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World Famous Architect (3)
한예건과 연락이 닿고 일주일 뒤, 파리의 한 유명 호텔의 레스토랑.
샘 리치 회장이 초조한 얼굴로 명품 손목시계를 자꾸 쳐다봤다.
그를 알아본 다른 테이블의 시선을 인식한 비서가 조용히 그의 귓가에 물었다.
“다른 장소를 찾아볼까요?”
“됐어. 금방 끝날 테니까.”
매몰찬 대답에 비서가 함구했다.
약속 시각인 12시 정각.
한예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운 듯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직접 파리까지 찾아 주시고, 정말 영광입니다.”
“하하. 자네가 바쁘다니 어쩔 수 있나?”
“죄송합니다. 곧 착공을 앞두고 있어서요.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네요.”
‘일은 혼자 다 하나? 직원들 부리면서 엄살은.’
못마땅한 기운이 속에서 확 일었으나 샘 회장은 애써 침착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그였으니.
예건은 여유롭게 식사를 주문하고 묻지도 않은 근황을 술술 털어놓았다.
그리고 식사를 마칠 때쯤이 되어서야 용건을 물었다.
“아!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그래. 이제 그 얘기를 좀 해도 될까?”
“물론입니다. 편하게 하십시오.”
샘 리치는 용건을 꺼내려다 말고 입을 닫았다.
자신의 실패를 스스로 꺼낸다는 게 도무지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입을 다문다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한국전시관의 성공적인 자리매김을 정말 축하하네. 덕분에 주변 일대가 아주 활성화됐어.”
“하하. 다행입니다.”
한예건이 던진 피카소의 숨은 작품이란 폭탄은 그 파급효과가 엄청났다.
그 덕분에 한국전시관에 관심이 폭증했고,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건축물의 완성도에 혀를 내둘렀다.
덩달아 건축물을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건축물의 구조를 보완해 보존해야 한다는 뜻이 모였다.
건축가 한예건의 작품성을 알리기 위한 움직임이 자국도 아닌 미국 LA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덕분에 한예건이란 이름은 겨우 몇 달 만에 미국 최고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샘 리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550m가 넘는 에번스의 건축물보다 높은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땅이 필요했다.
물론 높이 제한 규제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LA시에서 샘 리치가 추진하던 높이 제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토지와 건축물에 대한 재산권을 시에 넘겨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그간 실컷 돈을 받아 처먹은 놈들이 꼬랑지를 마는 모습에 분개했으나, 10년의 노력으로 일궜던 사업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깟 땅 조금 떼어주고 말지.
“흠…. 저의 지분을 살 테니 넘겨달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네. 지분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겠네. 그리고.”
샘 회장이 제안을 하나 더 걸었다.
“자네에게 우리가 지으려는 초고층 빌딩의 컨셉 설계를 맡기지. 설계비는 최고로 대우해주고. 이만하면 자네에게는 괜찮은 거래인 것 같은데, 어떤가?”
“흠…. 조건은 나쁘지 않군요. 하지만….”
한 번 찍은 대상은 어떻게든 손을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샘 회장.
그가 이런 제안을 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한 범주였다.
첫 만남에서 그런 샘 회장의 성격을 파악한 예건은 그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철저히 여러 가지 방편을 마련했다.
먼저 한국전시관의 거래를 담당했던 트리플 컴퍼니의 부동산 재산 담당 임원 마이클이 잘렸다는 소식을 들은 예건은 곧바로 그를 만나러 갔다.
처음 마이클은 내부 상황을 발설하는 데 꺼렸으나, 그를 영입하고 싶다는 예건의 제안에 그간 있었던 일들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20번가 일대를 매입하기 위해 트리플 컴퍼니가 벌였던 행각,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
그 중 예건이 솔깃했던 말은 샘 회장이 미국 최고의 랜드마크를 짓고자 계획 중이라는 것이었다.
쿠퍼 회장이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 바로 그 이후였다. 자발적으로 돕겠다는 그에게 거짓 정보를 퍼트려 달라 부탁했다.
바로 트리플 컴퍼니가 계획하고 있는 건축물의 높이를 넘어서는 최고층 빌딩의 설계를 한예건이 맡게 된다는 뉴스 말이다.
그를 조급하게 만들어 판단을 흐리게 하려는 예건의 노림수였다.
하늘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류의 욕망은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한 현대에 이르러 더욱 가속화되었다.
부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경쟁하듯 건축물을 쌓는데 돈을 쏟아붓는다.
건물 꼭대기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기라도 한 걸까?
다행히 평소 경쟁 관계였던 에번스는 쿠퍼 회장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고, 한예건을 디자이너로 발탁했다는 가짜 뉴스를 미국 전역에 실어 주었다.
그런데 세상의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그저 시늉만 해달라고 했더니, 진짜 에번스 측에서 새로 지을 빌딩의 컨셉 설계를 해 달라는 제안이 왔으니 말이다.
그것도 550m의 최고층 빌딩을.
“설계 참여는 힘들 것 같습니다.”
“왜? 진짜 에번스와 계약이라도 한 건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샘 회장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럼, 건물의 지분이라도….”
“제 지분에 관한 건 제가 LA 시장님과 협상하겠습니다.”
“뭐?”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전 처음부터 돈을 바라고 크리스티앙에 지분을 요구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
“제 건축물이, 그리고 수많은 한국인 예술가들과 함께 완성한 LA 한국전시관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샘 리치의 얼굴에 분기가 가득했다.
“애초에 내게 지분을 넘길 생각이 없었단 말인가?”
“회장님을 설득할 생각이었죠. 건축물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주변 매물을 뒤늦게 매입하시는 걸 보고 깨달았습니다. 회장님은 당신의 목적을 위해 제 건물을 희생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는 걸.”
말이 끝나자마자 마이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지내셨습니까? 샘 리치 회장님.”
“마이클! 자네가 왜 여기 있는 건가?”
마이클이 여유롭게 예건의 옆자리에 앉으며 친분을 과시하려 어깨를 감쌌다.
“회장님께서 저를 잘라 주신 덕분에 이렇게 좋은 동업자가 생겼지 뭡니까?”
마이클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자, 샘 회장이 뒷목을 잡고 그를 삿대질했다.
“뭐? 설마, 둘이 나 몰래 뒤에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트리플 컴퍼니처럼 외부에 발설하기 어려운 일을 꾸미는 회사는 아니니까요.”
마이클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예건은 계획은 애초에 샘 회장보다 몇 수 더 앞서 있었다. 설계 단계부터 전시장이 철거되는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 설계했던 것이다.
기초와 건물을 연결하는 철 구조물에서 용접된 나사 수십 개만 제거하면 건물을 통째로 다른 곳으로 옮기 수 있다.
AA리츠 LA지사장으로 마이클을 고용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부동산 분야에서 실력을 쌓은 마이클은 무척이나 유능했다.
덕분에 코리아타운 인근의 좋은 땅을 적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고, 이후 루시아 공주도 마이클의 조언을 구해 부동산을 매입했다.
이미 설계비보다 더 큰 수익이 AA리츠를 통해 유입되고 있었다.
게다가 LA시청에서 적극적으로 한국전시관 매입을 바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으니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건은 샘 회장을 안심시켰다.
“회장님, 저는 회장님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희로 인해 트리플 컴퍼니가 LA측과 진행하던 협의가 무산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건 확실히 말씀드리죠.”
“흥!”
샘 회장이 못마땅한지 고개를 홱 돌렸다.
“제 뜻은 모두 전달 드렸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점심은 제가 사죠.”
예건은 마이클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만사를 다 제쳐 두고 파리까지 왔건만, 샘 리치가 이룬 것은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
분기를 겨우 참아낸 그가 비서를 불렀다.
“한예건이 에번스와 일하는 게 확실한지, 당장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레스토랑을 빠져나온 예건과 마이클은 곧바로 호텔 객실로 향했다.
마이클은 미국에서 가져온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LA시청에서 요청한 의뢰 내용과 계약서입니다.”
“한 번 보죠.”
마이클이 파리로 온 이유는 단순히 샘 회장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20번가 일대의 부동산 폭등에 저가로 거래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자, 트리플 컴퍼니는 부랴부랴 매입 작업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0번가 일대의 슬럼화가 가속화된 것이 샘 회장의 기획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LA시장은 지방의회에서 층고 제한 완화를 급히 서두른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저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정계 깊숙이 뻗친 그의 막강한 힘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결국 LA시장은 그가 과도하게 챙긴 수익을 최대한 환수하기 위해 한국전시관을 포함한 도로 인근의 대지를 귀부처납 받는 조건으로 건축 허가를 승인하기로 했다.
샘 회장은 토지를 떼어주는 대신 기존 510m의 높이 제한을 50m 더 높여 달라 요청했고, 둘은 이에 합의했다.
시장은 회장의 긍정적인 답변을 받자마자 곧바로 예건에게 연락을 취해 한국전시관의 설계 보완을 요청했다.
지금 예건이 확인하고 있는 서류가 바로 그것이다.
연면적 1500평, 설계비 50억짜리 계약서.
기존의 한국전시관 구조를 보강하고 신관을 설계까지 완성하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또한 계약서에는 한예건의 건축 지분을 인정하고, 매년 30억에 달하는 사용료를 지급하겠다는 약정까지 적혀 있었다.
“나쁘지 않군요.”
“그럼, 변호사에게 검증받는 대로 계약 진행하겠습니다.”
“네.”
“그런데….”
마이클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왜 에번스의 제안은 거절하신 겁니까?”
“컨셉 설계까지만 하라고 해서요.”
“그게 왜?”
“거절 이유가 되냐고요?”
“네. 에번스 측에서 제안했던 설계비는 업계 최고의 금액이었습니다. 이런 작은 일도 하시면서 왜 그 건은 거절하셨는지 이유를 알아야 제가 앞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예건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완성하지 않은 건축물은 제겐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건림건축은 초고층 건축물 설계 지식이 없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설계 실력을 쌓고, 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요.”
예건은 피식 웃었다.
초고층 설계 지식이 없다고?
과거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도 172.5m에 달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계하고 공사과정을 직접 진두지휘했던 그였다.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발전한 시대.
충분한 재력과 인력만 보충된다면 그보다 더 높은 건축물과 어려운 건축 구조도 완벽하게 완성할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 최고층 건축물을 지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좋은 기회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건축물은 얼마나 크고 높냐가 아니라.”
예건은 서류를 들어 보이며 눈을 찡긋했다.
“스토리가 있는 건축물이죠. 건축을 지키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실제로 지역을 바꾸는 데 일조한 그런 상징적인 건축물이요.”
“아….”
마이클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건축물을 만들 겁니다. 종교나 사상 같은, 인간이 만든 제약에서 자유로운. 그 시대에만 존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건축물이요.”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처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