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한강의 진주 (3)
발루아가 개인 소유로 바뀌면서 대중에게 자신의 건축을 알릴 방법의 하나가 사라져버린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곧 완성될 엘리우 팰리스의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세상에 알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
신문에 노출하자니 너무 광고 같고, 건축잡지에 싣는 것은 파급효과를 딱히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런데 마침 좋은 기회가 저절로 찾아온 게 아닌가!
예건은 속으로 기뻐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 느긋하게 말했다.
“혹시 저와 함께 방송에 출연할 의뢰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이제 막 기획한 프로젝트라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한 팀장님 출연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닐까 싶은데요.”
“흠…. 그렇군요.”
방송이란 매체의 특성상 이슈를 키우려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의 출연이 좋을 터.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의뢰자와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좋은 집은 집주인이 될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이니.
아무래도 직접 적합한 의뢰인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마침 1차 분양 당시 유명인이 분양을 받았다던 성삼호 부장의 말이 떠올랐다.
억지로 설정을 만드는 것 보다, 처음부터 자신의 디자인이 좋아서 분양을 받은 사람을 섭외하는 게 훨씬 그림이 좋을 것 같았다.
“저도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네? 한 팀장님이요?”
“네, 이미 주택을 구매한 사람 중에 유명인이 있을 수 있으니까 섭외가 가능한지 알아보려고요.”
“오! 그럴 수 있겠네요.”
김연희는 수긍하며 예건에게 말했다.
“담당 피디님께는 의뢰인 선정 전에 조율이 가능한지 확인해 볼게요. 건축주가 너무 까다로워서 본업에 지장이 있으면 곤란하니까요.”
까다로운 인물이라.
건축에 있어서 자신보다 더 까다로운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세상 일은 예측이 불가능한 법이다.
방송 일정이 정해진 것은 아니니, 천천히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김 대리가 돌아가고 예건은 곧바로 성삼호 부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하나 여쭐 게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일전에 유명인이 엘리우 분양 받았다고 하셨었죠? 혹시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이유를 묻는 성삼호 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성 부장은 의외의 태도로 물었다.
– 분양도 다 끝난 마당에 굳이 홍보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엘리우 팰리스는 이번 3차 분양을 끝으로 당분간 진행 계획이 없으시다고….
“물론 그렇긴 하지만, 차후 아파트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니까요. 최강건설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에 방송처럼 좋은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 흠… 그렇군요. 방송 기획서 보내주시면 검토해서 사장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방송사에서 건설사 측에 협찬을 요구할 수도 있으니, 구체적인 협의는 성 부장에게 맡겨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네, 감사합니다.”
이후 성 부장은 구매자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건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속사 명칭을 알려주었다.
“JJ엔터 소속 가수라고요?”
– 네. 사장님 의중만 확인하고 제가 곧바로 기획사로 문의를 넣어보겠습니다.
“아닙니다. 성 부장님은 최 사장님 의견만 받아주세요. 아무래도 일이 되려는 모양입니다.”
– 네?”
“곧 준공하는 JJ사옥을 제가 설계했거든요.”
– 오~ 기획사 대표님을 잘 아시겠네요? 그럼, 한 팀장님이 직접 나서시는 게 섭외가 훨씬 수월하겠군요.
“네, 기획사에는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타이밍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이 매우 기분이 좋았다.
좋은 인연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랄까?
예건은 지체없이 이재정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다.
* * *
난데없는 예건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이재정 대표는 흔쾌히 시간을 내어주었다.
“한 팀장, 잘 지냈어요? 그동안 많이 바쁜 것 같던데. 매일 현장에 들른다고요?”
“준공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마감 품질은 설계자가 얼마나 꼼꼼히 챙기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거든요.”
“하하하. 한 팀장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액션을 취해주니, 걱정할 게 없겠군요. 앉읍시다.”
“네.”
JJ엔터 사옥 공사는 이재정 대표의 뜻대로 1군 건설업체만 참여한 경쟁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했고, 인테리어 공사 부분만 별도로 떼어 모어 스페이스가 진행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현장감독관을 별도로 배치해 설계자가 요구하는 사항을 철저히 시공에 반영하라 지시했고, 덕분에 예건은 시공사 눈치를 보지 않고 시공 초기부터 현장 상황을 꼼꼼히 체크할 수 있었다.
“어때요? 시공사는 잘 따라오는 것 같습니까?”
“시공사에서 제 의견을 잘 받아들여 주셔서 완성도는 만족스럽습니다. 이 대표님께서 특별히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하하하. 내 건물 짓는데 건축주가 신경 쓰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예건이 은근히 이 대표를 치켜 세우자 기분이 좋아진 이재정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무슨 일로? 혹시… 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겁니까?”
이재정 대표는 은근한 표정으로 넌지시 물었다.
JJ엔터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터.
예건은 본업과 관련 없는 일에는 딱히 관심이 전혀 없는 터라 고개를 저어 뜻을 확실히 표했다.
“그건 아닙니다. 대신 다른 제안을 드리려고요.”
“제안? 어떤 제안인지 무척이나 궁금하군요.”
이재정 대표가 앉은 채로 몸을 숙이며 관심을 표하자, 예건이 지체없이 상황을 설명했다.
“모 방송국에서 제게 예능 출연 제안이 있었습니다.”
“예능?”
이 대표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예능이길래, 우리 한 팀장이 이렇게 적극적이실까?”
“최근 1차 준공한 엘리우 팰리스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건축주가 꿈꾸는 집을 디자이너와 함께 완성해가는 과정을 다큐 예능 방식으로 담겠다고 하더군요.”
예건은 이 대표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김연희 대리로부터 받은 방송 기획서였다.
내용을 확인하던 이재정 대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흠….”
예능 다큐 기획안의 출처는 MBS방송국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CP에게 넌지시 운을 띄운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언제 이렇게 구체적인 기획서까지 마련했단 말인가?
‘설마, 이전부터 기획을 하고 있던 건가? 어쩐지, 한예건 디자이너를 섭외할 수 있냐고 물어보더니 그래서 그런 거였군.’
하긴.
한예건은 방송계에서 좋아할 만한 인물이긴 했다.
자신도 한눈에 영입을 결심할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니.
단숨에 세계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기까지 했으니, 급성장할 수 있었던 내막이 궁금하기도 할 테고.
“방송국 측에서 장소와 의뢰자를 물색해 본다고는 했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분양 사무실에 문의해 보니, JJ엔터 연예인 중에 1단지 주택을 매입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찾아온 겁니다.”
“음? 금시초문인데? 바로 알아보라고 하지요.”
김 이사에게 매물이 나온 것이 있거든 매수하라고 지시하기는 했으나, 아직 아무런 얘기를 듣지 못한 그였다.
이재정 대표는 김주한 이사에게 연락해 최근 회사 소속 연예인 중에 주택 매입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고,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히트어택 리더 안준영이 엘리우 팰리스를 매입했다고 하는군요.”
이재정은 전해 들은 정보를 예건에게 전하며 눈을 빛냈다.
현재 한국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천재 뮤지션과 디자인계에 돌풍을 일으킨 천재 건축 디자이너가 함께 선보이는 작품.
이건 무조건 되는 그림이다.
당연히 방송에 욕심이 났다.
예건이 먼저 찾아오지 않았다면, 비슷한 기획을 가지고 자신이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2달 만에 공사가 가능하겠습니까?”
“일정이 촉박하긴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그럼 한번 해 봅시다. 준영이는 내가 설득할 테니.”
하지만 예건은 곧바로 수락하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이번 일은 그 무엇보다 의뢰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일이었으니.
“일단 예비 의뢰인을 만나보고 결정했으면 합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언제로 일정을 잡을까요?”
“결정은 빠를수록 좋죠. 오늘 만날 수 있을까요?”
* * *
준영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이내 피곤한 표정으로 통화를 종료하며 투덜거렸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왜? 또 뭐가 문젠데?”
“집, 인테리어 하는데 디자이너부터 비용까지 결정해야 할 게 많다고 인테리어 회사에 방문해 달라는데.”
“네가 누군지는 말했어?”
“아니.”
“그럼,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그런가?”
준영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냥, 조용하기만 하면 되는데.”
“에휴~ 인테리어 회사가 어딘데?”
“주소 보내준다는데.”
“미팅은 내가 대신 다녀올 테니까, 넌 결정만 해.”
“그럴까?”
혹시나 매니저가 딴소리할까 싶어, 얼른 담당자 연락처를 문자로 전송했다.
“그런데 대표님은 갑자기 왜 보자고 하시는 거지?”
앨범 제작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보통 이럴 때는 연습에 집중하라고 사무실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중요한 일이 있다며 이재정 대표가 급하게 연락한 것이다.
“앨범 이후 개인 활동 때문에 부르시는 거 아닐까?”
“혼자 출연하는 건 싫은데.”
히트어택이 유명세를 탈수록 리더인 준영의 개인 활동이 늘어나고 있었다.
멤버 중에 가장 인기가 높기도 하거니와 출중한 외모와 실력, 탁월한 재치 덕분에 부르는 곳이 많았다.
멤버들은 괜찮으니 마음 편히 활동하라고 하지만, 함께 지내온 기간만 5년이 넘는다.
서운한 마음을 전혀 못 느낀다면 그게 이상한 거지.
‘새집 인테리어 해야 하니까 바쁘다고 하면 이해해 주시려나? 아차!’
그러고 보니, 대표님과 멤버들에게 집을 구입한 걸 아직 말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작업실이라고 말하면 괜찮겠지?”
“뭐가?”
“어? 아냐.”
어차피 언젠가 알게 될 일이다.
숙소를 당장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상의도 없이 덜컥 집부터 구입했다고 싫어하시면 어떡하지? 부모님 서울로 모실 생각이라고 우겨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회사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재정 대표가 안준영을 보자마자 대뜸 근황부터 물었기 때문이다.
“안준영! 너, 집 샀다며?”
“어? 예?”
“어떻게 알았냐고? 설마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성큼성큼 다가선 이재정 대표가 손을 뻗어 어깨를 두드렸다.
“하여튼, 운 좋은 녀석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에? …네?”
안준영은 도무지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곁눈질로 매니저를 쳐다봤으나, 그도 아는 게 전혀 없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다큐 예능 하나 출연하자.”
“무슨….”
“인테리어 다큐 예능이다. 일단 따라와. 소개해 줄 사람이 있으니.”
이런, 낭패다.
집 고쳐야 해서 개인 활동이 어렵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게 되어 버렸으니.
이재정 대표에게 이끌려 따라간 손님용 응접실에는 웬 남자가 앉아 있었다.
분명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것 같은데, 외모에서 풍겨지는 분위기가 사뭇 남달랐다.
일반인이라기엔 너무 잘생겼고, 단정한 차림새에서 배우 못지 않은 아우라가 느껴졌다.
안준영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냅다 인사를 박으며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히트어택 안준영입니다.”
“…….”
그의 인사와 함께 응접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자신을 따라온 매니저를 바라보니 거의 울기 직전.
황급히 고개를 돌려 이재정 대표를 보았더니, 그의 표정 또한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아무래도 또 사람을 잘못 알아본 모양이다.
하지만 후배라기엔 너무 범상치 않은 외모인데?
남자가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한예건입니다.”
“아….”
망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