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d of 21st Century Architecture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완성, 새로운 시작 (완)
스페인 저녁 뉴스에 관련 소식이 전해지면서 산티아고와 파리에서 시작된 순례길의 행렬이 바르셀로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3일이 지나자, 그들의 행렬 만으로 장관을 이룰 정도였다.
뉴스의 여파로 가뜩이나 관광객들로 붐비던 주변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례자들의 발길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우디의 아성이 대단하긴 하네. 저러다가 사고라도 나는 거 아냐?”
도 PD의 지원 요청에 퐁트브로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촬감이 인근 건물 옥상에서 그 장면을 찍으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 사고는 안 생겨야 할 텐데. 아! 저기 나온다. 클로즈업!”
“어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문이 열리고, 가우디 연구소 소장 모레노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곁에는 한예건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계단 중앙에 마련된 발표대로 향해 걸어갔다.
동시에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이 조용해지고,그들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계단 주변에는 가우디 연구소의 입장 발표 소식을 듣고 새벽부터 몰려든 기자들로 가득했다.
마이크 앞에 선 모레노 소장은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가우디 연구소를 책임지고 있는 벤하민 모레노 소장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영광의 파사드와 관련하여 중대한 발표를 하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질문은 발표 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광장을 메웠던 박수 소리마저 그의 발언과 함께 수그러들었다.
“가우디 연구소는 최근 건축가 가우디 님께서 살아 계셨던 당시 완성했던 첫 번째 탑에서 그분이 남겨둔 도면 뭉치들을 찾았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과학적 방식을 총동원했고, 도면을 그린 방식 등을 세밀하게 검토한 결과 가우디 님이 그리신 작품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놀라운 소식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모레노는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손을 들어 군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건축가 가우디가 왜 도면을 탑에 남겼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분의 마지막 제자이자, 초대 연구소장이었던 루카스 모레노 님이 과거 하셨던 말씀을 떠올려 보면, 완벽하지 않은 도면으로 후대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한 결정이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인파가 크게 술렁였다.
가우디의 도면을 발견했다는 뉴스와 함께 공개된 가우디의 도면을 저들도 보았기 때문이리라.
촬감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완벽하지 않은 도면이라니. 너무 하는 거 아냐?”
물론 조각의 형태가 뭉뚱그려 그려져 있고, 잉크 번진 자국도 여기저기 많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 가우디가 남긴 도면은 당장 디자인에 적용한다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정교해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한예건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 보았던 도 PD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기도 했다.
“한 대표 도면이랑 비교하면, 디테일이 많이 빠지긴 했지. 완벽주의자였던 가우디에겐 부족해 보이지 않았을까?”
“하긴. 그렇게 비교하니 확실히 와닿네.”
모레노 소장이 다시 발언을 시작했다.
“우리는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도면이 발견되기 전 한예건 건축가가 그린 영광의 파사드를 가우디의 도면과 비교,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건축 구조 및 입면 구성에 굉장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우리는 그가 영광의 파사드의 환상을 보았다는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다음 말을 꺼내기도 전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레노 소장의 발언이 한예건의 설계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모레노가 마이크에 대고 뭐라고 말을 이었으나, 그 소리가 사람들의 함성이 묻힐 정도였다.
이내 모레노가 한 걸음 물러서고, 한예건이 마이크 앞에 나섰다.
흥분했던 사람들이 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소리 지르는 것을 자중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 거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단상에 집중되었다.
그 기대의 무게가 얼마나 클지 일반인인 도 PD는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
“안녕하십니까? 건축가 한예건입니다. 먼저 저의 말을 귀담아 들어 주시고, 저를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예건이 한국식으로 몸을 숙이며 정중히 인사하자,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의 박수가 광장을 메웠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환상은 파사드 입면도를 공개한 날 이미 도면화를 마쳤습니다. 또한 완성된 도면은 가우디 연구소에 모두 기증했습니다.”
도면 작업이 끝났다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군중들이 술렁거렸다.
“앞으로는 제가 드린 도면을 바탕으로 가우디 연구소에서 공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물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저도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기자 중 한 명이 의문을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물었다.
“설계가 끝났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흠. 초안 설계자로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은 끝났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군요. 더는 그려야 할 도면이 없거든요.”
예건에게는 전생에서 고안했던 디자인을 상세하고 빈틈 없이 채운 것에 불가했지만.
대중에게는 70년간 가우디 연구소에서 해온 복잡한 설계 작업을 그 혼자 단시간에 끝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럴 수가… 설계가 벌써 끝났다고요? 그럼, 한예건 씨는 가우디 연구소 소속으로 활동하지 않는 건가요?”
도무지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던 기자가 되묻자, 예건의 곁에 서 있던 모레노가 상세 설명했다.
“한 대표의 말처럼 그가 제출한 설계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으며, 한 대표 또한 우리 가우디 연구소가 이를 기반으로 시공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공감했습니다. 물론 그가 가우디 연구소에서 근무할 수 있다면 저희로서는 정말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한예건 대표만의 건축관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오랜 논의 끝에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겨우 20대의 나이에 가우디 연구소 같은 전통 있는 기관의 기관장에게 설계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발언에 기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앞으로 가우디 연구소는 한예건 대표의 도면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완성할 것임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공표합니다.”
예건이 목표했던 바가 이뤄졌음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도면을 완성한 순간부터 그의 가슴엔 새로운 꿈이 피어 올랐기에.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의 자연과 맞닥뜨릴 때마다 보았던 환상들.
바르셀로나에만 국한돼 있었던 세계관이 이번 생을 통해 훨씬 확장됨을 느꼈던 것이다.
“그럼, 한예건 씨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네, 완공을 앞두고 있는 건축물이 있어 당분간 그럴 예정입니다.”
“그 프로젝트는 어떤 건가요?”
“오늘 발표와 무관한 내용이므로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혹시 스페인에서 추진중인 다른 프로젝트는 없는 건가요?”
“현재 한국과 프랑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많아 당분간 신규 프로젝트 수행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얼마든지 고려해 볼 생각입니다.”
기자들의 열띤 질문에 예건은 조금의 긴장도 보이지 않고 평온한 얼굴로 답해 주었다.
그날 저녁 세계 주요 뉴스와 신문 헤드라인이 그와 관련된 소식으로 도배되었다.
예술과 건축의 경계선에 선 천재 건축가란 타이틀과 함께.
* * *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예건은 공항 출국장을 가득 메운 엄청난 인파를 보고 주춤했다.
그가 동행하던 도 PD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 그게 분명히 저희 방송국에만 얘기했는데.”
아무래도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말한 탓에 그의 출국 소식이 전해지자 마자, 대기했을 거라고 말하는 도 PD.
원래라면 곧장 방송국으로 가서 뉴스 인터뷰를 하기로 했으나, 아무래도 그냥 통과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짧게 인터뷰 하고 차를 타시는 게 좋겠는데요.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마시고, 저녁에 있을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겠다고 하시면 될 겁니다. 마치고 바로 탑승할 수 있도록 차량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해 두겠습니다.”
“시간은 아직 여유 있나요?”
“네.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도 PD가 앞서 걸으며 행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위치로 그를 인도했다.
예건이 멈춰 서자, 온갖 방송국의 마이크가 그를 향했다.
당연히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관련된 질문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때.
한 인터뷰어가 질문을 던졌다.
“한국 최초 프리츠커 상 수상자로 선정되셨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이어지는 질문도 온통 그와 관련된 질문이었다.
“글쎄요. 수상자 후보에 올랐다는 말은 들었지만 수상자라는 소식은 아직….”
와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프랭크 게리였다.
나중에 받을까 했으나, 업무 연락인가 해서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연락인 것 같아서요. 전화 좀 받겠습니다.”
통화가 연결되고 예건이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는 찰나.
– 자네 지금 어딘가?
“네? 지금… 공항입니다.”
– 잘됐군. 바로 미국으로 좀 와야겠어. 축하하네. 자네가 최연소로 프리츠커 상 수상자가 됐어.
“네? 제가요?”
– 그래! 할 얘기가 많아. 지금 출발하면 언제쯤 도착하겠나? 아 참! 뉴욕으로 와야 하네.
“아. 네.”
게리가 다시 한 번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복잡미묘한 표정의 예건을 보고 도 PD가 상황을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어 그게… 뉴스 인터뷰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도 PD를 두고 예건은 대기하고 있는 인터뷰 기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금방 연락을 받았는데. 말씀대로 제가 프리츠커 상 수상자로 선정 되었다는 군요. 곧바로 뉴욕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기자 회견은 따로 일정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예건은 도 PD를 데리고 곧바로 매표소로 향했다.
기자들이 그를 쫓아 입국장까지 쫓아 왔으나 다행히 무례하게 접근하는 이는 없었다.
도 PD 또한 곧바로 방송국에 일정 조정을 요청하고, 곧바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 도착하자마자 미국행이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전 오히려 이게 낫습니다. 업무에 방해될 일이라면 빨리 해치우는 게 좋거든요.”
“아….”
한예건은 확실히 난 사람이 맞는 모양이다.
노벨상과 맞먹을 정도의 권위있는 상.
그런 상의 수상자가 되었는데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다니.
“기쁘지 않습니까?”
“기쁘죠.”
“그럼 좀 더 좋아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게 말해 놓고도 좀 무안했는지 예건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조금 재수없어 보입니까?”
“어…. 저야 한 대표를 인정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조금요?”
“수상자 소감 발표 때 참고해서 발언해야겠군요.”
긴 여행이 될 테니 편히 쉬라고 말하고 예건은 다시 도면을 펼쳤다.
곁눈질로 힐끔 보자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이다.
“이건 이전 건축물들 하고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네요.”
“하하. 느끼셨습니까? 이건 곧 마감 공사가 시작될 네오 소프트 사옥입니다.”
아까 수상 소식에 태연한 모습을 하던 예건은 오히려 프로젝트 설명에 열을 올렸다.
도 PD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건축에 대해 설명하는 예건을 보며 생각했다.
천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것 같다고.
* * *
한예건의 프리츠커 상 수상 소식은 곧바로 전 세계 톱 뉴스가 되었다.
건축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 한예건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뉴스며 신문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었고.
그의 모습이 타임지 표지에 선정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나 프리츠커 상 수상식에서 남긴 수상소감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과거 미켈란젤로가 그런 말을 남겼었죠. 돌 안에 이미 형상이 있었고, 자신은 그 속에 갇힌 형태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조금씩 돌을 깎아냈을 뿐이라고.
저 또한 그렇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건축의 목적에 충실하되 각각의 땅이 원하는 건축물을 세상에 내놓았을 뿐입니다.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것은 저를 완성시키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죽을 때까지 땅에 종속된 인간이기에 신의 예술을 흠모했고, 제가 본 것을 세상의 모두와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조그마한 재능이지만 앞으로도 저만의 건축을 선보이려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물처럼 오랫동안 인류에게 사랑받는 건축물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예건은 자신을 향해 박수를 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생명을 갉아내며 치열하게 건축을 사랑했던 망령은 이제 이곳에 없다.
그저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환상을 그려갈 한예건이 남아 있을 뿐.
새로운 삶, 한예건의 건축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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