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망자의 선물 (3)
“팀장님께서 처음 사무실에 오셨던 날 길고양이 밥을 주려고 잠시 사무실에 데리고 왔는데요. 전날 너무 잠을 설쳐서 그런지 깜빡 잠이 들었지 뭡니까?”
‘그럼 그때 도망간 건 고양이였나?’
예건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 샤인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사무실에 데려온 적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그런데 녀석에게 내준 참치 통조림 옆에 이런 게 떨어져 있더라고요.”
샤인이 바지춤에서 작은 무언가를 꺼냈다.
“버릴까 하다가 돌에서 좋은 향이 나는 게 신기해서 그냥 가지고 있었습니다.”
“돌에서 향기가 난다고요?”
“네, 한 번 보세요.”
샤인이 건네는 돌을 받았다.
반투명한 은빛 돌의 겉면은 옅은 녹색 빛을 띠고 있었고, 그의 말대로 향기로운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예건은 단번에 그 돌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이건, 유향 나무 진액을 굳힌 겁니다.”
“유향 나무요?”
“네, 성당에서 제단에 향을 피울 때 사용하는 겁니다. 그것도 최상급이네요. 꽤 귀한 물건인 것 같은데…. 고양이가 이걸 어디서 가져온 걸까요?”
그 답을 얻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음날 샤인과 함께 마테오 수사를 찾아가 이런 유향을 사용하는 곳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음? 이걸 어디서 찾으셨어요?”
“고양이가 물어왔다는데요.”
“고양이요?”
마테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유향을 사용하는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거기가 어딥니까?”
“금주 중에 방문할까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 가시죠.”
예건은 샤인과 함께 그를 따라 나섰다.
마테오가 안내한 곳은 예배당 지하였다.
거대한 암석을 잘라내 벽돌처럼 쌓아 만든 지하 복도.
아치형으로 굴곡진 천장에는 촛불이 만들어낸 검은 그을음이 건물이 자리한 세월만큼이나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복도 끝 문을 열자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훅 불어왔다.
샤인이 얼른 코를 막았다.
“윽! 이게 무슨 냄새죠?
“유골과 향이 섞인 냄새입니다.”
“오~ 잘 아시네요.”
“몽생 미셸에서 수도사들의 무덤에 가본 적 있거든요.”
“예? 여기가 무덤이라고요?”
샤인은 놀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지하에 적절한 환기시설을 비치할 수 없으니 유향으로 냄새를 중화시키는 겁니다.”
“속죄와 정화, 성화, 그리고 기도의 상징이기도 하죠.”
마테오가 덧붙였다.
“지금 저희가 가는 곳은 왕가의 안치실입니다. 도중에 수도사들의 무덤을 지나야 하죠. 내부가 좀 복잡하니, 길 잃지 않게 잘 따라오세요.”
마테오는 샤인의 놀란 모습이 제법 재미있었는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며 공포심을 자극했다.
샤인이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본 예건이 그를 안심시켰다.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역사가 오래 된 수도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소거든요.”
“아, …네. 듣기는 했습니다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서요. 들어가시죠.”
샤인이 각오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열린 문 내부로 들어서자, 멀찍이 제대가 보이고 양 옆에는 선반들이 늘어서 있었다.
차츰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자, 선반 위에 전시되어 있는 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히익! 저, 저게 다 뭡니까?”
“죽은 수도사들의 유해일 겁니다.”
“하하. 수도사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곳에 몸을 담고, 평생을 이 수도원에서 의탁했던 신도들의 유해 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전염병, 기아로 죽은 이름 모를 이들의 유해도 보관되어 있죠.”
성당 건축은 전통적으로 순교자의 무덤 위에 지어졌다.
예루살렘 언덕, 예수가 죽은 십자가 자리에 부활대성당이 지어졌고,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운 것이다.
아마도 성인의 죽음을 기리고, 그 뜻을 잇고자 하는 마음이 담겼을 터.
그래서인지 영이 떠나고 남은 육신을 가까이 보관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성당 지하는 그곳에 머문 이들의 영원한 육신의 안식처가 되었다.
이곳 퐁트브로 수도원도 마찬가지.
과거 왕립 수도원이었던 위용을 자랑하듯 무덤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다.
꽤 넓은 공간임에도 겨우 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복도를 제외하고는 장년 남성의 키를 넘기는 뼈가 놓인 선반으로 가득했다.
선반에 올려져 있는 것은 그나마 잘 관리가 되는 편에 속했다.
공간의 양측 벽에는 누군지 모를 이들의 두개골로 빼곡하게 장식 되어 있었다.
그 그로테스크적인 풍경에 샤인이 기겁했다.
“우욱!”
너무 놀란 그가 헛구역질까지 하자, 살짝 뒤를 돌아본 마테오가 대수롭지 않게 안내를 이어갔다.
“왕가의 안치실 출입구는 제대 근처에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샤인은 도저히 무덤의 광경을 눈뜨고 볼 엄두가 안 나는지, 실눈을 뜨고 마테오의 발꿈치만 보고 걸었다.
제대의 오른편 통로 앞에 선 마테오가 말했다.
“문 앞이 바로 계단입니다. 잘 살피면서 내려오세요.”
이어진 계단을 조금 내려가니, 지나온 길보다 훨씬 화려하게 꾸며진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를 조금 걸어 들어가자 붉은 양탄자가 깔린 홀이 보였다.
중앙의 제대 앞에 다다르니, 살짝 높여진 단 위에 네 개의 석재 관이 보였다.
관 위에는 석재 덮개 대신 유리로 막혀 있어,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방부 처리된 시체가 화려한 수의를 걸치고 관 안에 누워 있었다.
한 시체만이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화려한 투구로 대신했다.
“투구가 든 시체가 리처드 1세군요.”
“그렇습니다.”
제대로 다가간 마테오는 향로에서 은빛 돌 하나를 꺼내 예건에게 건넸다.
“이곳에 사용하는 유향이 아까 보여주신 것과 같은 겁니다.”
“이 유향은 이곳 외에는 사용하지 않나요?”
“네, 그렇습니다. 안치되었던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 값이 비싸도 그 유향만 사용하거든요.”
마테오의 말대로 이곳 왕가 안치실은 출입구 외에는 사방이 막힌 터라, 고양이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였다.
“혹시 배달할 때 떨어졌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박스 채로 바로 이곳으로 옮겨지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발견한 유향은 잠시만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괜찮겠지요?”
“그러십시오.”
일행은 안치실을 좀 더 둘러보고, 저녁이 되기 전 지하 무덤을 나섰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샤인이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은 뼈를 본 건 처음입니다.”
샤인은 시각적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나 예건은 그와 조금 달랐다.
어둠 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공간이 바뀔 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곰팡이 냄새와 향초 냄새, 뼈가 썩으며 풍기는 시큼한 냄새를 지우려 태우는 유향의 향기였다.
신기한 것은 그 많은 냄새를 뚫고 유독 유향의 향기가 도드라지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왕들의 주검이 안치되었을 때 이 유향을 사용했다면, 사자왕의 심장에도 같은 향이 스며들어 있겠지?’
어쩌면 이 유향은 고양이로 변신해 찾아온 사자왕이 남긴 힌트가 아니었을까?
유향 조각이 사자왕의 심장을 찾을 단서가 될 것 같았다.
그리 판단한 예건은 주머니에 든 조각을 손에 꼭 쥐었다.
* * *
루앙 대성당.
요셉과 바오로는 건물 입구에서 예건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건물 관리자도 못 찾아낸 걸 어떻게 외부인이 발견할 수 있다는 건지.”
바오로가 투덜거렸다.
“수백 년간 아무도 찾지 못한 공간을 찾아낸 게 그라고 하지 않습니까? 천사의 축복이 그에게 있을 지도 모르죠.”
“흥! 어쩌다 운이 좋았던 걸,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거겠지.”
“운이든 뭐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다행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래.”
두 사람 다, 이 일에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슬슬 조직의 압박이 더해졌다.
하루 빨리 보물이 발견되어 이 일에서 손을 떼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것은 이들이었다.
성당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서고, 그들이 기다리던 인물이 내렸다.
두 사람을 발견한 예건이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우리도 금방 도착했습니다.”
“상세한 대화는 가면서 나누시죠.”
요셉은 곧장 사자왕의 심장이 보관되어 있던 자연사박물관으로 안내했다.
“도난당한 장소가 여깁니다.”
자그마한 유리관 안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직육면체 형태의 박스가 들어 있었다.
금속 박스의 상단에는 알파벳으로 새겨진 문장이 있었다.
‘HIC IACET COR RICARDI REGIS ANGLORUM.’
(여기에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의 심장이 있노라.)
“이건 복제품입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루가 된 심장 조각까지 복제할 수는 없어서, 뚜껑을 닫은 채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가로 12.2㎝, 세로 23㎝, 높이 17㎝의 납으로 된 상자.
예건은 생김새와 크기를 기억했다.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된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후, 요셉은 보물이 도난당한 시기, 당시 상황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요셉의 설명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예건이 물었다.
“조사는 함께 해야 하나요?”
“아뇨. 성당에는 설계 업무 조사차 방문했다고 이미 말해 두었습니다. 여기, 이걸 패용하시면 됩니다.”
요셉은 긴 끈이 달린 명찰 하나를 건네며 설명했다.
“웬만한 장소는 샅샅이 조사를 끝냈습니다. 아마 눈에 띄는 곳에 숨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참고하겠습니다.”
요셉과 바오로가 돌아가고, 예건은 조사를 시작했다.
루앙 대성당에서 사자왕의 심장이 발굴된 것은 1938년 7월 31일.
루앙 대성당의 보수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던 시점이었다.
사자왕의 심장이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후인 2,000년 3월.
자연사박물관을 새롭게 단장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기.
당시는 대중에 공개되기 전이라 보안이 허술했다고 한다.
누군가 그 틈을 타 상자를 훔친 것이다.
‘그렇다는 건, 박물관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아.’
공사가 끝나도 현장에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
시설에 대한 후속 조치를 위해 남아 있던 인물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이곳 현장에 온 목적이 처음부터 사자왕의 심장을 탈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손바닥 만한 물건을 감쪽같이 숨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건은 리뉴얼 당시 공사가 진행된 자연사박물관을 중심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외의 장소에서 비밀의 공간을 발견했다.
* * *
다음날 아침 8시.
요셉과 바오로는 예건의 연락을 받고 루앙 대성당으로 향했다.
“무슨 일 입니까?”
“사자왕의 심장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네? 아니, 벌써요? 도대체 그게 어딥니까?”
예건은 입구를 가리켰다.
“루앙 대성당의 출입구 바닥입니다.”
“네?”
“아니, 그게 무슨?”
“설명은 나중에 드릴 테니, 일단 파 보죠.”
두 신부는 어이가 없었으나, 일단 그의 말대로 주출입구를 봉쇄하고 바닥 돌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돌 아래 흙바닥이 드러나고, 예건은 인부들을 물렸다.
흙바닥 중앙에 쇠 자를 5㎝ 정도 밀어 넣자 딱딱한 겉면이 느껴졌다.
주변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자, 네모난 상자의 외곽이 확연히 드러났다.
동시에 미세하게 풍기던 향기가 짙어졌다.
물론 예건 외에 그 향기를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충격이 가지 않도록 주변 흙을 파서 조심스럽게 꺼내십시오.”
“네.”
인부가 나무 상자를 꺼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셉이 조심스럽게 나무 상자를 열었다.
보자기로 대충 싸여 있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언뜻 보기에도 사자왕의 심장이 들어있는 납상자와 비슷한 크기였다.
“이제 원상복구 하시면 됩니다.”
“네!”
인부들에게 복구 지시를 내린 예건은 두 사람과 함께 그들의 사무실로 향했다.
요셉은 조심스럽게 물건을 감싸고 있는 천을 풀어헤쳤다.
수년간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자왕의 심장이 담긴 납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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