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성장의 기틀 (3)
“이경록 차장님이 우리 기획팀에 들어오시고 기획팀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이제 한 달이 지났습니다.”
“와~ 그게 아직 한 달밖에 안 됐나요? 전 반년은 지난 것 같은데.”
김 대리가 너스레를 떨자, 이 차장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지.”
예건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동안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기에도 급급했죠.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기획팀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예건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팀원들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회사 내에 전문 분야별로 다양한 팀이 있음에도 김 대표님께서 기획팀을 별도로 만든 것은 각 팀이 쉽게 가질 수 없는 유연성을 확보하라는 뜻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전문성이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저희가 하는 프로젝트들은 실험적이면서도 복합적인 건축 공간이고, 또한 완성도도 놓칠 수 없는 건축입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역량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팀의 성장을 위해서는 팀의 일부인 팀원 스스로가 성장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이들이 예건을 만나기 이전이었다면 여기서 뭘 더 어떻게 노력해야 실력을 늘릴 수 있냐며 반발을 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지 않은 기간, 근척에서 예건이 일하는 걸 지켜보며 알게 모르게 배운 것이 많았던 이들이었다.
이미 비교 대상이 한예건 같은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경록 차장이 예건의 뜻에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이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자신의 건축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건림건축에 스스로 발을 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기획팀에서 하는 일들이 회사의 수익을 위해 스스로를 부품처럼 소모하는 시간이 아닌, 여러분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직원들 모두 궁금증이 가득한 눈빛이었으나 예건의 말이 끝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래서 당분간 멘토-멘티 체재를 운영할까 합니다.”
“멘토? 그게 뭐죠?”
업무 스킬 향상에 가장 목말라 있던 김상욱 대리가 재빨리 질문했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멘토, 직급이 낮은 사람을 멘티로 정해 각 2명씩 짝을 짓고, 멘토가 책임지고 멘티의 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겁니다. 보통 멘토링 시스템이라고 하죠.”
과거 장인에게서 기술을 전수 받던 시절에는 선·후배 간의 밀착형 도제식 멘토링 교육이 흔했다.
하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현대에는 서로 간섭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커져 이런 시스템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멘토링 교육 시스템만큼 구성원들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성장시키는 것도 없다.
“저 또한 최대한 많은 노하우를 팀원들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팀원들 개개인의 경험이나 실력을 가장 많이 파악하고 있는 차장님과 협의해 파트너를 결정지어 개별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활기찬 대답에서 배움에 대한 저들의 열의가 느껴졌다.
예건은 네오소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현대건축에 대해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음을 깨달았다.
‘내가 성장하는 만큼, 저들의 역량도 커져야 한다.’
함께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예건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이었다.
이미 그는 여러 번 실력을 검증하며 팀원들에게 믿음을 쌓았다.
워밍업은 끝났다.
앞으로는 리더로서 조금 더 냉철하게 기획팀을 운영할 생각이다.
건림건축과 함께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소훈 대표와 약속했던 3년.
그 안에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없다면, 세계 최고라는 꿈을 함께 이루는 것은 다른 조직이 될지도 모른다.
“저는 우리 기획팀이 건림건축 최고가 아닌, 한국 최고의 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여러분도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형한 예건의 눈빛을 본 팀원들은 그 누구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녹록지 않은 사회생활에 찌들어 잊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포부가 어느새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심장을 조이고 있었기에.
* * *
“사무실을 옮기길 잘했군.”
예전보다 좁기는 했으나 복도 끝에 있는 사무실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신경이 좀 쓰이는 거라면 복도로 난 유리벽이었는데.
유리 벽면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도면으로 붙이고 나니 썩 마음에 들었다.
“이제야 좀 일하는 것 같네.”
도면으로 도배한 벽면 외에는 장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집무실에는 설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만 가져다 놓았다.
미니멀리스트의 방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썰렁하다.
Empty Space.
채우기 위해 비워 둔 장소.
지금 그의 마음 같은 공간이다.
새로운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기존의 지상물을 제거하고 땅을 골라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공간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는 것이다.
예건은 한국의 서울이 좋았다.
끊임없이 기존의 건축물이 파괴되고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며 도로의 풍경이 바뀐다.
가치를 다하고 허물어지는 건축물을 볼 때마다 애초에 건축물을 좀 더 잘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더 많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는 게 못내 아쉬웠다.
미처 자신을 만나지 못하고 개성 없는 건축물로 채워지는 도시가, 하루가 다르게 무채색 건축물로 우울해져 가는 거리를 볼 때마다 입맛이 씁쓸하다.
정 둘 곳이 없는 메마른 땅.
그 속에 마음 가는 곳 하나, 표정 있는 건축물을 짓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샘솟았다.
결핍이야말로 창조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원동력이다.
예건은 다시 한번 비어 있는 사무실 내부를 훑어보았다.
나머지 벽면이 새로운 건축 디자인으로 가득 찰 때까지.
예건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다.
이곳에서 앞으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건축물이 탄생할 것을 생각하니 기대감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똑똑.
짧은 노크와 함께 이경록 차장이 문을 열었다.
“한 팀장, 빠르네. 벌써 정리 다 끝난 거야?”
“네, 별로 할 게 없어서요. 팀원 업무역량 기초 자료 조사는 끝났나요?”
“어. 그것 때문에 온 거야. 잠시 시간 좀 낼 수 있을까?”
“네. 미팅룸으로 가죠.”
자리에서 일어서 필기구를 챙기고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띠리릭-.
잠금장치가 잘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고 이경록 차장을 따른다.
이 차장은 예건이 맞은편 자리에 앉자마자 준비한 A4 서류를 내밀었다.
“한 팀장이 준 양식으로 작성한 직원 평가서야.”
“기준 대상은요?”
“전에 있던 공모전 팀원들 직급별 업무역량을 기준으로 작성한 거라 과평가되지는 않았을 거야.”
처음 하는 일이라 익숙지 않았을 텐데, 빠진 부분 없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잘 정리하셨네요.”
서류를 검토하는 것을 보며 바짝 긴장해 있던 이 차장이 칭찬 한마디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서를 볼수록 이경록 차장에게 맡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작성한 평가서는 죄다 기준 미달이었는데….’
만약 자신이 만든 평가서를 그대로 팀원들에게 내밀었다면 의욕을 갖기도 전에 모두 좌절감을 느끼고 기획팀을 빠져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아찔한 기분에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업무역량, 소통능력, 업무태도에 이르기까지 이 차장이 평가한 서류는 팀원 대부분이 중급 이상의 포지션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평가서가 있었다.
모든 업무능력평가가 기준보다 상급임에도 불구하고 업무태도에 대해서는 평가 보류가 적혀 있는 한 사람.
서영광의 평가서였다.
“영광 씨 평가서는 아주 후하게 점수를 주셨네요.”
“하하하. 뭐, 신입사원한테는 상대적으로 기대감이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 역량 측면에서 보면 뛰어난 인재인 건 사실이고 말이야.”
“그런데 왜 업무태도는 보류입니까?”
“아, 그게 태도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말이지….”
말을 명확히 끝내지 못하는 걸 보니 고민하는 게 뭔지 대충 알겠다.
서영광이 겉으로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건 하주연 대리도 마찬가지였으나 하주연은 데이터가 이미 충분히 쌓여 있었고, 서영광은 전혀 없다는 게 두 사람의 차이였다.
직원을 평가하는 데 있어 신중을 기울이는 이 차장의 성품이 마음에 들었다.
“영광 씨는 기획팀 합류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좀 더 지켜보도록 하죠.”
“하하. 그래, 그게 좋겠어.”
그제야 이 차장이 안도하는 표정을 하고는 직원평가에 대한 상세한 의견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조사 자료를 토대로 멘토와 멘티 그룹이 결정했고, 예건은 자신과 이경록, 장현우 과장,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연구팀을 조성할 생각이라는 것을 밝혔다.
“연구팀이라니, 뭔가 본격적인 기분이 드는데.”
“맞습니다. 워밍-업은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려고요. 연구팀은 기획부의 중추 역할을 하는 조직이 될 겁니다.”
예건의 말에 이경록이 깜짝 놀라 물었다.
“기획부? 설마 부서 단위까지 확장할 생각인 거야?”
건림건축의 설계팀 구성은 팀장 한 명당 5~7명 정도의 팀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기획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몸집을 키우려면 적어도 팀 3개 정도의 규모는 되어야 한다.
“최소 20명, 설계뿐만 아니라 감리, 모형, 견적까지 모두 하나의 조직으로 묶을 겁니다.”
“20명?”
그 말은 한예건을 중심으로 건림건축과 별개의 중규모 설계사무실을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김 대표께서 제안하신 거야?”
“아뇨. 하지만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긴.
지금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로 몸집을 불리고 있는 기획팀이었다.
이경록은 한예건이 있는 기획팀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수긍했다.
“하지만 그런 계획은 당분간은 숨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당연하죠. 저도 주변의 질시를 미리 살 생각은 없습니다. 프로젝트를 늘려가면서 규모도 자연스럽게 키울 겁니다.”
예건이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포부를 드러내는 것은 이경록을 신뢰하기 때문이리라.
이경록은 예건이 어디까지 바라보고 있는지 내심 궁금해졌다.
“한 팀장이 전에 말했던, 우리 기획팀을 국내 최고의 팀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말이야. 그거 혹시 국제공모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거야?”
단지 말뿐인 계획으로 흘려듣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모양이다.
이러니 이경록 차장이 좋을 수밖에.
어차피 예건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
국제건축공모전은 그 목표를 향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
“네, 맞습니다.”
예건이 흡족한 얼굴로 빤히 이 차장을 쳐다보자,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하하, 그랬군. 실은 내 목표도 그거였거든. 공모전 팀에 있을 때 말이야. 비록 한 번도 당선된 적은 없었지만.”
“다행이네요.”
꿈을 이루지 못한 게 다행이라니.
이 차장이 난감한 얼굴로 예건을 바라보며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확인했다.
“음?”
예건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 차장님의 그 꿈, 기획팀에서 이룰 수 있으실 테니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