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Youngest Son of the Righteous Sun Family RAW novel - Chapter (22)
의선명가 천재막내 23화(23/138)
제23화
오죽하면 처음에는 신이 나 하던 장삼도 나중에는 신입 의생들을 동정했겠는가?
중원에 이런 격언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광인(狂人)은 신념을 가진 광인이라고.
‘대사형이 광인이란 건 아니지만… 끄응.’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대사형은 그들을 모두 빚의 굴레에서 구해준 은인인데.
‘…혹시 우리의 빚을 구제한 것도, 우리가 못 도망가게 해서 더욱 혹독하게 굴리기 위해서인 건?’
정답이었지만, 다들 현실을 부정했다.
위지천은 그저 순수하게 그들을 위할 뿐이다.
다만, 너무 천재적이고, 그들을 위하는 마음이 너무 깊어, 그런 괴물이 되었을 뿐이다.
어쨌든, 그런고로 그들은 의견례 따위 무섭지 않았다.
분노한 빙학 사마소?
알 바냐?!
그들은 이미 악마의 손아귀를 겪었는데.
‘…뭐지, 저놈들.’
‘기분 나빠.’
다른 의가의 의생들이 꺼림칙한 얼굴로 의선의가의 의생을 피했고, 이윽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지필고사를 시작한다. 주어진 시간은 두 시진이다.”
빙학 사마소가 서릿발 같은 어조로 말했고, 시험문제를 받아본 의생들은 아찔한 얼굴을 했다.
‘문제가 뭐 이따위야?’
-열두 장기의 수혈이 삼백오십사 개의 혈에 포함되지 않은 이치를 기술하시오.
-신(腎)이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이유를 신음(腎陰)과 신양(腎陽)의 관점에서 서술하시오.
등등.
‘이건 고명한 의학자(醫學者)들이나 연구할 법한 내용이잖아!’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는 의술 모든 지식의 기본이다.
세상 모든 만물이 그렇듯, 인간의 몸 또한 양(陽)과 음(陰)이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고, 오행(五行)의 순환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의 의생 중 그러한 이치를 깊게 공부한 이는 거의 없다.
왜?
너무 어려우니까.
최근 의술 학풍과도 동떨어진 내용이기도 했다.
의술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풍과 유행이 변하게 된다.
최근의 기조는 ‘증상론(症狀論)’이다.
증상에 맞춘 치료를 강조하는 거다.
예를 들면, ‘객담에는 대시호탕(大柴胡湯), 고열과 불안 증상이 있으면 도핵승기탕(桃核承氣湯)’, 이런 식으로 증상에 맞춘 치료를 하는 거다.
장점은 객관적이고 효율적이란 거다.
기존의 병의 근원을 파악해 그에 맞춰 치료하는 ‘변증론(變症論)’은 의원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같은 질병과 같은 증상이어도 치료가 완전히 바뀌어서 주관적인 면이 많았다.
즉, 치료 결과가 의원의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무엇보다 변증론은 어려웠다.
과거처럼 도제식으로 ‘스승’이 ‘제자’에게 진득하게 가르침을 내리는 게 아닌, 강연장에서 ‘강사’가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는 요즘 시대에 변증론을 깊게 가르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의생들은 망연히 시험지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파앗!
어떤 고민도 없이 답지를 써 내려가는 이들.
의선의가의 의생들이었다!
‘생각보다 쉽군!’
‘이런 내용. 의선의가에서는 기본이다!’
‘이 문제, 내가 기절했을 때 대사형이 자장가로 불러주던 내용이다! 기절도 편히 못 하게 한다고 원망했는데! 대사형의 깊은 뜻도 모르고 원망해서 죄송합니다!’
변증론은 과거의 유물.
즉, 의선의가가 천하제일의가이던 시절 유행하던 학풍이었다.
변증론이 중원 의술의 대세 학풍으로 퍼지게 된 것 자체가 의선의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고, 의선의가는 지금도 변증론을 중시하고 있었다.
‘즉, 이런 유의 문제들은 의선의가의 가르침에 특화된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위지천은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물론, 아무리 의선의가의 의생들이라도 변증론을 깊게 배운 건 아니다.
고작 수박 겉핥기 수준?
그래도 시험문제를 푸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 문제들은 변증론에서 깊은 수준의 내용은 아니니까.’
아무리 빙학 사마소가 분노했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문제를 낼 수는 없었다.
빙학 사마소가 보기에 의원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문제로 낸 거다.
타악!
지필고사가 끝났고, 다른 시험들이 이어졌다.
약을 만드는 본초(本草).
아까와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저령산(豬苓散)을 제조해라.
신의 기능에 문제가 생겼을 때 흔하게 쓰는 기본 약이다.
이 자리에서 조제법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다.
문제는,
‘재료 중 저령이 없잖아. 필수 재료가 없는데, 어떻게 약을 만들라고?!’
다른 재료들만 가득했다.
즉, 다른 재료를 이용해 저령 없는 저령산을 조제하라는 뜻이었다!
“비, 빙학 어르신. 이, 이건 문제가 너무.”
화중의가의 가주 단소천이 떠듬떠듬 항의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의, 의생들이 저런 문제를 어떻게 풉니다! 본초학자도 아니고!”
“화중의가는 약재 창고의 약재가 떨어져본 적이 없습니까?”
“…네?”
“몰려드는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준비한 약재가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럴 때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저령은 특히 떨어지기 쉬운 약재인데.”
단소천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화중의가는 그럴 일이 없었다.
늘 부유했기에 약재가 떨어지지 않게 여유 있게 비축했고, 애초에 환자가 그만큼 몰려오지도 않았다.
부유한 유지들만 환자로 받았으니까.
매번 약재 부족 사태가 생기는 건, 가난한 이들이 몰려오는 의선의가였다.
툭하면 약재가 떨어지는 의선의가의 의원들은 대체 약을 제조할 줄 아는 게 필수였고, 이번에 신입 제자들에게도 기초적인 대체법을 가르쳐 주었다.
‘원래 이런 건 빙학 사마소가 중시하는 내용이기도 하지. 낭의(浪醫)들도 약재가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까.’
지금까지 보면 알겠지만, 빙학 사마소와 의선의가는 서로 통하는 게 많았다.
위지천이 일부러 문제를 훔쳐 사마소를 분노하게 만든 이유였다.
사마소가 분노해 문제의 난이도를 높일수록 도리어 의선의가에 유리할 테니까.
‘그냥 일반적인 문제들이 나왔으면 우리 의선의가가 딱히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겠지. 평범한 문제를 푸는 거야 어느 의가의 의생이나 다 비슷비슷할 테니.’
의선의가의 제자들이 척척 탕약을 제조했다.
철마의가의 제자들도 떠듬떠듬 약을 제조했다. 약재가 풍족하지 못한 건, 철마의가 쪽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건 화중의가의 의생들이었다.
‘빌어먹을. 문제를 이렇게 내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이러면 거렁뱅이 의선의가 놈들한테만 유리하지 않는가?’
화중의가의 의생.
그중 가주의 아들인 단악이 이를 바득 갈았다.
당연히 이번 의견례 장원은 자신의 몫일 줄 알았는데, 이러다가 탈락할 판이었다.
저 의선의가의 못난이 놈도 문제를 풀고 있는데!
‘혹시 문제를 빼돌린 게 위지천 놈인 것 아니야? 아니면, 저 못난이 놈이 저렇게 문제를 풀 수 있을 리가?’
억하심정으로 품은 의심.
…물론, 의외로 진실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밝힐 길은 없었다.
단악은 바득 이를 갈았다.
‘의선의가 놈들, 가만히 두지 않겠다. 지(地)급 의가가 되는 건, 결국 우리 화중의가일 터. 의선의가의 콧대를 밟아주겠다!’
한편, 위지천은 그런 단악의 시선과 적대감을 눈치채고는 속으로 피식했다.
‘귀엽네.’
저런 어린놈이 품는 ‘귀여운’ 적개심 따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조금 시험이 지루했으니. 여흥이 있는 것도 좋겠지.’
안 그래도 저놈은 단여를 괴롭히던 놈 중 하나로 알고 있다. 그러니, 딱히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으리라.
위지천은 조용히 손을 튕겼다.
은밀하기 그지없는 한 수였다.
빙학 사마소가 눈을 부릅뜨고 시험장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만약, 더 경지 높은 고수가 위지천의 방금 한 수를 봤다면 감탄을 금치 못했으리라.
위지천이 그 대단한 수법으로 무슨 일을 했냐면.
“!!”
단악의 몸이 굳었다.
위지천을 노려보던 자세 그대로.
원래 힐끗힐끗 몰래 노려보고 있었는데, 딱 위지천을 뚫어지라 보는 자세로 몸이 굳은 거다.
‘뭐, 뭐야, 왜?!’
몸이 마비되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촌각의 절반도 안 되는, 호흡 열 번 정도 할 만한 시간?
빙학 사마소의 눈에 띄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네놈?! 뭘 하는 거냐?! 감히 시험 중 부정행위를 하려는 거야?”
단악은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아, 아닙니다! 가, 갑자기 몸이 마비되어서…!!”
“몸이 마비되어?”
사마소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갑자기 풍(風)이라도 왔다는 말이냐?! 어린놈이 부정행위를 하는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해?! 네놈이 그러고도 의생이라고 할 수 있냐? 네놈은 앞으로 오 년간 의견례 응시 금지다!!”
“억울합니다!!!”
단악은 진짜 억울해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도리어 저놈이 시험문제를 빼돌린 것 아니야? 라는 시선만 받게 될 뿐이었다.
“…저놈이 부정행위를.”
단여가 복잡한 눈으로 단악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천벌 받았나 봐요.”
“네?”
“평소 지은 죄가 많으니 저런 꼴이 되죠. 안 그래요?”
자신을 신경 써주는 어린 대사형의 말에 단여는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 고마움을 솔직히 표현할 그녀가 아니지만,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다.
의선의가에 온 뒤로 그녀의 삶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이전처럼 그녀는 불행하지 않았다.
화중의가에서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먹구름 속에 있는 것만 같았는데, 의선의가에서는 왠지 밝은 미래가 다가올 것 같았다.
의선의가와 함께하는 미래가 기대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단여만이 아니었다.
신입 제자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타악!
의선의가의 신입 제자들은 모두 자신 있게 문제를 풀었고, 이론 지식을 묻는 시험 전반부가 끝이 났다.
“…….”
다른 의가의 의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시험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어느 의가가 이번 시험의 주인공인지는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다들 모르는 게 있었다.
아직 의선의가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실력을 선보인 게 아니란 것을.
“장소를 이동하도록. 바로 다음 시험을 이어서 보겠다. 이번 시험 종목은 의공 시험이다.”
의공 시험.
그 말에 의선의가 제자들의 눈이 퀭하니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