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첫 번째 기적
예건이 자신감을 보이자 그제야 요셉이 수긍하며 성호를 그어 축복했다.
“부디 신의 뜻이 한 대표와 함께 하길. 그럼, 전 한 대표의 뜻을 교황님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요셉 신부를 돌려보내고, 곧바로 리오에게 연락을 취했다.
리오는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언제 연락이 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탁드린 내용은 진척이 좀 있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럼, 카사 바트요에서 뵙죠.”
한 시간 뒤, 그가 찾아왔다.
“한 대표님 말씀이 사실이더라고요. 정말 엄청난 걸 찾았습니다. 보시면 진짜 깜짝 놀라실 거예요.”
리오는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마치 소풍 전날을 앞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가 서류 봉투에서 꺼낸 것은 낡은 종이로 감싸여 있는 두툼한 꾸러미였다.
“탑에서 나온 게 확실합니까?”
예건은 직접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가 않아 재차 그에게 물었다.
“네. 그렇다니까요.
“여기, 이 봉인을 보십시오. 이게 바로 가우디 건축가님께서 생전 사용했던 봉인 도장입니다. 종이 표면의 노후화 진행도나 겉에 쓰인 마지막 조수 루카스 모레노의 사인! 이것만 봐도 가우디님이 남기신 것이 확실합니다.”
예건의 부탁을 듣고 리오가 찾아온 것은 그가 전생에 숨겨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도면이었다.
80이 다 되어갈 즈음.
그는 자신의 대에 건축물을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알고 전체 디자인을 구상하여 도면화했다.
지금 가우디 연구소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그렸던 도면의 전체 숫자에 비하면 극히 일부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많은 도면이 파손된 이유도 있지만….
자신이 이 도면들이 공개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도면이 맞는지는 열어봐야 할 것 같아요. 공개하지 않고 내부를 확인하려면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 텐데, 비밀을 지켜줄지….”
“도면이 맞을 겁니다.”
예건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하자, 리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포장지로 사용된 종이는 과거에 내가 사용했던 고급 도면지구나.’
큰 도면을 반듯하게 접어 책 크기로 작게 만들어 놓은 듯했다.
도면 꾸러미를 쓰다듬자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그가 이 도면을 탑에 숨기라 지시한 이유는 그 완성도가 매우 떨어지는 초안이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너무 노쇠하여 손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눈도 어두워 촛불을 잔뜩 켜야 도면 위에 가는 선들이 가늠되는 상태인 데다, 집중력도 떨어져 도면을 그리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길었다.
주로 작업한 시간은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는데, 그가 퇴근하지 않으면 조수들이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퇴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이 마무리될 때 일찌감치 친구네 집에 들러 식사를 하고,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홀로 새벽이 될 때까지 일했다.
그걸 우연히 보게 된 조수 루카스 모레노는 불같이 화를 냈다.
‘건축사님! 몸도 불편하시면서 밤늦은 시간까지 혼자 도면을 그리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그러다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저희는 어쩌라고요.’
‘내 명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자네도 알지 않는가? 도면을 그리다 죽는다면 그야말로 호상이지.’
‘건축가님!’
‘허허.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돼. 귀는 아직 안 먹었거든.’
‘하아-. 건축가님께서 이 시간에 일하시겠다면, 저도 여기 있겠습니다.’
‘자네, 그거 직무 태만이야. 낮에 조수들 관리하기 귀찮아서 그러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나?’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알고 계시잖습니까?!’
루카스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노여워 말게. 이건 그냥 내 소소한 기쁨이니. 자네까지 고생하게 할 수는 없지. 이대로 완성될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꼭 건축사님의 뜻대로 완성될 거니까요.’
‘허허. 정말 그럴까?’
도면은 건축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 그저 누군가의 상상일 뿐이다.
건축물을 짓는 데는 수많은 제약이 따른다.
특히나 그의 말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심각한 수급 부족에 시달렸다.
급격히 불어온 민주화 바람으로 인해 공사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던 귀족들이 하나 둘 망하기 시작하고, 설계 인력들은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고전 건축보다 설계 기간이 짧아 돈이 되는 공장 건축으로 눈을 돌렸다.
게다가 석공, 타일공, 잡부를 가리지 않고 시공 전문 인력의 노화가 심각해졌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5~60대 노인들만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결단해야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완성도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걸.
그래서 사고로 죽기 전 정신을 차린 가우디는 자신의 초안을 모두 탑 안에 숨기고 절대 공개하지 말라 모레노에게 부탁하고 숨을 거뒀다.
예건은 그때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걸 왜 그런 곳에 숨겼을까요?”
“아마도 가우디는 이 도면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왜요? 이것만 있었다면 가우디 연구소에서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예건은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네? 그게 무슨!”
“가우디의 진짜 능력은 설계도면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의 건축은 시공단계에서 끊임없이 진화하죠. 특히 이곳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특히 더 심했습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뇌가 늙어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포장 종이의 품질이나 노화된 정도를 보면, 이 속에 있는 건 그가 말년에 그렸던 도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한창 전성기라고 말할 수는 없죠. 이전처럼 상상력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것이 어려웠을 겁니다, 당연히 현장에서 즉석으로 수정하는 게 더 많았겠죠. 그런데 만약 후대가 남은 도면을 신봉하며 그대로 완성했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지 보지 않아도 뻔한 일 아닙니까?”
“아….”
리오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이해가 되는군요. 가우디 건축가님이라면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최고의 건축물이 되기 바랐을 테니까요.”
예건은 고개를 동의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건축물에 대한 부채감을 후대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분의 건축 스타일로 완성하려고 했다면 지금의 속도로 공사하는 건 절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성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것에 더 큰 의미를 두셨을 것 같네요.”
“흐음…. 그렇게 생각하니, 안타깝군요.”
리오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도면의 발견은 예건에게 기회였다.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인정한 거죠. 아마 남은 도면은 이것 외에도 더 있을 겁니다.”
“네? 정말입니까?”
“여기, 번호가 적혀 있죠?”
예건이 가리키는 곳에 2/8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보관 날짜 아닙니까?”
“보관 날짜였다면, 아마 년도를 붙였을 겁니다. 제 추측엔 8개의 꾸러미로 나눠 탑 곳곳에 숨겨 놓은 것 같군요. 만에 하나 후대에 건물이 철거되어 파괴된다 해도, 우연이라도 도면을 찾아낼 수 있게요. 루카스 모레노가 제법 기지를 발휘했네요.”
모든 도면을 한곳에 모아두려면 숨길 공간이 넉넉해야 한다. 게다가 한 곳에 숨기게 되면 철거 시에 동시에 파손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종탑의 특성상 비밀 공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분할해서 보관하면 부피가 줄어들기에 다양한 장소에 숨기는 것이 가능하다.
매사에 철저하기로 소문난 루카스 모레노다운 발상이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벤하민 모레노 소장이 이 사실을 알면, 분명 모든 도면을 찾아내라는 지시를 할 겁니다. 만약 이 안에 영광의 파사드와 첨탑의 도면이 있다면….”
리오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예건을 돌아보았다.
“아직 이걸 공개하기엔 이릅니다.”
“네? 아니, 도대체 왜요? 이 도면이 탑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밝힌 사람이 한 대표님이라는 걸 알면, 설계에 참여하는 것이 더 쉬워질 텐데요.”
“그래서 싫다는 겁니다.”
리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예건을 멀뚱히 쳐다봤다.
“제 실력으로 참여할 겁니다.”
“쉽지 않을 텐데요.”
예건은 씩 웃으며 리오에게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쉽지 않아도 포기할 수는 없죠. 먼저 바르셀로나 시민들에게 인정받겠습니다. 제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참여하는 것을 모레노 소장님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예건의 눈빛에서 강한 의지를 읽은 리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네! 그럼, 저는 다른 도면들을 비밀리에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예건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루카스가 도면을 숨겨뒀을 법한 위치를 대략 표시해주고, 리오를 돌려보냈다.
이제 밀린 숙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되었다.
* * *
RRRRR. RRRRR.
예건이 LA에서 시민권을 받던 날, 건림건축 홍보실이자 출판팀에는 바르셀로나의 방송 매체의 연락이 쇄도했다.
끊이지 않는 벨 소리에 기가 질려버린 오경환 대리가 참지 못하고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운 제스처를 했다.
“으악! 유명한 것도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네. 하루종일 전화벨 지옥에서 살아야 한다니!”
“불평 그만 좀 하고, 이거 좀 타이핑 해서 한 대표님께 메일로 보내줘요.”
“히익! 이게 뭐야? 설마, 오늘 오전에 연락 온 방송사 리스트?”
“하… 네.”
오전 내내 전화를 받은 김연희 대리의 눈빛이 퀭하다.
자신은 불평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오경환이 조용히 서류를 받았다.
“그런데 왜 저렇게들 호들갑이래?”
“스페인 건축계의 샛별인 한 대표를 마케팅으로 무장한 미국에 뺏기는 게 두렵겠죠.”
“지들이 한 게 뭐 있다고, 한 대표를 뺏기네, 마네야? 그리고 애초에 한 대표는 한국 사람이라고! 여권에 군필까지 쾅 찍힌 진정한 한국 남자!”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우디의 건축적 맥락을 잇고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흥! 한 대표가 어디 아르누보 스타일만 잘하는 줄 아나? 우리 한 대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오경환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김연희는 허탈하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 대리님이 한 대표를 업어 키운 줄 알겠어요.”
“솔직히 전혀 관계없는 건 아니지. 내가 한 대표의 작품을 예술적으로 찍어 줬으니까, 입소문이 나서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었던 거잖아. 안 그래?”
그의 말도 아주 조금은 일리가 있다.
한예건의 작품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은 것인지 오경환의 사진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했다.
이제 개인 사진전을 열 정도로 한국 건축 사진 계에 유명 인사가 된 그였다.
“물론 오 대리님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제가 보기엔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네요. 오 대리님이 지금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건, 다 한 대표의 작품 덕분이었으니까.”
“히히. 그건 그래. 어쨌든 우린 상부상조하는 사이라고.”
“그건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죠. 한예건 대표가 대중적인 인지도가 거의 없었을 때, 루시아 공주 신혼집을 설계한 덕분에 유럽에서 유명세를 갖기 시작했으니까.”
“뭐,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괘씸하잖아!”
“뭐가요?”
“정말 몰라서 물어?”
오경환이 씩씩대며 말했다.
“루시아 미술관 개관하고 사람들이 가우디가 현대에 태어나 디자인을 했다면, 이런 건축물이 탄생했을 것 같다고 말한 관광객 인터뷰에 MC와 패널들이 웃기는 소리라고 빈축 댔던 그 방송 말야.”
“그 방송은 예능이었잖아요. 그리고 제국 국가들이 다른 나라들 얕잡아 보는 게 어디 한두 해 있던 일인가?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그래도. 난 솔직히 너무 배신감 느꼈어. 카사 루시아 설계할 때 우리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내 속이 뒤집어지는데, 한 대표는 어땠겠냐고?”
“하아….”
김연희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 대표는 그 영상 보고 웃던데요.”
“뭐???”
오경환이 화들짝 놀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