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5)
015화. 격이 다른 디자인 (3)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가우디의 건축과 디자인을 보고 그의 양식을 따라 하려고 시도했으나, 아무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모형은 마치… 가우디가 살아나 한국의 자연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백원기는 모형과 모형 사이로 시선을 옮겨가다 한 마리의 나비로 변한 자신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화려한 색감을 쫓아 탐닉하듯 훨훨 날아다니다 날개가 지쳐 짙은 쪽빛 타일 위에 앉으면, 나비는 쪽빛으로 변했다.
그렇게 하늘의 구름 한 조각으로, 부서지는 파도의 물방울로, 타오르듯 붉게 물든 단풍나무의 단풍잎으로 수차례 색을 바꾸기를 여러 차례.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내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아!”
인내심 있게 발표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
겉모습으로만 보면 이제 막 스물 중반은 되었을까?
하지만 마주한 눈동자에서 노련한 디자이너의 깊은 배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설명을 시작해도 될까요?”
“그, 그래요.”
끄덕.
배원기 이사장의 허락 이후, 한예건의 외부 공간에 대한 발표가 시작되었다.
* * *
“인간의 생명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 ‘생의 찬미’는 인간의 원초적인 삶에 대한 의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에서 시작해,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영원한 것을 추구하고, 닮으려 노력합니다.”
또렷하고 맑은 목소리가 좌중을 주목시켰다.
“과거에는 닮고자 하는 대상이 신이었고, 자연이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인간 스스로에 대한 성찰, 즉 자아 성찰을 통해 스스로 되고자 하는 인간상을 만들어 완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거대한 짐을 짊어지게 됩니다. 그건 바로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인한 스트레스입니다.”
끄덕끄덕.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은 이미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무료한 일상에 자극이 되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인간을 좀먹고, 각종 질병과 우울증을 유발한다.
“과거의 인간들은 모든 책임을 자연이나 신에게 떠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오롯이 모든 책임을 혼자 감당해야 하죠. 완벽함, 인내,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실수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요. 그게 현대인, 특히 한국인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아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공감이 탄성이 되어 터져 나왔다.
의사만큼이나 개인에게 주어지는 책임감이 거대한 직종이 또 있을까?
심사위원들은 깊게 공감하며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다.
삶과 죽음 속에서 수없이 갈등에 휩싸였던 지난 과거가 떠올라 답답한 마음에 울컥거리기도 했다.
신도 아닌데 생명을 감당해야 하는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누군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에 큰 위로를 얻은 것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입니다. 하지만 도심에서 그런 안정감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유사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예술과 동화되는 감정의 혼합 방식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우디가 건축한 구엘 공원을 거닐며 자연과 교감하고 성가정성당에서 구원을 얻는 것처럼 말이죠.”
한예건은 모형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갔다.
“우리 건림건축은 ‘생의 찬미’라는 이름의 외부 공간을 통해 예술적인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비록 인공이지만 자연을 닮은 예술에서 사람들이 감동하고 다시 생명력을 되찾고 돌아갈 수 있음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이 공간을 통해 깨닫게 해주고 싶습니다.”
잠시간의 침묵.
그건 청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우디 스스로 무거운 전생을 받아들이며 몇 번이나 느꼈던 새로운 생에 대한 찬미였다.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되찾고 지독한 무지 속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깨어나게 해 준 존재에게,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로 인해 지난 삶의 목표이자 이유였던 성가정성당을 직접 완성할 가능성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해 준 존재에 대한 찬양이었다.
“‘환영의 샘’은 생의 끝자락에 선 그 누구라도 기쁘게 맞이하여 새로운 인생을 선사할 이름 모를 신이 주신 기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로 새보람 종합병원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기회죠.”
가우디가 눈을 반짝이며 청중을 훑어보고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진심을 청중들도 느낀 것일까?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가 고개를 들 때까지도.
* * *
압도적이다 못해 특별했던 브리핑이 심사위원들의 아쉬워하는 표정과 함께 막을 내렸다.
50분이란 시간이 이토록 짧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질문 있으시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박노훈 이사는 여상한 태도로 심사위원들의 질문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허락에도 그 누구도 섣불리 손을 들지 못했다.
아직 휘몰아치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한숨을 돌리는 것이다.
그때, 심사위원석 중앙.
보람 의료재단의 이사장 배원기가 물었다.
“그런데… 건축비는 어느 정도로 예상합니까? 병원 측 예산은 이미 전달한 거로 아는데.”
과연 사업가다운 질문이었다.
현재 병원 측에서 설계 사무실에 제시한 예상 공사비는 대략 천억 원 규모.
예산 금액 내에서 공사가 가능한 설계 제안을 해 달라는 것이 병원 측의 첫 번째 요구사항이었다.
만약 설계의 난이도로 인해 예산을 넘어선다면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 질문 하나로 일축한 것이다.
잠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대략적인 예산을 검토한 박노훈 이사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예상하셨던 예산에서 15% 정도가 추가 산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15%.
적어도 150억 원을 더 추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박노훈 이사가 브리핑할 때까지만 해도 감상에 젖어 있던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설계 예산을 공표하지 않고 디자인을 요청했다면 앞선 두 회사도 그런 밋밋한 디자인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 터.
저런 현실감 없는 유려한 디자인이 나온 이유를 그의 말 한마디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술렁이는 심사위원들의 분위기를 읽은 박노훈 이사가 부연했다.
“제가 말씀드린 추가 공사비는 건축 비용이 아니라, 외부 공간을 조성하는 공사에 대부분 투자될 겁니다.”
박노훈 이사의 대답에 심사위원석이 아까보다 더 크게 술렁거렸다.
건축 비용도 아니고, 조경 조성을 위해 150억이나 추가로 사용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동조하는 이는 없었다.
건림건축의 직원들조차 박노훈 이사의 언급에 아연실색하고 있는 찰나.
엄청난 폭탄 투여에도 여전히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던 배원기 이사장이 물었다.
“외부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비용이라… 그건 가우디의 구엘 공원을 닮은 탓인가요?”
배원기 이사장의 입에서 가우디의 주요 작품이 거론되자, 줄곧 조마조마한 표정이던 하영수 원장이 박노훈 이사를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그렇습니다.”
박노원 이사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배원기 이사장은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자신들이 준비한 외부 공간디자인이 가우디의 건축 양식을 본 따 만들었다는 것을.
‘역시, 이사장님께서 건축가 가우디를 좋아한다고 했던 하영수 원장님의 조언이 틀리지 않았구나.’
물론 이사장이 자신들의 디자인 의도를 알아봤다고 해서, 그게 바로 설계 당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만한 대규모 설계를 진행할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결과물 외에도 다양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모르고 흘러가는 것보다 저렇게 의도를 정확히 짚는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훨씬 유리한 것임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에게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한예건이 맑은 눈동자로 이사장을 바라보았다.
“가우디의 건축 기법을 따라 했음에도 아류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요. 도대체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모형을 보았을 때부터 배원기 이사장의 마음속에 든 의문이었다.
저 젊은 청년이 가우디의 건축 양식을 모방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의 건축 기법이나, 공간을 구성하는 디자인 방식이 가우디의 그것과 동일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가우디를 답습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우디에서 한보 진전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저 청년의 모형에는 가우디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동양의 절제미와 모던함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마치 가우디가 살아나 세련된 현대 문물과 한국의 자연을 직접 보고 디자인한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한예건이 겸손하나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우디의 마음으로 디자인했으니까요.”
“가우디의… 마음?”
겨우 마음가짐을 다르게 한다고 하여 이런 디자인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말만큼 배원기 이사장의 심장을 후벼 파는 말도 없었다.
“마음이라….”
예건의 그 한 마디는 브리핑이 모두 끝나고 홀로 남은 집무실에서까지 떠올랐다.
“대단해. 정말 대단한 디자인이야.”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배원기 이사장의 눈동자는 집요하게 회의 탁자 위의 건림건축 모형을 탐닉했다.
* * *
새보람 종합병원의 브리핑을 마친 다음 날.
박노훈 이사는 모형팀 직원들을 데리고 회사 근처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다들 진짜 고생 많았다.”
“이사님께서 제일 고생 하셨죠. 저희야 디자인대로 모형 만든 것밖에 없는데요.”
주효섭 과장이 박노훈 이사의 잔에 소주를 따르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냐, 진짜야. 이번에는 내가 모형팀 덕을 톡톡히 봤어. 모형 보자마자 심사위원들 입이 떡 벌어지는 걸 주 과장이 봤어야 했는데.”
박노훈 이사의 말에 주효섭이 예건을 곁눈질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모형 퀄리티 좋은 건 다 예건 씨 덕분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저희도 많이 배웠어요.”
“맞아요. 제가 아이소핑크로 깍두기 썰 때부터 알아봤다니까요!”
이지연이 한예건을 칭찬하며 콧대를 높였다.
한예건이 칭찬을 받는데, 왜 이지연이 더 뿌듯해하는지 알 수 없으나, 예건의 실력이 모형의 퀄리티를 높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발표는 아직이죠?”
“이번 주까지는 검토하겠다고 했으니까. 다음 주 월요일쯤에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주효섭은 혹시나 떨어지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었으나, 대답하는 박노훈 이사는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꼭 됐으면 좋겠네요. 설계팀에서 한 달 넘게 준비한 프로젝트인데….”
“예건 씨에게 아무 소리 못 들었어?”
박노훈 이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주효섭에게 물었다.
“네? 아직… 아무것도.”
“하하하. 입이 무거운 친구였군.”
고기 굽는 데 열중하고 있는 예건을 슬쩍 바라본 박노훈 이사가 다들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장님께서 모형을 보자마자 말을 잃으셨어. 그게 뭘 뜻하는 걸까?”
“진짜요?”
“그래, 게다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