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망자의 선물 (1)
“어…. 어…. 그, 그게….”
브루노의 핀잔에 거짓말을 못하는 마테오 신부는 얼굴이 벌게지며 말을 더듬거렸다.
“됐습니다. 이미 지난 일을 탓해서 뭐하겠습니까? 내부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인 거죠.”
예건은 둘의 대화에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원하는 대로만 굴러가는 건 아니지 않는가?
기다리는 동안 일이 없어 쉬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기에 기다린 것일 뿐.
예건이 책임을 묻지 않자, 마테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걸음 속도를 높였다.
“이쪽입니다.”
그가 나무로 된 문을 열자, 빛이 거의 들지 않는 복도와 달리 환한 내부가 드러났다.
빛을 등지고 앉아 있던 티모테 수도원장이 여유로운 미소로 그들을 반겼다.
예건은 그의 태도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뭐지? 몽생 미셸에서 만났을 때와 묘하게 다른 느낌인데. 장소가 달라져서 그런가?’
사람은 장소나 맡은 책임에 따라 태도나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나 이곳, 퐁트브로 수도원은 티모테 신부가 수도원장의 역할을 일임하는 곳.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진지한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격식을 차리는 것 이상의 인상을 받은 것이다.
경외의 대상을 보는 느낌.
그 시선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간단한 인사가 오가고, 티모테 원장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수도원의 설계를 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죠. 복잡한 내부 문제는 이제 모두 해결이 된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아무리 수도원장이 꿈에서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고는 하나, 증거 하나 없이 수많은 관계자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
“몽생 미셸의 숨겨진 조각상을 찾아낸 것에 대한 대가입니까?”
“그런 이유도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티모테 원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는 진중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미스터 한, 당신이 떠나던 그 날. 저는 다시 미카엘 대천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대천사님은 자신의 계시를 알아보지 못하는 저를 꾸짖으셨죠. 솔직히 그때까지도 저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저 내 마음속 잠재된 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티모테 수도원장은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자책했다.
“충분히 이해됩니다. 저라도 믿기 힘들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브루노가 놀라 물었다.
“그럼, 또 꿈을 꾸신 겁니까?”
“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다시 미카엘 천사님을 꿈속에서 뵈었습니다. 미련하게도 저는 그분에게 증표를 보여달라고 부탁했고, 이번에는 단지 호통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날카로운 창으로 어리석은 제 머리를 찍으셨죠.”
원장은 이마를 가리고 있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마 한쪽에 무언가에 찍힌 것 같은 선명한 십자 형태의 상처 자국이 보였다.
“그 꿈을 꾼 후, 제 이마에 이런 상처가 생겼습니다. 제가 꿈에서 보았던 창의 단면과 같은 형상입니다.”
“그럴 수가! 마치 몽생 미셸이 처음 지어졌던 그 때의 전설과 같군요!”
브루노가 믿기지 않는 듯 턱을 늘어뜨렸다.
마테오는 이미 원장에게 들은 말인지 놀라지는 않았으나,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는 경건하게 성호를 그었다.
“믿기 힘든 말인 건 잘 알지만, 거짓은 일절 없습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판단한 저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교황청으로 향했고, 곧바로 사업 추진을 위한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이….”
시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시종일관 무소식으로 일관하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한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두려운 듯 존경의 의미가 담긴 눈빛의 이유도 미카엘 천사가 떠올랐기 때문일 터.
티모테 원장은 담담하게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수도원의 건축에 대한 모든 과정을 앞으로 교황청에서 관리할 예정입니다. 설계 착수에 앞서 이 점을 확실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오시라고 부탁드린 겁니다. 그리고 따로 부탁 드릴 일도 있고요.”
원장이 마테오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테오가 자리에서 일어서 어디론가 향했다.
곧이어 그는 두 명의 사제복을 입은 남자와 함께 돌아왔다.
“브루노 님, 잠시 자리를 비워 주시겠습니까?”
새로 합류한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일까?
브루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예건을 바라보았다.
“괜찮습니다. 먼저 나가 계십시오.”
“알겠네.”
마테오가 브루노를 데리고 원장실을 나가고, 원장이 두 신부를 소개했다.
“여기 두 사람은 요셉 신부와 바오로 신부입니다.”
“반갑습니다. 한예건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바오로요. 우린 로마 교황청에서 왔소. 앞으로 한예건, 당신의 설계 과정을 곁에서 함께할 거요.”
예건은 두 사람의 외양을 슬쩍 훑어봤다.
건장하게 다부진 몸을 한 바오로 신부와 날렵하지만 군살 하나 없어 보이는 요셉 신부.
게다가 오랜 기간 펜대를 굴렸다면 당연히 있을 중지의 굳은살조차 보이지 않는다.
둘 다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종사자가 아니라는 뜻.
예건은 눈매를 가늘게 하고는 물었다.
“제 곁에 있겠다는 말이 설계에 참여한다는 뜻은 아닌 모양이군요.”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줄곧 입을 다문 채 예건을 관찰하고 있던 요셉 신부가 슬며시 웃으며 찾아온 본론을 꺼냈다.
“리처드 1세에 대해서 아십니까?”
“십자군 원정에서 용맹하게 앞장 선 전설적 영웅이 아닙니까? 사자왕이라 불리는 앙주 제국의 군주였죠. 그가 죽은 후, 이곳 퐁트브로 수도원에 시신을 안치했고요.”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시신을 안치한 곳은 이곳 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외에 두 곳이 더 있죠.”
중세시대.
망자가 된 군주의 유해를 나눠 여러 장소에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죽음 이후에도 자신이 다스리던 지역민들에게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몸의 일부가 다른 곳에 안치되었다고 하더라도 딱히 놀랄 일이 아니다.
“머리는 푸아트의 샤루 수도원, 심장은 노르망디의 루앙 대성당, 남은 유해는 이곳 브르타뉴 퐁트브로 수도원에 안치되었죠. 그런데 수년 전,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유해의 일부를 누가 훔치기라도 한 건가요?”
정확한 요점을 짚은 것일까?
요셉의 눈이 살짝 커진 순간을 예건은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루앙 대성당에 안치되었던 리처드 1세의 심장이 사라졌습니다. 그후 우리는 암거래 시장을 수소문하며 리처드 1세의 심장을 찾아다녔지만, 그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건물 어딘가 숨겨 놓은 것을 도둑이 아직 찾아가지 않은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
‘조용해질 때를 기다리는 건가? 그게 아니면….’
예건이 그 이유를 곰곰이 고민하던 때, 요셉 신부가 단도직입적으로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그걸 찾는 데, 한예건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는 거죠?”
“한예건 씨의 건축적 지식을 최대한 이용해 심장이 숨겨져 있을만한 곳을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건 저보다 그곳에 상주하시는 수사님들께서 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비밀리에 조사해야 하니까요. 아직 사자왕의 심장이 사라진 것을 아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잉글랜드의 전설로 불리는 영웅의 심장이 사라졌다.
문화재 약탈로 악명이 높은 문화재 수집국 영국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직접 찾겠다며 나설 테고, 혹시라도 영국이 이를 찾게 되면 보관의 허술함을 문제 삼아 유해의 반환을 요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루앙 대성당에는 당신이 이곳 퐁트브로 수도원의 안치소 예배당 설계자로서 조사를 위해 방문할 계획이라고 이미 전달해 두었습니다.”
예건의 거절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태도였으나.
어쨌든 로마 교황청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 친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저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되, 내 제안도 수락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해.’
예건은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리며 감은 눈을 떴다.
그의 대답을 인내심 있게 기다리던 요셉과 눈이 마주쳤다.
“좋습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죠. 대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라면…?”
예건은 그들을 돕는 대가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바오로가 곧바로 난색을 표했다.
“그렇게 무례한 부탁은 들어줄 수 없소!”
“그렇다면 저도 원하시는 답을 드릴 수가 없겠군요.”
“이건 신을 위한 사명이요! 신의 사명에 조건이란 있을 수 없소!”
“저는 기술자지, 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신의 사명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지요.”
전혀 물러섬이 없는 태도.
기 싸움에서 밀린 바오로가 개탄을 금치 못했다.
요셉이 그를 거들었다.
“건축가시니, 누구보다 더 잘 아실 텐데요. 지금 목표하고 계신 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걸.”
“신이 관장하는 일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건, 요셉 신부님이 더 잘 이해하실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티모테 원장님.”
갑자기 불똥이 자신에게 튀어 놀란 티모테 원장이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그렇긴 하지요. 요셉 신부님, 바오로 신부님. 합류를 약속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연구소장을 함께 만나 달라는 건데,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티모테 수도원장은 예건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혹여나 일이 틀어져 퐁트브로 수도원 프로젝트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닭 쫓던 개처럼 처량한 신세가 되는 건 티모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저도 힘이 될 때까지 돕겠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주교님을 만나 제안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티모테 원장님!”
“상황 설명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만 두 분은 돌아가서 쉬십시오. 차후 다시 상의하도록 하죠.”
바오로 신부가 곧바로 항의했으나, 티모테 원장은 그의 불만을 곧바로 일축했다.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이 문밖으로 나갔고, 티모테 원장은 두 사람의 강경한 태도에 대해 예건에게 용서를 구했다.
“오늘처럼 기쁜 날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졌군요. 중요한 사안인지라, 저들의 신경에 날이 선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 퐁트브로 수도원의 디자인은 오로지 한예건 건축사님께 일임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설계를 부탁드립니다.”
“네. 그건 걱정 마십시오.”
티모테 원장은 앞으로의 일정을 공유하기 위해 다시 브루노와 마테오 수사를 불렀다.
긴 회의를 마치며 티모테 원장은 마테오 수사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했다.
“작업에 불편함 없도록 확실히 도와드리게.”
“네. 걱정 마십시오, 원장님.”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초안 완성 후,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네. 그리하십시오.”
티모테 원장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한 듯 한결 편한 얼굴로 마중했다.
원장실을 빠져 나온 후, 마테오가 관련 자료를 가지러 간 사이 브루노가 물었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별 일 아닙니다.”
“별 거 아니라고? 그러기엔 분위기가 사뭇 무겁던데…. 말하기 곤란한 일인 모양이군.”
그리 말한 브루노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큰일인데. 규모가 크지 않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관심을 끈 것 같아. 아무래도 설계 과정이 녹록지 않겠어.”
“새로운 프로젝트는 항상 낯선 법이죠. 그래서 더 흥미진진한 거 아닌가요?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마치 난생처음 본 장난감을 손에 쥔 것처럼 행복한 얼굴을 한 예건을 본 브루노가 피식 웃었다.
“자네의 건축 사랑은 여전하군. 하긴, 그런 자네가 맡아서 하는 프로젝트니, 걱정이 없긴 하지. 그래, 사무실은 구했나?”
“네. 마르탱 교수님께서 비어 있는 수도원 건물 하나를 빌려 사무실로 세팅해 두셨더라고요. 오늘부터 연구원들이 투입된다고 해서, 가 보려고요.”
“그래? 그럼 미팅 마치고 나랑 거기로 가면 되겠군. 우리 회사에서 파견할 직원들에 대해서도 의논 좀 해야 할 것 같고 말이야.”
“네, 그러시죠.”
마테오와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관련 자료까지 챙긴 예건과 브루노는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친절한 마테오는 사무실 앞까지 직접 안내를 해 주고 돌아갔다.
수사들이 머물던 숙소를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수수한 건축물.
그들의 사무실이 자리한 곳이 과거 수사들의 식당이었는지, ‘Resto’라는 간판이 벽에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어 있는 테이블과 화면 꺼진 모니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으로 공간을 쓱 훑어보니 홀로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의 익숙한 뒤통수가 조는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의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 그의 몸 근처에서 무언가 희끗희끗한 물체가 휙 하고 지나갔다.
예건은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샤인!”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