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치열한 국제 공모전 (2)
다섯 팀의 평가를 마치고 잠시 주어진 긴 휴식시간.
안도 다로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위원장에게 말했다.
“이번 공모전 최종 심사에 올라온 작품 수준이 예상을 웃도는군요.”
“하하. 이게 다 안도 다로 님처럼 유명한 건축가님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해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안도 다로는 자신의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심사위원 두 사람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들은 쉬는 시간도 반납하고 다음 작품의 설계설명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언뜻 프랭크 게리가 보고 있는 제안서를 보니, 7이란 숫자가 눈에 띄었다.
그냥 순서대로 보고 있는 모양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다로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물었다.
“하긴. 엄청난 수의 참가작이 접수했다고 들었소만.”
“네. 원래 예상했던 접수자 수의 5배를 훌쩍 넘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열린 그 어떤 공모전보다 열기가 뜨거웠지요.”
1,500개의 참가작이 접수된 국제공모전.
접수 규모에 비해 상금이 큰 것도 아니다.
이런 경우는 엄청난 수의 건축사를 배출해 온 일본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참가한 심사위원의 인지도가 판을 키운 셈.
그래서 더 궁금했다.
왜 프랭크 게리와 제라르 가뱅이 이곳에 있는 것인지.
“도대체 비결이 뭡니까?”
“글쎄요…. 비결이랄 게. 하하하.”
위원장 또한 그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심사가 끝나고 조용한 자리에서 그 이유를 꼭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할 뿐.
그런 그들에게서 이상한 조짐을 느낀 것은 일곱 번째 발표에 이르러서였다.
제안서를 넘겨보던 위원장의 눈빛이 개안하듯 환해졌다.
“오호~ 이런 디자인을?”
물론 이전 작품들이라고 훌륭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은 어딘가 수준이 달랐다.
이전의 특색 없이 비슷비슷한 디자인과 달리 간결하면서도 특징적인 디자인.
즉, 작품성이 뚜렷했다.
‘경험이 많은 노련한 건축가가 설계한 게 분명해. 그런데도 이렇게 작은 설계공모전에 참여한 건, 아마도 이번 기회에 세계적인 명망을 얻고 싶었던 거겠지.’
하지만 잠시 후, 발표자가 단상에 오르고 위원장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앞의 발표자들에 비해 20살은 어려 보이는 젊은이가 그들 앞에 당당히 서 있었기에.
* * *
전 생애를 통틀어 단 한번도 공모전에 참여한 적이 없었던 예건이었다.
아마 이번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다.
그렇기에 더욱 진지하게 설계에 임했다.
그러던 중 제라르 가뱅과 프랭크 게리가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예건이었다.
동시에 기뻤다.
그 두 사람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자신의 국제 무대 데뷔를 빛 내주려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물론 예상치 못하게 경쟁률이 치솟았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예건이 아니었다.
예건은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다섯의 심사위원 앞에 섰다.
“지금부터 ‘무한한 동선’ 작품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철새는 마치 나침반과 지도를 가지고 태어난 것 마냥 정확하게 스스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자신 또한 철새와 다르지 않았다.
비록 이번 생에 태어난 곳은 서울이나, 항상 전생의 고향 바르셀로나가 그리운 것처럼.
전생에 완성하지 못한 작품,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마음 속 나침반이 가리키고 있었다.
예건은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느리지만 확실한 걸음을 걸어왔다.
이번 공모전에 당선되고 난 후, 자신의 목표를 공론화할 생각이다.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겠지만.
그 또한 실력으로 증명하면 될 일.
예건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고, 여느 때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건축을 선보였다.
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무한이 반복되는 보이지 않는 고리. ‘무한한 동선’
3개의 층으로 쌓아 올린, 중심축이 다른 타원형 평면.
세 타원형의 중심점이 되는 지점에는 크기가 서로 다른 동심원 형상의 아트리움이 존재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보이드 공간으로 태양빛이 1층까지 전달된다.
천장을 덮고 있는 것은 얼기설기 얽혀 있는 목재들.
둥지의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목재의 각도를 변경하여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한 지붕은 마치 거대한 숲 속을 거니는 것처럼 다양한 각도 및 크기로 내부 공간에 그늘을 드리운다.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커다란 회오리처럼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동선은 옥상부터 주차장까지 끊이지 않고 흐른다.
나선형 통로의 세 지점에는 위, 아래 층으로 이어지는 램프가 존재한다.
목적지를 향하여 자유롭게 걷다 경로를 이탈했다면 램프를 이용해 얼마든지 동선을 변경할 수 있다.
유리와 고밀도 목재로 이루어진 외관은 건축물의 주변부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게 만들고, 내부 공간은 목적에 따라 분할, 혹은 합침으로 전시, 교육, 연구 등 다목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디자인은 그 완성된 모습을 자연히 떠올리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예건은 그 점을 고려하며 심사위원들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를 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심사위원 모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고 있을 때. 예건의 발표도 끝이 났다.
“준비한 자료는 여기까지입니다. ‘무한한 동선’의 작품 설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심사위원들의 흡족한 표정에서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당선은 어차피 그의 차지였다.
* * *
프랭크 게리는 흐뭇한 얼굴로 예건의 발표를 경청했다.
‘컨셉부터 설계 과정, 결과물까지 나무랄 데가 없군. 자연주의 건축이라는 이미지 또한 확실하고. 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겠어.’
특히나 사방으로 시야는 확보하되, 유리를 인지할 수 없는 새의 충돌을 막기 위해 돌출부의 유리의 양을 최소화하고 고밀도 목재 루버를 사용해 그림자를 만들고, 유리에 사용되는 유리의 유약을 변경해 유리를 하늘과 혼동하지 않도록 유도한 것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
전체 유리면에는 5㎝ 도트 스티커를 부착했다.
새들이 높이 5㎝, 폭 10㎝ 미만의 공간을 통과하려 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감안해 별도의 조류충돌방지 패턴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도트는 전시관 유리벽에 부착한 철새 실루엣과 어울려 을숙도 철새도래지의 생태에 서식하고 있는 새들의 크기를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10㎝ 간격은 노랑색, 20㎝ 간격은 초록색.
이런 식으로 색상을 가미하여 조류의 크기를 한눈에 측정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기능을 디자인으로 연출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건축과 인간, 자연에 대한 고찰까지.
어느 한 군데 빠지지 않는 건축물이라는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지난 예건의 실력을 감안했을 때 이보다 훨씬 멋진 건축물이 탄생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것.
하지만 예산이 턱도 없이 부족한 것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이후는 더 볼 것도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한예건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꼽았고, 치열했던 국제 공모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프랭크 게리는 제라르 가뱅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예건이 가우디를 이어 사그다라 파밀리아 설계를 완성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한예건이 디자인한 사그라다 파밀리아라…. 정말 궁금하군.’
예산이 충분히 확보된 현장에서 예건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200년 동안 이어진 고집을.
깨는 것이 어디 쉬울까?
* * *
을숙도 그린센터 최종 발표 심사가 있고 1주 뒤.
건림건축 공모전팀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넘겨받은 길 이사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길 이사는 감격한 얼굴로 팀원들을 향해 외쳤다.
“을숙도 그린센터, 우리가 당선됐다!”
팀원들이 길 이사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와! 이사님, 진짜예요? 우리 작품이 1등이라고요?”
“그래. 다음주 시상식에 참석하라고 연락 왔다.”
“와~! 대박!”
“다들 정말 수고 많았다. 고맙다.”
마치 가뭄에 비오 듯.
직원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좋아했다.
지난 1년간 한 번도 당선은 커녕 최종 심사에도 오르지 못했으니, 뛸 듯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
“나는 한 대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오마. 오늘 회식은 소고기로 쏜다!”
“아싸! 소고기!”
“당장 예약합니닷.”
직원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길 이사는 싱글벙글 웃으며 한 대표의 집무실로 향했다.
예건의 들어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벌컥 문을 열며 황급히 말했다.
“한 대표! 우리!”
그런데 먼저 온 손님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 직원은 아니었기에 길 이사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길 이사에게 쏟아졌다.
길 이사가 쭈뼛거리며 서있자, 예건이 물었다.
“을숙도 그린센터 당선됐습니까?”
“어? 어. 금방 시상식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네.”
예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소식이군요. 오늘 공모전팀 회식은 회사에서 지원하겠습니다. 급한 일 없으시면 내일 하루는 다들 쉬세요.”
“어. 그래.”
일정을 공유한 길 이사는 뭔가 더 할말이 있는 눈치였으나 두 사람의 심각한 분위기를 인지하고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갔다.
“축하합니다, 한 대표. 결국 해냈군요. 그럼, 다큐멘터리는 지난번 얘기했던 대로 진행하면 됩니까? 심사 장면도 넣어야겠네요.”
“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잠시 다큐멘터리의 내용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도일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설계 참여가 목표라니.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예건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도일준 피디가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제가 좀 알아봤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바르셀로나의 심장 같은 곳이라 들었습니다. 그만큼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현장도 없다고 하던데…. 한 대표가 그걸 모를 사람도 아니고. 그곳에 집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가우디가 사망하고 예산 마련이 어려워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한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런데 2036년 엎친데 덮친 격으로 스페인 내전까지 발발했다.
도심 한 복판에 오랜 기간 미완성 상태로 방치되었으니, 흉물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건축물의 공사를 중단하고 철거해 공원으로 만들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나.
가우디의 건축을 아끼던 사람들로 인해 그의 사망 이후 25년이 훌쩍 지난 1950년대에 들어서야 다시 건축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때는 자본이 충분치 않았기에 가우디가 남긴 불완전한 설계도를 기준으로 최소한의 인원으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가우디 연구소는 건립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지하실에 모형실을 만들어 건축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건축 과정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모한 것이다.
이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은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었고, 건축을 위한 관광객들의 기부가 이어졌다.
하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충분한 예산이 쌓이자.
하루 빨리 대성당의 준공을 완료해야 한다는 정치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대의 기술로 건축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전문가들의 발언이 가세하면서 스페인 정부는 가우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까지 완공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장비와 투입 인원을 늘려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다른 문제를 양산했다.
바로 디자인 인력의 부족이었다.
짧아진 공기에도 가우디 연구소는 카탈루냐 출신의 디자이너만 고용해야 한다는 전통을 고집했고.
이는 대성당의 조각 및 상세 디자인을 최소화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
그야말로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후우-.”
한 사람 정도는.
비밀을 아는 것도 괜찮겠지.
자신을 대신해 스피커가 되어줄 사람.
지금은 그 누구보다 도일준 피디의 역할이 중요했다.
예건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 전에 깊은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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