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걸림돌 (2)
곁눈질로 슬쩍 확인한 설무영 대표는 얼굴이 벌게져서 화를 억누르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섣불리 역정을 내지 마시라.
브리핑하기 전에 설무영 대표에게 먼저 언질해 놓았기에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고성이 오갈 뻔했다.
반면 언젠가 이런 상황에 직면할 거라 예상했던 예건은 평온하게 그의 질문에 대응했다.
“이승준 대표님께서는 건축사법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건축사법에 따르면 설계는 자격등록을 한 건축사가 해야 합니다. 자격이 없는 저는 건림건축 소속 건축사보로서 건축사를 보조할 뿐입니다.”
예건의 대답에 회의실이 웅성거렸다.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야?”
“건축가라 속이고 계약한 거면… 계약 취소도 가능한 거 아냐?”
웅성거림이 커지자 이승준 대표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분위기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설무영 대표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자, 분명 아무도 모르는 커넥션이 있다 판단한 이승준 대표는 아예 분란을 키우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하긴. 투자자의 신임을 얻어 대표로 승격된 마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이를 빌미 삼아 파헤치다가 우연히 설무영 대표와 관련된 비리라도 드러나게 되면, 3인 체제를 2인 체제로 바꿀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한쪽으로 쏠린 무게추를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다 생각한 것일 터.
테이블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선 이승준 대표가 임원들을 돌아보며 크게 말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렇게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설무영 대표 독단으로 설계 업체를 선정한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원점으로 돌아가 사옥의 규모와 예산부터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주장에 기다렸다는 듯 법무팀에서 나섰다.
“설계 계약 상에 위반사항이 없는지 다시 체크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계약 위반사항이 있다면, 건림건축을 대상으로 계약금 반환 청구도 해야 할 테니.”
“넵!”
이승준 대표는 승리감에 도취된 표정으로 예건을 돌아보았다.
“한 팀장, 그동안 수고한 건 알겠네만. 우리 네오소프트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
하지만 당황할 거란 그의 예상과 달리, 예건은 작게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건축주인 네오소프트가 일방적으로 해지를 하신다면 몰라도. 저희가 설계 계약금으로 받은 게 15억인데, 그 금액 전부 포기할 생각이십니까?”
“허! 뭐? 15억? 그렇게나 많았나?”
이승준 대표가 황당한 표정으로 묻자, 예건은 씩 웃으며 말했다.
“통상 설계 계약금은 30%이니까요. 기존의 설계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서 15억을 손실 보고, 추가 설계비를 또 들여서 그저 그런 사옥을 지으실 거라면, 뭐. 저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저희 회사도 그다지 손해는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허! 뭐라? 손해가 아니다? 만약 적법한 자격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설계가 진행된 게 외부에 알려지면 건림건축의 타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
건축 회사의 운영 시스템을 잘 모르니 하는 말이었다. 아니, 알면서도 억지를 부릴 수도 있겠지.
단층 주택부터 대규모 공장시설까지.
건축설계의 규모는 다양하고, 대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그 관리 범위는 방대하다.
그 많은 일들을 혼자 디자인, 설계, 법적, 기술적 검토를 건축사 1인이 도맡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자격 보유자, 관련 대학 졸업자 및 건축기사 보유자를 직원으로 등록해 건축사보, 즉 업무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예건이 프리 핸드로 초안을 잡으면, 실제로 그 프로젝트를 실무적으로 해석하고 핸들링 하는 건 건축사 자격을 보유한 팀장급들이었다.
그 말은 계약 및 설계 상에 법적 결격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예건이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자, 이승윤 대표가 비서에게 소리쳤다.
“어이, 황 비서! 건림건축 대표한테 전화해서 지금 당장 회사로 오라고 그래, 어서!”
“아, 네! 대표님.”
점입가관.
이승준은 아예 작정하고 물어뜯을 생각인 것 같았다.
‘하! 갑질도 적당히 해야 봐 주는 거지. 이건 도가 지나치잖아.’
차라리 설계를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면 요목조목 반박하기라도 하지, 아무 문제없는 계약을 들먹이며 뒤엎으려는 것을 보니 설무영 대표를 끌어내리겠다는 그의 목적이 너무도 훤히 보였다.
예건은 단상에서 내려가 씩씩거리고 있는 이승준의 앞에 섰다.
“뭐, 뭔가?”
“건림건축 대표 부르라면서요?”
“응?”
“접니다. 그 대표란 사람.”
* * *
“하하하. 자네가 건림건축의 공동대표라니, 하하하.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게 큰소리 쳤던 거였군! 아니, 언제 그렇게 된 거야?”
설무영 대표가 배를 잡고 웃었다.
말하자면 좀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김수훈 대표의 혜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주식을 양도하고,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조직 내부의 많은 반대가 있었으나, 김수훈 대표가 뚝심 있게 일을 처리한 덕분에 의외로 결정은 싱겁게 끝났다.
만약 그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난 건축사 자격도 없는 채로 프로젝트를 이끈 것으로 엄청난 지탄을 받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비록 불법이 아닐지라도.
결국, 이승준 대표가 만들었던 소란의 마무리는 회의 내내 잠자코 상황을 주시하던 설무영 대표의 묵직한 한방으로 끝났다.
“‘내가 결정한 사항이니, 만약 문제가 있다면 내가 책임겠습니다!’ 저를 그렇게까지 믿어 주시다니,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선배님.”
예건이 설무영의 말을 따라 하자, 설무영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흠흠. 어쨌든 이제 우린 같은 배를 탄 셈이니까 자네가 잘해야 내 면이 서는 거야. 그러니, 잘하라고.”
“당연합니다. 하하하.”
곁에 있던 비서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화기애애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지금 이렇게 웃을 때가 아닙니다. 이승준 대표는 한다면 진짜 하는 사람이라고요. 아까 임원들 앞에서 제대로 망신살이 뻗쳤으니, 분명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디자인을 저들이 요구하는 예산에 맞춰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서의 말대로 이 대표는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올 가능성이 높다.
“예산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예건은 따로 준비해 온 자료를 꺼내 설무영 대표의 앞에 내려놓았다.
설무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건 뭔가?”
“예산에 맞춘 수정안입니다.”
“수정안? 아까 분명히 구체적인 디자인이 나온 뒤에 협상하는 거라고 하지 않았었나?”
예건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거야, 요구 사항을 쉽게 들어주면,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법이니까요.”
전생의 그였다면, 타협 대신 끝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했을 터였다.
19세기는 전문가의 고집이 어느 정도 먹히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정보를 수집하는 게 쉽지 않기도 했고, 권력자들의 허세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것만으로도 창고 문을 열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고집을 부리다 엎어진 프로젝트가 한둘이 아니었긴 하지만.
‘다…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지.’
전생에서 이어진 것은 설계 능력만이 아니었다.
연줄 하나 없이 턱걸이로 졸업한 건축학도에서 거장의 명성을 얻기까지.
지난 50여 년의 세월이 그를 인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아등바등 해봐야, 지금은 의미 없는 몸짓일 뿐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웅크리고 내실을 다질 때다.
이번 생의 노력이 종이에서 나와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하면, 자연히 자신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은 금세 사라질 터.
지금은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답이었다.
그렇다고 프로젝트 진행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법.
“이 자료는 공개하지 마시고 가지고만 계십시오.”
“그래, 그러지.”
방해 공작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상대는 무언가 액션을 취할 것이다.
그때가 반격하기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예건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 * *
“우리 법무팀에서 알아보니 건축사보 자격으로 설계에 참여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하던데, 계약 내용도 하자 없고. 자네 말만 들었다가 이게 뭔가? 괜히 15억 계약금만 날릴 뻔했지 않나! 내가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이승준이 못마땅한 얼굴로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 한예건, 그놈이 자기가 건림건축 대표라고 말했네. 그 소리 듣고 내가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전화기 너머에서 뭐라 대답했고, 이승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머리에 짚었다.
“다음부턴 좀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 오라고. 손발이 제대로 맞아야 일을 하든가 말든가 할 게 아닌가.”
뚝.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이승준이 자리에서 일어서 창가로 향했다.
“쯧! 설무영 대표가 큰소리치는 꼴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니.”
그동안 경영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으면서 창업자라는 이유로 회사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설무영 대표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마침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사옥을 짓겠다기에 좋은 빌미가 될 거라 생각했다.
‘회사의 성장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허세만 부리는 방만한 경영자.’
그런 타이틀을 설무영 대표의 이력에 박기 너무 좋은 기회였으니까.
그래서 쌓아가고 있는 거였다.
내부에서 유일하게 그의 잘못을 비판한 제대로 된 경영인으로 보이기 위해.
투자자인 주주들에게 어필하기 딱 좋은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첫 번째 단추부터 꼬여버렸다.
“하필이면 놈이 대표일 줄이야….”
법무팀에서 가져온 사업자등록증에는 김수훈 대표의 이름 옆에 명확하게 한예건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다는 듯.
변경날짜가 지난주 금요일.
그는 자신의 테이블 위에 있는 사업자등록증을 노려보았다.
“쯧!”
뭔가 제대로 한 방 먹일 방법이 필요했다.
그는 비서를 불러 오늘 사옥 설립 보고회에서 받은 건림건축의 보고서를 건네며 조용히 지시했다.
* * *
오랜만에 최강수 사장의 부름으로 최강건설에 찾아갔다.
최강수 사장은 입이 찢어질 것처럼 한껏 웃으며 예건을 반겼다.
“내가 요즘 우리 한 팀장 덕분에 정말 살맛 난다니까.”
최강건설과 건림건축 무주택 직원들을 대상으로 판매한 대치동 아파트는 모델 하우스도 없이 한 선분양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만에 분양이 100% 완료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달 만에 주변 아파트값이 분양가의 120% 가까이 상승한 데다, 대출 조건도 일반 브랜드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보다 훨씬 좋았기에 당연한 이치였다.
이번 일로 젊은 직원들의 사기도 올라가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졌다고.
그건 건림건축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그게 말일세.”
최 사장이 토지이용계획서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일반 공개를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안 건지. 자꾸 이런 게 들어와.”
“흠…. 혹시 시행사에서 보낸 건가요?”
“대부분이 그렇고, 토지주가 직접 보낸 것도 있네.”
“그렇군요.”
“이것도 나름대로 신뢰 있는 발주처만 골라낸 거야.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많았어.”
최 사장은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회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일거리도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예건은 딱히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왜? 다 별론가?”
“아뇨. 딱히 아파트 사업으로 돈 벌 생각은 없어서요.”
최강수 사장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아니! 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