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천재 건축가 (2)
전생에 그가 제출한 졸업 과제는 병원 설계였다.
의사가 꿈이었던 형을 위해 최고의 병원을 지어주고 싶었기 때문.
학업에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는 빠듯한 과제 제출 시간에도 제대로 된 병원을 설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세계의 선진 병원 건축물을 모두 조사했다.
당시 졸업 설계 담당 교수는 시립 건축학교 학장인 로젠이었는데, 수업 내내 하라는 설계는 하지 않고 모형만 깨작거리는 그를 탐탁지 않아 했다.
설계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고민만 한다고 생각한 모양.
지나가다 모형을 보고 한 마디 던진 것이 결국 화근이 되었다.
“흠…. 병원건축이라고 특별한 구조를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회진을 돌며 치료하기 편하도록 동선만 간결하게 만들면 됩니다. 오히려 이렇게 여러 개의 동으로 설계하면 진료진의 동선이 길어져 비효율적이에요.”
로젠 교수의 조언에 그는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했다.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환자를 구분 없이 모두 같은 병동에 두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증세의 환자들끼리 분리해 수용하고, 세탁장 같은 오염 시설은 별도의 건물로 만들어 병동의 청결을 유지하는 게 선진 병원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자료조사를 통해 도출한 결론이었지만, 로젠 학장은 되려 그런 가우디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 있다면 뜻대로 해 보세요. 심사를 통과할지는 모르겠지만!”
입꼬리를 비틀어 비웃은 로젠 학장은 냉기를 풀풀 풍기며 그의 곁을 지나쳤다.
그 후로 두 사람 사이가 나빠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로젠은 수업 시간마다 모형뿐인 그의 작업을 보며 신랄하게 비판했고, 혼자 튀는 괴짜가 그저 싫었던 학우들은 교수의 핀잔에 힘입어 그를 조롱했다.
그러나 가우디는 전혀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꿋꿋이 발전시켜 나갔다.
말 안 듣는 학생이 답답해진 로젠은 결국 권위로 그의 의견을 묵살했다.
“만약 학생의 설계 방식이 옳다면, 왜 지금껏 아무도 그런 설계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
로젠의 질문에 가우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는 교육자의 낡은 생각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
결국, 로젠 학장은 가우디의 졸업 과제에 낙제점을 주었다.
졸업 심사가 끝나고 졸업생들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로젠 학장은 졸업생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주었다.
그러나 가우디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이상, 학생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쉽게도 괴짜 가우디는 학우들과 같이 졸업하는 게 어렵게 되었군요.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로젠 학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그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예건의 졸업 심사 탈락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교수들이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 부탁했고,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졸업식 날.
학과장은 졸업장을 수여하며 자신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이 자네 생각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을 거네. 나가보면 알게 되겠지. 내가 왜 자네에게 낙제점을 주었는지.”
졸업증과 건축사 자격증을 받아든 후 대답했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하고 있으니까요.”
대학에서 최하위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사회에서도 똑같으란 법은 없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생업을 위해 건축 장인의 밑에서 도제로 일했던 그였다.
졸업장은 그저 필요조건일 뿐이지, 목표가 아니었다.
로젠 학장과 다른 학생들의 비웃음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미래에 대한 부푼 꿈으로 가득했으니.
‘이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내 건축 세계를 선보일 수 있다.’
하지만.
로젠 학장의 말대로 사회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건축가로서 자리를 잡는 것도.
빽도 돈도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자신을 찾아온 건축주에게 계획안을 그려 주고 연락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뿐.
하지만 자신이 그려 준 설계 도면을 가지고 다른 건축가를 찾아갔다는 것을 전해 들어 알게 된 이후로는 도면을 스케치로 대신했다.
당연히 그의 사무실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이후 운명처럼 구엘 백작을 만나고, 그의 이름이 바르셀로나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할 때쯤.
구엘 백작이 연 파티 자리에서 다시 만난 로젠 학장은 가우디를 발견하고 지인들과 무리 지어 그에게 다가왔다.
로젠은 마치 자신과 있었던 일이 즐거운 추억이라도 되는 양 기꺼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정말 축하하네, 가우디. 학교 다닐 때부터 다른 학생들과 달리 특별한 학생이라고 생각했지. 자네가 이리 성공할 줄 알았네.”
언제부터 괴짜와 특별하다가 동의어가 된 것일까?
학장의 변덕스러운 태도에 어이가 없었으나 사회생활에 충분히 적응한 그는 웃는 낯으로 내민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학장님. 아 참! 얼마 전 팔스에 병원 설계 하신 것 봤습니다. 예전에 제가 낙제점 받았던 것과 유사하게 설계하셨던데요. 지금은 예전과 생각이 조금 달라지신 모양입니다.”
“어? 어… 그, 그게.”
로젠 학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설마하니 자신이 설계한 도면을 가우디가 보았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자리에서 그걸 콕 집어 말할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겠지.
아무리 타인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일이 빈번한 시대라고 하나, 명망 높은 건축대학 학장이 낙제점을 준 학생의 설계를 멋대로 가져다 쓰는 건 당시의 도덕적 기준에도 많이 어긋나는 일임은 분명했다.
“크흠, 만나서 반가웠네. 앞으로도 건승하기를 바라지.”
로젠은 정색하고는 자리를 피했다.
그와 함께 있던 지인들도 내심 부끄러웠는지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에는 로젠 교수에 동조해 자신에게 낙제점을 주었던 이들도 여럿 있었다.
성공해 그들을 다시 마주하는 날을 얼마나 기대했던가?
묵은 체증이 씻겨 나갔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대학 시절의 악몽을 벗어나니,
그제야 세상에 두 발을 딛고 똑바로 선 기분이 들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며 눈을 감았다 뜬 예건.
쥐상의 면접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지금은 얌전히 당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다르다.
전생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다.
그만큼 누군가의 인정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절.
하지만.
비록 겉모습은 어릴지라도, 지금은 50년 넘게 건축 한 분야만 파고든 거장의 지식과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심사위원 몇몇이 자신의 실력에 의구심을 가진다고 해도 설계 의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
‘쓸데없는 말씨름 해 봤자 내 입만 아프지.’
핀잔을 들었음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형형한 눈빛을 한 예건을 마주한 쥐상의 면접관이 무안하여 마른 기침을 했다.
그러자 침묵을 뚫고 익숙한 얼굴의 젊은 심사위원이 입을 열었다.
익숙하긴 한데, 실제로 본 것 같지는 않다.
누구였더라?
“제출하신 포트폴리오 중 카사 루시아의 디자인이 매우 독특합니다.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게 맞습니까? 아니면 디자인은 다른 이가 하고, 현장 설계 지원만 한예건 씨가 하신 건가요?”
예건이 제출한 포트폴리오에는 이미 완공된 라 메종드 아르누보부터 최근 작업한 카사 루시아의 설계 도면까지 모두 정리되어 있었다.
이왕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김에 초기 디자인부터 정리한 것인데, 그 수가 이미 열에 달했다.
완공 사진을 덧붙일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은 것은 설계 실력, 그 자체로 승부를 보겠다는 예건의 속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많은 프로젝트 중에서 카사 루시아를 콕 찍는 걸 보니 요즘 젊은 세대의 트렌드에 맞는 모양이다.
예건은 속으로 흡족해하며 답했다.
“포트폴리오에 작성한 프로젝트는 모두 제가 컨셉 설계부터 실시 설계까지 책임지고 완수한 프로젝트입니다. 대부분 완공되었거나 혹은 공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지난 3년간 1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그것도 이렇게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모두 직접 설계하고 시공까지 컨트롤 했다는 겁니까? 그게 가능할 리가….”
젊은 심사위원은 믿기지 않는듯 고개를 저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 제라르 가뱅도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보였다고 들었습니다만.”
젊은 심사위원은 허를 찔린 듯 멍한 표정이 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저 뒤에서 마르탱 교수가 입을 주먹으로 가리고 쿡쿡 웃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심사위원이 얼굴이 뻘게지며 재빨리 시선을 떨궜다.
이후 다른 면접관들도 심각한 얼굴로 이것저것 물어왔으나 예건은 거침없이 질문에 답했다.
컨셉부터 설계, 그 어느 것 하나 예건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당연한 일.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고 생각한 심사위원들도 예건의 답변 뒤에는 내용을 파악하느라 익은 벼처럼 책상에 머리를 박아야 했다.
대학 강의실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방적인 브리핑이 이어졌다.
약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가장 연륜이 높아 보이는 심사위원이 다른 심사위원들을 둘러보더니 더는 발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 시간 면접 보느라 수고했습니다. 이만 돌아가 봐도 좋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살짝 상체를 낮춰 고상하게 인사를 한 예건이 면접실을 빠져나왔다.
마르탱 교수도 그를 따라 나왔다.
“교수님께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좋은 구경을 빠질 수는 없지.”
“좋은 구경이라뇨?”
“하하. 그런 게 있네. 출출한데 디저트나 하러 가지. 이 근처에 괜찮은 가게가 있다네.”
“아, 네.”
어깨를 활짝 펴고 뒷짐을 진 채 당당히 걸음을 옮기는 마르탱 교수를 따라나서며 면접장을 돌아보았다.
‘딱히 구경거리는 없었던 것 같은데….’
* * *
면접 후 1개월 뒤, 마르탱 교수에게서 심사가 통과됐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 파리에 한 번 와야 할 것 같은데, 언제쯤이 좋을까?
“그냥 면허증만 찾아가면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 각별히 자네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가 있어서 말이지. 내가 주선을 하기로 했네.
“그럼, 이번 주가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달에는 카사 바트요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한창 바쁠 것 같거든요.”
– 그래? 그럼, 이번 주 목요일 오후는 어떤가?
“네, 그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현장을 함께 둘러보던 김연희 대리가 물었다.
“건축사 면허 발급됐데요?”
“네, 그렇다네요. 이번 주에 받아오면 될 것 같습니다.”
“와! 잘됐네요. 회사에도 전달하겠습니다. 외국에서 취득한 자격증은 등록 과정이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네,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뭐, 고마우면 나중에 한 턱 내세요.”
카사 루시아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이제 바르셀로나에 남은 건 건림건축 출판팀과 도일준 피디뿐이었다.
때문에 김연희 대리가 예건의 비서처럼 자질구레한 업무 처리를 도맡았다.
스페인까지 왔음에도 예건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1년 넘게 휴식도 없이 지낸 출판팀.
‘내가 없는 동안이라도 쉬는 게 좋겠지? 파리 간 김에 마담 르네에게 감사 인사도 전하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도일준 피디는 펄쩍 뛰었다.
“아니, 그 중요한 상황에 우리가 안 따라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니, 그게…. 그냥 서류만 받는 거라, 따라가시더라도 딱히 찍으실 건 없을 텐데요.”
“그래도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도일준 피디의 성화에 결국 김연희와 오경환 대리까지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건축가협회 로비에서 마르탱 교수를 기다리던 일행.
오경환이 한숨을 푹 쉬며 투덜거렸다.
“하여튼 도 피디님은 우리가 가만히 쉬는 꼴을 못 본다니까.”
“하하하. 미안합니다. 하지만 왠지 중요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촉이 와서요.”
“예~예. 어련하시겠습니까? 한국 최고 다큐멘터리 피디님이신데.”
오경환 대리가 투덜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엄청난 일이…. 어? 어?!”
오경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왜요?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도일준이 급하게 오경환의 시선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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