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환상의 팀웍 (5)
멀리서는 빛을 받아 그저 하얗게 보였던 나비의 몸통 부분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세밀한 디테일이 돋보였다.
다양한 형상으로 촘촘히 얽혀 있는 백색의 선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운 푸른 빛의 모자이크 타일들이 서서히 그 형태를 드러내니.
바람에 흩날리는 눈꽃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예건은 갑자기 멈춰선 루시아 공주를 향해 물었다.
“아, 아뇨. 그냥….”
벽면에 촘촘히 새겨진 눈꽃이 만들어내는 황홀경에 호흡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던 루시아는 예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냥 너무 아름다워서요.”
“실내에서 보는 건 더 아름다울 겁니다. 들어오시죠.”
어느새 문 손잡이를 잡고 선 예건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녀를 에스코트 했다.
새와 나뭇가지, 꽃, 잎사귀 등 에덴 동산을 수놓은 듯한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거대한 백색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자 루시아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15미터에 이르는 높은 중앙 홀.
양쪽 방향으로 휘어지듯 원을 그리며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바닥부터 벽까지 백색 대리석으로 마감된 내부는 시리도록 푸른 빛과 영롱한 무지개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벽에 보석을 박아 둔 것 같아!’
무광 대리석의 이음매 사이에 조그맣게 마름모꼴로 박혀 있는 입체적인 유광 대리석이 전면 벽을 뚫고 들어온 빛을 반사해 보석처럼 반짝인 것이다.
“단순한 모자이크 타일인 줄 알았는데… 유리였나요?”
“도자기와 유리가 섞여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색감의 타일처럼 보이지요.”
“그렇군요.”
신기한 것은 눈꽃 형태로 뚫린 부분 외에는 창이나 조명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을 밝힌 듯 내부가 환한 것이었다.
루시아는 눈을 들어 천장을 살폈다.
하늘로 열린 작은 천창에서 들어온 빛이 벽면을 따라 흐르며 내부를 구석구석 밝히고 있었다.
천창을 뚫고 은하수처럼 흘러내린 강렬한 직사광선이 또다시 커다란 보석에 맞닿아 사방으로 산개한다.
홀의 중앙, 와이어로 고정해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태양빛을 반사해 화려함에 정점을 더하고 있었다.
“와아-! 스페인 궁전의 그 어떤 샹들리에도 저것보다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네요.”
“크리스탈 샹들리에는 보석공예사 마에스트로 비엘 님의 작품입니다.”
“정말요? 어쩐지!”
장인 중의 장인이라 불리는 마에스트로.
그 명칭이 가진 특별함을 루시아도 모르지 않았다.
‘저건 조명이 아니라 예술이야!’
이후 내부 투어는 루시아 공주의 감탄사로 시작해 예건의 수고를 치하하는 수순을 반복했다.
멀리서 처음 건물을 보았을 때의 실망스러운 표정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얼굴 가득 찬란한 기쁨만이 가득했다.
“어쩜 모든 공간이 다 너무 사랑스럽네요. 공간의 배치도 효율적이고요. 게다가 장소 하나 하나가 마치 보석 같아요.”
예건이 의도한 바였다.
중앙 홀은 다이아몬드, 침실은 에메랄드, 욕실은 사파이어,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은 자수정.
각각 공간의 색감을 보석에 대입하여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집이란 공간에 다채로운 컬러를 더한 것.
“설계 의도를 단번에 알아 맞혀 주시다니, 정말 기쁘군요. 그럼, 이제 마지막 보석을 공개해도 괜찮을까요?”
“호호호. 어떤 보석인지, 제가 맞춰볼까요? 아직 붉은 색 공간은 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루비겠죠?”
“루비라…. 글쎄요.”
예건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중앙 홀에서 뒤뜰로 이어지는 통로 사이에 마련된 장소의 문을 열었다.
그의 손길은 마치 비밀을 공개하듯 은밀하고 조심스러웠다.
육중해 보이는 여닫이 문은 자동문인 것 마냥 부드럽게 스르륵 열렸다.
“와! 이건….”
너무 놀라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입술.
그 어떤 아름다운 찬사를 붙인다 해도 이곳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루시아는 그저 할말을 잃고 눈앞의 광경을 탐닉했다.
텅 빈 공간,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온갖 색상의 장미가 만개한 거대한 장미 숲.
초록 덤불에 짙은 향기를 머금은 것 같은 빨간 장미부터 사랑스러운 노랑과 분홍, 흔하지 않은 하늘색과 보라색 장미까지.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빛의 향연이었다.
공기 중에 짙은 장미 향기가 풍기고, 귓가에 아름다운 선율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천국을 마주한 것 같은 감동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여긴… 도대체….”
“신의 정원입니다.”
예건이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루시아가 그의 손을 잡자 예건은 그녀를 이끌고 중앙에 놓여 있는 의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치 바닥에서 장미 덩굴이 솟아나 자리를 만든 것처럼 꿈틀거리는 덩굴 형상을 한 일인용 암체어와 한송이 장미를 닮은 탁자.
테이블에는 붉은 가죽 커버의 이곳의 상징성을 일깨우듯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예건은 이 장소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곳은 예배당이자 기도실입니다. 스페인 왕조는 오랜 과거부터 신실한 카톨릭 신자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랜 수난의 시기를 버티고 아직도 왕실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평범한 삶을 선택하신 공주님의 삶에 항상 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 기도실을 만들었습니다. 저의 작은 선물입니다.”
“그렇군요. 정말 좋은 선물이네요.”
루시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 * *
‘화려함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오히려 위화감을 일으킬 수 있다 판단했습니다.’
그제야 루시아는 예건이 했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루시아 공주 부부는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평범한 사랑을 이어가는, 스스로 권위를 벗어 던진 첫번째 왕실 일원으로서 스페인 국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스페인 국민들이 그들의 결혼을 두고 세기의 통합이니, 화합의 교두보니 하는 말들로 수식하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그런 공주 부부가 카사 발루아처럼 화려하고 눈에 띄는 곳에서 살게 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고 스페인 왕실에 대한 비난이 멈추지 않을 것은 자명했다.
여기서 큰 난제가 발생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신혼집을 갖고 싶었던 루시아 공주의 바람과 격식을 벗어 던지고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했던 그녀의 삶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자신이 사는 곳이 바르셀로나의 상징적 건축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서로 상충한 것이다.
‘내 욕심이 너무 컸어.’
그 상황에서 예건은 훌륭한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외부 치장을 최소화하고 백색이 도드라지게 만듦으로 화려함보다 구조적인 형태미를 돋보이게 만들고.
창의적인 비정형적 디자인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건축함으로써 스페인의 건축 기술력이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임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기회를 마련하며.
외부를 단순화한 대신 내부를 최대한 화려하게 꾸며 실제 그곳에서 살아갈 루시아의 허영심까지 만족시킨 것이다.
예건이 선물이라며 보여준 예배당 공간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는 내게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이 예배당을 만든 거야. 내가 지금처럼 사치와 허영심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바르셀로나에서 내쳐질 거라고.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지만, 신은 벗어날 수 없다고….’
이제 어떡하지?
루시아는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 * *
예건은 주택을 설계할 때 꼭 감안하는 세 가지가 있었다.
1. 주택의 지붕에는 꼭 십자가를 설치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일반 가정집 지붕에 배치한 것은 자신이 이 건축물을 지었다는 징표와 같다.
아무도 주택 지붕에 십자가를 장식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건 환생 후 스스로 포기했다.
한국에서는 집뿐만 아니라 온갖 건물에 십자가를 달고 있었으니까.
현 시대에는 상징물을 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지은 건축물임을 증명할 방법이 많기도 했고.
2. 중정을 이용해 최대한 자연채광을 끌어들인다.
이건 카사 루시아에도 적용된 디자인이다.
아무리 전기 설비가 발전했다고 하나, 그 빛의 유용함이 빛을 대신할 수는 없다.
자연을 이용하니 친환경적인 것은 물론이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이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3. 집 안에 예배당을 만든다.
신앙심이 매우 깊었던 그는 신과 마주하며 홀로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집에 꼭 필요하다 생각했다.
건축주가 차후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그에게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신의 정원을 만들며 용도를 예배당으로 정한 것은 그에게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차후 루시아 공주가 그 공간을 연회장으로 사용하든, 운동기구를 가져다 놓고 헬스장으로 사용하든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곳을 예배당이라 알려준 이후, 줄곧 들떠 있던 루시아 공주의 태도가 돌연 바뀌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게, 어딘가 조급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이상한 일이었다.
“이 집의 모든 것이 정말 만족스러워요. 너무 아름답고요. 제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까지 완성도 높은 저택이 탄생할 거라고는…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곳 예배당은… 정말이지. 신의 은혜가 충만한 장소 같아요. 마치 진짜 신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말인데….”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눈을 아래로 깔고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읊조리는 루시아.
그녀의 시선은 탁자 위 붉은 가죽 표지의 성경책에 닿았다.
고민스러운 얼굴로 성경책을 만지작거리던 루시아 공주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멋진 공간을 저 혼자 영위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계획을 좀 바꾸려고요.”
잠시 생각을 곱씹은 루시아 공주가 못내 아쉬운 한숨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3년 뒤, 이곳을 모두에게 공개하겠어요. 비록 당장 기부하는 건 아니지만,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명소로 만든다면… 시민들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꾼 걸까?
설마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하지만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루시아의 반응이 너무 좋지 않았나?
의문이 일었으나,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상징이 되기를 바라며 지은 것이니, 시민들에 공개되는 시기가 앞당겨질수록 예건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이 소식을 들으면 엘사가 가장 좋아하겠군.’
세기의 역작이 자신이 죽고 난 후에야 세간에 공개될 거라며 툴툴거리던 모습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다.
예건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수긍했다.
“역시 공주님의 혜안은 탁월하십니다.”
따사로운 예건의 시선을 마주한 루시아 공주는 자신의 우매함을 용서 받은 것 같은 기분에 안도했다.
“바르셀로나 시가 한눈에 보여 경관이 좋은 데다, 현존하는 최고의 예술가들의 손을 빌려 완성한 작품이니 시민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엘사가 결심을 끝낸 듯 물었다.
“이곳이 공개된다면 어떤 용도가 좋을까요?”
대답은 어렵지 않았다.
설계 단계부터 변경될 용도를 고려해 디자인했기에.
“현대 미술관이 좋을 것 같군요.”
“그래요, 미술관으로 하죠. 3년 뒤, 리뉴얼을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공주님 부탁이신데, 당연하지요.”
“그리고….”
루시아 공주가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이 집을 공개하는 대신 저희 부부가 살 집이 필요해요. 그곳 디자인도 맡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대신 여기보다 훨~씬 소박하게요.”
설마 다음 집도 맡길 줄은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소박한 디자인이라니.
예건은 의외라는 듯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화려한 걸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호호. 물론 저는 그렇죠. 하지만 저와 평생을 약속한 사람의 취향도 존중해 줘야죠. 그 사람은 조금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서요.”
루시아 공주는 그렇게 얼버무렸으나, 어쩐지 예건은 그 속내를 알 수 있었다.
국민들에게 사치스러운 공주로 보여지는 것이 두려운 모양이다.
“그렇군요.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지만, 두 분의 취향을 듬뿍 담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루시아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졌다.
“좋아요!”
한 달 뒤, 루시아 공주의 성대한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루시아 공주의 특별한 신혼집이 귀빈들에게 공개되었다.
100억원이라는 공사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유선형 디자인.
보석 같은 내부 공간들, 그리고 경이로운 빛의 정원을 경험한 방문객들은 가장 아름다운 모던 스타일 궁전이라 평가하며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다.
물론 공주가 계속 이곳에 살 계획이었다면 기자들까지 불러 내부를 공개하지는 않았을 거다.
연회가 열리는 빛의 정원.
손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루시아는 결연한 표정으로 발표했다.
“이곳 카사 루시아는 3년 후 현대미술관으로 대중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웅성웅성.
공주의 깜짝 발언에 사람들이 저마다 소근거렸다.
“뭐지? 공주의 신혼집이 아니었어요?”
“그러게요. 저도 분명 그렇게 들었는데요.”
“어쩐지 사르수엘라 궁전에 비해 너무 화려하다 했어. 다른 목적이 있었군.”
“유명한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했다더니, 그래서였나?”
웅성거림이 조금 줄어드는 것을 기다린 루시아 공주가 그들의 의문을 풀기 위해 말을 이었다.
“카사 루시아는 분명 저희 부부가 지내기 위해 지어진 곳이 맞습니다. 원래는 제 사후에 이곳을 바르셀로나에 기부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곳을 저희 부부만 누린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곳을 미술관으로 개조하고 바르셀로나의 명소로 만들기로 의견을 나눴습니다.”
여기 저기서 감탄이 튀어 나왔다.
“오호~.”
“역시! 루시아 공주가 바르셀로나를 각별히 생각한다고 하더니, 사실인 모양이네요.”
“스페인 왕실은 확실히 다르네. 민심을 잘 아는 것 같아.”
“사유지를 공개하다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대단하군요.”
방문객뿐만 아니라 기자들까지도 그녀의 발언에 찬사를 보내며 환호했다.
멀리서 루시아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던 엘사가 예건에게 귓속말을 했다.
“나한테만 솔직히 털어나 봐요. 당신,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일부러 나를 불러서 판을 키운 거죠?”
“글쎄요. 이게 다 신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녀의 물음에 예건은 그저 알 수 없는 말을 던질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