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기회 (5)
‘헉! 5배?’
생각지도 못한 규모에 놀라 입이 쩍 벌어진 최필수.
“5배? 그렇게 만들면, 팔 자신은 있고?”
“네!”
현상만 유지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다 망해가는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예건 덕분이었다.
“내가 참여 안 한다 해도, 어차피 공장 확장은 할 거잖아. 아니야?”
“장기적으로는 그렇다고 봐야죠. 돈 되는 사업을 미룰 필요는 없으니까요.”
어차피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한국에서 비싼 원목 가구에 대한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를 값싼 가구들이 채우고 있으니.
게다가 한예건과 함께 일한 후로는 다른 가구들은 죄다 허접해 보이기까지 했다.
완성된 가구의 퀄리티나 디자인으로나 당분간 한국에서 아르누보를 뛰어넘을 브랜드는 없을 것이다.
이왕 한배를 탄 것, 끝까지 함께하는 게 의리.
“아는 변호사에 검증받고, 문제 될 것 없으면 사인하겠네.”
“기존 재산에 대한 비용은 최대한 후하게 쳐 드리겠습니다. 사장 자리는 물론이고.”
“당연하지! 자네가 나 없이 이 퀄리티의 가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예건이 씩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네. 그렇지요. 그래서 선물을 가져 왔습니다.”
“선물? 무슨 선물?”
예건이 가방에서 도면을 꺼냈다.
백자호텔에 보여줄 샘플 가구 도면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하나씩만 만들어주세요.”
“뭐? 다음 주 월요일?”
화들짝 놀라 도면을 살펴본 최 사장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아니, 이렇게 어려운 디자인을 갑자기 들이대면 나보고 어쩌라고.”
“에이. 또 안 어울리게 약한 척하신다. 대신 아르누보 매장 장식 납품 일정 미뤄드릴게요. 이 프로젝트가 잘 돼야 공장도 새로 만들고, 인원도 충원할 거 아닙니까.”
“허!”
최필수 사장이 기가 차 혀를 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최 사장의 눈길이 도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지 벌써 기대하는 눈치다.
“쯧, 내가 아니면 못 만들 디자인이긴 하네. 월요일 저녁까지만 넣어주면 돼?”
“네! 그럼, 전 사장님만 믿고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예건이 떠나고 최필수는 곧바로 공장으로 들어가 공장장과 함께 제작 협의를 시작했다.
“디자인이 꽤 복잡하긴 한데, 아르누보 매장 장식에 비하면 쉽네요.”
“일정은 맞출 수 있겠지?”
“매장 장식 납기를 미뤄준다면서요? 그럼 해야지.”
아르누보 매장 장식은 그 섬세함이 남달랐다.
안 그래도 빠듯한 일정에 퀄리티가 떨어질까 걱정돼 납기를 좀 미뤄 달라고 부탁할 셈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한 공장장이었다.
“아! 그리고, 한 실장이 공장을 키우자네.”
“얼마나요?”
“내년 상반기까지 매출 5배!”
“이야~ 벌써? 대단한 자신감이네.”
“관리해야 할 직원 수도 그만큼 늘어날 텐데. 괜찮겠어?”
“월급만 많이 준다면야, 못할 거 있습니까? 분업만 잘 되면 오히려 관리하기 더 편하지. 그래서? 사장 자리 준데요?”
“흠흠! 내가 사장 안 하면, 누가 하나?”
“저도 공장장 자리 주셔야 합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춘 두 사람이었기에 서로 의견이 잘 통했다.
그만큼 한예건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기도 했고.
가게를 시작한 지 겨우 몇 달 만에 사군자 시리즈 판매만으로 월 매출 5억을 넘길 정도였으니, 공장 확장은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좋아! 그럼, 판 한번 키워보자고.”
* * *
다음날 오후, 가구공장의 최필수 사장에게서 계약하자는 연락이 왔다.
“빨리 결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리 회사 담당 변호사 말이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 좋은 조건으로 우리 공장 인수해 줘서 나도 고맙네.
“뭘요. 최 사장님 실력이 좋으신 덕분이죠.”
최 사장은 곧 자신의 변호사 측에서 연락이 갈 거라 말했고, 예건은 기쁜 마음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공장 쪽은 최 사장님이 직접 충원하겠다고 하셨으니, 믿고 맡기면 될 것 같고. 이제 본사 경영진만 남았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조소훈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괜히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하하하. 제가 적절한 타이밍에 연락드린 것 같군요.
“네. 맞습니다.”
다행이네요. 메일로 곧바로 이직이 가능한 인원들 이력서를 보내드렸습니다. 검토하시고 의견 주시면 면접일자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메일 확인하겠습니다.”
예건은 곧바로 자신의 메일을 확인했다.
“네. 들어왔네요.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첨부파일을 내려받은 예건이 이력서를 모두 출력해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장 중점적으로 확인한 것은 역시나 전문경영인이다.
조소훈 대표가 추천한 인물은 총 세 명.
가구 수입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부터 경영 관련 학위와 다양한 자격증을 보유한 경력자까지.
하나같이 스펙이나 경력이 출중한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이력을 가진 이가 있었다.
재료에서 건설,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역 거래를 주도하고 있는 국내 최고 무역 그룹 신성물산에서 수많은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운영한 경력을 가진 인물.
“이런 사람이 왜 이직을 하려는 거지?”
어쨌든 예건에게는 좋은 기회임이 분명했다.
전문경영인을 들여야겠다고 판단한 이후, 예건은 경영 관련 전문 서적을 사들여 퇴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독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으로 배우는 경영은 분명 한계가 있다.
이왕 제대로 된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상 대기업의 선진 시스템을 따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 자신이 잘 모르는 아메리카와 중동 지역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좋은 인재를 놓칠 수는 없지.”
예건은 조소훈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류광일이란 분을 제일 먼저 만나보고 싶습니다.
조소훈 대표에게서 곧바로 문자가 도착했다.
네. 일정 확인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 *
한 남자가 거대한 빌딩의 외부 주차장 구석으로 향했다.
자켓의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하얀 한숨을 내쉰다.
“후우-.”
공기보다 가벼운 연기가 예쁜 문양을 그리다 서서히 주변에 스며들었다.
고민도 연기와 함께 날려 보내고 싶으나, 최후통첩을 받아 든 마냥 남자의 마음이 무겁다.
“결국, 퇴사하란 소리네.”
아내의 병이 깊어져 돌아온 한국.
하지만 이곳에 그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국외를 전전하며 반평생을 함께한 직장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회사의 성장이 곧 내 성장이라고 생각하며 충성을 다했건만.
겉돌던 해외 지사장 따위에게 본사에 마련해줄 자리 따위는 없나 보다.
그저 서울에서 근무하게 해 달라는 부탁이 그리 들어주기 어려웠던 걸까?
1개월 내로 해외 지사로 복귀하지 않으면, 퇴사 처리하겠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최후통첩이었다.
“젠장!”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구둣발로 비벼 끈 류광일은 호기롭게 혼잣말했다.
“퇴사하라면 무서운 줄 알고? 한 달 안에 이직 자리 찾고야 만다. 내가!”
하지만.
대기업에 다녔다고는 하지만 해외로 떠돈 게 벌써 20년.
인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에 그의 자리가 있을까?
“외국계 한국 지사라면 적당한 자리가 있겠지.”
한국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마음을 굳히자마자 유명한 헤드헌팅 회사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어둔 상황.
‘아무래도 직접 찾아가 봐야.’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지이잉. 지이이잉.
액정에 [온리원HR컨설팅]라는 이름이 뜬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류광일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온리원 HR컨설팅 조소훈 대표라고 합니다. 이력서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하하. 네. 안녕하세요.”
– 괜찮은 가구회사 전문경영인 자리가 나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면접 보시겠습니까?
“가구회사요?”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떨떠름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한국에 남을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잠시 고민하던 류광일이 물었다.
“서울에서 일할 수 있습니까?”
– 네. 본사가 서울 논현동에 있습니다. 규모가 아직 작긴 하지만 확장을 준비 중이고요. 경영관리 본부장 직급으로 추천해 드릴 생각입니다. 관심 있으시면 직접 만나 뵙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회사가 집과 가깝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뵙죠. 어디로 가면 됩니까?”
* * *
예건은 입고된 샘플 가구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퇴근 후 논현동 매장으로 향했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손으로 가구의 표면을 쓸어보며 품질을 확인한 예건은 조명을 모두 꺼버리고 가지고 있던 플래쉬를 켰다.
기포나 스크래치 같은 강한 빛에 드러나지 않는 작은 흠집들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빛이 강한 곳에서 확인하면 보이지 않았던 미세한 불량도 조도를 줄이면 훨씬 쉽게 눈에 띈다.
예건은 플래시 빛을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며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역시 예상대로 최필수 사장이 보낸 가구들은 흠 하나 없이 완벽했다.
“정말 빈틈없이 일하시는 분이라니까.”
과거에 비해 좋은 장비들이 많이 보급되었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가구를 완성하기 위해 들이는 정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가장 기본인 자재 선정부터 제작, 관리, 배송까지 한 단계라도 소홀히 여기는 순간 가구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최필수 사장은 한 번도 품질에서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확장할 공장의 사장 자리를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호텔과의 계약은 무리 없이 잘 마무리될 것 같다고 판단한 예건은 줄지어 서 있는 가구들을 바라보다가 고민에 빠졌다.
“흠. 뭔가 조금 아쉬운데.”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넓은 공간에 가구가 두서없이 배치되어 있어 그런 것 같다.
“갑자기 벽을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를 어쩐다?”
짙은 회색 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번쩍하고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페인트나 실리콘 작업할 때 주로 함께 사용하는 주황색 마스킹 테이프로 바닥에 평면을 그리는 거다.
마침 미리 만들어둔 창고 한켠에 마스킹 테이프가 쌓여 있던 것이 생각난 예건은 곧장 창고로 향했다.
창고 문틈으로 조명 빛이 새어 나왔다.
“어? 이사님, 아직 계셨구나.”
아르누보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 모어 스페이스에서 현장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똑똑.
예건이 노크하니 안에서 예- 하며 무뚝뚝한 남성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이사님. 아직 퇴근 전이시네요?”
예건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남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를 반겼다.
“네. 내일 작업할 것 미리 점검 좀 한다고요. 그런데 어쩐 일로?”
“아….”
예건의 눈길이 마스킹 테이프가 쌓인 곳으로 향했다.
“마스킹 테이프 좀 쓸 수 있을까 해서요.”
“아, 네. 가져다 쓰세요.”
“감사합니다.”
마스킹 테이프를 넉넉히 10개 정도 챙긴 예건이 돌아서서 물었다.
“저기… 혹시 줄자도 있으시면 좀 빌려주시겠어요?”
“하하하. 네. 여기.”
“감사합니다. 쓰고 가져다 놓을게요.”
예건은 사무실에서 도면을 출력해 와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혼자 작업을 하려니 자질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테이프로 한쪽을 바닥에 고정해 놓고 흰색 분필로 벽이 그려질 위치를 표기하고 있는데, 업무가 끝난 남 이사가 창고에서 나왔다.
“바닥에 마스킹 작업하시는 건가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혼자 끙끙거리는 게 안타까워 보였는지, 남 이사가 다가와 물었다.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사례는 따로 하겠습니다.”
“아휴, 됐습니다. 도면 좀 볼까요?”
예건이 도면을 내밀자, 남 이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백자호텔이네요. 객실 가구 납품하시는 건가요?”
“아, 네. 내일 샘플 보여드리고 계약하려고요.”
남 이사가 씩 웃더니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그럼,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해야겠네요. 제가 현장 근무하던 시절에 마스킹의 달인이었거든요.”
“와! 진짜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을 시작하자, 너무도 손쉽게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바닥에 마스킹 테이프로 그려진 평면을 보며 예건이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스킹의 달인, 인정합니다.”
“하하하. 너무 오랜만이라 예전만 못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며 남 이사가 답했다.
“가구는 내일 저희 직원들이랑 같이 옮기겠습니다. 도와주시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 계약 잘 되시길 바랄게요.”
“네!”
남 이사가 떠나고, 예건은 주변을 정리하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제 진짜 계약만 남았네.”
예건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결전의 순간을 고대하며 아르누보 매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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