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World Famous Architect (4)
이른 새벽.
퐁트브로 수도원의 착공 예배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관계자가 예배당을 꽉 채웠다.
“주여! 당신의 전당을 이 땅에 굳건히 세우소서!”
티모테 수도원장의 기도로 경건한 분위기의 예배가 마무리되고, 작업자들이 하나둘 예배당을 빠져나와 현장으로 향했다.
티모테 원장과 앞으로의 일정을 나누느라 조금 늦게 현장에 도착한 예건.
뜨거운 햇빛 아래 땀을 흘리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작업자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과거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착공하던 날과 겹쳐 보였다.
다시 태어나서도 성당을 건축하고 있다는 사실에 예건은 왠지 숙연해졌다.
땅을 파는 전동 기계들이 거친 소음과 뿌연 먼지를 일으켰다.
과거에는 오로지 인간의 힘에 의지해야 가능했던 일들이 지금은 전기가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기분이 어때요? 잘 될 것 같아요?”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온 니콜이 물었다.
“제 일은 마무리되었으니, 이젠 저들의 손에 달렸지요.”
예건은 시공자들에게 눈길을 주며 대답했다.
“그래서 잘 될 거라는 말이죠?”
“물론입니다. 설계는 완벽하니까요.”
예건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피식 웃은 니콜이 덧붙였다.
“이번 퐁트브로 수도원의 설계가 공개되고 반향이 정말 굉장했어요. 초원 위에 스테인레스 스틸로 마감된 성당이라니.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 조합이잖아요.”
“예술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닙니까?”
“맞아요. 건축도 예술의 한 분야니까. 성당이 완성되면, 한없이 한적한 이곳도 관광 명소가 될지 모르겠네요.”
“조용히 수도하길 원하시는 분들께는 정말 죄송한 일이지요.”
“덕분에 이곳이 유지될 수 있겠죠.”
이만한 규모의 수도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예건은 영감이 준 환상을 실현하는데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쉽게 구부러지면서도 강하고, 자유자재로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철은 신의 건축을 보다 완벽히 완성하기 위해 준비된 가장 적합한 재료였다.
“곧 바르셀로나로 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하여튼 브루노 건축사님은 입이 너무 가볍다니까요.”
“내 입이 가볍다니? 자네가 쓸데없이 무거운 거지.”
현장을 지휘하고 돌아온 브루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결국, 이날이 오긴 오네요. 그곳에 가면 한동안 다시 보기 어렵겠죠?”
“뭘 그렇게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어? 한 대표가 영영 못 돌아오는 곳으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 일, 한 대표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프로젝트잖아요.”
최소 2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걱정 마십시오. 설계에 참여한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일부일 테니까요.”
지금은 21세기.
지난 70년 동안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로써 더 부각되었다.
과거처럼 건축물에 필요한 조각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조각가가 동원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설계 인력 또한 전문화되고 분업화됐다.
인간의 힘으로 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기계의 발전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효율성을 따지기 시작했고, 인간을 대신한 기계가 처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 설계는 단순해졌다.
그 말은 그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 설계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성에 조금의 보탬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직접 설계 조직을 진두지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최선이 어렵다면 차선이라도 선택할 수밖에.
예건은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동안 수고했던 이들의 밥그릇을 빼앗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로부터 석 달 후.
예건은 파리 교구의 베네딕토 대주교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다.
* * *
“세르지오 대주교님이 방문하신다니? 갑자기 무슨 일이야?”
“글쎄. 나도 잘….”
바르셀로나의 대주교가 직접 현장에 방문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오더라도 대충 외부를 둘러보고 가우디 연구소에서 진척 상황을 파악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성직자들이 다수 방문하고, 현장 내부까지 둘러본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꼬박 반나절 동안 공사가 중단되고, 가우디 연구소 직원들까지 의전과 안내를 위해 총동원됐다.
잠시 후, 약속된 시간에 현장 입구에 나타난 한 무리의 성직자들.
그중에는 예건도 속해 있었다.
연구원 중 하나가 선두 무리에 있는 한예건을 보고 일행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동양인은 뭐지? 왜 혼자 양복이야?”
“글쎄.”
“저 사람…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보긴 뭘 봐? 동양인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착각하는 거겠지.”
“아냐, 진짜 봤다니까. 분명 아는 얼굴인데….”
남자는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지 초조한 얼굴로 그를 유심히 살폈다.
그때, 무리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사무엘이 동양인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지막이 말했다.
“한예건.”
“아! 맞아, 한예건. 저 사람 그 사람이잖아. 루시아 미술관 설계자!”
“오! 정말?”
“와! 대박. 나 거기 가 봤는데, 처음 보고 숨 막혀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진짜 디테일 장난 아니던데. 근데 저 사람이 여긴 무슨 일이지?”
그가 설계자로 참여하기 위해 벤하민 모레노 소장을 만나러 왔다는 것을 전혀 알 리 없는 연구원들은 그저 그의 방문을 신기해했다.
그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무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결국… 여기까지 와 버렸군.’
사무엘은 조용히 현장을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 * *
예건을 마중 나온 요셉 신부는 그를 반기며 말했다.
“늦었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제가 바쁜 탓이었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저희는 건축에 관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요.”
“이해합니다.”
예건과 함께 온 베네딕토 대주교는 바르셀로나 교구를 맡은 세르지오 대주교를 소개해주었다.
“대주교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루시아 미술관을 설계하신 분이라고요. 한예건 건축가님의 명성은 이미 바르셀로나에서도 자자합니다.”
“그저 의뢰를 받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단순히 일이라 평가하기엔 너무 대단한 재능이 아닙니까? 예술에 문외한이긴 하나, 그 정도 재능을 누구나 가질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일행이 현장을 들어서자, 입구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벤하민 모레노 연구소장이 세르지오 대주교를 발견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갑자기 연락을 주셔서 준비를 많이 못했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그저 잠시 둘러보려고 온 거니까요.”
모레노 연구소장은 잠시 예건에게 눈길을 주고는 앞장섰다.
연구소장이 직접 현장을 안내한 덕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구석구석 살필 수 있었다.
현장 방문의 마지막 방문 장소는 1층 예배당이었다.
그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예건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건만….’
그곳에 신의 선은 없었다.
곡선을 찾아보기 힘든 디자인, 너무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수직성, 자신이 만약 살아있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결과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철거당할 위기에 놓였던 건축물을 이렇게라도 완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수밖에.
세르지오 대주교는 그런 예건의 속도 모르고 흐뭇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정말 웅장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신 신이 만드신 대자연의 숲을 연상시키는 천장의 장식이야말로, 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자랑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예건의 시큰둥한 대답에 조금 무안해진 세르지오 대주교.
“건축가 가우디의 능력은 단지 디테일의 섬세함만을 두고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컴퓨터도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 172.5m에 달하는 건축물을 물리 역학적 연구만으로 설계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 점이지요.”
가우디의 위상을 높이는 그의 발언에 예건은 조금 낯부끄러워졌다.
그가 붉어진 얼굴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벤하민 모레노 연구소장이 세르지오 대주교를 거들었다.
“대주교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한 애정에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하하하. 가우디 연구소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성은 예상보다 훨씬 더 늦어졌을 겁니다.”
두 사람의 자화자찬이 끝없이 이어졌다.
건축물 투어를 마친 일행은 연구소장의 응접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예건은 아까 본 예배당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응접실에 자리하고 세르지오 대주교가 모레노 소장에게 물었다.
“예배당의 공사는 언제쯤 마무리될 것 같습니까?”
“현 상황이라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완성될 것 같습니다.”
“그것참 다행이군요. 다음이 영광의 파사드와 첨탑이겠죠? 그 부분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 물음에 모레노는 예건을 힐끔 쳐다보더니 답했다.
“영광의 파사드는 기초설계가 마무리에 접어들었고, 첨탑은 영광의 파사드가 마무리되는 대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흐음…. 그렇군요.”
세르지오 대주교는 진지한 표정으로 모레노 소장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모레노 소장님께 중대한 제안을 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모레노 소장의 물음에 세르지오 대주교의 시선을 받은 요셉 신부가 대답했다.
“최근 몽생 미셸 수도원과 루앙 대성당, 퐁트브로 수도원에 기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30분 동안의 긴 이야기.
“교황님께서는 일련의 일들이 미카엘 대천사께서 예비하신 일들이라 판단하셨습니다. 바로 여기 한예건 건축사님을 보내 천국의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말이죠.”
놀란 눈으로 예건을 바라보는 모레노 소장.
“그런 일이 있었다니,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군요. 그런데… 이곳에는 왜?”
“교황님께서는 한예건 건축사가 영광의 파사드의 설계에 참여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네? 그게 무슨.”
“가우디 연구소가 그간 영광의 파사드를 설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예건 건축가에 대한 교황님의 신뢰가 무척이나 두텁습니다.
마지막 설계를 결정하기 전에 가우디 연구소의 제안과 한예건 건축가의 제안을 함께 보고 싶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결국. 모레노 소장이 가장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모레노 소장은 정색하며 그 제안을 거부했다.
“이제 와서 설계를 바꾸기라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 * *
“저렇게 강경하게 반대할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물론 걱정은 마십시오. 한예건 대표님께서 교황님의 지원을 받는 이상 저들도 계속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연구소를 나와 예건과 따로 자리를 마련한 요셉은 무안해진 얼굴로 예건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니까요.”
교황이 거론되었음에도 모레노 소장이 반발할 수 있었던 것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건축비가 교황청을 통해 지원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터.
예상외로 모레노 소장의 반발이 컸으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나의 환생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연관이 없을 리가 없다.’
다만 그 시기가 늦어지는 게 걱정스러울 뿐.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예배당의 현재 디자인은 도무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건축물을 빠르게 완성하기 위해 최소한의 디자인만 반영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유가 뭘까?’
교황청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공을 재촉해서? 아니면 바르셀로나 시의 철거 압박 때문에 급조된 탓인가? 그도 아니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자신의 대에 완성하겠다는 모레노 소장의 명예욕인가?
어떤 이유가 되었든 모레노 소장의 입장을 정확히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예건이 장고를 거듭하자, 답답해진 요셉이 물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가우디 연구소는 안토니 가우디 사후 70년간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이어온 전문가들입니다. 아무리 한 대표가 교황님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결과물이 좋지 않다면….”
예건의 설계가 저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을 염려하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이다.
“현재 가우디의 건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건 저라고 자신합니다. 그러니 염려 마십시오. 제게 필요한 건 제 실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니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