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왕실 프로젝트 (4)
자칫 잘못하면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엎어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루시아 공주가 자신을 디자이너로 낙점한 것을 확신하는 순간 예건의 고민은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그가 과거 구엘 백작과 같은 귀족들의 집을 만들었을 때도 항상 들어왔던 불만이었다.
물론 과거와 현재 사람들의 인식 차이가 분명 있고, 현재의 스페인 국왕이 국민들의 신임을 얻고 있다고 해도 그 권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기득권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은 생각보다 크기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과거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성들이 불타고 무너져 내린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나.
‘건축주의 도덕적 결함이 애꿎은 건축물에 이어지면 안 된다.’
그러려면 먼저 민심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물론 완성 이후라면 말이 쉬워진다.
부수는 것을 아깝게 생각할 정도로 공을 들이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난항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은 카탈루냐인도 아니고, 바르셀로나에서 학업을 쌓은 것도 아닌데 이곳 사람들의 민심을 얻을 수 있을까?
예건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은 일이야. 프랑스와 달리 바르셀로나는 배타적 성향이 강한 곳이야. 그들의 마음에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
예건이 상념에 빠져 있는 중에 택시가 호텔 앞에 도착했고 기사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니콜이 지폐를 건네며 기사에게 말했다.
“잔돈은 됐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혹시나 이곳에 며칠 묵으실 거라면 프라도 미술관에 꼭 가보십시오.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유명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거든요. 거긴 안 보고 가시면 크게 후회합니다. 특별히 저녁 6시 이후로는 무료 관람이 가능하죠.”
기분이 좋아진 택시 기사가 가이드를 자처하며 조언했다.
‘무료라고?’
그때 예건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치며 기뻐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 * *
며칠 후 도면을 가지고 루시아를 찾아간 예건.
그가 만들어온 설계 제안서를 보고 루시아는 크게 기뻐했다.
“너무 아름다워요. 정말 내년 9월까지 완공할 수 있는 거 맞죠?”
“물론입니다.”
“좋아요!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으니 꼭 이대로 완성해 주세요.”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디자인 하겠습니다. 하지만 설계에 착수하기 전에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확인할 거라뇨? 설마 스페인 공주인 내가 내 집 디자이너 하나 결정 못 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건가요?”
겉으로는 센 척하지만, 은연중에 조바심이 드러났다.
“계약과 관련된 거라면, 그건 제 수행 비서에게.”
루시아 공주가 피곤한 표정으로 일을 비서에게 떠넘기려 하자, 예건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약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예건은 바르셀로나의 현 상황과 스페인 왕실, 공주의 입장을 분석한 결과를 설명하며 이후 벌어질 일들을 상세하고 간단히 설명했다.
“겨우 집 하나 때문에 내 권위가 바닥에 추락할 거라는 건가요?”
“물론 공주님께서 그동안 얼마나 국민들을 위해 노력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법이니까요.”
루시아 공주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사치를 수치라고 배우며 억눌려 자랐던 어린 시절의 루시아.
허울뿐인 스페인 공주라는 신분은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와 같았다.
그녀가 어딜 가나, 무슨 일을 하나 자신을 향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결혼도 마찬가지.
어디서 누구와 결혼 하는지, 어느 지역에서 살지 까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사람들의 이야기 소재로 오르내리고 있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불편한 감정.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달랐지.’
그곳을 다닐 때면, 누구도 자신을 특별 취급하지 않는다.
물론 간혹 알아보는 이들이 있으나 그뿐이다. 마치 외국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과도한 국민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정착하는 거라고 해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루시아 공주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캐치한 예건이 늦지 않게 해결 방안을 꺼내 놓았다.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 사후 기부하는 조건으로 저택을 만드는 게 어떨까요? 지금 바르셀로나의 경제에 이바지 하고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들처럼, 역사에 남는 예술적인 건축물을 만들어 잠시 사용하다 후대에 물려 주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시는 거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공주님의 성품에 걸맞은 아주 적절한 해결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덧붙여 예건은 루이비제 재단의 미술관 기부에 대해 언급했다.
“루이비제가 파리 시민을 위해 미술관을 지어 기부채납 한다고요? 그게 사실인가요?”
“물론입니다. 그 프로젝트를 제가 몸담은 회사에서 함께 추진하고 있거든요.”
“음….”
예건의 말대로 그런 방식이라면 저 시끄러운 언론의 비판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는 있을 거다.
루시아는 예쁜 미간을 찌푸리고는 설계도를 내려다보며 잠시간 고민했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닮은 유선형의 형태, 하지만 그를 이루는 마감재는 현대적이면서 세련미가 넘쳤다.
이런 집이라면 문화재까지는 아니더라도 21세기를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그 보존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죽은 뒤에 예쁜 집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
그런 생각에 이른 루시아는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 사인해 주십시오.”
언제 준비한 것인지 예건의 손에는 제법 두꺼운 서류가 들려 있었다.
“꼭 사인까지 해야 해요?”
“지어지던 당시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이 어떻게 지금은 그토록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틀린 답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모른 척했다.
어차피 답이 정해진 질문인 듯하니.
“그건 구엘 백작 개인 소유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영유할 수 있도록 후대에 공유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경영 악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르셀로나에 팔아야 했던 것이긴 하지만요.”
예건은 루시아 공주를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왕이면 사치와 향락을 즐기던 공주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보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공주로 다가가는 편이 훨씬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루시아는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 당연하죠. 전 정말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걸요.”
턱을 세운 채, 도도한 표정을 지어 보인 루시아는 문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서둘러 서명했다.
“그럼, 이제 된 건가요? 아버지는 어떻게 설득할 생각이에요?”
“디자이너 변경 건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뜻이죠?”
“스페인 왕실과의 계약은 예정대로 게리 교수님 사무실과 진행할 거니까요.”
“뭐라고요? 아니, 어떻게?”
루시아 공주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예건은 루시아 공주가 사인한 서류를 챙겨 가방에 넣으며 대답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게는 아직 건축사 면허가 없습니다. 그래서 프랭크 게리 건축사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자신의 디자인도 아닌데, 그가 허락할 리가 없잖아요?”
당황한 루시아 공주의 물음에 예건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아! 저런, 제가 그때 제 소개를 다 드리지 않았었나 보군요. 게리 교수님을 대신해서 바르셀로나의 현장 조사를 했던 게 저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제게 실무를 맡기겠다고 의견을 주셨고요.”
예건은 자신의 설계도면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이 도면도 이미 게리 교수님께 보고를 마치고 공주님께 보여드린 겁니다.”
“그럴 수가….”
루시아 공주는 마치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처음 뵀을 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이런, 공주님의 소중한 시간을 제가 너무 많이 빼앗았군요. 저는 이만 설계를 마무리하러 돌아가 보겠습니다.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건이 떠나고도 루시아 공주는 한동안 상황을 파악하느라 고심했다.
마치 거대한 강줄기를 탄 것처럼 휩쓸리는 바람에 자신의 의지대로 진행되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 반문한 것이다.
“아니지. 잘못된 건 하나도 없어. 난 내가 원하는 집을 아무 고민 없이 갖게 된 거니까. 오히려 잘된 거야.”
루시아는 예건이 앉았던 자리와 남겨진 설계 도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되게 묘한 사람이네. 그를 만난 후로 일이 너무 쉬워졌어. 게다가 내 집이 이렇게만 완성된다면 내 신혼 생활도 훨씬 행복해지겠지.”
이젠 마음 편히 선물 상자가 열리는 날만 기다리면 된다.
물론 귀찮은 일들이 조금 있기는 할 테지만.
“아버지를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어디야.”
루시아는 편안한 마음으로 식은 차를 마셨다.
잔향이 그윽하게 코끝을 자극하며 평안을 선사했다.
* * *
루시아의 비서와 계약 관련 사항을 마무리하고 곧바로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예건은 아침 일찍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시공을 맡아 관리할 업체 대표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정이 다급하다는 것을 인지한 게리 교수가 특별히 신경 써서 연결해 준 바르셀로나 현지 업체였다.
그가 막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익숙한 관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산체스 님, 오랜만에 뵙네요.”
“아. 네…. 그런데 어쩐 일로?”
그는 예건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그도 그럴 게 설계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말을 공주의 측근으로부터 전해 들었기 때문.
‘어쩐다.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네. 사실대로 말해줘야 하나?’
산체스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떼려 하는데, 예건이 방문 목적을 전했다.
“여기서 시공사 대표님을 만나기로 해서요.”
“시공사요?”
“아! 저기 오시네요.”
예건이 입구 쪽을 가리키자, 돌아본 산체스가 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아는 체를 했다.
“어? 호마르 대표님 아니십니까? 어떻게 현장까지 직접?”
루시아 공주가 현장에 들른 것도 아닌데,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건설회사 대표가 직접 현장에 들른 것이 의아했던 산체스.
“하하. 산체스, 오랜만이군요.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루시아 공주님의 저택 공사를 코라손 건설에서 맡게 되셨다는 건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축하 받을 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이번 설계를 맡은 디자이너가 엄청난 사람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신경 쓸 게 많을 것 같군요.”
당연히 현대 건축 거장인 프랭크 게리 건축가를 말하는 것이라 판단한 산체스는 아쉬운 표정으로 답했다.
“저기… 그게. 죄송하지만 프랭크 게리 건축가님은 안타깝게도 이번 프로젝트를 다른 이에게 넘긴 거로 압니다만. 그리고 그분은….”
설마하니 호마르 대표가 만나려 찾아온 사람이 한예건이라는 건 꿈에도 모르는 그가 조심스럽게 예건의 눈치를 보며 말하자, 호마르 대표가 넉살 좋게 웃으며 그의 뒤를 응시했다.
“하하. 벌써 와 계시군요.”
산체스의 고개가 절로 예건을 향해 돌아갔다.
‘뭐? 그럼 진짜? 저 젊은이가 공주님의 저택 설계를 맡은 설계자라고?’
얼어붙은 그를 지나친 호마르 대표가 예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코라손 건설의 칸델라 호마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예건입니다.”
호마르 대표의 시선이 한예건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또렷하게 말했다.
대형 건설사의 대표와 햇병아리 설계자라는 격차에도 예건의 눈빛은 전혀 위축됨이 없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한예건의 실력이 좋다는 것은 이미 도면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막상 그와 마주하고 보니 너무도 어린 외모에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프랭크 게리 건축가님께서 그의 설계를 지원하실 테지만. 그래도 긴장하고 있어야겠군.’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제가 디자인한 건축물을 공사해주실 분인데요.”
호마르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건의 표정을 해맑기만 했다.
“착공은 언제부터 가능할까요?”
“글쎄요. 허가를 득해야 하니, 적어도 3개월 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예건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공사 기간은요?”
“적어도 9개월은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호마르 대표의 대답에 예건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네? 겨우 180평짜리 주택 1동 공사하는 데 9개월이나 걸린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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