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천재 건축가 (1)
머지않아 카사 루시아가 현대 미술관으로 대중에 공개될 거란 소식이 매스컴을 타고 일파만파 퍼진 후.
루시아 공주의 신혼집에 대한 스페인 국민들의 관심은 이전보다 더욱 커져갔다.
세기의 결혼식이 열리는 예정지인 바르셀로나의 거리는 카페, 식당, 술집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마다 공주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번 달 호텔 예약 풀이라며?”
“어디 우리 호텔뿐이겠어? 초대받은 왕족들이 우리 같은 부티크 호텔을 통으로 빌리는 바람에 카스텔데펠스부터 바달로나까지 3성급 이상 호텔들은 부킹이 끝난 모양이던데.”
“정말? 대단하네.”
“뭐,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근데 그 소식 들었어? 공주의 신혼집이 3년 뒤에 미술관으로 공개할 거라던데.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명소를 만든다나 뭐라나?”
“그건 또 뭔 소리야?”
“출장 다녀 온다더니, 어디 오지라도 다녀 온 거야?”
타박을 준 호텔리어가 공주의 기자회견을 상세히 설명했다.
“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이길래, 루이스 공주가 그런 극찬을 해?”
“글쎄. 세간에 공개된 건 외관 디자인 전경밖에 없어서 자세한 건 알 수 없는데, 직접 그곳에 다녀온 우리 총지배인 말로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라고 하더라고.”
“가우디? 에이~ 그건 좀….”
“그러게. 너무 갔다.”
그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
한예건과 건림건축 파견 직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주연이 대충 그들의 대화를 알아 듣고 슬며시 웃으며 예건에게 눈길을 주었다.
“팀장님, 저쪽 테이블에서 하는 말 들었어요?”
“글쎄요.”
예건이 모른 척하자, 대충 눈치로 흥미로운 낌새를 파악한 이경록 차장이 궁금한 듯 눈을 반짝였다.
“왜? 하 대리. 저 사람들이 무슨 말 했는데?”
하주연이 은근히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한 팀장이 천재 건축가 가우디와 맞먹는다는데요.”
“뭐? 정말? 하긴! 우리 한 팀장 실력이라면 그런 말을 들을 만하지.”
이경록 차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으쓱대자, 예건이 정정했다.
“하 대리님, 카탈루냐어 연습 더 하셔야겠습니다. 언제 맞먹는다고 했습니까? 가우디를 떠올린다고 했지.”
“뉘앙스가 딱히 다르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팀장님도 좋으시면서.”
“흠….”
대꾸하지는 않았으나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점차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아직 소식 없어? 심사 들어갔다며?”
마르탱 교수와 에꼴 데 보자르의 교수진이 한국대 교육 과정 대부분을 인정해 주어 학부 졸업 조건을 빠르게 패스하고, 브루노 건축사의 사무실에서 1년의 실무경력을 채웠다.
카사 루시아의 설계를 마무리하며 그 과정을 논문으로 엮어 프랑스 건축 학회에 제출한 뒤, 프랑스 공인 건축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서류 접수까지 마친 상황.
이제 남은 건 면접뿐이다.
“조만간 연락 오겠죠.”
예건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이 진동한다.
마르탱 교수였다.
– 면접 일정이 정해졌네.
“언젭니까?”
– 다음주 월요일, 오후 2시일세. 그때 보세.
“네, 알겠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묘하게 들떠 있는 목소리.
게다가 용건만 간략히 전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 것도 이상했다.
예건이 묘한 기분에 전화를 붙들고 있자, 하주연이 궁금한 눈초리로 물었다.
“면접 날짜 정해졌데요?”
“네. 다음주 월요일이라네요.”
“헙! 그럼, 면접까지 4일 밖에 안 남았잖아요. 면접관들 되게 깐깐하다고 하던데, 괜찮겠어요?”
“에이~ 면접자가 한 팀장인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중요한 연락은 적어도 2주일 전에는 한다고요. 면접 준비도 해야 하고, 개인적으로 중요한 선약이 있어 시간을 못 맞출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협회 같은 데서 이렇게 빠릿하게 움직이진 않을 텐데….”
하주연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분명 마르탱 교수도 접수 후 한달 뒤에나 면접이 잡힐 거라 귀뜸해 주기도 했고.
“그럼 하 대리 말은 일부러 급하게 잡았다는 거야? 아니, 왜?”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한 팀장님이 가 봐야 알겠죠.”
“그런가?”
마르탱 교수에게 다시 연락해 무슨 상황인지 물어볼까 고민하다 휴대폰을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유가 있겠지.’
어차피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될 일.
갑자기 잡힌 면접 일정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바쁘게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면접 날.
소집 시간 보다 15분 일찍 대기실에 도착한 예건.
‘왜 아무도 없지?’
자신을 제외하면 대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오래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곧바로 안내자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으니.
“한예건 씨?”
“네!”
예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치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 * *
일주일 전, 프랑스 건축사 협회 사무실.
협회장 사무실로 직원 하나가 서류를 들고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아! 손님이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손님의 눈치를 살폈다.
협회장과 함께 있는 이가 프랑스 건축계의 신성, 제라르 가뱅이었기에.
“괜찮네. 급한 일인가 보지?”
“네…. 그게. 일전에 말씀하셨던 그 사람의 서류가 접수됐습니다.”
“오! 한예건 말인가?”
“네. 맞습니다.”
직원이 돌아가자 가뱅이 서류에 눈길을 주며 물었다.
“누굽니까?”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
천재란 말에 가뱅의 눈빛이 진해졌다.
협회장이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물론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보통 녀석이 아닌 건 확실해. 한예건을 주목하고 있는 눈이 한 둘이 아니거든. 어쩌면 자네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한 번 볼 텐가?”
“딱히. 관심 없습니다.”
에꼴 데 보자르를 조기 졸업하고, 프랑스 최고 설계사무실인 아르떼에서 실무자로 근무, 역대 평가 최고점으로 건축사 공인 면허를 취득한 그는 5년 전 국제공모전을 통해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례라 할 수 있었다.
“음, 그래?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아쉽구만.”
협회장의 장난스러운 도발에도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뛰어나다고 해봐야 학생 작품이 거기서 거기죠. 기교만 잔뜩 부리고 실무는 전혀 고려하지 못한 설계 따위, 제가 봐서 뭐하겠습니까?”
“그런 평범한 예비 건축가들과는 달라. 그리고 때론 신선한 자극도 필요한 법 아니겠나? 잠깐, 확인 좀 하겠네.”
“그러십시오.”
테이블에 올려 두었던 안경을 쓴 협회장은 예건의 서류 봉투에서 두꺼운 포트폴리오를 꺼내 들었다.
페이지를 넘기던 협회장이 흐뭇한 감탄을 내뱉었다.
“이래서 내가 이 자리를 못 떠난다니까. 마르탱 교수가 강력하게 추천할 만하군.”
협회장의 입에서 대학시절 은사였던 마르탱 교수가 언급되자 차를 입가로 가져가던 가뱅이 멈칫했다.
“마르탱 교수님이 추천하셨다고요?”
“그래. 그 꽉 막힌 인간이 이 친구는 꼭 프랑스 건축 협회와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어찌나 성화던지.”
“도대체 왜?”
프랑스인이 아닌 건가?
그런 의문이 드는 동시에.
학생 시절 칼 같은 원칙주의자였던 마르탱 교수가 직접 부탁을 했다는 말에 궁금증이 일었다.
“제가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협회장은 서류를 건네며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 세상은 요지경이야. 이런 인재가 뜬금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걸 보면.”
협회장은 포트폴리오의 가장 마지막장을 펼친 채로 가뱅에게 건넸다.
카사 루시아의 디자인 이미지를 확인한 가뱅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작품을 확인한 순간 이질적인 느낌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적인 디자인 추구하는 이를 마르탱 교수가 추천했다고?
마르탱 교수의 전공은 중세 시대 성당 건축 분야인데… 왜?
의문이야 차차 확인하면 되는 거고.
도면을 배치하는 솜씨가 이제 갓 졸업한 학생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세련되고 깔끔하다.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그린 도면임에도 그 표현이 매우 섬세하다.
가뱅은 디자인에 집중했다.
작도 수준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자연스럽게 디자인 평가로 이어졌다.
“음? 유기적인 디자인을 컨셉으로 잡았군요. 나비의 형상이 보는 각도에 따라 꽃으로 변한다라… 재밌네요. 하지만 이렇게 매끈한 구조체의 형태를 만드는 건 아직 기술적으로 쉽지 않을 텐데. 역시 컨셉 설계인 거겠죠?”
유기적 디자인이라 함은 자연의 생물의 형상 혹은 구조에서 얻은 소재나 개념을 응용한 디자인을 뜻했다.
직선보다는 곡선, 유연하고 불규칙적 형태로 긴장감 있게 구성하는 디자인이다.
건축에 그런 형태를 적용하려는 시도는 많았으나 공사비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데다, 설계자가 3D설계를 경험자여야 한다는 높은 접근 난이도 때문에 거의 컨셉 설계 단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건축보다는 가구나 제품 디자인에 다수 적용되다 최근에는 그마저 비싼 생산비 때문에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의 질문에 협회장이 허허 웃으며 답했다.
“자네가 보고 있는 그 건축물은 이미 지난달에 완공했다고 하더군. 설계부터 시공까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고.”
“네? 그게 가능할 리가! 프랑스 설계 사무실 중에 이런 디자인이 가능한 회사가 있단 말입니까?”
“아니, 없지.”
“그럼 어떻게?”
“건축 설계부터, 구조, 인테리어까지 그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고 하더군. 디자인도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창작한 거야. 그러니 천재라는 거지. 하하.”
그 말을 들은 가뱅은 포트폴리오를 처음부터 펼쳐 보기 시작했다.
어느 것 하나 대충 디자인한 것이 없었다.
당장 이대로 지어진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기능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이다.
“설마 여기 있는 디자인 모두?”
“그래, 이미 완공되었거나 건축 예정이라고 하더군.”
탁!
포트폴리오를 끝까지 확인한 가뱅은 협회장에게 부탁했다.
“이 지원자 면접에 제가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두 천재의 만남이라.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군. 허허허.”
한예건의 면접만 따로 진행된 이유였다.
* * *
한예건이 면접장에 들어서자 여덟 명의 면접관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짓고 있는 표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모양새다.
평가를 받는 자리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어색하게 앉아 있자니, 전생에 졸업 설계를 발표하던 때가 불쑥 떠오른다.
책상 머리에 앉아 말싸움하는 걸 즐기던 교수들은 수업을 참여하는 것보다 현장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종종 수업을 빼먹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피차 마찬가지.
서로 좋은 감정이 없으니 오고 가는 말이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담당 교수가 화난 학과장을 말리지 않았다면, 졸업은 커녕 건축가로 활동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지 모른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이번에는 다를까?
나이 지긋한 면접관이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부터 부탁합니다.”
“에꼴 데 보자르에서 수학 중이며 외젠 설계사무실에서 건축사 보조로 일하고 있는 한예건이라고 합니다. 최근까지 프랭크 게리 건축가님을 도와 바르셀로나의 카사 루시아의 책임 디자이너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카사 바트요의 전시 및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프랭크 게리와 외젠, 그리고 가우디의 역작이라 알려진 건축물의 이름이 나오자 몇몇이 눈을 크게 떴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면 딱히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같은 건축 분야라면 말이 다르다.
건축의 역사와 사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물론이요, 건축 사상과 철학, 미학까지 독파하는 지독한 지식 덕후들이 건축가들이다.
예건의 입에서 건축 거장의 이름이, 그것도 가우디를 포함해 세 명이나 거론되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예건이 들어올 때부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쥐상의 면접관이 말했다.
“한예건 씨가 우수한 인재라는 건 우리도 프로필을 봐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 자리는 당신이 건축가로서 활동하기 위해 자격이 충분한지, 실질적인 역량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자리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의 서늘한 표정에 전생의 학과장의 얼굴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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