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망자의 선물 (2)
“네? 네! 교수님, 자는 거 아닙니다! 그냥 피곤해서 잠깐 존 거. 응…?”
샤인이 벌떡 일어나 소리치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 한 팀장님 오셨어요? 브루노 건축사님도 같이 오셨네요.”
“샤인, 오랜만이네요. 사무실 세팅하느라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
“아, 그게….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어제 이상하게 잠을 설쳐서요….”
“괜찮습니다. 많이 피곤하면 쉬었다 오세요.”
“아, 아닙니다. 진짜 괜찮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으나 한사코 거절했다.
“혼자 이 넓은 곳을 정돈한 건가? 자네가 고생이 많았겠군.”
“어휴~ 저 혼자 이걸 다 어떻게 합니까? 이삿짐센터 분들이랑, 함께 온 연구원이랑 같이 한 거죠.”
사무실을 구석구석 살피던 예건이 동행이 있었다는 말에 물었다.
“혹시 다른 분은 어디에…?”
“어? 그게, 음료수 산다고 아까 나갔는데….”
“혹시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애완동물을 데려 오지는 않았습니까?”
샤인이 황급히 부인했다.
“아뇨, 사무실에 그런 게 있으면 큰일 나죠. 온통 종이로 가득한 곳에 애완동물을 풀어 놓기라도 했다가 무슨 일이 터질 줄 알고요. 절대로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아까 본 건 뭐였지?’
예건이 예리한 눈으로 사무실 내부를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때마침 긴 머리칼을 한 묶음으로 질끈 묶어 늘어뜨린 여학생이 간식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가지고 들어왔다.
마르탱 교수의 연구실에 갔을 때, 몇 번 본 기억이 있는 연구원이었다.
“어? 소피! 어서 와, 팀장님이랑 소장님 도착하셨어.”
“어? 벌써요?”
그녀는 가까운 테이블 위에 짐을 올려놓고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소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친구, 저희 연구실 에이스예요.”
“오~ 그래? 하하. 난 브루노네, 이쪽은 한예건 팀장이고. 같은 연구실이라 본 적 있으려나? 앞으로 잘 해 보자고.”
“네, 잘 부탁드립니다.”
소피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방긋 웃어 보였다.
이후 네 사람은 앞으로의 설계 일정과 추가될 인원을 공유하고, 업무를 분담했다.
일에 집중하다 보니, 사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보았던 이상한 현상은 금세 잊었다.
이번 프로젝트 설계 인원은 전원 마르탱 교수 연구실과 브루노 설계사무실에서 지원했다.
건림건축 직원 중에 서양 건축 전공자가 없었기도 했고,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이가 없었기 때문.
예건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던 건림건축 출판팀도 이번 프로젝트는 참여하지 못했다.
성당 측에서 설계 과정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비밀리에 예건에게 맡긴 일 때문인 것 같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설계 규모에 비해 넉넉한 기한과 충분한 예산이 주어졌기에 인원은 여유롭게 충원할 수 있었으나.
루앙 대성당과 관련된 교황청의 의뢰도 있고 해서, 일단 소수 정예로 운영하기로 브루노와 합의했다.
며칠 뒤, 총원 10명으로 구성된 퐁트브로 안식 예배당의 설계팀이 발족했다.
* * *
항상 그렇듯, 분주한 하루하루가 흐르고.
설계를 시작한 지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마테오가 사무실로 찾아 왔다.
그의 곁에는 요셉 신부도 함께였다.
“잠깐 대화를 좀 나누었으면 합니다.”
“얼마든지요.”
예건은 1층 구석에 별도로 마련된 개인 집무실로 그를 데려갔다.
원래 창고로 썼던 공간을 개조한 곳이다.
이곳 예배당 외에도 한국에서 진행되는 업무를 보기 위해 별도로 마련한 사무실.
최상단 환기구를 제외하면 햇볕이 겨의 들지 않게 설계된 곳이라 조명으로 보강했는데, 흥미로운 눈길로 실내를 둘러보던 요셉 신부가 물었다.
“사무실이 꽤 운치가 있군요.”
“식자재 창고로 사용했던 곳이라 창이 없어서 업무에 집중하기 꽤 좋습니다.”
“사무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 소음 차단도 좋겠군요.”
은밀한 임무를 이야기하기 좋은 환경이라 생각했는지 요셉은 안도했다.
“제 조건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흠….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일은 진행하시겠다고 하셨고, 티모테 원장님께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시기로 하셨으니…. 저희로서는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왜 하필 사그라다 파밀리아입니까?”
요셉의 물음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신부를 상대로 티 안 나게 거짓을 꾸밀 정도로 치밀하지 못했으니까.
예건이 답이 없자, 요셉은 나름의 예측을 풀어 놓았다.
“뭐, 이유를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죠.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은 있기 마련이니, 가우디를 이어 대성당 건축을 훌륭히 완성하고 싶은 후대 건축가의 소망이라고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날 선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의 명성을 등에 업고 성공을 바란다면, 그 꿈은 일찌감치 깨는 게 좋을 겁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독이 될 수도 있어요.”
‘독이라….’
하지만 예건의 생각은 달랐다.
명성을 바랐다면, 자신의 전생을 밝히는 쪽이 훨씬 빨랐을 터.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설계를 직접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명 때문이었다.
가우디 연구소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공사 현장을 직접 보았을 때 확신했다.
대성당 건축을 자신보다 더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이는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억지로 만드는 기회라면 그렇겠지요. 신이 하는 일에 인간은 한낱 도구일 뿐 아닙니까? 그건 신부님께서 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예건의 초연한 대답에 머쓱해진 요셉은 잠시 예건을 주시하다 가방에서 도면 뭉치를 꺼냈다.
“루앙 대성당의 도면입니다. 도면을 완전히 파악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도면을 건네받자 곧바로 몇 장을 넘겨보던 예건이 답했다.
“글쎄요.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것 같군요.”
‘일주일?’
요셉은 미간을 찌푸렸다.
최소 한 달을 예상하고 물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체류 기간은 얼마면 되겠습니까?”
“이곳을 오래 비워 둘 수는 없으니, 대규모 미사가 없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가 어떻겠습니까?”
‘설마, 겨우 3일 만에 내부를 모두 확인하겠다는 건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요셉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재능 있는 건축가라지만 허세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것.
고딕 건축물은 현대 건축과 달리 그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하다.
사자왕의 심장이 외부로 유출된 흔적이 전혀 없음을 확신한 요셉과 바오로는 지난 몇 개월간 루앙 대성당 내부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만약 사자왕의 심장이 뻔한 위치에 있었다면 그들이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교황님의 특별 지시가 있었으니, 지금은 맞춰주는 수밖에. 적당히 상황을 봐서 스스로 물러서게끔 해야겠군.’
몇 년이 지나도록 보물의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하자, 교황이 직접 한예건의 합류를 종용했다.
아마 티모테 원장과 요한 원장에게서 그에 대해 전해 듣고, 그들을 통해 곁에서 확인하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샤펠의 비밀 공간을 밝힌 것과 미카엘 천사의 예지몽 때문에 한예건의 실력이 너무 과대평가 되었다고 판단한 요셉이었다.
“도면 파악이 끝나면 곧바로 연락 드리지요.”
“그리 알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요셉이 나가고, 멀어지는 걸음 소리를 들으며 예건은 곧바로 도면에 집중했다.
순식간에 도면을 완파한 그가 피로해진 눈을 손바닥의 온기로 보온했다.
그새 시간이 꽤 흘렀는지, 배가 출출했다.
어느덧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시간 가는 줄도 몰랐군.”
사무실에서 간식을 챙겨 와, 계속 검토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어스름한 푸른 달빛이 어두운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인적 드문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간담이 서늘해질 만도 했지만, 예건에겐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었기에 그저 담담했다.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해 손잡이로 손을 뻗는데, 안에서 긁는 소리가 났다.
‘뭐지? 쥐라도 있는 건가?’
예건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잡이를 돌리고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삐거어어억.
하지만 오래된 문은 그의 예상을 빗나가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순간. 어두운 실내에서 덩치 큰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것을 느낀 예건은 반사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텅 빈 공간에 비산했다.
“으아아악!”
갑작스러운 소란에 2층에서 요란법석이 일더니 팀원들이 잠옷 바람으로 뛰쳐 내려왔다.
브루노가 문고리를 잡고 서 있는 예건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한 팀장, 무슨 일이야? 어디 다쳤나?”
“제가 아니라….”
예건이 문 쪽을 가리키자, 도둑이 들었다 확신한 브루노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셋 세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놈을 생포하지.”
“네!”
예건은 브루노의 지시에 따라 문을 열었고, 몸을 살짝 웅크린 브루노가 잽싸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바닥에 쓰러져 대자로 누워 있는 것은 괴한이 아니라 샤인이었기에.
“샤인! 자네가 왜? 샤인, 이보게. 정신 좀 차려 보게!”
마치 잠을 자는 듯한 편안한 얼굴.
당황한 브루노가 그를 흔들어 깨우자, 잠시 후 졸린 눈을 비비며 샤인이 깨어났다.
“소장님, 밤늦게 무슨 일로?”
“자네, 왜 여기서 자는 거야?”
“네? 여기는 제 방…. 어?”
이내 찌푸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 파악을 하던 샤인이 눈이 2배로 커졌다.
“아니, 제가 왜 사무실에서 자고 있습니까?”
“뭐야? 기억이 하나도 안 나나?”
“네….”
샤인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소피, 일단 샤인을 데려가게.”
“아, 네! 소장님.”
브루노는 직원들을 안심시키며 돌려보내고 사무실에 홀로 앉아있는 예건에게 돌아왔다.
“한밤중에 이게 무슨 소란인지.”
“혹시 샤인이 몽유병이라도 앓고 있는 걸까요?”
“글쎄. 그건 내일 물어봐야겠지. 그나저나, 자네는 어제 온종일 어디 있었던 거야?”
“그게…. 개인 사무실에요. 확인할 게 좀 있어서요.”
“어디? 창고? 흠…. 그래도 혼자 너무 늦게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아무리 이 건물에 우리 직원들만 있다지만,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네. 조심하겠습니다.”
브루노의 당부에 예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문뜩 의심이 피어났다.
‘정말 이곳에 우리뿐일까?’
이곳에 도착한 첫날 샤인 근처에서 보았던 희뿌연 무언가가 불현듯 떠올랐다.
‘생각난 김에 확인해야겠다.’
예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브루노가 황급히 물었다.
“어디 가려고?”
“샤인이 괜찮은지, 잠시 가보겠습니다.”
그리 대답한 예건은 곧장 샤인의 숙소로 향했다.
“샤인, 잠시 들어가도 됩니까?”
“아, 네. 들어오세요. 팀장님.”
한밤중에 벌어진 소동에 놀라 아직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가 황급히 문을 열었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혹시….”
“몽유병 같은 건 없습니다. 진짜로요!”
“안 아프다면 다행입니다. 그건 그렇고, 부딪힌 곳은 괜찮습니까?”
“어깨가 좀 아프긴 한데, 참을 만합니다.”
예건이 진짜 궁금한 것은 샤인이 이곳에 온 이후 행적이었다.
“첫날이요? 사무실 정돈한다고 정신 없었죠.”
“이상한 일은 없었고요?”
“이상한 일이라…. 글쎄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청소하다가 뭔가를 주웠다거나.”
“아!”
샤인은 그제야 떠오른 듯, 손뼉을 쳤다.
“실은…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이다 조그마한 은빛 돌 조각을 하나 꺼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