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수도자의 길 (1)
마테오가 안내한 곳은 안뜰로 향한 작은 조각 창문이 있는 3평 남짓한 작은 침실이었다.
열쇠 따위는 없는지 동그란 손잡이 레버를 돌리자 딸깍 소리를 내며 곧바로 문이 열린다.
“이곳이 성도님께서 지내실 숙소입니다.”
아치형 천장과 벽은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듯한 돌 벽돌로 마감되었고, 벽 상부에는 성화가 걸려 있었다.
침실 내에 놓인 가구라고는 싱글 사이즈의 나무 침대와 성경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 세트뿐.
특별한 게 없음을 확인한 예건은 마테오에게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제가 지켜야 할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아침 식사 후, 8시 미사 시간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정해진 식사 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 외부 식당에서 드시면 되고요.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활용하시면 됩니다.”
예건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물었다.
“그럼, 도면이 보관된 자료실로 안내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바로 말입니까?”
마테오는 주저하듯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따라오시지요.”
예건은 자신이 가져온 가방을 그대로 챙겨 들고 그를 따라나섰다.
구불구불한 복도와 좁은 나선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를 10여 분.
퀴퀴한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복도 끝 거대한 아치형 양개문을 반쯤 열자, 제법 큰 규모의 도서관의 모습이 드러났다.
도서관을 지키고 있던 사서에게 예건을 소개하자 사서가 도서관 사용 규칙을 설명했다.
“도서관 방문 시에는 꼭 방문록을 체크해 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방문록 작성법 및 몇 가지 기본적인 주의 사항을 듣고 난 후에야 사서는 그를 놓아주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테오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안내를 시작했다.
“도면 자료실은 도서관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합니다. 이쪽으로.”
“네.”
나무 책장으로 빼곡한 도서관을 지나 도착한 작은 문.
문짝에 붙어 있는 흐릿한 나무 팻말이 이곳이 얼마나 오래된 건물인지, 다시금 세월의 깊이를 깨닫게 했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제법 커다란 작업실이 나타났고, 도면을 복제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현대의 일반적인 건축사무실과 달리 작업자들 모두 수기로 도면을 그리고 있었다.
전부 수도사 복장인 것도 특이한 점이었다.
“저분들은 모두 이곳의 수도사님들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대부분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신 분들이죠.”
“그렇군요.”
“작업하시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휴식시간에 물어보시면 친절히 응답해 주실 겁니다.”
마테오는 이곳에서 1차로 도면을 복제하면, 그걸 별도 설계사무실에서 전산화하는 시스템이라 부연했다.
마테오는 사람들에게 예건을 소개하고 그의 자리를 안내했다.
꽤 연식이 오래된 각도 조절형 제도판과 테이블이 한 세트였다.
“작업은 이곳에서 하시면 되고, 복제하실 도면은 이 리스트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마테오는 미리 준비해 놓은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
업무량에 비해 공간이 협소한 느낌이 없지 않아 들었으나, 도면실과 가까운 구석 자리인 점은 마음에 들었다.
“관리자에게 말해 두었으니, 종이나 비품들은 편하게 사용하시면 될 겁니다.”
“네, 그렇게 하죠.”
예건이 곧바로 자리에 앉아 비품을 확인하자, 마테오가 넌지시 물었다.
“바로 작업하실 생각이십니까?”
“기본적인 업무는 파악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제게 더 알려주실 게 없으시면, 마테오 님은 그만 돌아가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모두 외웠습니다.”
‘이 복잡한 구조를 단번에 다 외웠다고?’
마테오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예건이 당황해 그러는 거라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고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쫓기듯 작업실을 나온 마테오는 그를 따라 나오는 관리자를 발견하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관리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며 마테오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 들었던 것보다 더 어린 것 같은데.”
이곳 몽생 미셸은 과거 감옥으로 활용되었을 정도로 적막한 곳이다.
밤이 되면 인공의 빛 한점 들지 않은 완벽한 칠흑인 바다로 향한 창.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려 푸른 하늘 한 번 보기 힘든 곳이었다.
수도사의 경건한 수도 생활을 위해 관광객과 완전히 고립된 위치에 있는 수도원임에도 그들이 관리해야 하는 영역은 섬 전체인 이유로 고된 육체노동까지 겸해야 하는 것이 이곳 몽생 미셸의 수도사의 생활.
고행을 일상으로 여기는 수도사들조차 이곳에서 수행하는 것을 꺼려할 정도로 외롭고 힘겨운 곳인데, 이곳에서 과연 일반인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염려한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들 뒤편의 어두운 복도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버티지 못한다면, 그 또한 주님의 뜻인 게지.”
“아! 수도원장님 오셨습니까?”
마르탱 교수와 브루노 건축사를 돌려보낸 티모테 수도원장이 당부를 위해 관리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가브리엘, 자네에게 부탁이 있어서 왔네.”
“부탁이라면?”
“그분의 허락이 있을 때까지 먼저 도움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하네.”
가브리엘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하지만 수도원장님, 그래서는 도면을 파악하는 데도 몇 년이 걸릴 겁니다.”
“몇 년이 걸리든 상관없네. 이곳도 지금의 모습을 갖기까지 천년이란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가브리엘은 수도원장의 뜻을 마음에 새긴 관리자는 경건한 몸짓으로 몸을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수도원장님.”
한편, 예건을 두고 파리로 돌아가야 했던 브루노와 마르탱은 각자 복잡한 심정을 정리하느라 말을 아꼈다.
기나긴 침묵을 깨고 브루노가 먼저 물었다.
“교수님, 수도원장님은 도대체 한예건을 어쩔 생각이신 걸까요?”
“글쎄. 그 깊은 뜻을 내가 어찌 알겠나?”
조수석에 앉은 마르탱이 불퉁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자네가 보기엔 얼마나 버틸 것 같은가?”
“글쎄요. 한 팀장은 몰라도 저는 이틀을 못 버틸 것 같습니다.”
“하아- 길어 봐야 일주일이겠지?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마르탱 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브루노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일단 한 팀장을 믿고 기다려 보시죠.”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있겠는가? 괜히 그 아이의 부담감만 커질 걸세. 그랬다간….”
리암 마르탱은 샤또 메종 발루아를 처음 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창의적인 장식과 예술적인 디자인 감각은 단순히 학교에서 교육한다고 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교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편입생 졸업반으로 받아들였고,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건축사 자격을 고속 취득할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건축 기술은 과거보다 향상되었다고는 하나, 사람들의 상상력은 오히려 과거보다 퇴보했다.
한예건 같은 인재를 쉽게 확보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만약 한예건이 저곳에서 못 버티는 상황이 되면 곧바로 한국으로 도망쳐 버릴 것 같고, 버틴다 해도 대학의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편이 빠를 것 같았다.
마르탱이 결심한 듯 표정을 굳혔다.
“다시 돌아가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조건이야. 지금이 무슨 19세기도 아니고. 좋은 교육 시스템을 놔두고 이 무슨 해괴한 시험인지. 브루노, 어서 차를 돌리게.”
하지만 브루노는 마르탱의 지시를 모른 체하고 파리 방향으로 운전을 계속했다.
“교수님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응? 뭐가 말인가?”
브루노는 투박한 얼굴에 어쩐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걸고는 말했다.
“프랑스의 건축 역사를 온전히 이해한 천재가 어떤 수도원을 디자인할지 말입니다? 한 팀장, 그 친구도 나름 생각이 있어서 머무르겠다 한 것일 테니,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그렇게 말하는 브루노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 * *
자리를 배정받고 도면실로 들어간 예건은 시기별로 만들어진 평면도를 구석 자리에 펼쳐 놓고 몽생 미셸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천년이라는 오랜 시간, 필요에 의해 조금씩 증축된 이 건축물은 미로 같이 복잡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8세기 세워진 소규모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과 수도원을 시작으로 11세기 필립 오귀스트 왕의 막대한 기부로 수도원이 증축되었다.
14세기 영국과의 백년전쟁이 터지자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본 프랑스는 성곽을 쌓아 견고한 방어 체계를 만들었다.
전쟁이 끝난 15세기에는 섬의 꼭대기에 ‘후기 고딕 양식’의 성당을 새로이 짓기 시작했으며 이로써 18세기에 지금의 형상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경사지에 마련된 건축, 게다가 외부로 증축을 거듭했으니 동선이 여러 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도면을 보니, 수도사들이 현재 생활하는 지역에 빛이 거의 없었던 것이 이해가 되는군.’
원래도 수도사의 방은 검소한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유독 창이 작고 중정도 없어 복도에 전혀 빛이 들지 않았다.
이는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려는 건축적 목적이 여실히 반영한 것이다.
기독교 초기 성행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건축물이라 그럴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인간의 타락과 욕망이 지배하는 ‘지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한 사랑과 구원의 영역인 ‘신의 나라’를 구분 지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장소인 성당은 인간을 ‘지상’에서 벗어나 ‘신’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이며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어야 하는 곳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고립된 곳이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지.’
만조에 이르고 외부와의 출입이 유일하게 허락된 왕의 길이 닫히는 순간, 몽생 미셸은 완벽하게 세상과 격리되어 압도적인 견고함을 과시한다.
교회에 장식성이 부가되고 창을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로 연출하기 시작한 것은 가톨릭이 유럽에 자리 내리고, 고딕 양식이 도입되던 시기부터였다.
‘빛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기에 건축에서 창의 역할이 커졌지. 내가 만들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그 부분에 특히 신경을 썼었고.’
건축은 만들어지는 시대의 사상과 우선시되는 가치를 반영하여 건축된다.
당시의 역사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파악하는데 건축이 중요한 자료가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예건은 마치 도면과 대화하듯 몽생 미셸의 역사를 건축으로 읽어 내려갔다.
당시 건축가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며 건축 공간을 분석하는 것은 그에게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 예건이 도면에서 눈을 뗀 것은 저녁 미사가 끝나고 돌아온 사서가 마지막 점검을 하다 퇴실자 목록에 그의 이름이 없는 것을 발견한 후였다.
넓은 공간을 헤매며 한참을 찾고 돌아다녔는지, 그의 이마에는 살짝 땀이 맺혀 있었다.
“아직까지 여기 계십니까? 저녁은요?”
해가 들지 않으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습니까?”
놀란 표정의 도서관 사서가 그에게 물었다.
“벌써라뇨? 이미 저녁 9시가 넘었습니다. 설마 아까 입실하고 여기에 쭉 있었던 겁니까?”
예건은 미안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도면을 정리했다.
“원래 집중을 하면 시간의 흐름에 좀 둔감한 편이어서요. 혹시 내일은 몇 시부터 방문이 가능할까요?”
자그마치 12시간 가까이 도면을 보았으니 지칠 만도 한데, 예건의 표정에는 전혀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늦어도 7시에는 개실합니다.”
“알겠습니다.”
예건이 도면을 정리하려 일어서자, 사서가 그를 저지하며 말했다.
“그냥 두고 가십시오.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리 말한 예건은 순식간에 자료를 정리하고 자료실을 떠났다.
“쯧, 그렇게 아무 데나 집어 넣으면 나중에 찾는 게 더 힘들어지는데.”
첫날이라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라 생각한 사서는 내일 주의를 줘야겠다 다짐하며 자료가 제자리에 비치된 게 맞는지 점검하려 도면함을 열었다.
“?”
다음도. 그다음 도면함도.
일일이 열어서 확인하던 사서의 눈이 서서히 놀람으로 바뀌었다.
“어라, 이게 왜 맞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