다.
“그, 그래도 무모한….”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건, 형산파의 분들도 마찬가지인걸요. 일단,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다친 환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치료 먼저 해도 될까요?”
“아.”
창호자는 위지천의 뒤에 따라온 이들을 보았다.
얼마 전 본 낯익은 이들이다.
“언중의가(彦中醫家)의 분들이에요. 제가 부탁드려 오긴 했는데, 혹시 괜찮으실까요?”
소년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사실 다른 의가의 분들과 함께 오려고 했는데, 다들 사정이 있다고 고사하셔서, 어쩔 수 없이 언중의가의 분들께 부탁드렸어요.”
소년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리자, 창호자는 한탄했다.
창호자는 사파에 뿌리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형산을 위한다고 나선 게 사파의 의원들뿐이라니.
창호자의 원한이 아무리 깊어도 그도 사람인 이상 이런 상황에서 어찌 안면을 몰수하겠는가?
“만약 장문인께서 과거의 연 때문에 사파 의원들의 치료를 원하지 않으시면….”
“…아니, 그렇지 않네. 이 창호자, 형산을 대표하여 의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오.”
창호자는 다른 이들이 보면 경악할 행동을 하였다.
사파 의원들에게 고개를 숙인 거다.
창호자의 놀라운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창호자, 비록 사파를 향한 과거의 원한을 잊을 수는 없지만, 오늘 형산을 도와주러 오신 은인들의 은혜 또한 잊지 않겠소! 만약, 이 위기를 넘긴다면 형산파는 정과 사를 떠나 언중의가가 의창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소!”
언중의가가 자리 잡는 데 가장 큰 난관이 해결된 거다!
사망공자 언월운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무시무시한 꼬마 놈. 혈교까지 이용하다니.’
천하의 언월운도 위지천이 혈교 마인 흉내를 냈다는 것은 짐작하기도 까마득했다.
추리의 대가이기에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
언월운의 추리는 철저한 논리에 기반한 것이니까.
아무리 위지천이 괴물이라고 해도 혈교 마공까지, 그것도 대사도급으로 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만, 위지천이 모종의 정보를 통해 혈교의 움직임을 파악했고, 역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짐작했다.
“언중의가의 의원분들께 형산파 제자들의 치료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공진 도장의 치료를 맡을게요.”
언월운을 비롯한 언중의가의 의원들이 흩어져 형산파 제자들의 부상을 치료했다.
사련의가는 시진학의 종가로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다른 의술이 부족한 건 아니다.
사도맹의 무인들도 무림맹 무인들 못지않게 자주 다치니 외상 처치가 뛰어났다.
위지천도 어렵지 않게 공진의 내상을 치료했다.
공진의 내상은 위지천이 직접 입힌 것이니, 치료도 훨씬 쉬웠다.
“어떤가? 후유증이 남지는 않겠는가?”
“네, 혈교의 마인이 손속에 사정을 두었는지 기맥 쪽은 괜찮을 것 같아요. 그렇게 나쁜 마인은 아니었나 봐요. 다만, 조금 염려되는 게….”
“공진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아니,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정확히 이야기해 주게! 공진은 우리 형산의 미래이네!”
창호자가 다급히 물었지만, 위지천은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았다.
“이게 쉽게 말씀드리기 어려운 내용이라서 그렇습니다. 듣기에 따라 불편하실 수도 있는 내용이라서….”
“그런 걱정은 말게! 무슨 이야기든 경청하겠네!”
“공진 도장께서 남들과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나요?”
“!!”
창호자의 얼굴이 굳었다.
왜 모르겠는가?
“공진 도장의 치료 중 사망공자께서 절 도와주려고 했는데, 공진 도장께서 사망공자를 공격하려고 했어요. 사파는 베어야 한다면서.”
“…그런 일이. 제자의 잘못은 사망공자께 내가 따로 사과하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공진이 천재네. 그러니 외골수적인 면이 있네.”
“천재성과는 달라요. 강호에 많은 천재가 있지만, 공진 도장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걸요. 이건 외골수도 아니고요. 신병(神病)의 일종이에요.”
“!!”
정신 쪽의 질환을 뜻한다.
“그런?”
“심각한 건 아니에요. 공진 도장 정도의 상태면 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요. 다만,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주변 세상과 인간관계를 인식하고 파악하는데, 그게 선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요.”
창호자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년의 설명이 공진의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던 거다.
“그래도 공진 도장 정도면 정도가 심하지는 않아, 가족이나 웃어른들이 잘 교육하면 문제없이 자라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병이라 하기 애매하다고 한 거고요.”
“…만약, 주변 어른들이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면?”
“그때는 문제가 생기게 되죠. 올바로 주변과 세상을 바라볼 수 없게 돼요.”
자신이 공진을 어떻게 교육했는지 돌이켜본 창호자가 한탄했다.
‘내가 공진을 망친 게 맞는구나.’
그때, 위지천이 뜻밖의 말을 하였다.
따뜻한 어조로.
“우리 의선의가가 공진 도장께 도움을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