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낯설고도 신비로운 건축 (1)
빛가람 미술관이 개관하는 날.
예건은 직접 승용차를 몰아 김수훈 대표가 지내고 있는 용인시의 요양원으로 향했다.
건물 입구에 도착하자, 벤치에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김 대표와 김연희가 보였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나오며 꾸벅 인사를 했다.
“전화 드리면 나오시죠.”
“날씨가 좋아서 말이지. 오느라 고생 많았네.”
“고생은요. 좋아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져 노쇠해 보이긴 했으나, 그래도 얼굴빛은 밝았다.
덮쳐오던 죽음의 그림자가 한풀 기가 꺾여 멀어진 모양.
현대 의학의 발전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허허, 그런가? 이곳 자연에 파묻혀 고민 없이 살다 보니 자연 치유가 된 모양이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지 않습니까? 자연만큼 좋은 신경 안정제도 없지요.”
“허허. 그래, 그렇더군. 그래도 가끔 그리워. 내 인생 가장 치열했던 시절이.”
김 대표는 회상하듯 시선을 허공에 두고는 말했다.
“내가 디자인한 공간을 보러 간다는 거, 참으로 설레는 일이더군. 예전에는 바빠서 제대로 감상할 시간도 없었는데 말이지. 가세, 조금이라도 더 그곳에 머물고 싶으니.”
“네.”
뒷좌석 문을 열자 연희가 김 대표를 부축해 일으켰다.
“부축할 필요 없대도.”
“그냥 아빠가 좋아서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거거든요.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딸 마음도 몰라주고. 흥!”
툴툴대는 연희의 얼굴에 애교가 가득했다.
둘이 티격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모두의 관심사인 건축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며 가다 보니, 양평도 지척이었다.
“그래, 결과물은 만족스러운가?”
“네. 예상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서 그렇지, 완성도는 마음에 듭니다.”
“그래. 자네가 만족한다니 다행이군.”
“직접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허허. 그 정도인가?”
“네!”
예건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후후. 기대 되는군.”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해 빛가람 미술관을 두 눈으로 목도한 김수훈 대표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스트라토쿠물루스(Stratocumulus, 층적운)이라 이름 붙인 ‘연무’.
구름을 닮은 건축물.
비범한 이름처럼 그 형상 또한 낯설었다.
곡면을 이룬 울퉁불퉁한 비정형 매스가 가로로 세 덩어리 쌓여 있는 형태.
지면과 매스, 그리고 매스 사이 간격을 짙은 청록색 유리로 마감해 마치 아무런 지지대 없이 세 개의 덩어리가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녹음을 배경으로 거대한 조각품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 느낌.
이내 설계 초안과 뭔가 달라진 것을 감지한 김수훈 대표가 그 이유를 찾아내 물었다.
“수공간은 원래 없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보완한 건가?”
“네. 그렇습니다.”
“그래. 잘했군. 수공간 덕분에 비현실적인 느낌이 더욱 강해졌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수공간은 건축물과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이는 푸른 수목을 배경으로 보는 건축물의 풍경과는 또 다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하늘의 구름과 어울려 함께 흐르는 듯한 느낌.
특히나 수면에 잔잔하게 인 물결이 물 위에 비친 백색 매스가 흩어지고 모이게 만들며 구0름처럼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새벽 안개가 피어오를 때 와보고 싶군.”
“정적 속에 수목원을 걷다 보면 신선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 그렇겠어.”
주차장에서부터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건축물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 디테일.
살짝 회색빛이 감도는 백색 철판은 외피와 내피, 2겹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설치되었는데.
그중 장식을 담당하는 외피는 다양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실루엣이 타공되어 있었고, 타공되지 않은 부분은 음각 레이저로 세밀한 표면의 장식을 더했다.
마치 수공예로 장식한 것처럼 일률적인 디자인 하나 없었다.
얼핏 단순해 보이던 형태를 전혀 단순하지 않게 만든 것은 결국 고도로 계획된 디테일이었다.
김 대표는 당연히 별도의 그래픽 아티스트를 고용했을 거라 생각하고 물었다.
“외피 디자인이 무척 인상적이군. 누구 작품인가?”
“제가 디자인했습니다. 레이저 커팅을 하려면 일러스트 파일이 필요해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하긴 했지만요.”
“자네가 직접? 놀랍군. 곡면이 많아 시공하는데도 애를 좀 먹었겠어.”
“다행히 시공사가 잘 따라와 줬습니다.”
비정형적인 형태의 빛가람 미술관은 설계 단계부터 수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미술관 구조와 외피 대부분이 철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국내 기술로는 이를 설계할 수 있는 구조설계 사무소가 없었다.
다행히 프랭크 게리 교수의 도움으로 해외 유명 구조설계 업체와 협력해 구조도면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그 구조물을 시공할 수 있는 회사가 없다는 것.
최종 도면을 들이밀자, 홍윤기 회장이 선정했던 시공사가 결국 두 손을 들고 포기했다.
‘다른 데 의뢰해도 똑같을 겁니다. 국내 시공 기술로 이런 형태는 만들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 최고라 자부하는 1군 건설사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된다고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거라며 예건의 의지를 꺾으려 했다.
결국, 예건은 시공 업체를 수소문하는 걸 포기하고,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아들이 힘들게 설계한 건데, 무조건 해야지. 그런데 이런 작업이 가능한 금속업체를 구하는 게 쉽지 않겠구나. 해외 기업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다.’
예건은 곧바로 도면을 챙겨 들고 황동금속 황두철 사장을 찾아갔다.
도면을 보던 황두철 사장의 눈이 반짝였다.
‘결국, 크게 사고를 치셨군요. 이게 당신이 말한 최고로 큰 조각품입니까? 좋습니다. 어디 한 번 같이 죽어 보죠.’
황두철 사장은 흔쾌히 합류에 응했고, 그를 필두로 구조 설계사를 고용하고 철골 제작 공장까지 인수해 엔지니어링 기업을 차렸다.
6개월 넘게 착공조차 하지 못했던 프로젝트가 단숨에 불가능이란 허들을 넘었다.
이후는 자신과 싸움의 연속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으며 꾸역꾸역 밀고 나갔다.
처음에는 극악의 난이도에 난색을 표하며 설계를 변경하자던 각 파트 시공팀 팀장들마저 예건의 열정적인 모습에 결국 승복하고 순순히 해결 방법을 마련해 오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으나, 반쪽이 되어 있는 예건의 얼굴에서 고단함을 읽어낸 김수훈 대표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말조차 잃고 눈으로 건축물의 디테일을 살피던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군. 내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작품이 탄생했어.”
“감사합니다. 대표님과 회장님의 적극적인 지원이 아니었다면, 이 건축물을 세상에 선보이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니야. 이게 다 자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 걸, 내가 왜 모르겠나.”
김수훈 대표는 마른 손으로 예건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을 그의 손등에 살포시 포갰다.
“나는 결코 하지 못했을 과감한 디자인이야. 정말 자네가 존경스럽네.”
“…….”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예건은 마주한 김 대표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었다.
“연무…. 자네가 처음 그 컨셉을 가져오며 설명했지. 자연을 돋보이게 하려고 과거의 화공들은 연무를 이용했다고. 자네는 그 너머 숨어 있던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지.”
“…네.”
“당시에는 그걸 저런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 수많은 사건이 사진처럼 미술관 외피에 박혀 있는 것 같아. 마치 수수께끼처럼 말이지.”
예건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낸 김수훈 대표.
“미술관을 지으랬더니, 예술품을 만들었군.”
그가 장난스럽게 툴툴거리고는 덧붙였다.
“자네, ‘빛 좋은 개살구’가 무슨 말인지 아나?”
“허울만 그럴듯하고 실속은 없다는 말 아닙니까?”
김수훈 대표가 뒷짐을 지며 물었다.
“그래. 19세기 초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자신의 칼럼에서 그랬지. 장식은 범죄라고. 물론 과도한 허세와 위장은 낭비가 될 수도 있어.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개성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네.”
예건은 그의 말에 동감했다.
한국의 어느 도시, 어느 장소에 가도 똑같은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다.
경제적 논리에 기반한 보편적이고 기능적 형태.
벽돌 타일, 화강석, 금속 판넬, 드라이비트.
길을 가다 잠시 훑어보기만 해도 건축물이 몇 년 도에 지어진 건지 대강 알 수 있을 정도다.
시공 당시 수급이 원활한 자재로 설계를 하다 보니, 결국 비슷비슷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
“한국은 아직 부자가 자기 돈 쓰는 데도 남들 눈치 보는 게 당연한 나라네. 과거 재벌들이 노동자의 고혈을 취해 돈을 벌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인식인지도 모르겠군. 그래서 건축물들도 최대한 수수하게, 눈에 띄지 않게, 장식성을 배제한 단순한 디자인이 고상한 것처럼 여겨진 거야.”
김수훈 대표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현대 건축에 대한 기술력 부족과 자본력 부족도 한몫했지. 시공 기간도 축소할 수 있고 말이야. 하지만 덕분에 개성을 잃었어. 한국에서 걸출한 건축가들이 탄생하지 못한 이유기도 하지.”
김수훈 대표가 예건을 향해 씩 웃으며 격려했다.
“손님도 거의 들지 않을 한적한 시골의 사진 미술관, 거기에 수백억을 쏟아부은 걸 알면 아마 비난이 빗발칠 걸세. 하지만 여의치 말게. 자네가 만든 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니까 말야.”
“물론입니다. 잘 만들어진 건축물은 그 자체로 인류 최고의 작품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르셀로나의 가우디가 그러했던 것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허허.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소신을 지키며 나아가게.”
김수훈 대표가 미술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 땅에 앞으로 얼마나 더 멋진 건축물들이 지어질지, 무척이나 기대되는군.”
김수훈 대표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났다.
곁에 있던 김연희 대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살고자 하는 이유.
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한 의지였으니.
* * *
대한건축학회 도시발전 토론회를 위해 오랜만에 건축센터에 모인 건축가와 교수들.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든 그들의 대화 주제는 단연 최근 월간 잡지 건축과 공간 7월호에 실린 빛가람 미술관이었다.
“얼마 전 팔당호 인근에 만들어진 미술관에 관한 기사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기존의 건림건축 디자인과는 확연히 다르더군요. 어딘가… 기괴하다고 해야하나?”
먼저 운을 뗀 건축가가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기괴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군요. 밤에 지나가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것 같던데요.”
“층적운(Stratocumulus) 구름 형태를 형상화했다고 하던데, 마치 비대한 뱃살 덩어리를 보는 것 같더군요.”
“하하하. 비대한 뱃살! 생각만 해도 혐오스럽네요.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요상한 건물을 만든 건지, 원.”
모인 이들 중 하나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리가 무리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게 목소리를 낮췄다.
“건축주가 그 이상하기로 소문난 홍윤기 회장이 아닙니까? 괴상한 사진만 골라서 모으더니, 드디어 미쳐버린 거 아닐까요?”
비난과 질시가 교묘하게 뒤섞인 대화.
지금껏 잠자코 듣기만 하던 젊은 교수가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건물입니까?”
“허허. 유승호 교수는 아직 못 본 모양이죠?”
“네, 지난주까지 미국 코넬 대학에 교환 교수로 있었거든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하하. 그러셨군요. 팔당호 인근에 새로 개관한 사진 미술관입니다. 요즘 세간에 워낙 뜨거운 화제의 건축물이라 찾기는 쉬울 겁니다.”
‘기괴한데, 화제라고?’
유승호는 묘한 두 단어의 조합에 호기심이 일었다.
본래 최고의 걸작은 구설수가 들기 마련이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