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인터뷰 (1)
착공식을 마치고 오후에 이뤄진 설계자 인터뷰.
수많은 기자와 관계자들이 카사 바트요의 노블 층에 모여들었다.
인터뷰를 참관하기 위해 따라온 하주연과 이경록은 거실을 가득 매운 인파를 보며 기가 질릴 정도였다.
“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
“스페인 기자만 온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저기 프랑스 방송국 아니에요?”
“어? 글쎄. F로 시작하는 거 보니 맞는 것도 같고.”
발루아를 선보인 이후로 한예건에 관한 관심이 지대했던 프랑스 방송국이 찾아온 것은 물론이요, 인근의 이탈리아 방송국에서도 온 것 같았다.
“건축주가 공주라서 그런가, 확실히 관심도가 다르긴 하네.”
“그러게요.”
잠시 후, 인터뷰를 진행할 진행자와 먼저 인사를 나눈 예건은 카사 바트요 운영팀이 준비해둔 의자에 앉았다.
이내 진행자가 간단히 예건에 대해 소개하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별도로 마련한 대본 없이 현장에서 직접 기자의 질의를 받고, 그에 예건이 답하는 방식이었다.
기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나 어떻게 스페인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가 스페인 공주의 신혼집을 설계할 수 있었느냐였다.
“혹시 루시아 공주와 친분이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이전에 공주님께서 추진하신 자선 파티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그것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원래 프랭크 게리에게 이 프로젝트가 제안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한예건 씨가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거죠?”
거장 프랭크 게리와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한예건이 갑작스레 프로젝트를 맡은 것에 대한 의구심을 보이는 질문이었다.
“기자님 말씀 대로, 스페인 국왕께서는 바르셀로나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상징적 건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고 빌바오를 부흥시킨 프랭크 게리 건축가님께 이 프로젝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프랭크 게리 건축가님은 바르셀로나의 정체성은 이곳 자연과 지역을 가장 잘 파악한 가우디의 건축에 있다고 생각하시고, 직접 이 프로젝트를 맡는 대신 저를 추천해 주신 겁니다.”
“그렇다면 더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한예건 씨는 이곳 바르셀로나 출신도 아닌 데다, 바르셀로나에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곳엔 매년 가우디의 건축 스타일을 연구하고 졸업하는 이들이 수십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왜 당신이어야 했던 거죠?”
기자는 아예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승낙하기 전 각오한 바였기에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질문에 답했다.
“제가 오히려 기자님께 여쭤보고 싶군요. 가우디의 건축이 배우면 따라할 수 있는 건가요?”
“그, 그야….”
기자는 얼굴이 뻘개지며 더듬거렸다.
“디자인은 제가 하고 있지만, 모든 과정은 프랭크 게리 건축가님께서 관여하고 계십니다. 또한 제 설계를 보시고 현재 바르셀로나의 전통성을 지키며 시대성도 가미했다고 평가해 주셨고요.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 번 물러서면 계속 물어뜯는 게 기자의 습성이다.
이쯤에서 적당히 눌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예건은 기선제압을 위해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제가 디자인한 카사 루시아의 투시도를 보시고 오셨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지만요.”
“크, 크흠.”
질문한 기자는 꼬리를 감추고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기자가 손을 들더니 예산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다.
“이번 저택 공사비 총액이 900만 유로에 달한다고 하던데, 이와 관련해 국민들의 우려가 깊습니다. 이제는 일반인에 가까운 공주의 신혼집을 짓는데 굳이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국민들의 심려는 저 또한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록 공주의 사택으로 사용되지만, 추후 바르셀로나의 재산이 될 건축물입니다. 도시의 상징적 건축물이 이후 지역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기자님들께서 저보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예건은 잠시 숨을 고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지금부터 정말 중요한 말을 저들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가 천재 건축가라 불리는 가우디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하실 텐데, 그 부분은 이곳 카사 바트요의 복원 전문가이고, 지난 20여 년간 가우디의 건축물을 복원하신 산티아고 실바 님께 인정받았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죠.”
“뭐라고요? 정말입니까?”
멀찍이 서있던 산티아고 실바가 약속한대로 한 걸음 나서며 그 질문에 답했다.
“사실입니다. 한예건 씨는 이곳 노블 층에 방문하자마자 복원 상태의 문제점을 저에게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조사 과정에서 그의 지적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죠. 곧 그에 따른 복구 작업이 시작될 겁니다.”
예상치 못한 답을 들은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이후 기자들이 복원의 원인과 구체적인 계획을 물었고, 산티아고는 전문가답게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반평생을 가우디 건축물을 복원한 그였기에 전문성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 팀은 오랜 기간 가우디가 남긴 자료를 검토했습니다만, 그 누구도 한예건 디자이너의 지식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도움을 받았죠.”
한 기자가 손을 들며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얻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는 우리에게 건축 당시 사용된 재료와 혼합 비율 등 복원에 가장 중요한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고, 우리는 실험으로 그것이 사실임을 검증했습니다. 우리 바르셀로나는 잊고 있었던 가우디의 건축 방식들을 오히려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 셈이죠.”
“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가우디는 자신의 건축 방식에 관한 자료를 남기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때문에 설계 도면이 남아 있지 않은 건 물론이고, 있다 해도 현장에서 즉석으로 변경한 것이 태반이었다.
정확한 답이 없으니 가우디를 연구하는 박사들 조차도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젊은 청년이 한눈에 복원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사용된 재료의 정확한 혼합 비율까지 찾아냈다면, 가우디에 버금가는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소란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 후, 이번에는 다니엘 베르낫이 나섰다.
“저는 이곳 카사 바트요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다니엘 베르낫입니다. 저희는 카사 바트요를 더욱 풍성한 볼거리가 있는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고심했습니다만, 결국 그 프로젝트를 여기 한예건 디자이너에게 전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폭탄 선언에 기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이후 다니엘 베르낫은 한예건과 함께 일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고, 이는 그의 디자인 재능이 예사롭지 않음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국부 유출을 우려하는 기자들에게는 한예건이 카사 루시아로 벌어들인 수익을 전액 카사 바트요의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는 것을 밝혔다.
두 사람의 도움 덕에 날 서 있던 기자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예건은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운 표정으로 기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까사 루시아를 바르셀로나에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공주님께서 바르셀로나를 너무나 좋아하기에 내린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국왕과 공주의 의도라기 보다는 예건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타협이었으나, 전권을 주었으니 이정도는 띄워 줘야겠지.
“과거 구엘 백작이 없었다면, 지금의 구엘 공원도, 세계적인 건축가로 칭송 받는 가우디도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무작정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 보다 좋은 건축물이 만들어지도록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세계적인 랜드마크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가우디를 무척이나 존경하지만, 그에 앞서 그의 건축물이 지금껏 세상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건축물을 사랑하고 보존에 힘써준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소력 넘치는 예건의 발언에 순간 기자들은 경직되었다.
은연중에 그가 얼마나 바르셀로나를 아끼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건은 기자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건축가 가우디의 뜻을 이어 이곳에 신의 창조물을 닮은 건축물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건의 눈빛에서 가우디의 영혼을 본 것일까?
인터뷰 장에 모인 그 누구도 헛기침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의 말을 끝으로 진행자는 1시간에 걸쳐 이어진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예건이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그를 맞이하던 차가운 시선은 기대 어린 박수로 바뀌었다.
하지만 예건은 아직 만족할 수 없었다.
전생에 그를 따르던 명성과 환호,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자신에게 보내던 경외를 다시 한 번 이곳에서 이룰 생각이니.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선 거다.’
예건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확인한 다니엘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
“긴장할 것 없습니다. 어차피 저들도 인정하게 될 테니까요.”
“긴장한 게 아닙니다.”
예건은 그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인터뷰가 나간 후가 너무 기대되는군요. 제가 이곳에 나타난 걸 알면, 놀랄 사람들이 좀 있거든요.”
예건의 눈빛에서 승부욕을 언뜻 본 다니엘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음? 그렇습니까? 미스터 한을 도발한 이들이 누군지 궁금하군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눈앞에 진짜를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 먼 추종자들이죠.”
예건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듯 앞서 걸었다.
성공적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음에도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건 왜일까?
어쩐지 다니엘은 오늘 인터뷰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예수의 진짜 고난은 예수의 제자라 불리며 추종했던 이들이 그를 배신하면서 시작된 게 아니었나?
스스로를 진짜라 말하는 예건과 가우디의 영혼을 신격화하고 망령으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 견고한 성을 쌓은 추종자들 사이의 대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끝까지 한예건의 편에 서겠다고.
* * *
방송과 신문으로 한예건의 인터뷰가 급속히 퍼져나갔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가우디의 아성에 도전하는 젊은 건축가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우디를 들먹이며 화제성을 키우려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더불어, 그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조롱하는 인종차별 주의자들도 기승을 부리기 시작헀다.
바르셀로나 대표 신문사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한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잇는 천재 탄생?’이란 제목의 기사는 예건과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말미에 의문을 표했다.
[과연 그의 건축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기사 하단 댓글창은 난리가 났다.
– 패기 장난 아닌던데? 인터뷰 방송 봤는데 눈으로 기자들 압살할 분위기였음
└ 사자의 심장 인정
– 한예건 님, 너무 멋져요!!! 응원합니다.
– 영앤리치인데 천재이기까지! 세상 혼자 사네. 부럽다.
– 난 그 카사 바트요 복원 책임자라는 사람의 경력이 의심 됨. 무슨 자재를 썼는지도 모르면서 복원을 어케 함? 그거 분석하고 복원하라고 전문가 쓰는 거 아냐?
└ 가우디가 워낙 자료를 안 남겨서 그래요.
– 원숭이가 가우디? 천국에서 가우디가 통곡을 하겠다. 이젠 개나 소나 가우디 이름 들먹이면서 노이즈 마케팅을 해대네
– 제가 이분 디자인 직접 확인해 봤는데, 진짜 장난 아닙니다. 동양인이라고 무턱대고 평가절하부터 하지 말고, 디자인을 보세요!
└ 웃기시네. 건축에 대해 뭘 안다고 대단하다는 건지.
└ 바르셀로나 건축학교 졸업생이거든. 가우디 건축으로 논문도 썼고.
└ 그렇게 당당하면 학번 까보던지.
– 아직 건축사 면허도 없는 학부생이라고 하던데? 게다가 바르셀로나 건축학교도 아니고.
└ 면허 없으면 설계 못하는 거 아님?
└ ㄴㄴ 설계 사무실 소속이라 상관없음. 도장만 못찍는 거
외근을 나갔다 뒤늦게 기사를 확인한 리오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한예건이 지금 바르셀로나에 있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