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논란의 불길 (3)
몽생 미셸의 작은 샤펠에서 발견된 예술품.
그걸 최초 발견한 사람이라는 소개 아래 한예건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게 아닌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뭔 일 있었나?”
“글쎄다. 도통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기사를 보는 동안 기획팀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뭔데요? 팀장님?”
“을숙도 그린센터 당선 소식이 조간신문에 실렸어요?”
“어? 그게 아니라. 해외 토픽인데….”
기사를 다 읽은 이경록이 하주연 대리에게 신문을 건넸다.
하주연이 내용을 빠르게 확인하고 팀원들에게 간략히 설명했다.
“몽생 미셸의 절벽 아래 샤펠에서 최근 발견된 마리아 상을 발견할 수 있도록 문헌 속 비밀을 밝힌 게 한국인 건축가 한예건 씨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거 진짜예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나도 이제 막 봤어.”
하주연은 곧바로 프랑스 뉴스 사이트에 접속해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와! 이 마리아 상…. 왜 예술품이라고 적었는지 알겠네요.”
조각상의 이미지를 출력해 팀원들 앞에 펼쳐 놓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구도와 유려함이 돋보이는 조각상이라고 설명되어 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이 마리아 상이 그동안 샤펠 내부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었다는 거죠. 그걸 한 대표가 찾아냈고요.”
“음? 이상하네. 왜 조각상이 벽 내부에 숨겨져 있어?”
하 대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 * *
백년전쟁 기간, 군사요새로 사용되었던 몽생 미셸은 1731년 루이 15세 시기에 감옥으로 탈바꿈했고, 그 이후로 1830년대까지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그중 절벽 아래, 가장 인적 드문 곳에 자리한 이곳 샤펠의 지리적 환경은 죄수를 벌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외딴 곳, 인적조차 드문.
아무리 살려달라 비명을 질러도 그 누구도 듣지 못하는 철저히 고립된 장소.
죄수의 외침은 파도 소리에 금세 묻혀버린다.
조수 간만의 차가 2미터에 달하는 섬의 특징을 이용한 처형장.
문헌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간수들은 당시 이곳을 신의 심판장이라 불렀다.
그러나 차마 마리아 상이 보이는 장소에서 처형을 할 수는 없었기에 비슷한 형태의 돌벽을 쌓아 조각상을 가렸다.
100여년 넘게 바다에 잠기고 다시 드러나는 것을 반복하며 이 벽은 감쪽같이 새것의 흔적을 지워버렸던 것.
“안타까운 일이죠. 안식을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 인간에 의해 처형시설로 탈바꿈한 것은.”
씁쓸한 표정으로 예건은 기사를 내려다 보았다.
그의 맞은편에는 몽생 미셸에 관한 해외 토픽을 접하고 찾아온 잡지사 무드의 전연수 기자가 앉아 있었다.
“그럼, 혹시 샤펠이 이중으로 벽이 둘러져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셨어요? 그 안에 조각상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면서요?”
“그건 이 건축물을 만든 건축가가 암호처럼 만들어 둔 공사일지 덕분이었습니다.”
“도면이 아니라, 공사일지요?”
“네. 아마 그 건축물을 만든 오르베라는 수도사는 전문적으로 건축을 배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벽돌을 다듬은 손길이 그리 정교하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죠. 도면을 그리는 게 어려웠던 그는 대신 글자로 그 형태를 남긴 겁니다. 자료 조사를 하던 제가 우연히 그 책자를 보게 된 거고요.”
“오호~. 그래서요?”
“책을 분석하던 도중 남겨진 건축물의 바닥 패턴과 실제 바닥의 디자인이 다른 걸 깨닫고 감춰진 공간이 있음을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실측을 통해 바다측 벽이 이중벽으로 시공되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죠.”
“와~ 진짜 대단하네요!”
전연수 기자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 한예건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마리아 상이 존재하는지도 몰랐겠네요.”
“제가 아니었대도 언젠가는 밝혀졌겠죠. 리뉴얼을 계획하고 있었으니까요. 그저 운이 좋았습니다.”
“그래도요. 혹시 이후에 몽생 미셸 측에서 연락 온 건 없으셨어요?”
전연수 기자가 은근한 눈빛으로 물었다.
새로운 기삿거리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
“아, 있습니다. 수도원장님께서 제게 복원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셨죠.”
“역시! 그래서요?”
전연수 기자가 기대하듯 눈을 반짝였다.
“복원은 전문가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거절했습니다.”
“아…. 아쉽네요. 복원도 잘 하실 것 같은데….”
아쉬움에 말을 흐리던 전연수가 뭔가 더 큰 게 숨어있음을 깨닫고 얼른 질문을 고쳤다.
“그럼 신축하는 프로젝트는 없다던가요?”
“하하하. 역시 기자분들은 감이 좋으시네요. 대신 다른 일을 하나 맡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규모가 큰 신축 프로젝트죠.”
“와아! 역시! 이만한 예술품을 찾아줬는데, 그 정도 보상은 있어야죠. 혹시 무슨 프로젝트인지, 저한테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예건은 눈을 반달로 그리고 대답했다.
“퐁트브로 수도원이라고 프랑스에서 가장 큰 왕립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헨리 2세와 사자심 왕 리차드 1세,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묻혀 있죠.”
“아! 저 거기 알아요. 예전에 프랑스에 배낭여행 갔을 때 가봤거든요. 예배당 중앙에 왕과 왕비의 외모를 본 따 만든 관이 있는 수도원이잖아요.”
“하하. 맞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해 관만 공개한 거죠. 실제로 그 시신은 지하 묘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예건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왕립 수도원이었던 퐁트브로 수도원도 프랑스 혁명 이후 서서히 쇠락을 맞이했죠. 지금은 아주 일부만이 수도원으로 운영되고 있고, 대부분의 건축물을 지역 주민 및 관광객들을 위한 문화 리조트로 탈바꿈하려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중 제가 디자인 하게 된 곳이 왕족의 시신이 안치될 예배당이죠.”
“오! 왕들의 무덤이라…. 왠지 엄청 멋질 것 같은데요.”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제 실력을 제대로 선보일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작은 건축물일수록 디테일은 섬세해야 하니까.”
예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사심을 최대한 자제하며 인터뷰를 이어가던 전연수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아! 진지한 표정도 너무 멋있잖아~. 마지막 말은 꼭 기사에 넣어야겠다.’
전연수는 기대감 충만한 목소리로 예건을 응원했다.
“네! 꼭 멋진 건물 만들어 주세요!”
* * *
을숙도 그린센터 공모전 결과 발표가 끝나고 어느새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간 건림건축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대표가 회사를 운영하는 과거의 운영 시스템을 버리고, 경영전문가를 고용해 회사의 효율성을 더했다.
변화는 경영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뭐니뭐니 해도 설계사무실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는 설계 파트.
예건은 공모전팀을 기획팀에 흡수해 길상수 이사 산하에 기획 설계부를 만들었다.
총원 6명으로 시작했던 소박했던 기획팀이 이제 5개의 팀, 총원 50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김수훈 대표의 건축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정기택 상무는 김수훈 대표의 건축 세계를 이어가는 데 보다 집중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따라서 기존의 설계팀은 그 규모를 줄이는 대신 상업시설 및 고급 주택, 종교시설 등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설계부로 거듭났다.
공동주택과 공장, 고객중심의 현대적인 설계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는 대형 프로젝트는 송정환 이사를 주축으로 기술 설계부를 꾸렸다.
그 중에서도 기획 설계부는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춰 건림건축 설계부 전체 인원을 대상으로 선별된 인원으로 진행되며, 하나의 팀이 기획부터 완공까지 모두 관리, 책임지는 프로젝트 팀 시스템이다.
건축물이 탄생하는 시점부터 완성될 때까지 모두 한 팀에서 진행하니, 그 완성도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임원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구성한 조직 체계.
직원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고, 다행히 모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을숙도 그린센터 공모전 당선 이후, 전세계 유명 건축 잡지사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한예건의 인지도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건림건축의 인지도까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세계적인 명성에 힘입어 설계 의뢰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예건은 욕심부리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제대로 마무리 못하면, 새로운 일을 받는 들 무슨 소용인가?
‘그래 봐야 아직 모래성이다.’
단 한순간의 실수로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 불안정한 시기.
한 작품, 한 작품이 그에게 모두 중요했다.
빛가람 미술관의 준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예건은 최근 3개월간 이곳 현장에 머물며 공사 완성 과정을 함께했다.
“벌써 시간이….”
시간을 확인한 예건은 검토하던 도면들을 서둘러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장 지하 구석에 마련된 조그마한 사무실을 나서자, 설계 도면을 검토하고 있던 하주연 대리가 따라 일어섰다.
“바쁜 것 같은데, 마저 검토하세요. 혼자 둘러 보고 오겠습니다.”
“네.”
하주연이 다시 제자리에 앉는 걸 보고 사무실을 나왔다.
당연한 일이지만, 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설계 변경이 꽤나 많았다.
이곳에는 하주연 대리 외에도 3명의 설계자들이 함께 수정 작업 중이다.
안전 장비를 하고, 아직 작업 중인 엘리베이터를 지나 계단을 올랐다.
1층에 도착하자 홍윤기 회장이 현장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그가 반가운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오! 한 대표, 연락하려고 했는데 마침 나왔군.”
“요즘 따라 매일 방문하시네요.”
“여기만 오면 내 마음이 편안 해져서 말이지. 현장 둘러보려고 나온 거지? 같이 가세.”
“네.”
외관 공사는 거의 마무리 되었고, 내부는 도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장을 둘러본 두 사람은 자연스레 2층 주차장으로 향하는 곳에 마련된 마지막 전시장으로 향했다.
김수훈 대표의 ‘빛의 무덤’.
“정말 이곳에는 아무 것도 전시하지 않으실 겁니까?”
예건의 물음에 홍 회장은 흐뭇하게 벽면을 응시했다.
“그래. 이대로도 좋지 않은가?”
관통하는 출입구 두 곳을 제외하고 사방이 오래된 고벽돌로 이루어진 한 변이 6미터인 정사각 평면의 로비.
뒤틀린 각도로 꺾인 콘크리트 천장은 전방의 왼쪽 하늘로 난 천창으로 회오리 치며 이어진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투명하고 자그마한 유리창이.
이곳의 유일한 빛이다.
천창으로 들어온 빛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때마다 고벽돌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형태가 달라지는데, 어떤 것은 나무가 되고, 어떤 것은 새가 되며, 또 어떤 것은 사람이 된다.
빛으로 그린 그림.
변화무쌍한 시간의 순간을 예술적으로 캐치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사진을 전시하는 이곳 빛가람 미술관에서.
유일하게 변화하는 작품.
김수훈 대표는 빛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이곳에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김수훈 대표가 나를 위해 마지막으로 만들어준 작품일세. 난 이 작품이 너무 좋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대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지 않나? 나무나 새와 다르지 않는 한낱 피조물. 그게 인간이라고.”
그리 말한 반백의 홍 회장은 소탈하게 웃었다.
이미 쓸모를 다해 부서지기 직전의 벽돌을 닮은. 그런 미소였다.
1층까지 다시 걸어 내려와 외부를 둘러 보던 중에 예건이 말했다.
“다음달 1일 개관에는 문제 없을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개관식에는 김 대표님도 오신다고 하시더군요.”
“다행이군.”
앞서 걷던 홍 회장이 문뜩 멈추더니 돌아섰다.
“정말 고맙네. 이 미술관의 설계를 맡아줘서. 내겐 정말 보석 같은 선물이야.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단 말이지.”
“아뇨. 감사드려야 할 건 접니다. 이 괴상한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신 건 회장님이시니까요.”
예산보다 3배를 훌쩍 넘는 공사비에도 아낌없이 지원해 준 홍윤기 회장이었다.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 더 열정을 불태운 것이 사실이다.
“하하. 괴상한 건축물이라…. 이 건축물이 세상에 공개되고 나면, 분명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군. 특히나 고상한 걸 좋아하는 건축가들이 제일 방방 뛰겠지. 하지만 실제로 이곳을 두 눈으로 목도하면, 더 이상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걸세, 내가 장담하지.”
씩 웃으며 돌아서서 걷는 홍 회장.
그의 걸음걸이에는 어딘가 악동의 장난스러움이 스며들어 있었다.
몇 주 뒤.
빛가람 미술관이 세상에 공개되고, 홍 회장의 예상대로 건축계가 발칵 뒤집혔다.
[미켈란젤로, 피에타의 마리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