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Youngest Son of the Righteous Sun Family RAW novel - Chapter (83)
의선명가 천재막내 84화(84/138)
제84화
동선의가의 신임 가주 취임식은 간소하면서 화려했다.
원래도 거창한 행사를 일절 삼가던 동선의가답게 취임식의 규모는 조촐했다.
보통의 지(地)급 의가면 자신들의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손님을 초청해 커다란 잔치를 벌였겠지만, 최소한의 숫자만 초청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화려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참석한 이들의 면면 때문이었다.
인근 의업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이들은 모조리 빠지지 않고 참석한 게 동선의가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형님이 가주 취임식 할 때가 생각나는구려. 그때 주변 의가에서 아무도 안 와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던 동네 사람들을 불러 취임식을 했는데.”
“흥, 언제 적 이야기냐. 예전의 의선의가가 아니거늘.”
위지선은 콧대를 높이며 답했다.
그래, 지금 장내의 분위기만 봐도 의선의가의 달라진 위상을 알 수 있었다.
참석한 이들 모두 의선의가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시선에 담긴 의미는 다양했다.
감탄, 놀람, 경외, 부러움, 시기, 적의 등등.
온갖 감정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형님은 저런 시선이 부담되지 않으시오?”
“뭘. 감당해야 하는 바다. 어깨가 무겁구나.”
“어깨가 무겁긴 개뿔. 올라간 입꼬리나 내리시오. 하여튼 언제 철이 들려는지. 쯧.”
위지선은 바뀐 의선의가의 위치에 완벽히 적응한 지 오래다.
오히려 주변의 질투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잘나서 그런 걸 어째?
너희도 부러우면 내 자식들같이 잘난 자식들 낳든지?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렸다.
“진주언가의 소가주 언월운 공자께서 오셨습니다!”
“!!”
장내에 참석한 이들이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었던 거다.
“진주언가? 왜 사도맹의 천(天)급 의가가?”
“유평 가주가 젊은 시절 사련의가의 제자였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구려.”
모두가 아는 사도맹의 천(天)급 의가.
사련의가의 ‘사련(邪聯)’은 사실 공식 가문명이 아니었다.
당연하다.
가문의 이름이 사련일 리가 없으니까.
진주언가(晉州彦家).
사련의가의 진짜 가문명이었다.
원래는 정파의 무문(武門)이었다.
단, 무공과 더불어 주술을 다루는 가문의 특성상 정파에서 배척받다가 사파로 전향하게 되었다.
진주언가는 원래도 주술로 인체의 신비를 연구하던 가문. 그 특기를 살려 의가를 차렸는데, 크게 번성해 천(天)급 의가가 되었다.
‘왜 진주언가에서 이런 취임식에 사람을 보낸 거지?’
진주언가의 소가주를 맞는 유화 신임 가주의 모습이 보였다.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 게 미리 연락받은 것 같다.
‘유평 전 가주가 사련의가의 제자였다면, 유화 가주도 사련의가의 외인이 아니니, 축하 서신 정도는 보낼 수 있는 일이지만, 직접 사람을 보내? 그것도 소가주를?’
둘 중 하나다.
유평 전 가주가 사련의가에 있을 당시 무척이나 중요한 제자여서 사련의가에서 신경을 쓴 것.
유평 전 가주의 의술 실력을 생각하면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위지천은 두 번째 가능성을 생각했다.
‘저 광견(狂犬)의 구미가 당길 사건이 있는 건가?’
위지천은 유화 앞에서 싱긋 웃고 있는 미청년을 바라보았다.
아는 얼굴이다.
이전 삶, 지긋지긋하게 본 얼굴.
사망공자(死亡公子) 언월운.
훗날 진주언가의 가주이자, 신의(神醫)의 위에 오르는 인물이다.
왜 의원의 의명이 저렇게 흉흉하냐면, 간단했다.
‘저놈은 사람을 살리는 의원이 아니니까.’
언월운의 의술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다.
천(天)급 의가의 소가주답게 누구보다 뛰어난 의술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언월운은 그 지식을 사람을 살리는 데 쓰지 않았다.
그가 의술 지식을 쓰는 건 도리어 정반대의 목적을 위해서다.
‘저놈은 사람을 잡는 데 의술을 쓰지.’
음, 조금 오해가 있을 수도 있는 표현이다.
놈은 시진학(屍診學)의 대가였다. 사체에 남은 흔적을 통해 범인을 잡는.
고문의 최고 전문가이기도 했고, 자신의 의술을 흉악한 범인을 잡는 데 사용했다.
언월운이 나타나면 반드시 악인의 목이 잘린다고 하여 붙은 의명이 사망공자였다.
‘저 변태 놈이 고작 축하 인사를 하려고 이 멀리까지 왔을 리가 없는데.’
그때 언뜻 스쳐 가는 내용.
왜 하필 지금 이런 게 떠오른 것인지 모르지만.
‘…이전 삶 때 동선의가가 왜 멸문했더라?’
동선의가를 멸문시킨 건 상현의가였다.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덮어씌웠고, 동선의가의 이들 모두 형장의 이슬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너무 황당한 누명이었던 터라, 듣고 잊었었는데.
‘동선의가가 사마외도의 사술(邪術)에 손을 댔다는 누명이었지?’
사술(邪術), 그러니까, 술법(術法).
애초에 강호에서 술법은 경원시되기는 해도 금지된 것은 아니다.
무당, 화산 같은 정파의 명문에도 주술을 다루는 도사가 소수 있으니까.
주술이 처벌받을 때는 사마외도에 빠져 인륜을 저버리는 극악한 짓을 저질렀을 때였다.
의업계에 보기 드문 올곧은 가문인 동선의가가 사마외도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하필 언월운이 온 게 마음에 걸렸다.
진주언가는 원래 주술 쪽에 정통한 가문.
언월운은 주술 분야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이후, 유화의 가주 취임식이 진행되었다.
사련의가가 참석한 것 외에는 별다를 것 없는 취임식이었다.
아, 하나 눈여겨볼 것은 유화의 안색이었다.
‘낯빛이 좋지 않아. 아버지의 병환이 악화하여 가주의 자리에 오른 것이니 마냥 웃는 낯으로 있기도 좀 그렇겠지만.’
마침, 유화가 의선의가 일행이 있는 쪽으로 인사하러 찾아왔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찾아와 주어 감사합니다.”
“하하, 이를 말인가? 이런 경사에 이웃끼리 당연히 축하하러 와야지.”
“경사라… 그렇지요.”
찰나, 유화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르려는 차, 유화가 다시 싱긋 웃었다.
“아닙니다. 부담감에 마음이 무거워서 그랬습니다. 부족한 제가 동선의가를 잘 이끌 수 있을까 해서요.”
“이 위지선도 유화 가주 나이 정도에 가주직에 올랐으니, 그 마음 이해하네. 잘 해낼 거네.”
“덕담 감사합니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고 유화는 떠났고, 의선의가 사람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유화 가주가 뭔가 이상하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저 독종이 고작 그런 부담감 따위를 느낄 리가 없을 텐데.”
“그건 전(前) 연인으로서의 평가냐, 강아?”
“무, 무, 무슨?!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새삼스레 왜 호들갑이냐? 남양 사람 중 너와 유화 가주가 연인 관계였다는 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다고?”
…위지천은 몰랐다.
‘하긴. 둘 다 인근 의가의 소가주들이었으니, 연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
“흥, 하도 만나달라고 해서 잠깐 어울려준 것일 뿐입니다.”
“강 오라버니, 헤어진 후 보름달 보면서 펑펑 울었던 것 내가 봤어.”
“강이가 우는 거 나도 봤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는 초승달 아래서였는데? 아니, 상현달이었나? 너, 달밤 아래에서 얼마나 울어댄 거냐?”
“달밤 아래에서 우수에 젖는 것, 오라버니 취미임요. 지정석도 있음요.”
역시 월하미남(月下美男)다운 취미였다.
“크흠, 다들 그만 놀리십시오. 남자가 차인 후 울 수도 있지. 그러게 그놈의 잔소리 좀 줄이라고 하지 않았냐?”
“숙부가 제일 나쁩니다!”
위지강이 시뻘게진 얼굴로 덜컥 일어나더니 씩씩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위지천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느냐, 천아?”
“강 형님이 많이 화난 것 같아서 달래 주려고요.”
“강이 저놈이 삐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내버려둬도 될 텐데… 알아서 해라.”
진짜 위로해 주려는 건 아니고, 위지강이 사라진 방향이 유화가 사라진 방향과 동일해서 따라가 보려는 거다.
두 전 연인이 펼칠 대꿀재미의 환장판을 직접 관람하려는 목적은 아니고… 혹시나 무언가 둘의 대화에서 실마리가 나오기라도 할까 엿들으려는 생각이었다.
괜히 과민하게 염려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꺼림칙했다.
하지만, 딱히 귀담아들을 내용은 없었다.
“왜 이리 얼굴이 안 좋지? 또 밤새 무리한 거냐?”
“내가 그러든 말든, 위지강, 네가 무슨 상관이지? 쓰잘데기 없는 잔소리 할 생각이면 꺼지도록.”
“착각하지 말도록. 걱정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그냥 거슬려서 그러는 거니까. 네가 못난 모습을 보이면, 남양 의업계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니, 절대 걱정이 아닌, 어쩌고저쩌고.”
“하!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사이가 나쁘면서도 좋은 것 같은, 묘하게 간질간질한 대화였다.
‘형님도 남자셨구나. 이전 삶, 여협들이 고백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아버지가 걱정했었는데. 유화 가주를 못 잊었던 건가?’
유화 쪽은 모르겠지만, 위지강은 미련이 철철 넘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아냐고?
‘형님은 좋아하는 상대일수록 더 까칠하게 이야기하잖아. 그런데 형님, 잔소리는 조금 줄이는 게… 그나마 남아 있는 연정도 다 달아날 것 같은데요.’
어쩌고저쩌고 저쩌고어쩌고 끝없이 이어지는 위지강의 잔소리에 정신이 털린 유화의 눈빛이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돌연 위지강이 예리한 물음을 던졌다.
“진주언가의 소가주는 왜 온 거지?”
“!!”
유화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건 왜 묻는 거냐?”
“왜? 물으면 안 되는 건가? 너랑 그 기생오라비 같은 면상의 놈팡이 놈이랑 무슨 관계이길래?”
‘아이고, 형님.’
위지천은 민망함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누가 들어도 질투심이 절절하게 흘러넘치는 말이었다.
참고로, 언월운과 위지강, 둘 중 더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건 위지강이었다. 위지강은 달빛이 어울리는 빙옥 미남이었으니까.
어쨌든, 위지천은 유화의 얼굴을 살폈다.
안색이 하얬다.
전 애인의 질척질척한 매달림에 질려서…는 아닐 거고,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아라. 사련의가에 질의할 게 있어서 겸사겸사 초청한 것일 뿐이니까. 다시는 사적으로 알은척하지 말도록!”
“유화! 잠깐, 기다리도록!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유화가 확 매정하게 등을 돌려 사라졌고, 위지강은 또 구질구질하게 그런 그녀를 따라갔다.
홀로 남은 위지천은 팔짱을 꼈다.
“한번 동선의가를 파보긴 해야겠네.”
“나도 소협의 이야기에 동의한단다.”
“!!”
위지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웬 여인이 옆에 나타나 있었다.
‘누구?’
위지천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