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3)
013화. 격이 다른 디자인 (1)
2번째 설계팀이 브리핑을 마치고 갖게 된 15분의 짧은 휴식.
대회의실을 나온 심사위원들의 소감이 이어졌다.
“이사장님 말씀대로 한 번에 비교하면서 보니까, 확실히 더 나은 쪽이 두드러져 보이는군요.”
“첫 번째 팀이 준비를 더 제대로 한 것 같던데요.”
“그러게요. 두 번째 팀은 컨셉부터 어수선한 게, 정확히 어떤 점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건지 영~ 모르겠더라고요.”
심사위원들의 곁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시설팀장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이 이어졌다.
“시설팀장이 보기에는 어떤가요? 실무자의 입장이 궁금하군요.”
“하하. 글쎄요.”
“빼지 말고 말해봐요. 나중에 이상한 설계안 선정했다고 뒷담 하지 말고.”
“하하. 누가 뒷담을 한다고 그러십니까?”
1달 정도의 짧은 공모전 준비 기간을 감안하여 실무적인 접근보다는 신축 건물의 컨셉에 집중한 공모전이었다.
설계 업체 선정 후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면 시설팀장의 주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지금 심사위원으로 있는 이들은 의사들로 구성된 이사진이니, 준전문가인 시설팀장의 의견이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시선이 몰리자 시설팀장은 마지못해 대답하는 척하며, 자신의 의견을 은근히 강조했다.
“흠… 제가 보기에도 첫 번째 디자인 쪽이 종합병원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아 보였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시설팀장의 발언이 마음에 드는 모양.
대부분 이사진의 의견이 자연스럽게 자신이 응원하는 회사로 기울어진 것을 확인한 시설팀장은 여유롭게 중도를 지키는 태도를 보였다.
“아직 마지막 팀이 남았으니, 마저 들으시고 의견을 모아 보시지요.”
“그럽시다. 남은 시간도 넉넉지 않은데, 질문이 너무 길어지지 않으면 좋겠군요.”
다들 바쁜 일정을 쪼개 시간을 내었으니, 비슷한 생각임은 당연했다.
* * *
발표자인 박노훈 이사가 심사위원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하고 발표대에 섰다.
“건림건축의 박노훈 이사입니다.”
짝짝짝.
형식적인 박수 소리가 이어지고, 스크린의 페이지가 바뀌며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발표를 시작하고 겨우 3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이트 분석, 최신 병원 건축 트렌드와 같은 이론 위주의 내용이 이어지자 어딘가 지루해 보이는 심사위원들의 표정.
박 이사가 원래 준비했던 것보다 훨씬 간결하게 중점만 전달하고 있음에도 상대의 반응은 냉담했다.
‘먼저 브리핑했던 회사들도 비슷한 분석을 한 모양이군.’
이래서 마지막 발표는 위험하다.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박노훈 이사의 손에 땀이 차올랐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를 것이다.
비슷한 사이트 분석에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건축가가 어떤 철학으로 설계하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것이 컨셉이니까.
“최근까지도 한국의 대형 병원 건축 디자인은 의료 전문성을 드러내고 관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능 중심의 모듈화된 현대적인 건축 디자인을 선호하였습니다.”
지금부터 흐름을 바꾼다.
박노훈 눈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다 발전된 병원 건축은 치유환경, 즉 환자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환자 중심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새보람 종합병원의 컨셉을 ‘나눔의 건축, 치유의 공간’이란 이름으로 명명했습니다.”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저들의 행동은 수긍이 아닌 지적 만족감을 겉으로 드러낸 것일 뿐이다.
치유환경.
경제 발전을 우선하는 한국에는 아직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건축 개념은 아니지만, 의료 문화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병원들은 이미 치유환경 개념을 설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환영받는 획기적인 패러다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에서 그 사례를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단 비용이 많이 들고, 직접적인 효과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 최고의 설계 회사라는 건림건축은 겉으로만 번드르르해 보이는 이 컨셉을 가지고 어떤 접근 방식을 보여줄 것인가?
그런 흥미가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이어지는 매스 디자인.
다양한 크기의 3개의 직육면체가 입원 병동과 외래병동, 특수 치료 센터로 나뉘고.
하층부는 유선형의 매스가 그 셋을 부드럽게 이어준다.
“저희는 각 건축물 매스가 만들어 놓은 틈에 채광을 충분히 끌어들이는 공간을 만들어 나눔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비용 및 기능 최적화를 위해 일률적인 사각형 모듈로 만들어지는 공간들 사이에.
박노훈은 일부러 용도가 불특정한 비정형 공간을 흐트러뜨려 놓았다.
그중에는 몇 개의 층을 이어주는 거대한 빛의 아트리움도 있고, 소규모 조경이 있는 쉼터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부피를 가진 메인 로비는 벽을 따라 만들어진 긴 경사로를 통해 내부 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각이 없는 부드러운 유선형으로 이루어진 평면.
박노훈은 이 공간이 병원이라는 이름의 낯선 환경 속에서 환자가 가질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고자 하는 의도라는 것을 확실히 밝혔다.
뒤이어 배치 평면과 함께 로비의 내부 스케치가 공개되자,
“어?”
“흐음.”
여기저기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투시도가 아니라서 놀란 거겠지.’
원래는 엄청난 보정이 들어간 멋들어진 로비 투시도가 있어야 할 페이지였다.
‘조금만 더 빨리 결심했다면, 더 완벽한 브리핑을 준비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자연스레 저 멀리 건림건축 직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눈길이 옮겨갔다.
그의 시선 끝에는 배원기 이사장을 주목하고 있는 예건이 서 있었다.
* * *
브리핑 4일 전.
박노훈 이사는 모형팀으로 출근했다.
어제 막 프로젝트를 떠넘긴 터라 재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브리핑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모형의 진행도 문제거니와 하루 빨리 배치도를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 이사님 오셨어요?”
그를 발견한 주 과장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어, 어. 그래.”
알 수 없는 위화감.
‘왜 저렇게 여유 있는 거지?’
마감을 앞둔 모형팀이라기에는 너무도 여유롭다.
그 여유가 박노훈 이사를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예건 씨는?”
“아… 배치도 작업 중입니다. 저기요.”
주효섭이 테이블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고맙네.”
박 이사는 성큼성큼 주 과장이 가리킨 제도 테이블로 다가갔다.
벽면을 향해 돌아앉은 예건은 그가 온 것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도면 그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깨끗한 책상 위 노란 트레이싱 종이에는 선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음? 벌써 이만큼이나?’
외부 공간 전체 면적 천 평.
그중 대략 2/3 정도가 완성된 상태.
말도 안 되는 작업 속도를 목격한 박 이사는 인사하는 것도 잊고 배치도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예건이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다.
“어? 이사님 오셨어요?”
“아, 나 신경 쓸 거 없어. 작업해.”
박 이사가 흐뭇한 미소를 띠고 업무를 독려했다.
“오전 중에는 배치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럼 좋고.”
“다른 시키실 일이라도?”
“일은 무슨. 작업 진행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해서 온 거야. 내가 오히려 일에 방해되는 것 같군. 수고해.”
“네.”
예건이 다시 시선을 도면으로 옮기고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박노훈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모형실을 떠나,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예건은 정오가 되기 전에 배치도 초안을 가져왔다.
최종 결과물이 매우 흡족했던 박노훈은 초안 그대로 도면화하라고 직원에게 전달했다.
“이제부터 모형 진행할 건가?”
“네. 주건물 모형도 완성해야 하니까요.”
“좋아. 수고해.”
이때부터일 것이다.
박노훈이 여유롭게 발표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공모전 마감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일이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터지고야 말았다.
“이사님, 1층 배치 평면 완성했습니다.”
“그래? 어디 보지.”
예건이 만들어 디자인이 워낙 마음에 들었던지라 당연히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거라 예상한 박노훈.
그의 예상대로 외부 공간 디자인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
“잘 나왔군.”
하지만 이내 미소짓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경직되기 시작했다.
녀석에게 제시했던 가우디의 건축물을 닮은 디자인.
그 컨셉에 맞춰 완성된 공원 배치도를 1층 평면도와 나란히 겹쳐 놓자,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부드러운 유선형의 외부 공간과 동떨어져 보이는 딱딱한 직선의 건축물.
그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외부 공간 디자인이 너무도 완벽해서일까?
주가 되어야 할 건축 디자인보다 공원 디자인이 더 눈이 간다.
그제야 박 이사는 덜컥 겁이 났다.
‘정말 이대로 제출해도 괜찮을까?’
내부와 외부 모두 치유환경이란 컨셉을 가지고 시작했다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극단적인 자연주의 디자인을 추구하는 가우디의 디자인을 모던한 현대 건축물과 같은 평면에 놓고 보니,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내 잘못이다. 너무 욕심을 부렸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다른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목표만을 향해 달린 결과였다.
하지만 나아가 더 문제는.
예건의 디자인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저층부 디자인이 문제라는 거다.
예건의 디자인은 완벽했다.
철저히 치유건축이라는 컨셉에 맞춰 환우들의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
모형이 만들어질수록 더욱 확실해졌다.
그에 반해 치유건축이라는 대단한 컨셉을 다루면서도 결국 습관적으로 예산에 맞춘 설계를 해 버린 자신의 저층부 디자인은 완성되어 갈수록 부족함이 느껴졌다.
제목만 거창할 뿐, 알맹이가 쏙 빠진 양장 도서 같은 디자인.
이대로라면 그저 그런 평이한 결과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결국, 박 이사는 마지막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마감을 하루 앞두고서야 저층부 디자인을 다시 하기 이르렀다.
서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완충 공간을 만들겠다 결심한 것이다.
그로서는 큰 결단이었다.
이미 완성된 투시도를 버려야 했고, 적어도 3개 층 정도의 평면을 싹 다 새로 그려야 했기에.
하지만 이를 완성하지 못하면 팀이 한 달간 고생해 만든 결과물이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할 것이다.
박노훈은 배치도를 그리기 위해 가져왔던 예건의 초안 스케치를 찾아보았다.
‘어? 이건?’
조급함 때문인지 이전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단선으로 깔끔하게 그려진 건축물의 외벽 선과 기둥, 그리고 뜻 모를 내부 벽 선.
처음 이 스케치를 받았을 때는 외부 공간 디자인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분명 이 선들이 힌트가 될 것이라는 직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박 이사는 스케치를 스캔한 자료를 찾아 1층 평면도 아래 깔고, 그 의미를 찾았다.
건물을 지탱하는 원형 기둥을 맞추어 배치하니, 꼭 맞아떨어지는 배열.
이제야 외곽선과 내부선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아…하하.’
자신이 그토록 걱정했던 저층부와 외부 공간의 어색함이 그 선들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기존의 로비 평면을 크게 수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벽면의 최소한만 바꿀 수 있게 고려되었다.
‘내부와의 연결성까지 고려해서 외부 공간을 디자인한 거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당장 예건을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박 이사는 트레이싱 종이 위에 기둥만 표시한 후, 예건이 만든 벽면 디자인대로 도면을 수정해 팀원들에게 넘기고 이 상황을 모형팀에도 전달했다.
제출 하루를 남기고 모형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으니 당연히 주효섭 과장이 있는 대로 짜증 내리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는 순순히 협력했다.
‘1층 로비요? 평면 완성되면 바로 보내주세요.’
마치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없었다.
박 이사는 미친 듯이 스케치를 그려내 다행히 브리핑 준비를 완벽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