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논란의 불길 (2)
시상식 이후 별도의 브리핑 룸에서 마련된 당선작 대표자 기자회견.
참석한 기자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예건이 실망할 것을 우려한 연희가 그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스페인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한 대표님이 이해하세요. 한국은 아직 건축 설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하거든요.”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절반 이상이 공신력 있는 외국 대형 건축 잡지사에서 온 것 같아요. 어? 진행자분이 부르시네요. 대표님, 어서 가 보세요.”
“네.”
예건은 잠시 김연희와 눈빛을 주고받고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사회자가 당선작품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시작으로 작품에 관한 일반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건축 컨셉이나 형태적 특징, 공간의 배치 등에 대한 질문들이라 답변도 일사천리였다.
30분 정도의 질의응답이 이어지고.
나올만한 질문은 다 나왔다 판단한 사회자가 앞으로 질문 3개만 더 받겠다고 공표했다.
그러자 가장 앞줄에 앉은 날카로운 눈빛의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구했다.
“이번 을숙도 그린센터의 디자인은 기존의 건림건축 작품들과는 굉장히 다른 스타일을 하고 있는데요, 혹시 그 이유가 건림건축의 경영 승계 때문인 겁니까?”
기자의 질문에 사회자는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기자님, 죄송하지만 프로젝트와 관계없는 질문은 자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곤란한 질문은 그냥 답변을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대답해 드리죠.”
예건은 사회자를 향해 살짝 미소 지어 보이고는 질문한 기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질문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여쭤봐도 될까요?”
기자는 알이 두꺼운 금테 안경을 추겨 올리고는 고개를 까딱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림건축 디자인은 김수훈 건축가의 건축 언어를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건림건축에서 완공한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 그 방향성이 크게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을숙도 그린센터 디자인도 마찬가지고요.
아파트 설계는 회사의 운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치더라도, 아파트 시행에 직접 뛰어든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변화의 이유가 운영방침을 대기업 설계 사무소로 탈바꿈하기 위함이 아닌지 궁금해서 말이죠.”
다분히 공격적인 의사가 물씬 풍기는 질문이었다.
유일하게 작가주의를 내세웠던 대형 설계사무소가 이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눈치였다.
현재 한국의 설계사무실의 형태는 크게 2가지다.
대단지 아파트나 상업 시설처럼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하며 건축주 혹은 건설사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반영해 디자인하는 대형 설계사무소.
단독주택 혹은 소규모 상가를 디자인하는 작가주의 성향의 소형 아뜰리에.
김수훈 대표가 이끌던 건림건축은 아뜰리에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규모가 커진 사례였다.
그러니 작가성이 뚜렷한 소규모 상가 프로젝트부터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건림건축의 모든 설계 과정을 김수훈 대표가 직접 진두지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전통이 깨진 것은 한예건이 등장한 시점부터였고.
예건은 그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간결하게 대답했다.
“회사 시스템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김수훈 대표님을 대신할 뿐이죠.”
스스로 건림건축 디자인의 사령탑 역할을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예건.
강단 있는 발언에 몇몇이 뜻 모를 탄성을 내뱉었다.
질문한 기자가 재차 물었다.
“건축가의 세대교체로 이해하면 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마지막 순간, 김연희 대리에게 질문해달라 부탁했던 게 있었다.
‘앞으로 어떤 건축을 할 것인가?’
이쯤에서 부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판단한 예건은 자신의 계획을 덧붙였다.
“김수훈 대표님께서는 제게 회사를 맡기시면서 건림건축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켜달라 부탁하셨습니다. 성장이란 단지 규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와 6.25 전쟁을 거치며 폐허에서 급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된 나라입니다. 서서히 변화를 맞이한 서유럽과는 달리 도시 재생을 위해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곧바로 도입됐죠. 즉, 한국의 현대 건축 역사는 겨우 50년 만에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겁니다. 그 깊이가 매우 얕죠.”
겨우 반백 년 만에 만들어낸 성과라고 하기에는 분명 대단한 일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설계기법과 건축기술은 교육을 통해 빠르게 습득할 수 있지만, 창의적인 건축은 단지 과학적 지식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
손가락이 유연하고 빠르다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공간에 대한 가치관을 벽돌 쌓듯 천천히 쌓아 올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간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시간에 쫓겨 만들어낸 결과물이 완성도까지 높기를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다.
“규모, 기술 면에서 성장했다고 세계 최고의 건축 설계사무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건축주, 더 나아가 공간을 이용하는 모든 이에게 공간을 통해 나누고자 하는 가치죠. 저희 건림건축은 보다 가치 있는 건축, 몇백 년이 흘러도, 혹은 시대의 가치가 변한다 해도 무너뜨릴 수 없는 보존 가치를 지닌 문화재 같은 건축물을 설계할 겁니다.”
예건의 포부 넘치는 발언에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을숙도 그린센터는 제가 건림건축의 대표가 된 후 처음으로 맡아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국제공모전에는 총 80개국에서 1,500여점의 작품이 등록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건축 거장 3분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했을 뿐 아니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저희 건림건축의 작품을 1등으로 꼽았다고 하셨습니다.”
예건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 건축설계 인력의 전문성과 설계 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했음을 입증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그의 말에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이는 없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세 건축 거장의 인정을 받은 작품이라는 공신력이 그만큼 큰 것이었다.
“앞으로 저를 비롯한 건림건축은 우리 한국의 대표 설계사무실로서 최고의 퀄리티의 설계 작품을 세계 곳곳에 선보일 생각입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저희 건림건축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답변을 마친 예건이 사회자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사회자가 눈치 좋게 기자회견을 마치는 멘트를 쳤다.
“어,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간 관계상 오늘 기자회견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관계자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기자들도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질문을 이어 갔던 한국건축신문 고광일 기자도 작성하던 기사 내용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출입구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김연희가 한 걸음 다가서며 아는 체를 했다.
“선배!”
“어? 연희, 너도 왔구나. 오랜만이네.”
“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
“그래. 커피라도 마실래?”
“좋죠.”
김연희는 오 대리를 먼저 보내고, 고광일 기자와 함께 인근 카페로 향했다.
“아버님 소식은 들었다. 네가 고생이 많겠구나.”
“저보다는 아빠가 고생이죠. 그래도 수술이 잘 되셔서 무리만 안 하시면 괜찮대요. 선배도 너무 일만 하지 마시고, 건강 챙기면서 일하세요.”
“그래. 다행이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고 기자가 말을 이었다.
“한예건 대표 말이다. 내부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외부에서는 걱정이 많아. 아무래도 너무 젊은 나이에 대표 자리에 올랐으니 그런 거겠지만. 혹시…. 너랑 사적인 관계인 건 아니지?”
조심스러운 물음에 김연희가 피식 웃으며 팔을 내저었다.
“사적인 관계는 무슨, 그런 거 1도 없어요. 한 대표가 나이는 어려도 속도 깊고 실력도 출중해요. 선배도 우리 아빠랑 같이 일해봐서 알잖아요. 업무에 있어서는 칼 같은 거.”
“그건 알지.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경영권을 넘기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김수훈 대표 답다 생각했던 그였다.
당연히 정기택 상무에게 그 자리가 이어졌을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이름이 거론되자 걱정부터 앞섰다.
첫 회사인 건림건축에 아직 애착이 남았기 때문.
몸이 아프면 정신도 약해지기 마련.
김수훈 대표의 판단에 뭔가 큰 실수가 있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
아무리 설계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회사 경영까지 잘하리란 것은 억측이니까.
고광일이 여전히 불신하는 표정을 보이자 한숨을 푹 쉰 김연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 대표 덕분에 고질적인 문제였던 출판팀 적자도 메꿀 수 있었어요. 회사 지분도 아빠가 그냥 준 게 아니라 충분히 비용을 치르고 한 대표가 산 거고요.”
“뭐? 아니, 어떻게?”
한국건축신문으로 오기 전 건림건축 출판팀 팀장을 맡았던 그였으니, 출판팀이 항상 적자에 시달린 것을 모르지 않았다.
잡지 매출이 갑자기 흑자로 전환된 것은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수로 적자를 메꿨단 말인가?
이후 연희가 설명하는 말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프랑스처럼 문화재의 보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없을 텐데…. 게다가 크리스티앙에서 그에게 직접 의뢰를 했다고? 그걸 책으로 내고? 허허. 도대체 이게 무슨!’
연희가 설명을 이어갔다.
“한 팀장과 회사 기획팀, 작년에는 스페인 왕실 의뢰로 둘째 공주의 신혼집 설계를 맡았어요. 곧 그 설계 과정을 엮은 책이 나올 거예요. 나오면 보내드릴게요.”
“어? 어. 그래.”
“그리고….”
연희가 살짝 목소리를 줄이고 덧붙였다.
“이건 아직 아무데도 공개하지 않은 건데, 실은….”
연희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고광일 기자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뭐? 가우디 연구소?!”
고광일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악! 선배. 아직 비밀이란 말이에요. 아직 기사는 올리지 말아요. 제가 봐서 적당한 시점에 구체적인 정보 드릴게요.”
“어? 어…. 그래.”
“그럼, 저 먼저 가 볼게요. 한 대표님이 기다릴 것 같아서.”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멀어지는 연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고광일의 초점이 흐릿했다.
한참을 멍하니 고민하던 고광일이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헤집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한예건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김수훈 대표의 영향력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다만 도무지 짐작하기도 힘든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분명 뭔가 있어. 저 한예건이란 남자.”
한예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보 해야겠다 결정한 고광일은 부리나케 카페를 나섰다.
* * *
안타깝지만 기자회견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을 탄 것도 아니고, 건설신문 같은 비주류 신문 기사로 인터넷에 떠도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간혹 자신이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이 기사 아래 댓글을 다는 정도랄까?
크게 아쉬워할 것은 없었다.
스포츠나 예술이나.
해외에서 인정받으면 국내에 알려지는 것은 순식간이니.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어? 이거 한 대표 아냐?”
이제는 기획팀의 팀장이 된 이경록의 물음에 장현우 과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맞는데요?”
“그런데 한 대표가 왜 여기에 나와?”
이 팀장이 한예건의 사진을 발견한 곳은 조간신문 해외 토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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