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돌풍 (2)
미국에서 한국의 예술가들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히 대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엄청난 수의 방문객이 전시회장을 찾았다.
게다가 이번 LA 아트 페어의 주인공은 한예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에 대한 언급이 압도적이었다.
물론 그 시작은 현대 예술의 반항아 피카소의 작품을 2점이나 가지고 있는 리치 동양인이라는 타이틀이었으나.
그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자, 자연스럽게 그가 디자인한 한국전시관에 눈길이 쏠렸다.
이번엔 돌풍에서 끝나지 않았다.
낡은 황갈색 벽돌 건축물이 늘어선 거리.
거대한 블록의 모서리에 앙증맞게 피어난 건축물.
이번 건축물의 컨셉은 한국을 상징하는 국화(國花) 무궁화다.
“왜 하필이면 무궁화예요? 관상용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데다, 식생하는 곳도 동양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텐데.”
처음 설계 컨셉을 협의하기 위해 친히 파리로 날아왔던 하주연이 물었다.
“한국의 예술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니까, 이왕이면 한국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상징물이 좋지 않을까요? 게다가….”
무궁화는 한국의 척박한 토지에도 완벽하게 적응하며 전국에 식생하는 강인한 꽃.
힘든 환경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버텨내며 수준 높은 경지에 오른 예술가들의 면모가 무궁화를 닮았기에 그리 결정했다 말했다.
“음. 그렇게 듣고 보니까, 괜찮은 것도….”
“무궁화 꽃말이 뭔지 압니까?”
“아뇨.”
“끈기.”
“오~.”
“그리고 섬세한 아름다움입니다. 한국의 예술과도 그 맥이 이어지죠. 과거 신라나 백제왕들이 사용한 금속 장신구들을 보면 그 섬세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습니까?”
“금관이나 금귀고리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거죠? 저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발전했기에 예술도 함께 발전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 예술과 기술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겁니다. 이젠 더 이상 전쟁과 기아로 허덕이는 한국이 아닌, 기술과 예술이 꽃피우는 나라로 저들에게 인식시키고 싶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관의 디자인은 다섯장의 꽃잎을 연상시키는 오각형 평면에서 시작되었다.
중앙홀과 방사형으로 퍼진 다섯개의 전시장으로 이루어진 연면적 600평, 2층 규모의 조그마한 건축물.
단조로운 평면에도 그 외관은 화려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한복 치마의 하늘거림과 저고리의 배래를 연상하며 만든 외관은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했고.
바람에 흩날리는 천조각처럼 자유롭게 공중을 비상했다.
휘어지는 반투명한 외피의 심플한 마감은 한없이 유약해 보이는 무궁화의 외관을 연상시켰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반전이 시작된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붉은 태양을 닮은 중앙 로비가 펼쳐지면서.
그렇기에 이번 디테일은 로비에 집중했다.
한 겹 보자기를 씌운 것처럼 하늘하늘한 형상을 하고 있는 건축물 내부에 들어섰을 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화려한 장관을 선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리안 웨이브’라고 이름 붙인 붉게 물든 군상.
그 전체적인 형상은 무궁화의 꽃봉오리를 닮았다.
처음 이 기획을 완성했을 때, 기간 내에 완성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한국의 예술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설치미술이라는 설계 의도를 전해 들은 조각가들이 그의 생각에 동참하며 흔쾌히 작품을 만들어 준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표현한 석고상들이 현장에 도착하는 속속 배치되었고.
같은 붉은 도료를 사용해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로비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 웅장함에 방문객들은 그저 입을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우성치는 로비에 비해 전시관 내부는 고요한 샘물 같았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색감은 빼고, 천장 조명 하나도 눈에 거슬리지 않게 배치했다.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연출했다.
전시를 다 둘러본 방문객들이 안내자에게 물었다.
“이 건물, 완공하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설계 기간이 총 3개월, 이후 시공 및 작품 설치까지 총 3개월 걸렸습니다.”
“우와~ 3개월 만에 이런 퀄리티의 시공이 가능하다고? 한국의 건축 시공 기술이 이정도였나?”
“대단하다!”
기간에 비해 높은 완성도에 건물을 나서다가도 다시금 돌아보게 될 정도.
색다른 그의 건축에 매료된 방문객들은 한국전시관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프랭크 게리보다 혁명적이며, 현시대 최고의 건축적 디테일을 보유한 천재. 디테일에 있어서는 어쩌면 가우디와 비견해도 뒤지지 않을 재능!’이라고.
당연한 미사여구였으나.
가우디의 건축을 추종하는 이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건축 곳곳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가우디의 건축과 그저 튀려고 장식물을 덕지덕지 붙인 작품을 비교하다니. 어디 죽은 가우디가 열 받아서 벌떡 일어날 소릴!’
‘어린 아이의 낙서를 보고 피카소의 추상화와 비슷하지 않냐는 식의 망언이다.’
‘미개한 동양인이 건축의 심오한 의미를 알 리 없다. 그저 비슷하게 따라했을 뿐, 프랭크 게리의 건축 발끝에도 못 미친다.’
인종 차별적 표현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난폭한 표현들이 범람했다.
하지만 덕분에 한국전시관의 인기는 날로 높아만 갔다.
그 결과를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작품의 판매 성과일 터.
LA 아트 페어는 단순히 작품을 전시를 위한 게 아니라, 전시된 작품을 대중에 판매하기 위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 예건을 찾아온 미국 유명 방송사 인터뷰어가 그를 확실시했다.
“축하해요! 한국관에 전시되었던 미술품들이 모두 판매되는 성과를 이뤘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게 많은 분들이 한국의 현대 미술에 관심을 가져 주신 덕분입니다.”
“예술계의 평판에 따르면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한국인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정제된 풍경을 선사한다고 평가 했던데요. 혹시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인들은 과거부터 굉장히 많은 정치적 혼란과 전쟁, 타국의 압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던 민족입니다. 5천년 동안 한민족이 유지된 것이 그 증거입니다.”
“5천년이요? 그렇게나 오랜 역사가 있는 나라인가요?”
인터뷰어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라 불리지만, 겨우 200년이란 짧은 역사는 미국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권위와 명성은 오랜 전통과 탄탄한 부에서 오는 것이니.
“네, 그렇습니다. 저희 선조들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박과 혼란에 맞서 스스로 혼란을 잠재우고, 내면의 정신을 수양하기 위해 예술을 익혔습니다. 바로 ‘선비 정신’이라는 거죠.”
“선비 정신…. 예술이 자기표현이 아니라, 내면을 수양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건가요? 정말 멋지군요!”
인터뷰어는 ‘Awesome! Fantastic!’을 연발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송철희 작가의 ‘소나무’ 시리즈를 떠올리면 그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작품을 가장 먼저 크리스티앙에 알린 것이 한예건 건축가님이라고 들었는데, 왜 프랑스가 아닌 미국 경매장에 내놓으실 생각을 하신 건가요?”
“프랑스보다 미국인들이 더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인터뷰어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정치, 경제 등 세계적 위상을 두고 봤을 때, 미국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엄청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오랜 정신이 깃들어 있는 예술품들이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고요.”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 온 세계를 휘어잡으려는 미국 정, 경계 인사들 때문에 고통받는 것은 결국 미국 국민이다.
그런 비판을 좋게 포장했다는 것을 상대는 알고 있을까?
인터뷰어는 예건의 말이 미국이 세계 최고임을 인정하는 것처럼 들렸는지 해맑게 웃으며 동의했다.
“맞아요!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작품이 엄청난 가격에 완판된 것만 봐도 확실히 그 위로가 전해진 것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미스터 한이 설계한 이곳 한국전시관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는데요. 전시회가 끝난 후 트리플 컴퍼니에서 건축물을 매수하겠다 나섰다고 들었는데, 혹시 계약에 대해 살짝 귀띔이라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조만간 트리플 컴퍼니 측과 협상을 위한 만남이 있을 예정입니다.”
“오호! 정말 잘 됐군요. 트피플 컴퍼니 같은 대기업과 연이 닿는다면 앞으로 미국에서도 왕성히 활동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이후 한국전시관의 건축 디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은 그가 마지막 관심사를 꺼냈다.
“그럼, 마지막으로… 최근 화두에 오른 작품, 피카소의 미공개 작품에 대해서는 언제쯤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요? 혹시 미국에서 전시할 계획은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크리스티앙과의 비밀유지 협약이 있어서요. 말씀대로 전시회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공개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한다니, 이거 참 아쉽군요.”
인터뷰어는 아쉬운 표정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방문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자리를 정돈하던 하주연이 다가와 물었다.
“트리플과의 협상, 내일이죠?”
“네.”
하주연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정말 혼자 가도 되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잘 처리할 테니.”
“물론 대표님 협상 실력이 대단한 건 알지만…. 상대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서 그러죠.”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가진 트리플 컴퍼니.
아무리 건축물이 탐난다 해도 이쪽의 요구를 호락호락 들어줄 것 같지 않았기에 염려하는 것이었다.
“한국전시관을 통해 이미 원하는 것은 모두 다 얻었습니다. 내일은 건축물을 존치하느냐, 멸실하느냐 결정하러 가는 것뿐이고요.”
크리스티앙은 이 일을 전적으로 예건의 판단에 맡겼다.
어차피 그들의 투자는 한국관을 선보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었으니.
예건이 건축물 철거를 선택해 추가적인 이윤을 얻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는 의견이었다.
그만큼 한예건을 신뢰하고 파트너로서 높게 평가하는 것이었다.
“시기는 다르더라도 관리되지 않는 건축물은 결국 철거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제 건물이 그렇게 방치되도록 지켜볼 수 없어서 직접 협상하려는 거고요.”
가치가 없어 어차피 철거될 건축물이라면 남에 손에 의해 철거를 당하는 것보다 자신의 손으로 하는 게 맞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오점이 남은 작품을 깨 버리는 도자기 장인들처럼 말이다.
“알겠어요.”
예건의 목소리에서 단호함을 읽은 하주연이 마지못해 수긍했다.
* * *
예건의 인터뷰가 방송을 타고 미국 전역에 전해졌다.
그걸 보고 있던 트리플 컴퍼니의 대표 샘 리치 회장이 손뼉을 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 젊은 친구가 방송을 좀 아는데? 인터뷰어를 들었다 놨다 하고 말이야. 아~주 마음에 들어.”
그의 대각선에 앉아 있던 임원의 표정이 불안했다.
“게다가 우리 트리플 컴퍼티의 노련한 교섭꾼마저 한방에 의욕을 잃게 만들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콰앙!
샘 리치가 커다란 주먹을 들어 테이블 위를 내리치자, 임원이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다.
“내 땅 위에 놓인, 그것도 가설건축물로 지어진 건축물 하나를 못 사와? 그러고도 네가 협상가야? 어?”
어제 저녁.
임원은 한예건과 만나 한국전시관의 매입의사가 확고함을 밝혔다.
문제는 한예건이 내건 조건이었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임원이 변명했다.
“그, 그게…. 한 대표의 의지가 너무 확고해서요…. 설마 크리스티앙에서 설계비 지급을 그런 식으로 계약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