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낯설고도 신비로운 건축 (2)
“혹시 건축가가 유명한 분인가요?”
“아뇨~. 거 왜, 작년에 건림건축 김수훈 건축사님께서 병환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나셨지 않습니까?”
“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건강하셨다면 더 훌륭한 건축물을 많이 선보이셨을 텐데요.”
“그러니까요. 어쨌든 건림건축 대표가 웬 젊은이로 바뀌고, 한동안 공모전 입상도 못하는 상태로 전락했죠. 견고하던 건림건축의 아성이 무너지는 거 아니냐며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상한 건축물이 툭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게 건축인지, 예술인지 분간도 어려운 근본 없는 디자인이. 이제 건림건축도 한물간 거죠.”
“흠…. 그렇습니까?”
이야기를 들을수록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어쨌든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외관이 매우 독특할 것이라는 것.
“허허. 그런데 그냥 죽으란 법은 없는지. 거 왜, 요즘 젊은 사람들이 특이한 걸 좋아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완공한 미술관의 외관이 워낙 요란해서 사진 배경으로 아주 각광받더라고요.”
나이 지긋한 건축사가 못마땅한 듯 비웃으며 덧붙였다.
“그렇게라도 이슈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시공비가 적잖게 들었을 텐데, 관람객 발길까지 끊기면, 쯧. 그 책임은 결국 설계사무소의 책임이 될 테니까요.”
이내 곧 토론회를 시작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들리고, 다들 바삐 회의장으로 향했다.
유승호 교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노트북을 펼쳐 ‘팔당호, 미술관’ 키워드를 검색했다.
홈페이지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지, 방문객이 블로그에 올려둔 글이 제일 먼저 검색됐다.
“빛가람 미술관? 흠…. 사진 미술관이구나.”
타이틀을 클릭해 링크된 페이지로 접속하니, 가장 먼저 관람객이 입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보였다.
“음? 그런데 외벽에 그려진 저게 다… 뭐지? 아니, 조각인가?”
스크롤을 내리며 사진을 둘러보던 유승호 교수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말도 안 돼! 이런 건축물을 국내 설계사에서 디자인했다고? 아니, 그것보다 이런 형태가 시공이 가능하긴 한 건가?”
수목원을 배경으로 수공간과 건축물이 조감도 시각으로 내려다보듯 찍힌 마지막 사진에서 그는 스크롤을 멈췄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 해야겠어!”
유승호는 토론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비슷한 시기.
사진 동호회 카페에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풍경> 새벽 이슬 맞으며 등산한 보람! (사진)]지난주 용마산에 산행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길래 따라가 봤는데, 수목원이랑 사진 미술관이 생겼더라고요.
건물 모양이 워낙 특이해서 멀리서도 유달리 눈에 띄었는데, 가까이 가니까 완전 예술이었습니다.
카메라 들이대는 곳마다 포토존이에요.(사진)
게다가 건축물 주변으로 수공간이 있어서 반사가 되니까 건물이 공중부양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되게 묘하더라고요.
컨셉이 구름이라길래 어제 새벽 일찍 산에 오르면서 촬영했는데, 건물이 울퉁불퉁하게 생겨서 그런지, 안개에 가려진 모습이 마치 구름이 겹겹이 쌓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충 막 찍어도 인생샷이에요.
사진 미술관에 상설 전시 중인 사진 작품들 수준도 매우 높고, 주변에 수목원도 잘 조성돼 있어서 데이트 코스로 딱입니다.
– 완전 멋지네요. 팔당호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근처 사는데, 한 번 가 봐야겠습니다.
– 흑백 사진이었으면 수묵화라고 우겨도 믿었을 겁니다.
– 사진 미술관이라니, 흔치 않군요. 미래에 제 작품도 저기 걸리면 좋겠네욧!!
└ 가능할 겁니다. 힘내세욧!!!
– 건물 주변이 밝은데, 은은한 금색으로 빛나는 게 혹시 야간 조명인가요?
└ 네. 엄청 분위기 있죠? 색이 조금씩 바뀌던데 노란 빛 들어올 때 찍어서 그렇습니다.
└ 와, 조명 색이 바뀌는군요. 야간 조명 있는 곳도 흔치 않은데, 밤에도 멋있을 것 같아요.
– 오~ 산타는낙타님! 멋진 장소 추천 감사합니다. 주변에 심겨진 나무들도 엄청 근사하네요. 여기서 새벽 정모 한 번 해야겠습니다.
└ 머리속꽃밭, 정모 대기합니다
└ 대기2
└ 333
└ 4444
새로운 촬영 스팟의 탄생 소식은 사진 동호회 및 젊은 연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었다.
미술관 외관에 이끌린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그중 단연 인기 작품은 송철희의 ‘소나무’ 시리즈였다.
* * *
빛가람 미술관의 대형 전시장.
그 중앙에 자리한 것은 안개가 드리워진 거대한 소나무 숲.
한점이라도 더 빛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휘어진 굵직한 줄기, 보는 것만으로 거친 촉감이 상상되는 투박한 껍질.
하나도 특별할 게 없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가 송철희 작가의 작품 속 유일한 피사체다.
그나마 완벽한 소나무의 형상도 아니다.
소나무의 마른 가지와 사시사철 푸른 무성한 뾰족 잎은 댕강 잘라 버리고, 밑둥과 줄기만 가득하다.
인간의 눈높이로 보는 장면을 그대로 화각에 담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피사체지만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낯섦과 친근함에 있었다.
마치 수묵화를 확대해 세밀하게 그린 것 같은 흑백의 묵직한 질감.
사진에서 묵향이 난다.
가로 250㎝, 세로 125㎝.
사진 작품치고는 작지 않은 크기.
가만히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미술관인지, 아니면 저 흑백의 사진 속에 들어와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예건은 오늘도 그 앞에 서서 사진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 한 대표님, 또 나와 계십니까?”
“아! 관람객이 없어서 이 시간이 제일 한가해서 작품 관람하기 좋거든요. 송 작가님은 아침 일찍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 어제 사무실에서 잠깐 보자고 연락이 와서요. 뭣 때문에 오라는 건지, 괜히 불안해져서 좀 일찍 도착했네요.”
아마 송철희 작가의 작품이 대중의 반응이 좋은 것과 관련된 일일 터.
“불안하실 필요 없습니다. 좋은 작품은 누구나 알아보는 법이니까요. 명실상부, ‘소나무’ 시리즈는 빛가람 미술관의 인기 작품이 아닙니까?”
송철희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아-. 유명세는 됐고, 비평가들에게 욕이나 먹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평범한 사진을 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송철희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떨궜다.
예건은 그런 송 작가에게 용기를 북돋기 위해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작가님 첫 작품은 제가 무조건 살 테니까요.”
송철희가 감동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휴~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시면 말씀만 하십시오.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다 한 대표님 덕분인데요.”
“전 그냥 힌트만 드린 건데요.”
“대표님이 주신 힌트가 아니었으면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송철희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자신의 작품으로 옮기며 말했다.
“처음 제가 사진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수묵화 속 안개의 의미를 알려주신 것도 다 한 대표님이 아닙니까? 대표님은 제게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은인입니다.”
“은인은 너무 과장된 거 같네요. 그냥 후원자 정도로 해 두죠.”
“한 대표님이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시죠. 그런데….”
송철희 작가는 쭈뼛거리다 물었다.
“곧 프랑스로 가신다던데, 정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미술관 공사 때문에 잠시 들어온 거니까요.”
“그렇군요. 아쉽네요. 전시회가 끝나면 대접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다음에 여유가 좀 생기면 시간을 맞춰보죠. 그보다, 혹시 작품집 만들어 두신 거 있습니까?”
“작품집요? 개인전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PDF 파일이라도 괜찮으니, 하나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아… 네.”
송철희는 어디에 쓸 거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한예건이 얼마나 신중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송철희는 사무실로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예건은 그가 돌아간 후에도 한참을 그곳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마치 작품의 한 부분인양 서 있는 그를 보고 아침 일찍 미술관에 온 관람객들이 힐끔거렸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송철희의 예술적 재능이 특출남은 그의 첫 사진을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완성한 소나무 시리즈는 이전 사진들과 그 결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시선을 매료해 한없이 끌어당긴다.
또한, 정적 세계를 기꺼이 유랑하게 만든다.
물결이 일지 않는 고요한 수면 위를 바라보는 것 같은 평온함.
바람 한 점 없이 굳건한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욕망이 불끈 솟아오르는 것이다.
‘이곳과 무척 잘 어울리는 작품이군.’
치열한 삶에 지친 마음을 정돈하고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그의 사진 속에 있었다.
그러니 계속 그의 발길을 이끄는 것일 터.
이곳에 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 그는 파리의 하늘아래 신과 마주하고 있을 테니까.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고 지상 주차장이 있는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데, 황급히 출입문 안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아뇨. 괜찮습니다. 먼저 가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툭.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듯 걸어가던 남자가 뭔가를 떨어뜨렸다.
다가가 확인해 보니, 손바닥 만한 수첩이다.
안내소에 가져다 줄 생각으로 펼쳐서 확인하니, 명함 하나가 꼽혀 있었다.
“연재대 건축과 유승호 교수? 건축과 교수가 여긴 무슨 일이지?”
잠시 호기심이 일었으나, 딱히 아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금세 흥미를 잃었다.
안내소에 수첩을 맡긴 그는 유유히 미술관을 빠져나갔다.
* * *
7월 중순.
프랑스 하늘은 푸르렀다.
울창한 숲 너머로 보이는 뾰족한 성탑의 윤곽, 나즈막한 풀이 자라난 언덕을 하얀 양떼가 유유히 산책한다.
마치 동화 속 풍경 속을 차로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푸른 풍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차창을 여니, 더운 바람이 훅 들어오며 거름 냄새가 확 풍겼다.
예건은 황급히 숨을 참고는 창문을 닫았다.
브루노는 그 모양새가 웃겨 보였는지, 쾌활하게 웃었다.
“하하하. 자네도 어쩔 수 없는 도시 남자군. 하필이면 거름을 뿌린 지가 얼마 안 된 모양이야.”
“자동차 청소 좀 해야겠습니다. 창문이 온통 뿌예서 밖이 잘 보이지 않네요.”
괜히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말투가 퉁명스러워졌다.
“어쩔 수 없지. 현장 근처에 세워 두면 몇 시간만 지나도 이 모양이니까.”
“그래서 세차 언제 하셨는데요?”
“크, 크흠…. 아마… 한 달 전?”
“그 정도면 그냥 청소하러 가기 귀찮아서 안 한 것 같은데….”
브루노가 무안한 얼굴로 웃었다.
“하하하. 곧 도착할 테니까, 풍경은 내려서 마음껏 감상하라고.”
예건은 창밖에 시선을 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퐁트브로 수도원에 도착하자 반가운 얼굴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몽생 미셸에서 그에게 너무도 쉬운 시험을 내서 오히려 난감해 했던 마테오 수사 말이다.
“오랜만에 뵙네요. 마테오 수사님.”
“하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한. 브루노 건축사님도 평안하셨고요?”
“뭐, 우린 지난주에 봤으니까 인사는 대충 생략합시다. 미스터 한은 말보다 일을 더 좋아하거든.”
“하하.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따라 오시죠. 티모테 수도원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브루노의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마테오는 안내하는 내내 주절주절 상황을 설명했다.
대충 들어보니, 이 일이 성사되기까지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수도원장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결국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프랑스 가톨릭교회 뿐만 아니라 바티칸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교황청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어쩐지 아까부터 어깨가 묘하게 긴장돼 있는 것 같더니.’
한참을 가만히 들어주고 있던 브루노가 언짢은 내색을 숨기지 못하고 불퉁하게 쏘아붙였다.
“교황청에서 신경 쓰는 게 어디 퐁트브로 수도원에서 노력한 덕분인가? 한 대표가 이 일을 맡아서 그런 거지.
그리고. 말은 바로 합시다. 한예건 대표가 설계에 참여하는 걸 반대하면서 계속 설계 일정을 미룬 건, 퐁트브로 신부들 아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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