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고속 성장 (5)
처음에는 계획부터 도면까지 모두 도맡아 진행하던 예건이었다.
팀원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자신이 원하는 퀄리티에 적응하지 못한 팀원들이 서서히 업무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이었다.
이 차장이 기획팀에 합류하고 난 후, 예건은 실험적으로 초안 계획만 완성해 팀원들에게 전달했다.
‘언제까지고 혼자 일할 수는 없지. 팀원들도 성장해야 하고.’
처음에는 의도한 대로 도면화가 되지 않아 몇 번이나 수정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3번 정도 그 과정을 거치자 노련한 이경록 차장이 먼저 예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업무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네오소프트 프로젝트가 안정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이내 한남 엘리우도 수정사항이 크게 줄었다.
예건은 확연히 좋아진 엘리우 도면을 보면서 곧장 이경록 차장이 미리 한 번 점검해 준 게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네오소프트 건만으로도 바빴을 텐데. 한남 엘리우까지…. 역시 김수훈 대표님이 신뢰할 만하네.’
훨씬 수월해진 기획팀 업무 덕분에 가구점 확장에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을 줬음에도 그동안 힘들다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을 따라주었던 이 차장과 팀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라야겠지.”
연말까지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들어 급조된 팀이지만 성과만큼은 다른 팀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가만히 다짐하는 그였다.
* * *
라 메종드 아르누보의 오픈을 일주일 앞둔 시점.
정보아 차장이 퀭한 눈으로 현장 입구에서 서성였다.
“오늘은 좀 춥네.”
아르누보 매장 인테리어 현장 설계를 자원한 후로 폼나는 양장 대신 공사부 유니폼으로 나온 두툼한 점퍼 차림의 편한 복장을 한 정보아는 지퍼를 여미며 바람을 막았다.
10월 초임에도 12절기 중 한로(寒露)가 지나자마자 뚝 떨어진 날씨.
서늘한 기온에도 그녀의 볼에는 홍조가 스며들어 있었다.
곧 모어 스페이스의 수장, 이성하 대표가 방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어. 나도, 남주형 이사님도.”
하나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 아쉬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디자인, 공사 운영, 마감 디테일과 퀄리티.
공사가 끝나고 난 후 돌이켜 보면, 그중 어느 한 부분은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부분이 꼭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프로젝트에 몰입했고, 그만큼 결과물도 만족스러웠다.
‘이게 다 한예건, 그 사람 덕분이긴 하지만.’
실무 경험이 전무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사 과정을 너무도 잘 아는 데다, 시공과 자재에 대한 지식도 남주형 이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남 이사의 말에 따르면, 디자인과 시방서를 완전히 다 외우고 있는 것 같다고.
디자인이야 자신이 직접 했으니 당연하다 치더라도, 시방서까지 다 외우고 현장을 감독하는 건축주는 드물다.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조금 두려워질 정도다.
잠시 후.
익숙한 차량이 매장 앞에 섰다.
이성하 대표와 남주형 이사가 차에서 내렸다.
“오셨어요, 대표님.”
“그래, 고생 많았어. 정 차장. 하. 하하.”
정보아의 수고를 치하하는 이성하 대표의 말투가 조금 긴장한 듯 어색했다.
“흠…. 이게 그 괴물 디자이너의 결과물이란 말이지. 왠지 떨리는데.”
닫힌 출입문 앞에 마주 선 이성하 대표의 표정에 비장함이 어렸다.
사무실과 현장이 지척에 있음에도 이성하 대표는 공사 진행 중 단 한 번도 현장에 방문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이 자신의 간섭 없이 마음 편히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면에서 느꼈던 감동을 현장에서 느낄 수 없을까 두려워서였다.
남주형 이사가 먼저 나서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자 이성하 대표가 다급히 만류했다.
“자, 잠깐!”
이성하 대표는 남주형 이사과 정보아 차장을 돌아보았다.
지난 한 달간의 치열함이 그려지는 피곤한 얼굴.
하지만 다행히 그들의 눈빛에서 불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도한 이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열지.”
“네.”
남 이사가 육중한 철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이 대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놀라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헙!’
문틈 사이로 가장 먼저 바닥의 화려한 대리석 패턴이 들어온다.
과하지 않은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대리석 바닥.
각기 다른 돌을 섞어 패턴을 만들었음에도 말이 안 될 정도로 평활하다.
왜곡 없이 벽과 천장이 그대로 반사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었다.
“대리석 시공 후 전체 바닥을 연마한 건가?”
“네.”
“어쩐지…, 그랬군.”
바닥 시공 후 줄눈 작업까지 마친 상태에서 전체 바닥을 깎아내지 않고는 절대로 불가능한 평활도다.
공정이 여러 번 추가될수록 비용이 올라가기에 일반 상가에서는 거의 적용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백화점 명품관이라면 또 모를까.
이성하 대표가 들어가지 않고 계속 바닥을 주시하자, 지친 표정의 남 이사가 부연했다.
“바닥 평활도 확보를 위해 전체 바닥을 연마하고, 이후 무광 작업과 연마를 반복해 현재의 은은한 광택을 연출했습니다. 건축주의 최종 승인이 있기까지 10회 정도 반복한 것 같습니다.”
“10번이나…. 알만하군.”
한예건이 꼼꼼히 현장을 돌아다니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습이 안 봐도 눈에 훤히 그려진다.
‘미묘한 광택을 균일하게 만드느라 작업자들이 제법 고생했겠군.’
이성하 대표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근엄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매서운 눈빛을 장착한 이성하 대표가 옥의 티가 없는지 살피는 동안 그의 뒤를 조심스레 따르며 긴장을 멈추지 않는 두 사람.
결국, 그의 입에서 기다리던 탄성이 흘러나왔다.
“히야~. 정말 대단한데!”
그제야 계속 긴장해 있던 정보아 차장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후아~ 진짜 다행이다.”
그와 동시에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 이사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다들 진짜 수고했다. 한예건 실장 반응은 어때? 좋아하디?”
“좋다, 안 좋다, 겉으로 평가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추가 수정사항이 없는 걸 보면, 만족한 것 아닐까요?”
남 이사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수정사항이 없단 말이지?”
정보아 차장이 그제야 넋두리하듯 한탄했다.
“한예건 팀장, 얼마나 꼼꼼한지 진짜 말도 못 해요. 왜 우리 눈에는 안 보이던 게 한 팀장만 눈에만 보이는지. 그거 다 수정하느라 공사 기간이 일주일이나 더 늦어졌다니까요.”
“흠. 그래?”
대화 중에도 천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이 대표가 벽으로 다가가 목재 장식 몰딩을 손등으로 쓸었다.
거친 느낌이 전혀 없는 데다, 오일 코팅으로 인한 끈적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표면이 보들보들한 게 보송한 페브릭 표면을 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야~ 원목에서 어떻게 이런 촉감이 느껴지냐? 이거 한 팀장 가구공장에서 만들어 온 거 맞지?”
“네에~. 진짜 대박이죠? 저도 처음 만져봤을 때, 깜짝 놀랐다니까요. 샌딩 작업에 엄청 공을 들인 것 같아요.”
정 차장이 호들갑스럽게 동의했다.
이성하 대표는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 굳은 표정을 풀고 평소의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하하. 이제 가구 세팅하고 오픈만 잘하면 되겠다. 정 차장, 추가 공사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한 실장에게 디자인 받아서 도면 작업 중이에요. 공사는 오픈 행사 마치고 2주 뒤에 들어가기로 했고요.”
“좋아. 한남 엘리우 진행도 잘 체크하고 있지?”
“네. 지난주 인허가 접수 들어가서 조만간 분양 완료된 세대 디자인 먼저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이성하 대표가 대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20평짜리 프로젝트 하나가 마중물이 되어 콸콸콸 프로젝트가 샘솟기 시작했으니, 어찌 좋지 않을까?
옆의 40평 매장은 물론이요,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고급 빌라 십여 채가 넝쿨째 굴러들어왔다.
한예건을 통해 계약이 확정된 매출이 아르누보 매장을 포함해 총 80억 규모.
모어 스페이스 전체 매출로 따지자면 그리 큰돈은 아니겠지만, 그게 한예건이란 한 사람을 통해 겨우 2달 만에 성사된 매출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아르누보 매장 계약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자신이 놓친 운을 다른 회사에서 날름 가져갔을 것을 떠올리니, 모골이 송연했다.
이성하 대표는 정보아 차장에게 다시 한번 강조해 지시했다.
“여기 아르누보 매장 오픈하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한예건 실장의 입지도 상당히 높아질 거야. 그러니 앞으로도 정 차장이 계속 전담해서 커뮤니케이션 부탁해. 견적이든 자료든 지원할 거 있으면 팍팍 하고.”
“네, 물론이죠! 그리고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정보아 차장이 배시시 웃으며 눈을 빛냈다.
“응? 뭐, 보너스? 이렇게 고생했는데 당연히 줘야지!”
이 대표의 호언장담에 정 차장이 냅다 받았다.
“호호. 물론 공사 다 끝나고 나면 휴가까지 알뜰하게 받아낼 겁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
남주형 이사와 시선을 교환한 정보아 차장이 이성하 대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내일 여기에 누가 방문하는지 아세요?”
“응? 내일? 누가 오는데?”
정보아 차장이 오묘하게 눈을 빛내며 입을 떼려는 중에 문이 열리고 마침 한예건이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예건이 이성하 대표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 대표님.”
“아하하. 한 실장 오랜만입니다. 결과물이 상상 이상입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 제가 아니라 남 이사님과 정 차장님께서 하셨죠. 저한테 말은 안 하시지만, 제 요구에 맞춰주신다고 속 꽤나 썩으셨을 겁니다.”
“하하하. 뭐, 우리 일이 다 그렇죠. 고객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우리 인테리어가 하는 일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하네요. 덕분에 공사 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역시 모어 스페이스에 믿고 맡긴 보람이 있습니다.”
예건이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직원들 덕분에 건축주에게 칭찬을 들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성하 대표는 뿌듯함을 숨기지 못하고 이를 드러낸 채 함박웃음을 웃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게 다 한예건 실장님의 멋진 디자인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다른 곳에서 또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모어 스페이스에 지급한 20억의 공사비와 목재 장식을 제작하는 데 따로 들었을 자재비 및 인건비를 대략 감안해도 평당 1억 3천.
이 이상의 비용을 들여 인테리어를 한다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 직접 현업에 있기에 너무도 잘 아는 이성하 대표였다.
예건은 그런 이 대표의 속마음을 짐작하고 입가에 살포시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게… 의외로 빨리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네?”
이성하가 예건의 뜻을 대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다.
“그게… 무슨?”
“명동 백자호텔, 모어 스페이스에서 공사 진행하고 계시지요?”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럼 백자호텔 대표님도 알고 계시겠네요?”
“어…. 이혜수 대표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알고 있죠.”
“내일 그분이 여기 방문하시기로 하셨습니다.”
“네? 이 대표님이요? 아니, 왜?”
이성하 대표가 궁금한 듯 물었다.
“저희 아르누보 매장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백자호텔 대표님께서 한 가지 부탁하시더라고요.”
“부탁이라면?”
“내일 이성하 대표님도 함께 만나고 싶으시다고요. 아무래도 백자호텔 측에서 저희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혹시 참석 가능하신지.”
예건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이성하 대표가 반색하며 승낙했다.
“당연히 참석해야죠.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오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