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천재 건축가 (3)
‘제, 제라르 가뱅? 왜 저 분이 이쪽으로…?’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건축가가 있기 마련이다.
오경환에겐 제라르 가뱅이 그런 인물이었다.
그를 한눈에 알아보는 건 당연한 일.
가뱅은 거침없이 오경환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예건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두 번째 뵙네요.”
“아…. 네.”
예건이 뻘쭘한 얼굴로 그와 악수하자, 오경환이 재빨리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한 팀장님, 제라르 가뱅과 아는 사이였어요?”
“네?”
그 물음에 깨달았다.
‘어디서 본 것 같더라니….’
동시에 심사 당시 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제라르 가뱅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무안했을까?
예건은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외국인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워서, 못 알아뵀습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죠.”
다행히 가뱅은 웃어 넘겼다.
잊고 싶은 흑역사였으니, 얼른 대화 주제를 바꾸고 싶었던 것.
“건축사 면허 취득,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침 마르탱 교수가 나타났다.
“어? 두 사람 벌써 인사를 나눴나?”
“소개해 주실 분이 가뱅 씨였습니까?”
마르탱이 가뱅을 힐끔 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가뱅? 이 친구는 자네를 만나고 싶다고 무작정 쫓아온 거야.”
“하하.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럼?”
“일단 따라오시게. 면허증부터 받아야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그저 따라가는 수밖에.
예건과 일행, 그리고 제라르 가뱅은 마르탱 교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대회의장이었다.
“음? 사무실로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후후. 자네를 만나길 원하는 손님들이 생각보다 많아져서 말이지.”
마르탱 교수가 웃으며 커다란 문을 밀며 옆으로 비켜섰다.
“먼저 들어가게. 자네를 위해 준비된 자리니.”
“네?”
“들어가면 알아.”
마르탱이 예건의 팔을 당겨 문가로 다가가자 그제야 내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이 한예건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르탱 교수는 놀란 예건을 바라보며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서프라이즈 선물이네. 새로운 건축 천재가 등장하는 이 중요한 순간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겠나?”
비난과 무시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졸업증을 받으려 단상에 올랐던 전생과 달리.
이번 생에는 시작부터 꽃길이 펼쳐졌다.
고개를 끄덕여 보인 예건은 당황함을 지우고 당당하게 단상으로 향했다.
찰칵찰칵.
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던 카메라들이 한순간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셔터 소리를 냈다.
협회 회장이 면허증을 수여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 심사 내내 예건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던 노신사였다.
“지금부터 레옹 페로 협회장님의 건축사 면허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그는 예건이 단상 위로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건축사 면허증과 꽃다발을 건넸다.
그가 먼저 마이크 앞으로 나섰다.
“원래라면 건축사 면허 수여식은 없었을 겁니다. 건축사 협회 행사는 무척이나 따분하거든요.”
그는 재치 있게 상황을 설명하며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천재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프랑스뿐만 아니라 스페인까지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한예건 씨에게 제가 직접 건축사 면허증을 수여하게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사자는 몰랐지만, 한예건은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 사이에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크리스티앙에서 인정하는 아르누보 건축 복원 전문가라는 명성부터, 메종&아트에 선보인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세련된 가구 디자인, 거기에 더해 스페인 공주의 신혼집에서 보여준 예술적인 감각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유명세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던 것.
“이 자리에서 주인공의 소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겠죠?”
레옹 페로는 예건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전생에는 그저 귀찮게만 여겼던 사람들의 관심이.
이번 생에는 그 누구보다 필요한 그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해서는. 더 유명해져야 한다!’
예건은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지금도 시시각각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거대한 성전을.
직접 제 손으로 마무리하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일분일초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시작점에 섰을 뿐.
좋아하긴 아직 이르다.
그가 단상 앞으로 다가서자, 외로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멋지다. 한예건!”
갑작스러운 상황에 예건이 무안할까 오경환 대리가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던 것.
예건은 그에게 피식 웃어 보이고는 자신을 향한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바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여유롭게 입을 연 예건.
이 모든 것이 마치 준비된 상황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장내가 조용해졌다.
“건축가가 된다는 것은 제게 너무도 당연한 과정이었기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축하를 받을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천재 건축가라 불리는 가우디처럼 역경을 헤치고 난 후에야 알아봐 주실 줄 알았거든요.”
웃으며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말에 몇몇이 덩달아 웃었다.
“그런데 막상 축하를 받으며 이 자리에 오르니 기쁜 마음이 더 큽니다. 저 몰래 서프라이즈를 준비해 주신 마르탱 교수님과 협회장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예건은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가볍게 몸을 숙이며 그들에게 눈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의 행동에 기품이 묻어나, 여기저기서 절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앞으로 더 최선을 다하라는 응원이라 생각하고 저만의 독창적인 건축 세계를 보여드리기 위해, 제게 주어지는 모든 프로젝트에 진심으로 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합니다.”
예건이 유창한 프랑스어로 소감을 발표하고 준비된 수여식이 끝났다.
이후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는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가득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라르 가뱅의 곁으로 마르탱 교수가 다가서며 물었다.
“어째, 자네보다 더 인기가 높은 것 같구만.”
“하하. 그야 당연하죠. 교수님은 제게 이런 서프라이즈 안 해주셨으니까요.”
“크흠.”
마르탱 교수가 시선을 허공에 주며 딴청을 피웠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저 한예건이란 사람에게 어떤 재능을 보았기에 교수님께서 그를 적극적으로 도우셨을까 하고요. 하지만 만나보니 알겠더군요.”
“뭘 말인가?”
“나 같은 준재는 저 친구의 발치 끝에도 못 따라간다는 것을요. 어쩌면….”
제라르 가뱅이 눈을 빛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는 가우디와 같은 천재가 아닐까요?”
“흠.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가뱅이 고개를 갸웃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게 쉽게 인정하시는 겁니까? 가우디는 우리 현대인들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 중의 천재라고…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인정할 수밖에.”
신의 시대는 저물고, 바야흐로 과학의 시대.
가우디는 신의 시대를 장식한 마지막 건축가였다.
학생들은 더 이상 성당 건축을 연구하지 않는다.
복원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
성당 건축에 대한 수요가 없으니 공부의 기회마저 박탈된 거다.
하지만 한예건은 어떤가?
성당 건축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혼자 독학한 그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는 짧은 기간동안 몽생 미셸의 도면을 완벽하게복제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마르탱은 그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가 가진 재능의 아주 일부일 뿐.
마르탱은 한예건의 실무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카사 루시아 현장에 자신의 제자 중 가장 영특한 샤인을 파견 보냈었다.
그에게 전해들은 한예건의 설계 방식을 들은 후, 그는 깨달았다.
‘한예건은 가우디의 설계 기법을 그대로 구사하고 있어.’
충분히 학습하고, 상상만으로 결과물을 완성한 후, 단기간에 설계를 완료한다.
게다가 자연에서 형태 및 구조를 발견하고, 자신만 할 수 있는 건축을 하고 있다.
그건 누군가 알려준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지, 마르탱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녀석은 진짜 천재니까.”
어쩌면 천재 건축가라 불리는 가우디를 뛰어넘을 지 모르는 괴물.
“교수님의 신임을 그렇게나 받다니, 어째 질투가 날 것 같은데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질투 하는 건 나쁜 게 아닐세. 문제는 거기서 주저앉아 남탓만 하는 거지. 경쟁자가 있기에 세상이 발전하는 것 아니겠나? 특히나 자네 같은 사람에겐 꼭 필요한 존재지.”
예술 분야는 경쟁에 의미가 크지 않다.
그러나 이기고 싶은 대상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너무 일찍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가뱅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천재의 등장이 그저 반가울 따름.
제라르 가뱅이 슬며시 웃었다.
“그래서 제가 신경 좀 썼습니다.”
“신경을 쓰다니?”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곧 알게 되실 테니까요.”
* * *
한예건이 프랑스에서 건축사 면허를 취득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김수훈 대표에게도 전해졌다.
“하하. 대단하군. 시간이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에꼴 데 보자르 교수진 측에서 힘을 쓴 모양입니다.”
병상에 누운 김수훈 대표를 대신해 회사를 맡고 있는 정기택 상무가 설명했다.
“그만한 실력을 가졌으니 당연하겠지. 그래, 언제쯤 돌아온다고 하던가?”
“글쎄요. 시간이 좀 더 걸리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미술관 착공 전에는 온다고 하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하긴 그쪽에서 맡은 일도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니….”
조만간 빛가람 미술관이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건축가 한예건의 이름을 걸고 수행하게 될 첫번째 프로젝트.
김수훈 대표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프로젝트였던 만큼, 그 의미가 남다름은 당연지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예건이 진두지휘해 주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가우디의 한예건의 만남이라…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상상이 되지 않는군. 내 몸만 괜찮다면….”
“영상 촬영을 한다고 하니,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아쉽지만 그래야겠지?”
정기택 상무가 떠나고 홀로 남은 병실.
그가 힘겨운 한숨을 내쉬었다.
김수훈 대표의 안색은 그새 더 수척해져 있었다.
그의 심장을 대신해 인공심장박동기가 뛰고 있으나 이미 약해진 몸은 여전히 그를 병상에 잡아 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 부근을 내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미술관이 완공될 때까지는 버텨줘야 할 텐데.”
* * *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길.
제라르 가뱅을 코앞에서 본 것에 신난 오경환 대리가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와! 제라르 가뱅을 직접 만나다니….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면접관이었습니다.”
“헉? 진짜? 와~ 제라르 가뱅이 직접 면접을 봤다니. 프랑스에서는 그런 게 가능하구나.”
“유명한 사람입니까?”
건축가라면 가우디나 안도 다다오 정도 밖에 모르는 도일준 피디가 물었다.
“그럼요!”
오경환이 그의 작품을 찾아 보여주려 이미지를 검색하다가 얼굴에 물음표를 그렸다.
“음? 이상하다?”
“왜요?”
도일준의 물음에 오경환이 머뭇거렸다.
“어…. 그게요.”
답을 하려다 말고 예건을 돌아 보았다.
그의 눈엔 의문이 가득했다.
‘왜 한 팀장 디자인이 더 대단한 것 같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