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성장의 기틀 (1)
– 아니, 미스터 한! 도대체 거긴 또 언제 리뉴얼 했어요? 그리고! 왜 그걸 이제 알려줘요?
따지듯 묻는 니콜의 물음에 예건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아직 오픈한 지 일주일도 안 됐어요.”
– 하아-. 그래도…. 전에도 말했지만, 너무 빨리 주목받는 건 안 좋다고요.
애써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나 버렸다. 가우디 연구소에서 예건을 찾고 있다던 니콜의 말이.
이상하게 그 생각만 떠올리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진다.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쉽지 않다.
이런 말이 오갈 것 같아서 최대한 연락을 미룬 것도 있지만.
어쩌겠나? 그렇다고 장사를 안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꾸 그 일이 신경 쓰여서요.”
예건이 침울하게 대답하자, 니콜이 안쓰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너무 걱정하지 마요. 우리 쪽에서도 방법을 검토하고 있으니까. 매일 변호사들이랑 이야기하고 있으면 내 본업이 뭔지 가끔 헷갈릴 정도예요.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감사 인사에 니콜이 쑥스러웠는지 냉큼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 우리 발루아 가구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이제 진짜 텅텅 비어가요.
“한 달 뒤에는 보낼 수 있을 거예요.”
– 좋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발루아 통매각이 잘 되어서 연말에는 보너스 한 번 두둑이 받아보고 싶네요.
“네. 꼭 그렇게 될 겁니다.”
– 그럼, 완성되면 연락해요. 아! 아르누보 리뉴얼 축하해요. 다음에 꼭 갈게요.
“네.”
니콜과의 통화 몇 시간 후,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 예건아, 너 지금 가게 좀 올 수 있겠니?
“네? 무슨 일 있어요?”
– 어. 그게. 크리스티앙에서 오픈 축하 선물을 보냈는데. 아무래도 네가 직접 봐야 할 것 같아서.
“알겠어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
업무를 정리하고 논현동 아르누보에 도착했을 때, 예건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예건과 친한 카페 여사장님이 그를 발견하고 가게를 나왔다.
“와~ 한 실장, 도대체 저게 다 뭐야? 나 저런 거 처음 봐. 아까부터 사람들 몰려들어서 사진 찍고 난리도 아냐.”
예건이 흐뭇한 미소로 사장님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희 거래처 사장님이 신경 좀 쓴 모양이에요.”
“저런 오픈 선물을 하는 거래처가 있다고? 도대체 그 센스 넘치는 거래처가 어딘데?”
카페 사장님이 가리킨 곳은 간판이었다.
검정색 금속 철물로 만들어진 아르누보 매장의 간판 뒤를 붉은 장미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간판뿐만 아니라 기둥 장식과 철로 만든 의자 주변도 온통 탐스러운 장미로 가득했다.
예건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있어요. 그런 좋은 거래처가.”
예건은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있는 여느 주변 사람들처럼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를 실행해 사진을 촬영했다.
마담 르네의 직통 연락처로 짤막한 감사 인사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문자에 동봉해 보냈다.
곧장 답변이 돌아왔다.
–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미스터 한의 성공이 우리 크리스티앙의 성공이기도 하니까.
카페로 들어갔던 카페 사장님이 예건이 즐겨 먹는 커피를 가져와 내밀었다.
“어? 저 괜찮은데요.”
“내가 안 괜찮아. 어서 받아. 한 실장 가게 덕분에 우리 가게가 대박인데?”
카페 내부를 들여다보니, 정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마침 이날은 11월 11일이었다.
빼빼로데이를 즐기기 위해 길을 거닐던 연인들에게 아르누보는 더없이 좋은 촬영지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유명 SNS에는 ‘빼빼로데이’라는 검색어의 뒤를 이어 ‘논현동’ ‘아르누보’가 검색어 상단에 고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SNS 아래 댓글에는 위치를 물어보는 질문이 줄을 이었다.
– 와~ 대박 한국에 이런 데가 있어요?
– 이벤트 제대로다.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
– 논현동 가구 거리. 얼마 전에 일부러 고객 줄 세우기 한다고 기사로 두들겨 맞았던 곳임
└ 아! 뉴스 본 기억 난다
└ 이 정도면 맞아도 안 아프겠는데? 냅다 기사 엎어치기
└ 주인이 겁나 부자인가 보네. 아니면 빼빼로데이 기념해서 여친한테 선물한 건가?
└ 주인이 아줌마던데? ㅋㅋㅋㅋ
– 나 여기 근처인데, 당장 남친이랑 간다!
– 여기 진짜 예쁨. 근데 사진 찍으려면 엄청 기다려야 함. 대기줄 장난 아님
– 기다리는 게 대수야? 저기서 안 찍으면 평생 후회할 거 같은데
└ 맞말, 인생샷 맛집 인정. 사진빨 진짜 잘 받음 (사진)
└ 나도 당장!
SNS를 보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카페 사장은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비싼 커피 값 때문에 항상 썰렁하던 매장이 잠시나마 사람들로 가득한 것을 보니, 기분도 전환되고 좋았다.
“손님 많은 것도 나쁘지 않네. 다음에 한 실장한테 우리 카페 디자인이나 좀 해달라고 할까?”
잠시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던 카페 사장이 이내 예건에게서 들었던 공사비에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그래도 26억은 아니지.”
그런 그녀의 시선이 처음 예건에게서 구매했던 가구에 눈길이 갔다.
저 가구들이 사군자 시리즈의 시작이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한 실장 같은 대단한 디자이너를 가장 먼저 알아봤다는 것에 뿌듯해진 여사장은 괜히 어깨를 들썩거렸다.
혹시나 나중에 한 실장이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고, 아르누보가 세계적인 가구점이 된다면.
저 가구들도 엄청난 가치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호호호. 나중에 한 실장한테 인증서 하나만 써 달라고 부탁해 볼까?”
한 실장의 성공을 확신한 사장은 자신의 생각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 * *
아르누보 매장 오픈이 세간의 관심을 끈 덕분에 국내 가구 주문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호텔에 납품하기 전까지는 사군자 시리즈의 다른 품목들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아쉬워했으나, 연말까지는 계약된 물량을 맞추는 것도 벅찬 상황이었으니 구태여 일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매출 증대 같은 외적 성장을 차치하고서라도 라 메종드 아르누보의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졌다.
기존 가구공장 인근의 300평 규모 공장을 매입해 이전하고, 부족한 공장 기계 장비를 최신식으로 사들였다.
근무하는 직원도 8명에서 20명으로 늘렸다. 이후 매출 증가세를 확인하고 50명까지 꾸준히 늘릴 예정이다.
최필수 사장에게는 기존 공장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아르누보의 지분 15%를 넘겼다.
매일 늘어나는 생산품들을 납품 때까지 보관하기 위해 기존 공장은 보수를 하고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발루아 가구 제작이 모두 끝났네.
업무 중에 최필수 사장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예건은 평소보다 조금 한가해진 주말이 되어서야 광주로 향할 수 있었다.
창고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최필수 사장이 자신을 발견하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이쿠, 우리 대주주님 오셨는가?”
최 사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완성된 가구들이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예건이 그의 손을 맞잡으며 은근한 미소를 흘렸다.
“여유가 넘치시는 걸 보니, 제품이 잘 나온 모양이네요.”
“크흠!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나? 따라오게.”
너무도 당당한 최 사장의 모습에 예건은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를 따라 창고로 들어갔다.
반짝.
불이 켜지고, 가구를 꼼꼼히 살피던 예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디자인은 자신이 보내준 그대로였다.
그런데 가구에 새겨진 조각의 디테일이 기존에 최필수 사장의 공장에서 생산되던 품질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꽃잎과 이파리 등 식물을 표현한 나무 조각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고, 디테일은 말할 것도 없이 정교했다.
‘중간 단계에서 확인했을 때는 이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갑자기 높아진 퀄리티에 놀란 예건이 최필수 사장을 돌아보았다.
“사장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예건이 좋아할 줄 알았다는 듯 최 사장의 입가가 위로 솟았다.
“우리 공장에 보물이 들어왔어.”
“네? 보물요?”
“잠시만 기다리게. 내 소개해줄 테니.”
창고를 나가고 얼마 후, 최 사장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건실한 청년과 함께 돌아왔다.
“이 사람이 내가 아까 말한 보물이네.”
“하하. 사장님도. 오늘따라 칭찬이 과하신데요. 안녕하세요, 한 실장님. 사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조창준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마주 잡은 오른손의 두꺼운 굳은살이 창백한 안색과 대조되었다.
두 사람이 데면데면한 얼굴로 멀뚱히 서로를 보고만 있자, 최 사장이 자리 이동을 권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고.”
자리를 잡은 최필수 사장이 자청해서 조창준에 대해 설명했다.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인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수재라고.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조창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현실이라는 게, 그리 녹록치 않더라고요. 나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해서…. 하하하.”
무덤덤하게 말하기는 했으나, 그 속이 어디 마른자리처럼 보송할까?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예술가로 명성을 높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몸소 체험한 그는 해외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돈을 모으려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업무 조건이 좋은 곳을 찾다 최필수 사장의 가구공장이 눈에 띄었다고.
예건의 머릿속에 전생에 그가 만났던 수많은 수공예가들이 떠올랐다.
철을 다루었던 아버지와 그의 동료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석벽을 다듬었던 석공들, 타일 공예가.
몸으로 예술을 만들어내는 공예가의 삶은 과거나 지금이나 녹록지 않다.
예건은 조창준의 대답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과거를 떠올리며 계속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에 살짝 생기가 돌았다.
“처음 면접 보러 온 날, 최 사장님의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아르누보 매장 천장 장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디자인이며, 제작 퀄리티까지 정말 나무랄 데가 없어 보였거든요.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입사했죠. 이제 막 3개월 됐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최필수 사장이 말했다.
“제법 열심이다 싶어서 중간 검수에서 탈락한 가구들로 조각 연습이나 하라고 맡겼더니, 아주 예술 작품을 만들어 놨더라고. 하하하.”
“그럼, 설마 저기 있는 거 전부?”
“그래, 자네가 재작업 지시한 가구들뿐만 아니라 모든 가구 디테일이 이 친구 손을 거쳤지.”
“그랬군요. 어쩐지.”
디테일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올라간 것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도 한 사람이 만든 듯 통일감이 있었던 것이 그 때문이었나 보다.
소름 돋을 정도로 정교한 디테일의 일관성 덕분에 가구의 가치도 한층 더 높아졌다.
“어떤가? 자네 보기에는?”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역시, 그렇지? 하하하.”
최필수 사장은 조창준에게 조각을 맡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예건의 평가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었다.
예건의 안목은 최 사장의 식견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런 그의 기준에서 보아도 조창준의 실력은 탁월했다.
작가로서 인정받기까지 시간은 좀 걸릴지 모르겠으나,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 세상에서 인정받는 조각가가 될 자질이 충분해 보였다.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결심을 굳힌 예건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유학은 포기하신 겁니까?”
조창준이 얼른 팔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필요한 자금이 모이면 다시 도전해야죠.”
그의 대답을 들은 최 대표의 표정이 아까보다 조금 굳어졌다.
‘최 대표님도 조창준 씨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최 대표가 조창준을 소개해주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예건이 최 대표를 설득했듯, 그 또한 설득해주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예건은 곧바로 조창준에게 합류하기를 종용하지 않았다.
“혹시 유학처로 알아보신 곳은 있으신가요?”
“아직 확정은 아니고요. 독일 쪽으로 원서를 넣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독일이요? 목공예를 배우기에는 독일도 괜찮죠. 저도 힘이 닿는 데까지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유럽 쪽 사정에 정통한 분을 알거든요. 아마 장학금도 지원받을 수 있을 거예요.”
“아, 정말입니까? 그래 주시면 정말 좋죠.”
예건과 창준의 대화를 들은 최 대표의 눈이 당장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두 사람은 연락처를 교환했고, 창준은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학 관련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안절부절못하던 최필수 사장이 대뜸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한 실장!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 거야? 내가 지금 창준이 우리 회사에 앉히려고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 줄 아나? 요즘은 저렇게 일 잘하는 직원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뭐? 알고 있다고?”
알고 있다니 되려 말문이 막혀버린 최 대표.
하지만 어떻게든 예건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아니, 아는 사람이 그래? 잘 적응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한텐 유학처는 왜 알아봐 준다는 거야?”
답답한 최 대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건은 빙긋 웃으며 되물었다.
“황금알 낳는 거위를 닭장에 가둬 계란을 낳으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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