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치열한 국제 공모전 (1)
“위, 위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음?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이렇게 호들갑인가?”
“저… 그, 그게. 이것 좀 보십시오.”
공모전을 담당하는 임원이 황급히 영문으로 된 팩스 하나를 내밀었다.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회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니, 이게 정말인가? 프랭크 게리와 제라르 가뱅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겠다고 했다고?”
“네! 그렇다니까요.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을숙도 그린센터 국제공모전을 주관하는 부산국제건축제는 출범한지 이제 겨우 2년 된 조직이다.
국제공모전 또한 이번이 처음 여는 것이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생각에 위원장과 산하 직원들은 그 명성을 높이기 위해 세계 각지의 건축사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저명한 건축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초청하려 백방으로 힘을 쓴 것.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쪽에서 심사를 하고싶다는데, 우리가 거절할 필요는 없지. 일단 회신은 보내자고.”
“아! 예. 근데, 뭐라고 보내야 합니까?”
“뭐라고 보내긴! 당연히 꼭 모시고 싶다고 해야지!”
“하지만 예산이….”
“예산? 이런 일이 어디 흔한 줄 아나? 우리보다 먼저 사업을 시작한 서울건축문화제에서도 한 번도 없었던 일이야. 예산은 어떻게든 내가 마련해 볼 테니, 일단 공문부터 보내!”
“아! 네!”
임원이 부리나케 집무실을 나갔다.
“허허. 하나도 힘든데, 셋이나? 허허.”
위원장의 입가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위원장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일본의 건축 거장 안도 다로를 심사위원으로 초빙한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난 시점.
그런데 당대 최고의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 제라르 가뱅까지 합류한다?
이 소식이 공개되면 세계 건축계의 시선이 부산으로 모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은 나라에서 건축제를 두 개나 만드냐며 부산국제건축제의 설립을 반대했던 서울건축문화제 위원장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올해 내가 대성하는 운수라더니, 진짜였던 모양이군. 하하하하.”
위원장은 한바탕 크게 웃고는 수화기를 들었다.
부산시 건축 담당자에게 얼른 이 소식을 알려야 했다.
그는 허리를 쭉 펴고 어깨에 한껏 힘을 주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고 나른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이고~ 위원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하. 이 과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 저야, 뭐 항상 똑같죠. 그런데 직접 전화를 다 주시고, 무슨 일 있습니까?
“흐흠.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을숙도 그린센터 말입니다.”
– 아! 그러고 보니, 설계 마감이 얼마 안 남았군요. 심사위원은 모두 정하셨습니까? 시장님이 언제쯤 확정되는지 궁금해 하시던데요.
“하하하.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번 공모전의 심사위원 자리는 총 5개.
해외 초빙 심사위원 3인과 위원장, 그리고 나머지 한자리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사 김수훈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김수훈의 병환으로 비어 버린 공석을 부산시장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당연히 위원장은 잿밥에 눈독 들이는 부산시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건축학과 졸업자도 아니고, 정치적인 홍보 목적으로 활용될 게 눈에 뻔히 보였으니까.
안도 다로와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빙하려 애쓴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경력란에 한 줄 더 적으려는 속셈인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이런 일에 정치인이 끼어들어 제대로 된 일이 없음을 잘 아는 위원장은 이 상황을 빌미로 그를 심사위원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할 생각이었다.
물론 예산은 넉넉하게 가져와야겠지만.
잠시 후 까무라칠 상대를 머릿속에 그리며 위원장은 슬며시 웃었다.
“다행히 저명한 건축가님들께서 심사위원 직을 허락해 주셔서, 곧 확정될 것 같습니다.”
위원장은 곧바로 심사위원 리스트를 읊었고, 건축과장은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 저, 정말입니까? 현존하는 3대 거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한다고요?
“제가 왜 없는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오늘 중으로 정식 공문을 보낼 생각입니다.”
– 도무지 믿기지 않는군요. 그 공문 저에게도 좀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이게 다 부산시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셔서 가능했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 문제라뇨? 무슨?
“심사위원 리스트가 확정되면 기존 예상보다 훨씬 참가작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세계 건축계의 이목이 부산으로 향하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일을 졸속으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위원장은 상대에게 들리도록 일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예산은 저희가 좀 더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과장님께서 이토록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니, 제가 힘이 되는군요.”
– 당연히 협조해 드려야죠! 부산시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상승할 기회인데요.
초청 심사위원 모두 건축잡지에서나 보던 이름들.
그런 대단한 거장이 하나도 아닌 셋이나 이곳에 친히 방문한다는데, 제대로 영전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부산시의 망신이다.
건축 과장은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위원장도 빠르게 심사위원들을 확정해 신문에 공고했다.
3명의 건축 거장이 부산국제건축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한다는 소식은 빠르게 세계 각지로 번져 나갔다.
1등 당선 시 2천만 원의 상금과 프로젝트 설계권이 걸린 소박한 국제공모전이 졸지에 치열한 국제공모전이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 * *
2달 뒤, 공모전 접수가 끝나고.
등록이 완료된 작품의 수만 1,500작품.
공모전 주최 측인 부산국제건축제가 초기 예상한 접수 작품의 수는 대략 300여 작품이었으나, 거의 5배에 달하는 상황.
부산국제건축제 추진 위원들은 그야말로 환호했고.
동시에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이 소식은 세계 유명 건축잡지에 핫 이슈로 소개되었고, 단숨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공모전으로 거듭났다.
이럴 때일수록 무엇보다 공정함이 중요하다 여긴 위원장은 심사 방식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지을 필요성을 느꼈다.
원래라면 1차 심사는 서류 심사로 했을 테지만, 더 공정한 심사를 위해 1차부터 제출품 심사로 변경한 것.
이를 위해 부산의 건축대학 설계 교수 30여 명이 투입됐다.
벡스코 컨벤션센터 8,800㎡ 대형 전시장 바닥이 접수된 작품 판넬과 모형으로 빼곡했다.
“하아-. 1,500개가 넘는 작품 속에서 50작품만 가려내라니. 해변에서 바늘 찾는 격이 아닌가?”
“그러게. 2인 1조 교차검증으로 100개, 한 작품당 20분씩 본다고 해도 꼬박 나흘은 걸리겠어. 잠시 쉴 틈도 없겠는데.”
“평가 수준도 안 되는 작품은 그나마 결정이라도 쉽지, 애매하게 잘 만든 작품이 많으면 진짜 곤란한데.”
“어쩔 수 있나? 말이 안 되는 것부터 걸러 내야지. 자자, 이러고 있지 말고 빨리 시작하자고.”
심사위원들이 벽에 붙은 작품을 살피고 각 평가 문항에 맞게 점수를 매기고 나면, 보조 진행원들이 새로운 판넬을 부착하는 식이었다.
50미터를 이동하며 심사하니,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1차로 벽에 걸린 작품의 절반도 보지 못한 게 함정.
그렇게 3일이 지나자, 심사위원들도 죽을 맛이었다.
“어흑! 온몸이 뻐근하구만. 이렇게 심사하기 힘든 공모전은 난생 처음이야.”
“하루종일 판넬만 보고 있으니, 눈도 뻑뻑해 죽겠군.”
“문제는 이렇게 고생하는데도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없다는 거지. 어떤 건 너무 난해하고, 디자인이 좀 괜찮다 싶으면 확정된 예산에 시공이 가능할까 싶고.”
실제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공모전은 공사 예가를 미리 공지한다.
발주처가 요구하는 규모와 예산에 맞춰 디자인하는 건 건축가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두 교수는 한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 고개를 저었다.
“흐음…. 이번 작품도 디자인은 훌륭한데, 시공이 가능할지 모르겠군.”
“지금 예산으로는 턱도 없지. 한 3배 정도 더 마련한다면 모르겠지만. 디자인은 아깝지만 1차 심사 통과는 힘들겠어. 이제 그만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세.”
먼저 걸음을 옮기던 교수가 다음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의문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음? 아!”
“뭔데 그러나?”
“어? 그게….”
먼저 판넬을 살피던 교수가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안 교수, 직접 보시게.”
“흠…. ‘무한한 동선’이라.”
한눈에 보기에도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진 판넬.
내용을 살피던 안 교수의 안광이 반짝하고 켜졌다.
* * *
예건과 길 이사는 을숙도 그린센터 3차 심사를 위해 부산 벡스코로 향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발표 심사 중 7번째 순서.
질의응답을 포함해 1작품당 30분의 시간이 주어지니, 발표 시간까진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대기실로 들어가니 10개 작품 발표자들의 성명이 원형 테이블 위에 적혀 있었다.
설계 실무를 위해 한국에 소재한 설계사무실과 협력해야 한다는 참가기준 때문에 한국인들의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다양한 국가에서 참여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이름들.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이 예건과 길 이사를 돌아보았다.
긴장 가득한 눈빛에는 경쟁심마저 얽혀 있었으나, 발표 참가자가 2명밖에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흥미가 사그라졌다.
참가자 중 한 명이 길 이사를 알아보고 예건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아이고~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 그래, 고 이사. 오랜만이야.”
길 이사의 얼굴에 꺼려하는 티가 확연했으나, 상대는 그의 표정 따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설마, 3차 심사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김 대표님께서 복귀하신 건가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공모전 팀 실적이 좋지 않아 해체된다는 소문이 한동안 돌았거든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
겉으로는 걱정하는 투로 말하지만, 그의 눈에는 은근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동안 건림건축의 작품이 최종 심사에도 오르지 못하고 번번이 서류 심사에서 탈락한 것을 비꼬는 것이었다.
“…걱정해줘서 고맙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군. 반가웠네.”
“하하. 저도 반가웠습니다, 선배님.”
길 이사가 도망가듯 자리를 뜨자, 고 이사는 혀를 차며 예건에게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쯧. 김수훈 대표가 까마득히 어린 신입에게 회사를 넘겼다더니, 건림건축도 망조가 들은 모양이네. 저렇게 재능 없는 인물이 아직도 팀장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보면.”
그는 슬쩍 예건을 곁눈질하더니, 돌아서서 말했다.
“작품 완성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무능한 팀장 밑에서 일하는 팀원들만 불쌍하지. 이번에는 운이 좋아 어찌어찌 최종심까지 올라왔다지만, 당선은 쉽지 않을 거야.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 수준이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거든.”
“걱정 감사합니다.”
눈앞에서 상사의 흉을 보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일관되게 포커페이스인 예건의 모습에 문뜩 호기심이 동한 고 이사.
예건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고 이사는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나는 삼한건축 공모전 팀을 맡은 고재일 이사라고 하네. 혹시라도 회사를 옮길 생각이 있으면 연락하게. 건림건축 공모전 팀 직원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가만히 고재일 이사의 명함을 받아든 예건은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띠고는 답했다.
“이거 어쩌죠? 전 공모전 팀 소속이 아니라서요.”
예건의 말뜻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고 이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음? 공모전 팀이 아니라고? 그럼 왜 발표 심사에 참석한 건가? 아! 혹시 발표 대행인가? 저런….”
가만히 두었다간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펼지 몰라 예건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김수훈 대표님께 건림건축 경영권을 인계받은 까마득한 신입, 한예건 대표입니다.”
“어…. 어?”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인지한 고 이사가 놀라서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그가 검지로 예건을 가리켰다.
“자, 자네가 한예건이라고?”
그의 목소리가 제법 컸는지, 그의 테이블에 합석한 사람들은 물론이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사람들까지 예건이 서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도 예건은 미소를 잃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속에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무시하고 깔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번 공모전부터는 다를 테니까!’
고재일 이사는 차마 알지 못했다.
건축에 대한 열정 때문에 천국 문턱에서 돌아온 건축 거장.
그의 열정이 다시금 활활 타오를 불씨를 당긴 게 자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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