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미래를 위한 투자 (4)
일행의 시선이 동시에 예건에게 향했다.
전혀 상황을 모르는 이가 보더라도 신원을 밝히지 않은 남자가 찾는 이가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
팀원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건에게 누구냐고 묻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나, 예건이라고 알 턱이 없었다.
“접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남자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자연스럽게 명함을 건넸다.
“해성백화점에서 왔습니다. 저희 대표님께서 한예건 대표님을 꼭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해성백화점…?”
팀원들의 시선이 동시에 예건이 들고 있는 명함을 향했다.
명함 왼쪽 상단에는 해성그룹을 상징하는 마크가 떡하니 찍혀 있었다.
“우와! 진짜 백화점!?”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온 윤민수 주임이 서둘러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예건은 윤 주임에게 잠시 시선을 주고는 남자에게 고개를 돌려 난처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요?”
“죄송합니다. 저희 대표님이 곧 해외 일정이 있으셔서, 무례인 걸 알면서도 급하게 찾아왔습니다. 괜찮으시면 차로 모시겠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하는 것처럼 딱딱한 어조가 꺼림직 했으나,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신을 쳐다보는 팀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마치 얼른 가 보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 어쩔 수 없지.’
일개 팀장이라면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겠지만, 건림건축의 대표가 된 몸이니 회사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일개 건축설계사무실 대표 나부랭이가 한국 최대 기업인 해성그룹 계열사, 그 중에서도 유통을 꽉 잡고 있는 해성백화점 대표의 부름을 단칼에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건림건축의 프로젝트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대기업과의 네트워크를 갖출 필요가 있기도 했고.
예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이 차장을 향해 돌아보았다.
“이 차장님,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현장 투어는 최중운 씨에게 도와드리라고 전해 놓겠습니다.”
대치동 아파트 프로젝트 진행을 함께 하고 있었기에 최중운과 안면이 있었던 이경록 차장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예건을 안심을 시켰다.
“어, 그래.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다녀와. 우리는 알아서 구경할 테니까.”
“네, 그럼. 가시죠.”
예건이 차량 뒷자석에 몸을 싣는 것을 확인한 운전기사가 운전석으로 향했다.
차는 크게 반바퀴를 회전하고는 왔던 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와~ 미쳤다. 간지 폭발! 아까 이러다가 백화점 설계도 하는 거 아니냐고 누가 그랬냐?”
김 대리의 물음에 윤 주임이 번쩍 손을 들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어! 저요, 저!”
“와~ 윤 주임, 너 감 장난 아닌데? 어떻게 백화점 얘기가 나오자마자 백화점에서 한 팀장을 찾냐? 혹시 그 감으로 이번주 로또 번호는 못 찍냐?”
“에이~ 그걸 어떻게 찍어요?”
예건이 탄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경록 차장이 팀원들을 재촉했다.
“자자, 괜히 김치국부터 드링킹하지 말고, 현장이나 둘러 보자고.”
다들 몸을 돌려 중앙 광장으로 향했으나, 하주연 대리만이 찝찝한 표정으로 예건이 사라진 출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 대리. 뭐해? 어서 안 오고?”
“네, 가요.”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그녀였다.
* * *
해성백화점 주혜정 대표.
해성그룹의 회장의 막내딸이자 그룹의 든든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백화점을 비롯해 다수의 유명 브랜드 및 대형 마트, 유통까지 손에 거머쥔 전형적인 재벌 사업가.
예건은 접견을 기다리며 오는 길에 대충 훑어봤던 해성그룹과 해성백화점 기사를 다시 한 번 곱씹었다.
긴장되진 않았다.
다만 재벌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렇지.
흠…. 응접실은 그냥 단촐했다.
나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려 유럽의 골동품도 가져다 놓고 애를 쓴 모양이지만, 그 정도 물건들이야 아무렇게나 쓰고 살았던 예건이었으니 딱히 감흥이 없었다는 게 좀 더 가까울 테지만.
5분여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단발의 50대 여성이 예건을 안내한 비서와 함께 응접실로 들어왔다.
“오~ 사진보다 실물이 낫네? 안 그래? 정 비서.”
“네, 맞습니다.”
예건이 일어서자 딱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 멈춰선 주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소개했다.
“반가워요. 주혜정이에요.”
“건림건축 한예건 팀장입니다.”
예건은 익숙하게 명함을 건넸다.
주 대표는 그가 건넨 명함을 슬쩍 보고는 비서에게 건네며 무심하게 말했다.
“내 명함은 우리 이야기가 잘 끝나면 주도록 하죠. 괜찮죠?”
“상관없습니다.”
“호호호. 시원시원해서 좋네. 오늘은 얼굴이나 익히자고 부른 거니까. 편하게 앉아요.”
“네.”
주혜정 대표는 차가 나올 때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속으로 상대가 어떤 인물일지 가늠하고 있는 것이겠지.
예건도 찰나를 놓치지 않고 주혜정 대표를 살폈다.
화려한 화장으로 쎈 이미지를 부곽하고, 흔한 명품 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 옷으로 치장해 자신의 존재가 유니크함을 은근히 과시했다.
거기에 더해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아무렇게나 주렁주렁 걸치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허세도 좀 있는 편인 것 같고.
하지만 단순히 치장하는 걸 좋아한다기 보다 평범한 외모에서 느껴지는 만만함을 보완하기 위한 위장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즉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 내가 아무나 만나고 그런 사람은 아닌데.”
느긋하게 차를 마시던 주 대표가 슬쩍 운을 띄웠다.
“한예건 팀장과 관련된 이런 저런 말이 많길래, 궁금하기도 해서 불렀어요.”
“네. 그러셨군요.”
“그런데 최근 건림건축 대표가 됐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딱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기에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쉽게 됐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나저나 젊은 나이에 수완 좋네~. 부모님 도움도 없이 벌써 회사 대표씩이나. 호호호. 아, 오해하지 말아요. 좋은 뜻이니까. 난 자수성가한 사람들 좋아해요. 그만큼 실력은 인정할 수 있다는 거니까.”
“…….”
순간적으로 찾아온 침묵.
주 대표는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주도하며 화재를 돌렸다.
“한 팀장. 예술품 보는 안목이 보통이 아니라고 하던데, 어떤 것 같아요? 이 찻잔은?”
주혜정 대표가 자신의 찻잔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검은색 바탕에 화려한 금박 벚꽃 가지가 입체적으로 그려진 찻잔세트.
“고급스러움에서는 최고의 위치를 자랑하는 로얄우스터 제품이죠. 초창기 일본풍의 문양을 많이 사용했고, 1757년에 대량생산을 시작했던 도자기 업체입니다. 이 찻잔은 영국 왕실 납품을 위해 소량 생산된 골동품인 것 같군요. 생산년도는 1950년대 정도일까요?”
“오~. 정확해요.”
주혜정 대표의 눈빛이 반짝하고 켜졌다.
“소더비 경매에서 어렵게 구입한 골동품이죠.”
“이런 물건을 손님 접대에 쓰시다니, 배포가 남다르시네요.”
“호호호.”
딸깍.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은 주혜정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예건을 주시했다.
마치 상품을 감상하듯 찬찬히 뜯어보는 주 대표의 시선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오만한 태도가 기본 장착된 권세가라면 전생에 질릴 정도로 상대했던 그였으니 그러려니 했다.
예건은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며 주혜정 대표가 자신을 부른 목적을 조심스럽게 가늠해 보았다.
대충이라도 어떤 말이 오갈지 가늠을 하고 있어야 즉각 대응이 가능할 테니.
아무래도 가장 최근 기사가 신경이 쓰였다.
해성백화점의 40년 유통 역량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아시아 최고 규모의 백화점을 만들 계획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공표했던 기사.
말미에는 국내가 아닌 세계 유통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월드 브랜드 백화점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야망을 드러냈다.
‘백화점 신축에 대한 건으로 부른 건가? 하지만 그런 일을 건림건축에? 흠…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건림건축이 명실상부 국내 최고 설계사무실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그건 김수훈 대표가 한국 건축 문화계에 차지하고 위상이 독보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규모적인 측면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건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성장동력을 유지하던 국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자회사로 건설사와 설계사무실을 보유하고 있었고, 자체 사업을 타 설계사무실에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기업 계열사이거나,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사업을 영위하지 않는 이상 규모면에서 성장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계사무소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큰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딱히 상관은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업무 범위에 한계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예건은 예의를 차리며 용건을 물었다.
“많이 바쁘시다 들었습니다. 저를 부르신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음…. 뭐, 용건만 간단히? 좋아요. 피차 바쁜 사이에 그러지 뭐. 백화점 설계 해봤어요?”
“아뇨, 해본 적 없습니다.”
예건은 솔직히 대답했다.
최초의 백화점이 1852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장했다는 건 안다.
전생에 자신이 태어났던 해이기도 하니까.
자료 조사차 파리의 르 봉 마르세 백화점을 방문한 기억은 있다.
한국에 환생한 후론… 글쎄.
백화점을 갈 일이 있었던가?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몇 번 간 것 외에는 없을지도.
“우리나라에서… 아니, 아시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을 만들 생각이에요, 내가.”
“아…. 네.”
예건은 무심히 대답했다.
“반응 뭐야? 관심 없어요?”
“음. 관심은 있습니다.”
“그런데?”
“해성그룹과 관련된 일은 자회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주혜정 대표의 입가가 옆으로 쭉 늘어졌다.
아주 재밌다는 표정이다.
“그냥 설계 실력만 있는 출중한 줄 알았는데, 나름 경제 돌아가는 것도 관심이 있나 보네. 이러니까 더 탐나는데?”
혼잣말을 너무 다 들리게 하는 거 아닌가?
예건은 무안해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흐흠. 그 정도는 조금만 경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정보입니다.”
“뭐, 그렇긴 하지.”
주혜정은 식은 얼굴로 몸을 소파에 기대며 느슨하게 말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 규모의 백화점이에요. 나름 특별한 건축물을 만들고 싶단 말이지. 세계에서 주목할 수 있는. 그래서 한 대표를 부른 거고.”
“경험이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게. 좀 걸리기는 한데. 뭐, 경험이야 들어와서 배우면 되니까. 경험이야 건축가들보다 현장에 직접 근무하는 사람들이 잘 알지 않나? 안 그래요?”
들어와서 배우라?
어째 뉘앙스가 이상했다.
“건림건축에 맡기실 생각은 아니시군요.”
“난 단지 한예건이란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가 필요해서 부른 거니까요. 좋지 않아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초대형 백화점! 세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원한다면 우리 백화점 오픈 홍보할 때, 한 팀장의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걸어줄 수도 있는데?”
“흠….”
좋은 기회인 것은 확실했다.
대한민국 최대 기업 해성그룹.
해성그룹의 산하에서 유통과 소비재 거래를 담당하고 있는 해성백화점.
그런 해성백화점 건축을 진두지휘했다는 것만으로도 실력 검증은 한 셈이니까.
다만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는 고민이었다.
이렇게 자존감 높은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
그럼 두고두고 사람 우습게 보거든.
“고려해 보겠습니다.”
“호호. 시간은 충분하니까 답은 천천히 줘도 돼요. 그리고.”
주혜정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하게 바뀌었다.
“백자호텔, 지금 거기와 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