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다큐, 꿈꾸는 집 (3)
“어? 피디님, 미팅 가셨던 거 아니셨어요?”
작가가 도 피디를 발견하고 시각을 확인했다.
평소와 달리 도착 예정 시각보다 한 시각은 일찍 도착한 것.
설마, 그새 약속이 어그러진 게 아닌가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어, 갔다 왔어.”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뭐가 잘 안 됐어요?”
도일준이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잘 됐어. 그런데….”
“그런데요?”
“너무 쉬워서, 불안해.”
“에이~ 난 또. 쉬우면 좋지, 뭐가 불안해요?”
“아냐, 불안해. 불안해 죽겠어.”
털썩, 자리에 앉은 그의 눈빛은 넋이 나간 것처럼 공허했다.
“내 인생은 단 한 번도 이렇게 쉬운 적이 없었단 말이야. 디자이너도 한 번에 오케이, 유명인 섭외도 자동으로 척척! 게다가 일정도 문제 없데!”
도 피디가 절규하자 작가가 피식 웃었다.
“그게 당연한 거죠. 그동안 도 피디님이 너무 운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 그래서 불안하다는 거야. 불운의 아이콘인 내가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기냐고!”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행의 신도 피디님이 불쌍해서 그런 거겠죠. 열심히 만든 다큐는 시작도 하기 전에 번번이 엎어져, 황금 시간에 편성 받은 예능은 갑자기 출연자 물의로 런칭부터 물먹었지. 그쯤 되면 하늘도 도울 때가 된 거죠.”
“그런가?”
도일준이 반색하며 고개를 쳐든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본 작가가 질색하며 물었다.
“그런데 설마 그 몰골로 만난 건 아니죠?”
“내 몰골이 어때서?”
“제발 미팅 가시기 전에 거울 좀 보세요. 완전 노숙자 뺨 칠 정도예요.”
작가가 탁상 위의 거울을 꺼내 내밀었다.
거울 속에는 왠 상거지가 멍청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엉?”
“에휴~ 그래서, 첫 촬영은 언젠데요?”
“내일. 오후 1시.”
“내, 내일요?”
“어.”
“카메라는요?”
“말해뒀어.”
“그럼, 우리만 제대로 준비하면 되네요.”
“응.”
“힘내세요. 이번 방송 정말 잘 될 것 같아요. 저 감 좋은 거 아시죠? 왠지 그런 느낌이 딱 든다니까요! 그러니까 오늘은 제발 좀 일찍 가셔서, 이발도 하고, 어? 면도도 좀 하시고!”
“알았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도 피디가 몇 발자국 걸어 나가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뒤를 돌아 말했다.
“아, 맞다! 나 올해 삼재인데.”
“아! 피디님!”
* * *
촬영은 히트어택의 숙소에서 가장 먼저 이뤄졌다.
“그런데 팀장님은 왜?”
“아, 이사 갈 집에 가져갈 물건들을 봐야 해서요.”
“설계는 끝났다면서요.”
“끝났죠.”
예건이 빙긋 웃으며 대답하자 도 피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벨 누르고 문이 열리면, 일단 카메라 먼저 들어가고, 저랑 작가, 마지막으로 한 팀장님이 입장하시면 됩니다.”
“저는 멀찍이 서서 구경만 하겠습니다.”
“네.”
예정대로 작가가 벨을 누르고, ‘잠시만요.’라는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문이 열렸다.
평소보다 옅은 화장에 가벼운 차림을 한 안준영이 카메라를 보고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있던 촬영팀이 안준영과 촬영 순서에 대해 이미 논의를 마친 것인지, 이어지는 분위기는 매끄러웠다.
“저희 숙소는 처음이시죠? 앨범 준비 때문에 멤버들은 모두 연습실에 갔어요. 제가 간단히 안내해 드릴게요.”
45평 규모의 제법 큰 빌라는 안방 1개와 침실이 3개, 주방, 거실, 현관으로 이루어져 있고, 화장실은 2개소의 아주 기본적인 구조.
“안방은 막내동생 둘이 사용하고 있고, 저랑 형은 각자 작은 방을 사용하고 있어요. 입구 쪽 방은 옷방으로 쓰고 있고.”
다른 방들은 그럭저럭 사람 사는 곳 같았다.
4명이나 사는 집인데도 냉장고 속에 물 말고는 들어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게 신기할 뿐.
“드레스룸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것 같은데요.”
“하하. 제 집이 생기면 제일 갖고 싶은 방이 저만의 드레스룸이긴 합니다.”
문도 열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짐으로 가득한 드레스룸을 구경하고 마지막 향한 곳이 준영의 방이었다.
준영은 자신의 방문을 열기에 앞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저기…. 이거 정말 보여드려야 하는 거죠?”
“네. 그래야 왜 안준영 씨가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지 시청자들이 이해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다른 멤버들의 방은 괜찮았거든요. 굳이 이사를 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요.”
“윽. 알겠습니다. 대신 너무 놀라시면 안 돼요.”
그가 쭈뼛거리며 문을 열자 내부의 상황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2층 침대 2층에는 풀지 않은 박스가 가득했고, 아래층에는 옷이 다닥다닥 걸려 있었다.
게다가 남은 공간은 컴퓨터와 온갖 음악 장비들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헉! 이런 데서 잠은 잘 수 있어요?”
작가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잠은 대부분 소파에서 자고요. 멤버들 없을 때는 암막 커튼 있는 형 방에서 자니까 괜찮아요. 헤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표정으로 해맑게 웃는 안준영의 모습에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계속 거실에서 자다 보니까, 이젠 익숙해졌어요. 오히려 방에서 자는 게 답답하더라고요.”
‘방이 아니라 창고니까 그렇지!’
아무리 피곤해도 잠은 제대로 갖춰진 곳에서 자야 한다는 주의인 도일준 피디는 속으로 경악했다.
동시에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안준영을 구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타 올랐다.
“보시다시피 새로 구입한 옷은 풀어 놓을 곳도 없고, 장비 놓을 데도 없어서 나만의 공간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처음에는 정리정돈을 열심히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장비를 꼭 방에 둘 필요가 있을까요? 사무실에 개인 장비가 있다고 들었는데….”
안준영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자꾸 자는 중에 음악이 떠올라서, 방에 장비가 없으면 불안해서요.”
“아….”
“나만의 작업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중에 우연히 엘리우 팰리스 공사 현장을 보게 되었고, 저런 곳에 내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집을 구입하게 된 거예요.”
안준영이 배시시 웃었다.
“활동 기간에는 숙소생활을 계속 유지해야 하니까, 당분간은 그곳을 저의 작업실과 드레스룸으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흠흠. 이곳을 보니까, 집을 갖고 싶은 안준영 씨의 목적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럼, 이제 가 보실까요? 제 꿈의 집으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카메라 감독을 제외한 일행은 산책하듯 걸어서 현장으로 향했다.
“동네가 정말 한적하네요.”
“네. 늦은 시간에는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어요. 저를 알아보시는 분도 거의 없고, 알아보신다고 해도 그냥 눈인사 정도만 하고 지나가시고. 그래서 산책하기 너무 좋죠.”
단지 내부에 들어서자, 작가는 호들갑을 떨며 좋아라 했다.
“와~ 단지 조경이 꼭 유럽의 공원 같아요.”
“네. 아직 단지의 일부만 완성되어서 조금 작긴 하지만, 연말에 3단지까지 완성되면 정말 대단할 거예요. 그렇죠? 한 팀장님?”
“네. 아마 내년 봄쯤이 제일 좋을 겁니다.”
“오~ 그럼 그때 또 놀러 와도 되나요?”
“물론이죠! 대신 방송 잘 만들어 주셔야 해요!”
안준영이 애교를 부리며 미소를 짓자, 작가가 꺄르르 넘어간다.
그런 모습을 멀뚱히 보고 있던 예건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연예인은 정말 피곤한 직업이구나.’
과거 카메라를 피해 다녔던 이유가 단지 자신이 못생기게 나오는 게 싫어 그랬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긴 집 앞만 나서도 파파라치가 따라붙었으니.’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 점이 사람들의 이목을 더 끌었던 것일 터.
그러고 보면 현시대는 건축가들이 살기 퍽 좋은 환경인 것 같다.
과거와 달리 귀족들의 건축물을 짓는다고 무턱대고 욕을 먹는 경우도 없고, 유명인의 집을 지었다고 해서 딱히 이슈가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안준영의 집은 1단지의 중앙에 있었기에 네 사람은 금방 현장에 도착해 먼저 와 있던 촬영감독과 합류했다.
예건은 집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행에게 설명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A-3의 주거 형태는 A-1과 동일하게 부모와 자녀세대, 즉 2세대가 각자의 삶을 영위하며 함께 사는 것으로 설계하여, 1층과 2층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A-8과는 달리 내부 계단이 없다는 점 참고해 주십시오.”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죠.”
안준영은 불안한 눈빛으로 예건과 도 피디를 번갈아 보았다.
‘이틀 전에 왔을 때는 분명 내부 계단이 있었는데? 도대체 어쩔 셈이지? 아!’
편집을 위해 촬영진들과 이미 말을 맞춘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얌전히 따라 들어갔다.
문을 열자, 회색 콘크리트 일색인 공간과 여기저기 미리 빼 둔 두 가닥의 전선만이 눈에 들어왔다.
현장 조사를 낮으로 잡은 건 실내조명이 부족하여 촬영이 불가할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군요.”
“네, 여긴 아직 조명도 설치되지 않았으니까요.”
카메라 감독이 구석구석을 비추며 실내를 촬영했으나, 콘크리트 기둥과 벽, 마감 안 된 높은 천장, 외부로 뚫린 거대한 창문이 다였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분명 저쪽에….’
준영이 침을 삼키며 원래 계단이 있었던 곳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시멘트 벽과 똑같이 생긴 벽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며칠 새 콘크리트 벽을 새로 쳤을 리도 없고.
이후 추가 촬영이 발생할 것을 고려해 계단 가림막은 당분간 유지할 생각이라고 얘기해 둔 상태였다.
그의 고민과 상관없이 도 피디는 진행을 이어갔다.
“한강으로 향한 뷰가 정말 예술입니다. 이곳에 어떤 디자인이 탄생할지 벌써 궁금해지는데요.”
이윽고 촬영감독이 다 찍었다는 사인을 보내자, 그는 예건과 준영에게 말했다.
“됐습니다. 이제 사무실로 옮겨서 설계 브리핑 장면 촬영하시죠.”
안준영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잠깐만요. 피디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닌가요? 오늘은 저희 숙소랑 현장 확인만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 혹시 시간이 안 되시는 건가요?”
이제 겨우 오후 3시.
도 피디가 전달한 촬영 시간은 오후 5시까지였다.
“저는 괜찮은데, 한 팀장님이….”
“한 팀장님이 설계 브리핑까지 가능하실 것 같다고 해서, 거기까지 일정을 잡은 건데요. 두 분 얘기가 아직 안 되신 겁니까?”
“벌써 설계가 끝났다고요?”
도 피디와 안준영의 시선이 동시에 예건에게 향했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을 향해 느긋하게 말했다.
“일정이 촉박할 것 같아서, 기본 설계는 모두 끝냈습니다. 오늘 브리핑 이후에 피드백 주시면 보완해 다음 주부터 시공 착수할 예정입니다.”
“어…. 디자인이라는 게… 그렇게 빨리 가능한 건가요?”
준영의 머릿속에 온갖 안 좋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막상 디자인 제안서를 봤는데 시중에 나온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을 보여준다던가, 자신의 취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인테리어 제안 중에서 선택하기를 강요받는다던가.
그런 곤란한 상황이 연출될지 모른다.
‘그럼 어떡하지? 방송이니까 적당한 선에서 선택해야 하나?’
준영이 당황한 것을 재빠르게 눈치챈 예건은 그의 어깨를 친근하게 감싸며 부드럽게 토닥였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모든 공간 디자인은 의뢰인인 준영 씨의 선택에 따를 거니까요. 디자이너는 건축주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마법사 같은 존재랍니다. 그러니 방송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 편히 의견을 주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아…. 네!”
준영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랑 비슷한 또래인 것 같은데, 어쩜 저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거지? 카메라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 태연한 척 노력하는 자신과 달리, 예건은 정말 평소처럼 행동했다.
카메라 앵글 밖이라서 그런가 싶었지만, 현장을 설명하는 동안에도 목소리를 떤다던가 어색한 몸짓을 보이는 등의 실수가 없었다.
준영은 궁금했다.
과연 저렇게 평온한 태도를 브리핑 중에도 보여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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