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미래를 위한 투자 (1)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했던가.
현재 서울의 주택 공급률은 30% 밖에 안 될 정도로 인구 증가 속도에 못 미치고 있었다.
당분간 주택사업이 호조를 이룰 거라 판단한 예건은 최중운과 함께 이미 여러 차례 브랜드 아파트 사업 확장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으나, 섣불리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가 처음 아파트 설계를 결심한 목적 때문이었다.
‘건축종사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집을 짓자!’
건축인들이 안심하고 추천할 수 있는 최고의 주거 환경을 만들어야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주택이란 인간을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도심 속 주거 환경은 과연 거주자에게 평온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장소인가?
어느 브랜드 가릴 것 없이 똑같은 평면에 개성 없는 내부 디자인을 내놓았고,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몰리자 자연스럽게 소음 및 채광, 주차 같은 다양한 문제에 직면했다.
문제점을 알면서도 고칠 수 없는 건, 결국 시장의 경제 원리 때문이다.
싼값을 들여 큰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 말이다.
홍보로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겨 과소비를 조장하고, 감당하기 힘든 빚을 떠넘겨 이후 매매가에 반영하게 만든다.
주택이 재산 불리기의 수단이 되어버리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예건은 그런 시장 원리에 일침을 놓고 싶었다.
그래서 다들 주변 아파트 시세가 올랐으니 판매가를 높이는 게 좋지 않겠냐 권유할 때도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저 한국이란 환경에 가장 적합한 주거 공간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치동 아파트는 주택에서 누릴 수 없는 아파트의 생활 편의와 여유로운 공용 시설 및 단지 내 조경, 주변 환경 개선으로 인한 안정성은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단독 주택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자유로운 평면을 도입했다.
그 결과가 모델하우스도 없이 일주일만에 100% 선분양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는 자체 사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자네 뜻은 나도 이해하지만, 단 건으로 끝내기엔 디자인이 너무 아까워서 말이지….”
높은 수익성이 예상되자 2차, 3차까지 확장했던 한남 엘리우 때와 달리 소극적인 예건의 태도에 의아한 최강수 사장이 재차 물었다.
“그리고 브랜드 아파트를 선보여 회사 규모를 키우겠다는 게 자네 생각이 아니었나?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시행사와 협력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그 목적에 훨씬 빨리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시행사가 우리 시공 단가를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반응을 할 것 같습니까?”
“그야 물론….”
최강수 대표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비싸다고 하겠지.”
“아마 대부분 기획만 가져가고 시공은 맡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 바닥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아마 최강건설에 사업부지와 관련된 자료를 보낸 의도 또한, 분양이 잘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공개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일 터.
모델하우스를 만들지 않고 선분양했던 이유는 판매 대상자가 건축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평면과 투시도로 충분했던 설명할 수 있었던 것도 있었으나, 실물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설계 정보를 최대한 유출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다.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도 가급적 시행사는 걸러야 할 것 같습니다. 아파트 분양가가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될 것 같거든요. 나중에 회사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
“흠…. 역시나 그렇겠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미련을 쉽게 버리지는 못하는 최강수 대표에게 예건은 쐐기를 박듯 부연했다.
“당장 아파트가 사업성이 좋다고 근시안적으로 판단하고 사업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건설은 회사 규모를 키우기 위해 거쳐 가는 징검다리일 뿐이니까요. 아파트 브랜딩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사기 위해, 더 집중해야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한국도 인구수가 줄어드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 순간 한국의 아파트 사업은 최고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걷게 되겠지.
그것이 최강건설이 아파트 사업에만 너무 집중해서는 안 되는 이유였다.
“그럼, 혹시 생각해 둔 게 있나?”
“다음 사업은 분양이 아닌 일반 임대 아파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대 아파트? 그건 정부에서나 하는 게 아닌가? 수익이 거의 남지 않을 텐데, 괜찮을까?”
“부동산은 팔아야만 수익이 남는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오래 보유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거주 환경이 좋아지면 자연히 사람이 모이게 되고, 사람이 모이면 시장과 교통이 발달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결국, 부동산의 가격을 결정하는 건 토지가 되는 셈.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뜻이 맞는 토지주를 되도록 많이 찾아야 한다.
당장 손아귀에 들어오는 높은 수익보다 공공의 이익과 삶의 질을 높이기 원하는 사람들을.
다행히 최강수 사장은 큰 이견 없이 예건의 의견을 순순히 따라주었다.
“뭐, 어차피 이 사업은 자네 덕분에 시작한 거니까. 자네 뜻대로 하게. 솔직히 말해 지금 하는 일만도 벅차. 누구 덕분에 전 직원이 엘리우 팰리스에 매달려 있거든.”
한남 엘리우의 1차 공사 준공은 6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물론 준공이 난다고 해서 곧바로 입주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테리어 공사 및 단지 조경 등 소소한 일거리들이 남아있기 때문.
대부분이 삶에 여유로운 사람들이라 먼지 풀풀 나는 공사 현장에 살고 싶은 이들은 없었으니까.
3차까지 준공이 끝나려면 내년 3월까지는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물론 예건은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 아예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한 그였으니.
완공될 때까지 계속 눈으로 확인하며 전체적인 공사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요즘도 거기서 출퇴근하나?”
“네.”
최강수 사장이 넌지시 물었다.
“마감 퀄리티를 높이고 싶은 한 팀장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무 고생하는 거 아닌가? 아무도 없는 현장에 밤에 혼자 있다고 한 전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던데.”
최강수 사장의 잔정 넘치는 잔소리에 예건은 씩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 마세요.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요.”
“음?”
“최중운 사원님이 저랑 같이 있기로 했거든요.”
“뭐? 중운이가?”
최강수 사장은 처음 듣는 말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요즘 제가 너무 바빠서 사무실에 통 못 갔더니, 오늘부터 아예 저희 집에서 근무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지금쯤 이사 끝났겠네요.”
어디까지나 강요가 아닌 자의로 선택한 결정이었다.
주거 건축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아 평소 한남 엘리우 현장에 근무하며 식견을 넓히라 지시하긴 했으나, 아예 자신을 따라 입주를 결심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처음에는 업무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것이 다행히 일에 조금씩 흥미를 느끼는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흠흠. 그렇단 말이지.”
처음에는 당황했던 최강수 사장이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흐흠. 녀석이 그렇게 열심히 일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하긴. 우리 젊었을 때 생각하면, 그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지. 더 열심히 일해 주게!”
그럼, 그럼. 하늘 아래 고생 없이 얻는 것이 있겠는가!
갖고자 하는 것이 클수록 그 대가도 커야 하는 법이다.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할 수는 없으니, 끝까지 책임을 지는 수밖에.’
앞으로 자신과 손을 맞춰야 하는 이는 최강수 사장이 아닌, 최중운일 것이다.
“열심히 굴리…, 아니, 최선을 다해 최강건설에 적합한 인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고생이야, 최중운이 할 거니까.
* * *
짐칸 가득 가구를 실은 1톤 트럭 한 대가 현장 앞에 멈춰 섰다.
“어? 이상하다. 주소는 분명 여기가 맞는데?”
차에서 내린 기사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경비가 현장 입구를 막아선 트럭 기사를 향해 소리쳤다.
“거기! 뭡니까? 왜 현장 앞을 막고 있어요?”
“아, 안녕하세요. 가구 운반하러 왔는데요. 혹시 이 주소가 현장 사무실인가요?”
경비가 쪽지를 확인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흠? 한남 엘리우 팰리스, A-7? 여긴 현장 사무실이 아닌데…. 확인 좀 하고 올테니, 잠시 기다리슈.”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 쪽으로 향한 그가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더니 트럭으로 와 말했다.
“위치를 안내할 테니, 같이 갑시다.”
“네.”
경비가 가리키는 대로 아직 포장도 안 된 길을 달리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멀리 빨간 스포츠카 하나가 멈춰 서 있었다.
“어, 저기 내려와 계시네. 저쪽으로 갑시다.”
경비가 말한 곳에 다가가 정차하니, 30대 초반의 멀쑥한 남자가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짐은 여기 엘리베이터로 올리면 됩니다.”
“네, 읏차!”
커다란 짐을 엘리베이터에 실어 건물 2층에서 내려 거실로 옮겼다.
창밖 한강 풍경을 본 배달 기사가 부러운 눈빛을 보내며 최중운에게 말했다.
“히야~ 경치 한 번 끝내주네요. 여기가 사무실인 모양이네요.”
“네. 당분간이지만요. 하하하.”
“진짜 부럽습니다.”
두 사람이 부지런히 움직이니, 짐칸 가득 수북하던 가구들이 2시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이제 다 들어온 것 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사업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사장님.”
사장님 소리에 입꼬리가 자꾸 옆으로 찢어진다.
어차피 다시 만날 일도 없는데, 딱히 정정하지는 않았다.
기사는 트럭 가득 가구를 보양했던 박스를 싣고 주차장을 떠났다.
“흠. 이제야 좀 사무실 같네.”
최중운은 양 주먹을 허리에 짚은 채 뿌듯한 얼굴로 사무용 가구가 들어선 2층 거실을 내려다보았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신생 벤처기업 사무실 차린 것 같고, 좋은데?”
카드를 잘라버리겠다는 아버지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반강제로 AA리츠에 입사한 후, 의자에 엉덩이 한 번 붙일 새 없이 밖으로만 뺑뺑이를 돈 게 벌써 5개월째.
사무실도 없어 간단한 회의는 오다가다 카페에서, 중요한 회의는 건림건축으로 직접 찾아가서 하는 게 다였다.
그나마도 한 팀장이 너무 바빠 일주일 내내 얼굴 한번 마주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실물 회사가 없으니, 어디서 일한다고 말하기도 민망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 몰랐다.
그래도 일 자체는 재밌었다.
책상에 앉아 펜대만 굴리며 일하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 해야 할까?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딪히며 알아가는 재미가 나름 쏠쏠했다.
추진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대치동 아파트 건뿐이니 이러다 프로젝트 끝나면 이대로 회사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항상 조마조마하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럼 아버지가 또 회사 들어와 사업 배우라고 잔소리를 하시겠지? 그건 절대 안 돼. 어떻게든 여기서 자리 잡아야지.”
미간을 모으며 후- 작게 한숨을 내쉬는 최중운.
부모님의 뜻대로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만 자랐던 그는 서른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너무 큰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서 겉으로 돌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하게 노는 것으로 아버지의 강압에 저항하는 소심한 반항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예건을 만나고, 그가 일하는 것을 직접 곁에서 보고 난 후에야 자신이 너무 바보 같이 살았음을 깨달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뭐 저런 미친 인간이 다 있나 싶긴 했지만.”
아버지 회사 임원의 아들, 최강건설의 협력사 중 하나에 근무하는 주제에 부동산 리츠 회사를 차려 발주처 대표 아들을 일개 사원으로 부린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냔 말이다.
하지만 한예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아버지가 왜 자신을 그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도록 만들었는지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다.
한예건은 그토록 자신이 꿈꾸던 삶을 살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그가 손대는 사업마다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21세기 트렌드 리더, 젊은 사업가라는 명칭이 정말 딱 어울리는 그런 사람.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다.
한예건과 같이 있다면 자신도 언젠가 세상에서 빛과 같은 존재가 될 거라 자신했다.
“지금은 조금 고생스럽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 거야! 흐흐흐. 내가 사무실 세팅해 놓은 걸 보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 음하하하.”
깜짝 놀라긴 했다.
조금 다른 이유이기는 했으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